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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3인 연쇄인터뷰|한광옥 민주당 대표

“누가 후보돼도 이회창 이길 수 있다”

  • 안기석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 daum@donga.com

“누가 후보돼도 이회창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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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적 쇄신할 사람 더 이상 없다
  • ● 당직 인선 중립적으로 했다
  • ● 대통령은 권한을 위임했다
  • ● 최고위원회의와는 별도의 기구 구상했다
  • ● 민주당, 수직에서 수평 정당으로 이동중
  • ● 구당(救黨)에만 전념
최근 인적 쇄신을 둘러싸고 벌어진 민주당 사태를 결산하면 최대 수혜자는 누구일까. 단순하게 대차대조표를 그려보면 당 총재에서 평당원으로 스스로 강등한 김대중 대통령이 최대 피해자, ‘당 총재가 없는 당 대표’를 계속해서 맡게 된 한광옥(韓光玉)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이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그동안 ‘힘겨루기’를 하느라 당 대표를 ‘불편하게’ 했던 쟁쟁한 최고위원들이 모두 사라졌으니 “한대표가 화장실에서 웃는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그러나 한대표는 민주당 내 각 계파들의 엇갈리는 이해관계를 조절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만큼 마냥 행복감에 젖어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동안은 김대중 대통령이 신임하는 ‘관리형 대표’로서 청와대의 ‘지침’을 충실히 당에 전달하면 됐지만, 이제는 운신의 폭이 넓어진 만큼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고민도 많을 것이다. 그동안 김대중 대통령이 중요한 고비가 있을 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맡겼던 한대표는 격렬하게 요동치는 민주당 내 각 계파의 이해를 조절하는 해결사로서 성공할 것인가.

11월16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 있는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실에서 한대표를 만났다. 막 당 4역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한대표는 표정이 밝아보였다. 바로 전날인 15일, 한대표는 청주 한씨 종친회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 초헌관(初獻官)으로 추대되는 ‘영광’을 누렸다. 이 자리에는 대권 도전을 선언한 한화갑 민주당 상임고문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부인인 한희옥 여사도 참석했다. 자연스럽게 종친회 행사 이야기부터 먼저 꺼냈다.

-청주 한씨 종친회 행사에서 초헌관을 맡았는데 한화갑 상임고문보다 항렬이 높습니까.

“항렬은 내가 낮은데, 여당 대표라고 해서 종친회에서 배려한 겁니다.”

-이번에 처음 갔습니까.

“예전에 한번 갔어요.”

-청주 한씨가 전국적으로 몇 명이나 됩니까.

“한 80만명 된다고 해요. 단일 본이거든요. 한씨 기씨 선우씨가 한 본이라 서로 결혼을 안해요. 옛날 족보로 보면 이병도 선생이 얘기한 한씨조선이 있었잖아요. 지금은 역사관이 바뀌어서 그렇지, 예전에는 기자조선, 한씨조선을 배웠어요. 기자조선이나 한씨조선은 마찬가지인데, 거기서 한씨 기씨 선우씨가 나온 거지요.”

‘역사 이야기’는 이 정도로 듣고 ‘현실 이야기’로 말머리를 돌렸다.

-최근 당 안팎으로 복잡한 사정이 많은데 당 대표를 계속 맡게 되어 어깨가 무겁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여당의 대선 후보가 정해지기도 전에 총재직을 사퇴해서 당 안팎으로 충격과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당 대표로서 이번 사태에 책임을 느끼지 않습니까.

“사실 대통령께서 당 총재직을 사퇴하신 건 충격적인 사건이죠. 처음 있는 일이죠. 역대 대통령중 이처럼 긴 잔여임기를 남기고 떠난 예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를 비롯해 당 지도부는 책임을 느끼고 사표를 냈습니다. 저는 당 대표로서 재보궐선거가 끝나자 마자 바로 사표를 냈어요. 사실 제가 대표에 취임한 지는 40여일도 안되죠. 하지만 선거는 선거니까…. 그런데 대통령께서 당 총재직을 내놓으시면서 ‘당 대표최고위원이 당 총재 권한대행을 맡아달라’고 말씀하시니까, 대통령 뜻을 받들고 있는데, 어려움이 많죠. 그러나 모두가 자숙하면서 집권여당으로서 심기일전하는 모습이 다행스러워요.”

