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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칼럼

‘육상의 오페라’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고독

집중, 버림, 비상(飛上), 떨림, 그리고 아… 그 빛나는 추락

  • 글: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부장 mars@donga.com

‘육상의 오페라’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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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상과 잡념을 버려라. 화두에만 집중하라. ‘날자, 제발 날자.’ 활처럼 휘었다가 허공으로 튕겨져 비상하는 인간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워 슬프다. 버림, 그리고 날다. 그 숨막히는 떨림. 그 뒤에 찾아오는 추락은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육상의 오페라’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고독
누나야, 사는 게, 왜, 이러냐사는 게, 왜, 이리, 울며, 모래알씹듯이 퍽퍽하고사는 게, 왜, 진창이냐엄마야, 누나야이젠, 웃음마저도 시든 꽃처럼무심한 손길도 왜 가슴 데인 화열처럼왜, 쉬이 넘기지 못하고, 가벼이 사랑치 못하고 말이다…중략…사는 게 왜, 이리, 숨막힌 것인지 엄마야강변에 햇살이 표창처럼 반짝일 때누나야저 억장 무너지는 바다에물안개가 니, 부서지는 웃음처럼번져올 때나는 이 악물고 이 모든아름다움을 부정한다엄마야, 누나야네 얼굴에 박힌 웃음이언 강 물밑처럼 풀려나갈 때까지모든 꽃들은 사기다[함성호 ‘엄마야 누나야’ 부분]

놀라워라. 지구의 꼭지점 에베레스트(8850m) 정상 위에도 새가 난다. 한줌도 안 되는 노랑부리까마귀(Pyrrhocorax graculus)가 상승기류를 타고 맴돈다. 작은 새. 그 새들은 설산(雪山)을 오르다가 죽은 산악인들의 주검을 쪼아먹는다.

1924년 6월 영국 산악인 조지 맬러리(당시 38세)와 앤드루 어빈(당시 22세)은 에베레스트에 오르다 사라졌다. 사람들이 그들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정상을 불과 240m 남겨놓은 지점. 그들은 과연 어디로 사라졌을까. 정상을 밟은 뒤 산을 내려오다가 사고를 당했을까. 아니면 정상 도전에 실패하고 하산하다가 추락했을까. 만약 그들이 정상을 밟은 게 확인된다면 1953년 5월29일 에드먼드 힐러리(뉴질랜드)와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의 에베레스트 최초 등정 기록은 무효가 된다.

75년이 지난 1999년 5월 맬러리의 주검이 에베레스트 북벽 제1스텝(능선에 계단처럼 돌출한 곳) 아래 해발 8170m 고지에서 발견됐다. 맬러리는 자갈이 깔린 비탈 오르막을 향하여 엎드려 있었다. 두 팔은 산비탈 아래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한 듯 위쪽을 향해 뻗고 있었다. 등산복은 손만 대도 부스러졌다. 오른쪽 종아리뼈와 정강이뼈 그리고 오른쪽 어깨뼈와 갈비뼈가 부러져 있었다. 가슴엔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추락으로 죽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몸이 말짱하고 심한 상처도 없었다. 아주 높은 데서 떨어진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추락한 뒤에도 한동안 의식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엉덩이 부분은 노랑부리까마귀들이 군데군데 쪼아먹어 보는 이를 가슴 아프게 했다. 상의 앞쪽 호주머니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보낸 3통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맬러리는 왜 산에 올랐을까. 그는 2년 전인 1922년에도 에베레스트에 도전했지만 8320m지점에서 눈물을 머금고 발길을 돌렸었다. 1923년 그는 미국의 워싱턴 시카고 필라델피아 보스턴 등을 돌며 ‘에베레스트 등정에 대한 강연 여행’을 다녔다. 가족 부양을 위해 어쩔 수없이 돈을 벌어야 했던 것이다. 어느 날 한 기자가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고 하느냐”고 맬러리에게 물었다. 맬러리는 피곤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이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던 것이다. 맬러리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그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내뱉고는 총총히 강연장을 빠져나갔다.

모든 생물은 날갯짓을 꿈꾼다

새는 왜 나는가. 한번 날면 9만리 장천을 나는 붕새는 왜 나는가. 새는 그의 뼈를 비운다. 대나무처럼 뼛속을 텅 비운다. 그리고 몸 속 공기주머니에서 뼛속으로 끊임없이 바람을 불어넣는다. 새의 조상은 파충류다. 뱀은 하늘을 날려고 5000만년이 넘도록 ‘날갯짓’을 꿈꿨다. 저주받은 몸통에 깃털을 틔우기 위하여 수도 없이 허공에 뛰어오르다 나뒹굴었다.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었고 밤마다 피울음을 울었다. 그리고 마침내 쥐라기시대, 익룡의 몸이 두둥실 하늘로 떠올랐다.

새의 날개는 앞발이다. 파충류의 앞발이 피눈물 나는 날갯짓 끝에 깃털로 변했다. 하지만 아직 새들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 보다 높이, 보다 멀리 날기 위해 몸부림친다. 높이 나는 새는 멀리 본다. 날갯짓을 많이 하는 새는 그만큼 높이, 멀리 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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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부장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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