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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증언

시게미쓰 오장(伍長)에게 취조당한 항일운동가의 피맺힌 증언

“생매장, 주리틀기, 물고문으로 나를 불구자 만든 친일 헌병 시게미쓰(重光)”

  • 글 : 김한국

시게미쓰 오장(伍長)에게 취조당한 항일운동가의 피맺힌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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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3년 사망한 故 김주석씨 아들, ‘신동아’에 부친 자서전 공개
  •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日軍에 체포된 김주석씨, 시게미쓰 취조반 고문 삽화 20여장 담은 기록 남겨
  • ●관(棺)에 넣고 물 틀어붓기, 팔 탈골시키기, 허벅지 혈관 파열하기… “그곳은 지옥이었다”
  • ●아들 한국씨, “고문후유증으로 하반신 장애인 된 아버지, 한날 한시도 시게미쓰 잊지 못했지만, 용서하며 눈감았다”
시게미쓰 오장(伍長)에게 취조당한 항일운동가의 피맺힌 증언

고(故) 김주석씨가 1944년 진해 일본군 헌병대에서 한국인 출신 시게미쓰 헌병 오장에게 고문받는 장면을 묘사한 삽화.

《“친일 일본군 헌병 오장 시게미쓰(重光)에게 끔찍한 고문을 당한 항일운동가 고(故) 김주석(金周錫·1927∼93)씨의 통한(痛恨)을 알리고 싶다”며 김씨의 아들 김한국(金漢國·58·제조업)씨가 ‘신동아’에 투고 해 이를 정리, 소개한다.김한국씨에 따르면 부친 김주석씨는 1993년 세상을 떠나기 전, 1944년 경남 진해헌병대에서 한국인 출신 일본군 헌병 오장 시게미쓰에게 40일 동안 고문당하던 상황을 20여장의 삽화와 100여쪽에 이르는 증언록으로 자세히 기술했다. 김한국씨는 “아버지를 고문한 헌병 오장은 신기남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부친 신상묵(重光國雄·시게미쓰 구니오)씨”라고 주장했다.이에 앞서 부친의 친일 경력을 강력히 부인해오던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은 “신 의장 부친 신상묵씨는 일본군 헌병 오장(하사)”이라는 ‘신동아’ 9월호 보도 직후 “수 년 전 부친이 일제시대 군인이었음을 알았다”고 시인했다. 이어 항일운동가 차익환, 김장룡씨가 “경남 진해헌병대에서 일본군 헌병 군조(중사)였던 신 전 의장 부친에게 고문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연좌제가 아닌, ‘정치인의 거짓말’ 등 도덕성을 문제삼아 사퇴 여론이 쏟아지자 신기남씨는 의장직에서 물러났다.‘신동아’는 신기남 전 의장측에 “당시 ‘진해헌병대에서 신상묵씨가 항일운동가들을 고문했다’는 증언을 사실이라고 보는 지 등에 대한 입장을 듣고 싶다”며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열흘이 넘도록 응답이 없었다.김주석씨의 자서전은 일본 제국주의의 반인륜적 범죄를 피해 당사자가 직접 기술해 사실적으로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사 규명의 참고 자료일 수 있다. 한국인 출신 시게미쓰 헌병오장은 생전에 일본제국주의의 범죄에 협력한 행위를 고백하고 사과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또한 김주석씨가 겪은 고통은 사회구성원이 공유할 가치가 있고, 그가 시게미쓰를 용서한 의미도 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보여져 김씨 자서전과 아들의 투고를 게재하기로 했다.열린우리당은 9월8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을 상정하면서 헌병 등을 진상규명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편집자’》

이글을 쓸 것인가를 놓고 많이 망설였다. 내 아버지를 고문한 친일 인사를 고발하는 행위로 비쳐져 자칫 죄없는 그의 후손에게 커다란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겪은 일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과거사 규명 차원에서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결심했다. 또한 항일운동을 한 죄로 고통의 나날을 보낸 아버지의 삶을 더함과 뺌 없이 공개하는 일이 잘못된 행동은 아니라고 믿는다.

나의 아버지 김주석씨는 17세이던 1944년 치안유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되어 경남 진해 일본군 헌병대에서 한국인 출신 일본군 헌병에게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 후유증으로 1993년 12월31일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버지는 지팡이에 의지하고도 얼마 걷지 못하는 하반신 장애인으로 생활했다. 17세의 나이에 만신창이의 몸이 되어 평생을 살아야 했다니! 그것도 항일운동을 한 죄로 같은 동포의 손에 의해 그렇게 됐으니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아버지는 헌병대 유치장에서 고문당하며 피부병, 심장병까지 얻어 평생 병을 안고 사셨다. 아버지는 결국 “차라리 다리를 절단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도 있을 정도로 매일 다리의 통증을 겪으시다 숨을 거두셨다.

아버지는 생전 한시도 당신을 그렇게 만든 친일 헌병을 잊지 못했다. 평생 그의 소재를 수소문했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 8월 나는 아버지가 그토록 다시 만나고자 했던 그 헌병을 찾을 수 있었다. 신기남 전 열린우리당 의장 부친 신상묵씨였다.

지난 8월 신문에서 “신 의장의 부친 신상묵씨가 일제 시대 전북 출생-대구사범학교 졸업-교사 출신 일본군 헌병 오장 시게미쓰 구니오며 진해 일본군 헌병대에 근무하면서 항일운동가 두 사람을 고문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아버지는 1983년 혹독하게 고문당한 상황을 100여쪽의 삽화와 글로 생생하게 묘사한 자서전을 남겼다. 그 자서전에 수도 없이 등장하는, 아버지를 고문한 한국인 출신 일본군 헌병 오장이 바로 시게미쓰다.

치안유지법 위반 기록

아버지는 자서전과 함께 1944년 치안유지법, 군사보호법 위반으로 부산형무소에 투옥됐음을 입증하는 교도소 기록을 남겼다. 그 교도소 기록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인 1998년 내가 부산교도소측으로부터 확인받은 것이다. 교도소측은 겉장에 치안유지법 위반 사실만 기록했는데, 뒤에 첨부된 일제시대 기록을 보면 치안유지법 외에 군사보호법도 위반한 것으로 돼 있다. 이 자료를 아버지 생전에 구해드리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1944년 당시 아버지에게 적용된 치안유지법, 군사보호법은 일본제국주의에 반기를 들고 반(反) 국가활동을 한 시국사범을 잡아들일 때 사용되던 것이었다. 내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치안유지법은 1925년 3월 일본 귀족원을 통과해 일본 본토와 식민지 한국에서 시행된 법으로, 주요 골자는 ‘국체(國體)를 변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결사를 조직하거나 사정을 알고 이에 가입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하며 협의 선동한 자도 중형에 처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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