-어쨌든 외형상으로는 10·25 재보궐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공방전에서 대통령이 책임지는 모습까지 보여주었고, 최고위원 사퇴 등 당 지도부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 외에도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까.

“물러날 사람은 물러났고, 그 외에 특별히 책임질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답은 시원하지만 모범답안형

한대표는 저음의 목소리를 가졌다. 서글서글하고 얼굴의 모든 선들이 뚜렷해 시원해보인다. 질문에 대한 대답도 거침없이 나오는데 언제나 ‘모범답안형’이다.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는 법이 없다. DJ가 ‘메신저’나 ‘관리자’ 역할을 한대표에게 즐겨 맡기는 이유를 알 만했다.

-‘대통령 입안의 혀’라는 박지원 전 정책기획수석도 사표를 냈는데, 아무래도 제일 큰 관심은 쇄신파들이 인적 쇄신의 핵심으로 지목한 권노갑 전최고위원의 거취문제가 아닐까요. 권 전최고위원은 앞으로 대선 후보 경선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데 당 대표로서 신경쓰이지 않습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어요. 본인이 시간을 갖고 처리할 문제이고…. 사실상 그분이 당직이나 직책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일부에서 정계를 은퇴하라는 얘기도 나오는데, 확실한 팩트가 없고요. 설(說) 같은 것을 갖고 무리하게 압박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좀 더 인내하면서 기다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봐요. 그분은 그분대로 입장이 있는 거잖아요. 그분의 공과도 있으니까 객관적으로 평가를 받아야죠.”

-정치는 팩트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고, 여론의 흐름에 민감히 반응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설사 권 전최고위원이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해도 대통령과 당에 부담이 된다면 스스로 판단하는 슬기가 필요한 것 아닌가요.

“그 얘기는 그 정도로 해둡시다.”

한광옥 대표는 권노갑 전최고위원을 정점으로 한 동교동 구파와 가까운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따라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았던 때나 당 대표를 맡은 뒤에도 민주당 내에서 인적 쇄신을 주장하는 개혁파들의 타깃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대통령으로부터 총재권한 대행을 위임받은 후의 행보를 보면 나름대로 독자적인 탄력이 붙은 것처럼 보인다. 한대표의 첫 작품은 당내 어느 파로부터도 편파적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았다. ‘첫 작품’이란 전당대회 시기와 성격 등을 규정하는 ‘당발전과 쇄신을 위한 특별대책위원회’인데, 조세형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의 인선에서 일단 ‘합격점’을 받은 것이다.

어려운 문제를 쉽게 푼다

-그동안 쇄신파와 동교동 구파 사이에는 끊임없이 갈등이 있어왔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십니까. 당직 인사와 관련해서 계속 이 문제가 불거져 나오지 않을까요.

“큰 파동을 겪으면서 우리 당만의 저력이 나타나고 있어요. 우리 당은 위기에 강합니다. 어제 오늘 이루어진 당이 아니거든요. 이름은 바뀌었지만, 30여년 동안 민주화세력이라든가 양심세력, 산업화세력이나 근대화세력이 그때 그때마다 수혈, 영입되면서 보완돼온 정당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저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의견을 수용하면서 다시 당을 개혁하는 일을 시작하고 있잖아요. 일례로 ‘당 발전과 쇄신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만들었는데, 가장 중립적인 인사로 구성했어요. 그런 것을 보고 많은 당원들이 ‘한대표가 정말 공정하게 하려는구나’ 하는 의지를 읽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꾸 쇄신, 쇄신하는데 그런 것도 여기에서 다 걸러질 겁니다. 쇄신은 당 발전의 밑거름이 돼야지, 당에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이 돼서는 안됩니다.”

-한국정치사에서 그동안 여당은 분파를 이루기보다 대통령이나 총재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고, 오히려 야당은 분파가 많은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오히려 여당에 분파가 많은데, 아직까지 화학적 융합이 안돼서 그런 건가요.

“당에 와서 보니까 분파라기보다도 모임이 많더라고요. 나는 그걸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아요. 나는 정당이 수직적인 형태에서 수평적인 형태로 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야당은 지금 일사분란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여당은 여러 목소리를 하나로 묶는 것이 힘들어요. 만일 여당이 코디네이트하는 과정을 겪는다면, 여러가지 목소리가 나오는 게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봐요. 그게 당의 활력소가 될 수도 있거든요. 다만 그런 움직임이 당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죠.”

