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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공개|1980년 전두환에게 보낸 카터 친서

“김대중 살릴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 이흥환·정광호 미국 KISON 연구위원

“김대중 살릴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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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 우리 병력은 어떤가? 오늘 밤에 비상을 발동해야 한다. 그리고 또 훈련 연습도 준비해야 한다. 내일 아침에는 한국으로 이동할 미군 리스트를 제출해달라. F-111과 F-4의 이동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금요일 아침에 나무를 절단하러 들어갈 수 있다. 아무래도 F-4를 이동시키려면 지금 결정해야만 할 것이고, 내일은 F-111의 이동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스미스: 착수 시점으로부터 12시간 안에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비브: 일본과도 상의해야 한다.

키신저: 그렇게 하자. 진행해라.

아브라모위츠: 공군 병력을 임시로 이동하는 것은 일본과 상의하지 않아도 된다.



하비브: 일본에 조언(advise)만 하면 될 것이다.

키신저: 대책반(working group)을 가동했으면 한다. 이 정도면 되겠는가?

하비브: 충분하다. 국무부, 국방부, 합참, CIA의 대표가 필요할 것이다.

키신저: 박(박정희: 역주)에게는 누가 통보할 건가?

CIA: 대사와 스틸웰이 같이 가야 한다.

글라이스틴: 이 얘기가 곧 알려질 텐데.

키신저: 그렇겠지. 언론 발표문의 기준을 정해야 한다. 다 드러내면 안 된다. 사전에 계획된 살인이기 때문에 데프콘 3으로 간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클레멘츠: 유엔에도 통보해야 하는가?

하비브: 안 해도 된다. 전에도 유엔 통보 없이 데프콘 3으로 간 적이 있다.

할러웨이: 스틸웰은 합참의 명령을 받지 유엔의 명령을 받지 않는다.

하비브: 내가 알기로는 합참에서 유엔에 통보하는 절차가 있다.

키신저: 내일 아침 모임에는 모두가 준비된 자료를 가지고 와야 한다.

아브라모위츠: 비상대권(War Powers Act, 전쟁권법으로도 번역됨: 역주)은 어떻게 되는가?

키신저: 좋은 지적이다. 의회와 상의하려면 통합 단일 계획이 있어야만 한다.

할러웨이: 찾아보자. 내가 여기 가지고 있다.

하비브: 변호사들이 검토하면 된다.

키신저: 좋다. 오늘 초저녁까지 우리는 다음 일을 해야 한다.

1. 비상대권에 대해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2. 언론 발표문 - “사전 계획에 의해 미국 군인이 살해됐고 북한군이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이와 같은 예방책을 취한다.”

3. 한국 및 일본과 상의한다.

아브라모위츠: 북한의 동맹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는가?

키신저: 잠시 후 5시에 중국인(중국 대표: 역주)과 만나기로 되어 있다.

하비브: 북한은 이미 그들의 견해를 들고 나왔다. 오늘 밤 회동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회의에 나오도록 해야 한다.

하일랜드: 제안 성명문은 그리 강한 것이 아니다.

하비브: 회동 때 편지를 제출하지 말라고 스틸웰에게 말해야 한다.

키신저: 내일 아침 8시 회의 때는 상황도가 있으면 좋겠다. 이동 가능성을 감안해 기동 부대에도 비상을 걸어놓아야 한다. 내일 초점을 맞출 사안은 아래 4가지다.

1. 한국에 추가 병력을 배치하는 문제

2. 어떤 군사 행동을 취할 것인가.

3. 가능한 외교적 조치. 누구에게 통보하고 브리핑할 것인가.

4. 의회 대응 조치.

오후 4시43분 회의 종료


[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 면담록 극비 전문 ]

주한 미군 철수 문제는 박정희 정권의 최대 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닉슨 미 대통령이 공표한 ‘아시아의 방위는 아시아인의 손으로’ ‘미국이 다른 나라에 군사 물자는 지원할 수 있어도 더 이상의 병력 지원은 없다’는 내용의 이른바 닉슨 독트린이 발효된 것은 70년 2월이다. 닉슨은 이미 69년 7월 괌에서 미국의 새로운 외교정책의 기본 개념을 밝힌 바 있다.

