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집중취재|교수들의 연구비 따내기 천태만상

리베이트·무임승차·가짜영수증

  • 안길찬 교수신문 기자

리베이트·무임승차·가짜영수증

2/2
학술진흥재단 다음으로 교수들이 연구비 지원을 기대하는 곳이 각종 기업재단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연구비를 따내기는 정부출연기관보다 더 힘들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이들 재단의 연구비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 지원되기 십상이고, 다른 하나는 이 때문에 그만큼 연구비 신청 및 선정과정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과정의 불투명성은 곧 비리로 연결된다. 교수들 사이에는 기업재단에서 지원하는 연구비는, 생색을 내기 위해 공고는 하지만 대상자는 일찌감치 정해져 있다는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다. 또 특정 기업과 인연을 갖기 전에는 연구비 수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일부 기업재단의 예일 것이다. 일부 교수들은 연구비 지원을 전제로 모종의 계약이 이뤄진다고 증언한다.

서강대 왕아무개 교수는 “교수가 연구비를 지원받는 대신 커미션을 떼주기도 하고, 소개한 교수에게 사례금을 주는 경우도 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마저 최근 줄어드는 추세다. IMF 사태 이후 문을 닫은 기업재단이 하나둘이 아니며,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곳도 지원비를 대폭 삭감했다.



한편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연구용역의 경우 담당공무원들이 리베이트를 요구하기도 한다. 지방대학의 한 교수는 “교수가 담당공무원에게 리베이트를 주지 않으면 심사할 때 대상에서 제외되는 불이익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는 공무원들이 받는 리베이트가 20~30%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연구비를 지원받은 후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도 문제는 여전하다. 연구결과물을 내놓으면서 참여하지도 않은 교수들의 이름을 끼워넣어 업적을 늘리려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계에선 이를 흔히 ‘연구 무임승차’로 부른다. 무임승차는 일반적으로 연구소나 대학에서 상급자가 자신의 높은 직책을 이용해 제자나 후배교수들의 연구성과에 편승하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이는 실험·실습을 통한 공동연구를 주로 진행하는 이·공계 분야에서 특히 관행이 된 현상이다.

몇 해 전 서울대 공과대 대학원 자치회에서 대학원생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교수들이 실제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비율이 무려 49%로 나타났다. 결국 대학원생 위주로 연구가 진행되고 교수는 거기다 이름만 슬쩍 얹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고려대 김아무개 교수는 “교수 사이에도 무임승차를 눈감아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경우에 따라 거래를 통해 이뤄지기도 하는데, 타인의 연구에 이름을 얹는 대신 자기 연구에 해당교수가 참가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듯 교수들이 거래까지 하며 다른 교수의 연구에 무임승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연구실적이 재임용 승진 등에 기초자료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임승차는 후학들의 연구의욕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연구문화 전반을 위축시킨다.

까다로운 정산이 비리 자초

지원받은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과정에도 문제는 적지 않다. 각종 연구지원 기관은 연구비를 투명하게 집행하느라 사용내역을 자세하게 보고하는데 그 절차는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 연구비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영수증을 첨부해 꼼꼼히 보고하게끔 명문화하고 있는 것. 그러나 이 과정에 교수들은 또한 번 추문에 휘말린다. 즉 연구비를 정산할 때 등장하는 가짜 영수증 문제다.

지난해 8월, 경북 영남대에서 가짜 연구비 정산 문제로 검찰이 현직 교수의 은행계좌를 추적한 사건이 있었다. 영남대에 재직중이던 이아무개 교수는 당시 지방자치단체가 의뢰한 연구 용역비 9700여만원 중 4000여만원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혐의가 드러나 형사처벌을 받았다. 이 교수가 연구비 유용을 위해 이용한 것이 가짜 영수증이었다.

연구비에는 대학원생을 비롯한 공동연구자들의 인건비도 포함돼 있었는데 이교수가 이를 착복하고 가짜 영수증을 올렸던 것이다. 사건은 이교수 밑에 있던 대학원생이 인건비를 받지 않았다고 확인해주면서 확대됐다. 가짜 영수증 파동은 영남대에서 끝나지 않아 대구지역 각 대학 교수들이 일제히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례는 박사과정생을 비롯한 대학원생들이 함께 연구에 참여하는 이·공계 분야에서는 관행이 된 비리의 고리다. 강원대 김아무개 교수는 “연구비를 지원받았으면 이를 투명하게 처리·보고하는 것이 학자적 양심인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연구비 총액을 맞추기 위해 교수들이 식대에서 교통비에 이르기까지 영수증을 가짜로 만들어 보고하는 것은 아량으로 봐 줄 수 있지만, 곤궁한 처지에서 연구에 몰두하는 학문후속세대의 인건비까지 착복하는 일은 같은 학문의 길을 가고 있는 학자의 양심을 저버린 행위”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연구비 정산에 대해 교수들도 불만이 많다. 정산방법이 까다로워 어쩔 수 없이 가짜 영수증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실험실습 위주로 이뤄지는 이·공계 분야와 달리 순전히 자신의 노동력에 의존해야 하는 인문·사회계 학문분야의 연구는 무엇을 근거로 정산서를 만들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허다하다.

상명대 박아무개 교수는 “연구비를 지원했다면 사용용도는 어느 정도 교수 재량에 맡겨야 한다. 그래야 창의적인 활동이나 연구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연구비를 받아놓고도 정산이 무서워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까다로운 정산방법이 초래한 폐단을 지적했다.