-한대표가 코디네이터 역할을 해야 하는데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당장 급한 것이 전당대회 개최시기와 성격 문제입니다. 각 진영의 이해관계를 조절할 비법이 있습니까.

“지금 전당대회를 언제 하느냐, 1월이냐 3~4월이냐, 지방선거 전에 하느냐 끝나고 하느냐, 당권과 대권 후보를 한꺼번에 뽑느냐 나누어서 뽑느냐 등 여러 주장이 있잖아요. 당 대표로서 개인 의견은 있지만, 현 시점에서 생각을 밝히는 건 별로 적절치 못하다고 봅니다. 왜 그러냐? 바로 이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특별대책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제가 뭐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거죠. 저는 특위에서 수렴된 의견을 수용해야 합니다. 저는 첫번째 회의에서 ‘당 대표로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겠다. 여러분의 의견이 당무회의를 통해서 당론이 되면 집행하겠다’고 얘기했어요.”

-참 어려운 문제를 쉽게 푸는군요.

“그렇죠.”

“한광옥이 그래도 공정하구나”

-당 대표로서 고민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하하하. 그 얘기가 맞네요. 대통령께서 당 총재를 사퇴한 뒤 당무회의에서 특별대책위원회가 구성될 수 있느냐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잘 논의해서 저한테 위임했잖아요. 저는 이제까지 어려운 고비를 많이 넘겨왔어요. DJP 단일화를 해서 정권교체를 했고, IMF 위기 때 노사정위원장으로 타협안을 만들었고, 그 다음에 통일단체 136개를 민화협으로 묶었어요. 사람들은 그런 걸 어떻게 쉽게 풀었냐고 하는데, 나는 나름대로 그렇게 해왔어요. 이번에 특별대책위원회 인선하는 데도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이제까지 인선하면서 이렇게 고민한 건 처음이에요. 그랬더니 ‘한광옥이가 그래도 공정하게 했구나’는 얘기가 나왔잖아요. 그것 때문에 칭찬 많이 받았어요.”

마음씨 좋게 생긴 아저씨 같은 한대표는 그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 고무된 듯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은 어려운 문제를 쉽게 잘 푼다는 ‘칭찬’이라기 보다 당 대표로서 고민해야 할 문제를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힐난’인데도 한대표는 결코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쨌든 자신이 고민해야 할 일을 아랫 사람이나 다른 사람이 하도록 하는 것도 유능한 CEO의 덕목이 될 수 있다. 한 조직이나 나라의 수많은 고민을 혼자서 다하는 지도자가 반드시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조세형 위원장에게 고민을 다 떠넘긴 셈입니다.

“떠넘긴 건 아니고요. 그분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처음부터 조세형 위원장을 생각했습니까.

“여러 차례 논의해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으로 조세형 상임고문을 위원장으로 인선한 거죠. 저는 거기서 나온 의견은 당무회의에서 존중될 것으로 봅니다. 굉장히 중립적인 사람들이 모였으니까 잘 될 것으로 봐요.”

-최근 당직 인선과 관련해서는 약간의 불만 섞인 소리들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당직을 배치할 때는 모임이나 계파를 의식할 수밖에 없죠?

“나는 기본적으로 계파마다 자리를 나눠주는 건 당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만일 이번에 특별대책위원회를 쉽게 만들려고 했으면, 최고위원들에게 한 명씩 추천하라고 했을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됐겠어요? 최고위원회의의 재판이 되는 거잖아요. 그건 안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대표가 책임을 지고 양심에 비춰봐서 공정하게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게 낫죠. 이건 정책 결정자가 아니라 실무 책임자를 뽑는 거예요. 그러니까 공정성 전문성 현실성을 중심으로 한 겁니다.”

-한대표와 가까운 사람들과 권노갑 전최고위원과 가까운 사람들을 많이 썼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지금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중립을 지켜야 하는 당대표로서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민주당 사태를 지켜본 당내 인사들 중에는 쇄신파가 장악한 최고위원회의를 무력화하기 위해 한대표가 모종의 역할을 한 것 아니냐며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한대표가 ‘음모의 주체’라는 증거도 없고 한대표의 성격이나 위치가 그런 일을 꾸밀리도 만무하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러나 한대표가 최고위원 전원사퇴라는 ‘미스터리’의 한 가운데 있는 만큼 이 문제를 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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