당장 문제된 것이 주한 미군의 철수였다. 닉슨 독트린이 나온 직후부터 한미간에는 주한 미군 철수를 위한 비밀 교섭이 시작된다. 주한 미 지상군 2개 사단 가운데 1개 사단을 철수시킨다는 것이 골격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어떠한 형태가 되었든 미군 철수에는 반대라고 강경하게 밝혔다. 미국도 좀체 물러설 태세가 아니었다. 마침내 주한 미군 철수 건은 양국간 갈등으로 번졌다.

70년 8월3일. 윌리엄 포터 대사가 미8군 사령관 마이클리스(Michaelis) 장군과 청와대로 박 대통령을 찾아간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한미 양측 모두 긴장한 분위기였다. 오후 4시30분부터 시작된 인터뷰는 약 2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포터 대사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와 박 대통령 면담 내용을 국무부에 전송한다. 8월4일 오전 1시56분과, 2시24분, 7시5분 등 세 차례에 걸쳐 보낸 이 극비 전문은 총 8쪽 분량. 국가 안보에 직결된 사안인만큼 박 대통령과 포터 대사 사이에는 열띤 논쟁과 서로 밀고당기는 한판 신경전이 펼쳐졌다.

1. 요약: 미군 감축에 대한 협조나 감축에 대한 합동 계획을 계속 완강하게 거부하던 박 대통령은 우리가 점점 더 압력을 넣자, 현재 진행중인 한국군 현대화 작업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기 전까지는 그런 계획을 시행하지 말 것을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나중에는 결국, 아직 현대화 작업 그룹의 중간 보고를 받지 못했으니 보고를 받을 때까지는 합동 계획에 대한 견해를 유보할 것이며, 보고를 받은 다음에 우리를 다시 만나겠다고 함으로써 처음의 주장을 약간 누그러뜨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철군 문제를 제기하자, 말투가 거칠고 결심을 못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지만, 그의 협조가 있든 없든 간에 미국의 결정은 그대로 시행된다는 사실을 그에게 분명히 전달했다. 그는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반복해 거론하면서 자주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는 호놀룰루에서 타진된 미국의 의사 표시를 모르고 있었다. 사전에 국무총리가 우리와 함께 인터뷰 자리에 배석할 것이라고 했지만, 박 대통령은 인터뷰 자리에 장관들이 배석하지 못하게 했으며, 통역자를 포함해 청와대 참모 2명만 참석시켰다.


미군 감축 통보에 박정희 무릎 떨어

2. 우리의 입장을 점검하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협조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자 인터뷰를 요청한 것이라고 내가 말문을 열었다. 나는 한미간에 철군에 대한 합동 계획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미 의회에서 현대화 문제를 호의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좋으며, 괜스레 문제를 복잡하거나 위태롭게 만들 필요는 없으므로 공개적인 논쟁이나 문제점은 최소화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호놀룰루에서 우리가 제공한 해명 자료대로 하면 이 문제들을 잘 처리해나갈 수 있게 될 것이며. 현대화에 대한 대화가 진행중인 만큼 그에 필요한 유익한 밑그림이 그려지리라 확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제는 미군 감축에 대한 합동 계획으로 진전시킬 만하지 않은가?

3. 박 대통령은 대답하기를 한국측 주장에는 변동이 없다고 했다. 그의 견해는 호놀룰루에서 미국에 전달된 바 있다. 한국군 현대화에 대한 협의의 성과물이 없고 한국 국민에게 안보에 대한 ‘보장’이 있기 전까지는 병력 감축 계획에 관한 한 어떠한 일도 이루어질 수 없다. 이 일이 선행되고 나면 합동 협의가 시작될 것이다. 미국의 상황은 이해하나, 어렵기는 한국도 마찬가지이며 한국이 더 어렵다. 한국 국민 100%가 미군 감축을 반대한다는 편지를 받았다.