업적평가에 대한 부담 커

연구비에 대한 교수들의 불만은 분야별 지원비율에서도 두드러진다. 인문·사회계 교수들은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크다. 이·공계의 경우 각종 기업의 프로젝트에서 한국과학재단의 지원사업에 이르기까지 여러 곳에서 연구비를 받을 기회가 있지만 인문·사회계는 그나마 기댈 곳이 학술진흥재단뿐이다. 그렇다 보니 이교수 사건과 같은 부도덕한 일이 생겨난다.

그러나 같은 이공계 소속 교수라도 지방대 교수들의 소외감은 대단하다. 서울대 공대 교수들의 외부 프로젝트 용역은 해마다 수천 억원이라는 건 학계 내부에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듯 서울대가 연구비를 독점하다 보니 놀고 있는 지방대 연구실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고 한다. 교수들 사이에서는 서울대가 수행하는 연구 프로젝트는 돈이 되고 지방대에게 돌아오는 프로젝트는 잘 해야 현상유지도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너무 많은 연구 용역이 오히려 화를 부르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대 실험실 폭발사고를 들 수 있다. 밖에 알려진 것은 대책 없는 대학 내 안전불감증이 부른 인재였지만 실상 그 이면에는 기업의 연구프로젝트 일정을 무리하게 맞추려다 일어난 사고였다. 사고가 난 실험실은 여러 가지 연구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고 일정에 쫓기다 보니 안전을 소홀히 한 것이다.

여기서 유심히 살펴야 할 것은 왜 이렇듯 교수들이 연구비 신청·수혜에 매달리는가 하는 부분이다. 물론 연구가 교수 본연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경향은 이를 넘어선다.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교수들 사이의 최대 관심사는 업적평가다. 개별 교수들의 교육, 연구, 봉사 활동을 중심으로 대학이 매년 실시하는 업적평가는 교수의 연봉, 재임용, 승진 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잣대가 된다. 때문에 교수들로서는 업적 쌓기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교수들의 활동은 그 자체가 업적으로 간주된다. TV출연에서부터, 학생들의 MT에 따라가는 것까지 일거수 일투족이 점수로 기록되고, 그 결과가 자신의 연봉을 결정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연구업적은 가장 중요하게 취급된다. 승진을 위해서는 국내 학술지에 논문을 실어야 하고, 재임용을 위해서는 국제적 학술지에 연구논문 게재해야 한다고 이를 기준을 세우는 대학이 늘고 있다.

연구비를 끌어오는 것도 연구업적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외부연구비는 일단 대학이 관리를 맡는 ‘중앙관리제’ 방식으로 운용되는데, 여기서 ‘간접연구경비’라는 명목으로 대학도 일정 지분을 갖는다. 교수들이 밖에서 연구비를 많이 따올수록 대학도 그만큼 이득을 보는 셈이다. 대학들은 재정난을 해결하는 방편으로 이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 교수들이 연구비 전선으로 내몰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 건국대는 이번 학기에 해외에서 연구비를 들여오는 조건으로 교수를 임용했다가, 그 교수가 이를 지키지 못하자 재임용에서 탈락시킨 일도 있었다.

학계 내부의 자성 있어야

그렇다면 연구비를 둘러싼 부정과 비리를 예방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교수들은 우선 연구비 신청과 수혜, 보고 과정을 제도적으로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게끔 신청에서부터 선정에 이르는 과정을 밖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과)는 “부수적인 서류처리에 안간힘을 쏟게 하는 번잡한 족쇄를 연구자들에게 덧씌울 것이 아니라 뛰어난 연구자와 참신한 연구 그 자체를 도울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가 마련되고 투명하게 운영하는 제도보완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부정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최근 건축공사 비리에 연루된 교수들이 대부분 벌금형을 받고 대학에 복귀해 강의를 맡고 있는 폐단을 막기 위해서는 좀더 강한 법적 판단이 있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학계 내부의 자성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결국 연구비를 둘러싼 교수들의 추문은 ‘수단’을 ‘목적’시하는 데서 비롯된다. 도덕성과 윤리성을 생명으로 삼아야 할 교수가 학문보다는 현실의 이익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는 교수사회의 불감증도 오늘의 문제를 불러오는 한 요인이다. 당장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오는 경우라도 교수들은 잘 분노하지 않는다. 그냥 억울하다고만 생각하고 안으로 삭일 뿐이다. 어쩌면 이런 태도와 반응이 지금과 같은 관행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외부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최근 들어 그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지만 우리 사회에서 교수들은 여전히 기득권 세력이며 존경 대상이다. 그런 교수 사회에서 빚어지는 갖가지 추문은 기득권을 이용한 범법행위이며 학자로서 자질을 의심케 한다. 또 이런 관행때문에 연구비가 정작 필요한 학자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다. 이런 사건이 되풀이될 때마다 연구실에서 묵묵히 학문에 정진하는 학자들까지 싸잡아 비난받는 일을 막는 것은 단순히 제도적 보완만으로는 어렵다. 학자로서 위치를 명확히 인식하는 교수들의 자성과 반성이 필요한 때다.

신동아 2000년 4월호

2/2
안길찬 교수신문 기자
목록 닫기

리베이트·무임승차·가짜영수증

댓글 창 닫기

2020/0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