만약 감축하려면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 협정(agreement)이 없는 한 감축에 동의할 수 없다. 한국군 현대화에 대한 진지하고 성실한 토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 토의가 일반 대중을 안심시킬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때 가서는 미군 감축을 얘기할 수 있다. 그때 가서 협정에 따라 규모나 시간, 조치 등을 토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보장이 주어지기 전까지는 한국 정부가 감축에 대해 얘기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3A. 박 대통령의 이런 답변에 대해 나는 우리와 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유감을 전달하면서, 미군 감축 논의에 따른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우리 계획은 이렇다. 불행하게도 한국 정부가 참여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 측이 단독으로 마련한 안이다. 1970년 12월까지 5000명을 감축하고, 1971년 3월까지는 8500명을 추가 감축하며, 1971년 6월30일까지 4900명의 병력을 추가로 감축하는 것이다. 통역하는 동안에 박 대통령은 스트레스를 받는지 눈을 감고 앉아서 무릎을 떨다가 커피를 시켰다.

4. 박 대통령은 거듭 말하기를, 의회를 포함해 미국이 어려워하는 점을 잘 알고는 있지만 한국군 현대화와 관련해 쌍방이 받아들일 만한 결론이 없는 한 한국 정부는 대화에 응할 수 없다고 했다. “만약 미국이 감축을 진행한다면 반대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협조할 수는 없다.” 그는 또 말하기를, 한국 정부가 비협조적이라고 말하겠지만 그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왜냐하면 이 결정이 나기에 앞서 한국 정부의 의견을 들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장이 있어야 한다고 그는 또 한번 강조했다.

5. 나는 우리가 합동해서 계획을 세우자고 한국 정부에 제안했을 당시에는 미군 감축에 대해 결정된 사안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대답했다. 따라서 국민 감정, 정책, 예산, 인적 자원 등을 고려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 정부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계획 입안 과정에는 그 아이디어를 내놓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합동 계획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병력 감축을 한 직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군 장비의 처분 같은 심각한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이런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좋겠는가? 이런 문제를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일반 국민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만약 한국 정부가 우리와 같이 계획을 짜고 입안하는 작업을 거절함으로써 그 장비를 다른 곳에 보내게 된다면, 그건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장비 목록은 아주 대단하다. 예를 들면 수백 대의 탱크와, 한국 공군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다른 장비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6. 일방적으로 선언만 해대던 분위기에서 좀더 생각에 잠기는 듯하던 박 대통령은 목록에는 단위 부대 장비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7. 나는 또 말하기를, 한국측의 생각이 전혀 접수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일방적으로 계획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의 생각은 아주 유익할 것이다. 하지만 참여하려고 하지를 않는다. 마이클리스 장군이 이 문제의 군사적인 측면에 대해 답변할 것이다.

8.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오히려 화를 내면서, 3월27일에 미국의 방침을 밝힌 최초의 공식 문건을 받고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요청했는데도 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반응은 유감스러운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향후 몇 년간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의 안보 문제를 재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미국내의 상황이 어려워 기다리기가 힘들다면 한국군이 침략을 저지할 만큼 강화되고 단독으로 안보를 지킬 수 있게 된다는 조건 하에서는 굳이 반대하지 않겠다, 한국군 현대화에 대한 토의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성실한 자세가 부족하고 한국의 요구 사항이 미국의 입장과 상충되어 절충점을 찾지 못하게 될까 봐 한국에서의 병력 감축을 반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계획대로 병력을 빼내간다면 주한 미군은 미국의 통제하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다고 말했음.

9. 이에 대해 나는 이런 모든 문제들이 결국은 신뢰의 문제에 귀착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한국군 현대화에 대해 최고위급에서 취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보장을 제공했으며, 한반도 안보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취한 것 이상의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가 보기에는 한국 정부가 미국의 의도와 언급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 것 같은데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


흥분한 박정희 대통령

10. 박 대통령은 그때 내가 언급한 “불가능하다”는 단어를 딱 꼬집어냈는데, 내가 한국측의 추가적인 안보 보장을 미국이 받아들이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인지를 확실히 해두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만약 한국 정부가 조약(treaty) 이상의 어떤 언질(commitment)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조약의 한계를 넘어서는 언질은 불가능하다. 만약 한국 정부가 추가적 보장을 위해 조약의 재협상을 원한다면, 현 상황에는 그런 재협상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미국의 견해다. 박 대통령은 그런 요구는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국회 쪽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11. 박 대통령은 이어 말하기를, 한국에 대한 미국의 믿음, 미국에 대한 한국의 믿음 등 양국 간에 신뢰와 믿음이 부족한 것은 사실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상호 방위 조약에 크게 의지하지는 않고 있다. 한국전이 터졌을 당시에 그런 방위 조약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적시에 아주 귀한 도움을 주었다. (이때 박 대통령은 약간 흥분했다.) 양측의 신뢰성 문제에 대해 박 대통령은 1년 전 닉슨 대통령과 정상회담 을 할 때를 상기시켰다.

1년 전 닉슨 대통령은 그의 독트린과 해외 미군 감축의 의도를 설명했다. 닉슨 대통령은 한국에는 독트린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미군이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언급은 실질적으로 공동 선언에 나타나 있다.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 때에도 비치 장군(General Beach)은 서신에서 한국군이 베트남에 있는 한 한국에서 미군이 빠져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때, 내가 뭔가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박 대통령을 바라보자 그는 내 시선을 피했다. 그는 흥분한 상태였고, 나는 잠시 생각 끝에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비서실장과 통역자가 있는 앞에서 박 대통령이 틀렸다고 고쳐주는 것보다는 일단 넘어가기로 한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그는 상대방이 잘못을 지적하려는 틈을 주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말이 빨라졌다. 이제 한국이 경제 발전과 자주 국방을 할 때가 왔다. 한국이 이제는 자립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중략)

15. 마이클리스 장군이 실질적인 장비와 자금 조달, 우선 순위, 훈련에 필요한 시간 등 한국군 현대화 위원회에서 토의하고 결정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설명했다.

16. 마이클리스 장군과 나는 박 대통령이 지적한 ‘만족할 만한 수준의 보장’을 충족시키기에는 정말 시간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우리가 언급한 병력과 장비 감축은 곧 시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비를 싣고 떠나게 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우리는 다시 박 대통령에게 물었다.

17. 박 대통령은 화를 내면서 다시 끼어들었다. 우리 얘기를 듣자니, 한국 대표는 감축 합동 계획에 가 앉아서 미국이 하는 말을 듣기만 하라는 소리로 들린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한국 대표들은 우리와 만나야 하며, 부대와 장비 정렬에 대한 아이디어를 교환해야 하는데 한국 측의 아이디어를 알 수 없으니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18. 박 대통령은 감축에 대한 미 대변인 성명을 보니 미국 정부는 그대로 실시할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대화 작업 토의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의’ 결과가 도출된다면 미군 감축에 대해 토론할 용의가 있으며 미국 측과도 만나겠다는 말이라고 했다. (중략)

20. 박 대통령이 마이클리스 장군에게 자세한 감축 계획과 이미 승인된 사안의 윤곽을 알려달라면서, 부대 전체에 해당되는 것인지 부대 일부에만 국한되는 것인지를 알고 싶어했다. 마이클리스 장군은 차트를 보여주면서 주한 미군 철수의 성격과 규모에 대해 설명했다.

21. 그러자 박 대통령은 미국의 일방적인 계획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고, 그때 내가 다시 나서서 한국 측이 우리와 같이 작업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유감스럽다, 불만스럽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박 대통령은, 미군이 비상시에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면 그건 이해가 되는 일이지만, 이번 일은 그런 것이 아니라 오로지 미국의 국내 정치 문제에 기인한 것이라면서 한국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중략)

23. 나는 인터뷰를 끝내면서 박 대통령에게 우리의 견해를 밝힌 비공식 문건을 남겨놓았다.

24. 박 대통령은 아무런 반응 없이 한동안 앉아 있더니 입을 열었다. 한국군 현대화에 대한 중간보고를 아직 받지 못했다, 보고를 받기 전까지는 합동 계획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겠다, 보고를 받은 다음에 다시 만나자. 이에 대해 나는 곧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5. 박 대통령의 태도에서 느낀 것은 차후에 구체적으로 언급하겠음. 인터뷰가 끝났을 때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음. 작별 인사를 하고 대통령 집무실을 막 나서기 직전에 나는 다시 한번 돌아서서 박 대통령을 쳐다보았음. 박 대통령은 마이클리스 장군이 건넨 감축 승인 계획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음. 이상하기 짝이 없었음. 인터뷰 내내 박 대통령은 한번도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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