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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PD교수’ 주철환의 방송 바로잡기

“얼굴 몸매 학벌의 3대 차별을 없애라”

  • 김보선 자유기고가

“얼굴 몸매 학벌의 3대 차별을 없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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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국악프로가 인기가 없을까?

“연출자가 국악의 재미를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기도 하지만 시청자도 국악의 재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너를 알고 나서 너를 사랑한 후부터 변해가네~’라는 노랫말이 있다. 마찬가지다. 골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냥 걷기만 하고 가끔씩 채를 휘둘러 대는 골프가 왜 재미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번 골프의 맛을 알면 당구를 처음 배울 때 잠잘 때도 당구대가 눈에 어른거리는 것처럼 골프에만 정신이 팔려 정신없이 빠져든다. 스타크래프트도 같은 경우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국악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국악의 재미를 모르니까 당연히 시청률도 낮은 것이다. 나는 클래식을 들으면 졸지만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만나는 모나리자에는 빠져든다. 내가 모나리자를 알고 그 그림의 배경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언뜻 들으면 그는 현재 가요가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 같지만 그가 ‘별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TV의 오락 프로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10대가 댄스음악을 편식하는 것을 방조한다는 지적은 그가 생각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지엽적인 문제일 따름이다.

“H.O.T 나 다른 댄스가수들이 무대에서 립싱크를 하는 걸 두고 가창력이 없다느니, 음악 프로가 10대에 편중되어 있다느니 하고 지적하느라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TV에서 알게 모르게 조장하는 묘한 차별이 10대나 시청자들에게 더 중요한 문제다.”

―어떤 차별을 말하는가?



“못 생기고 뚱뚱하고, 학벌이 별로라거나 가난하다거나 그런 사람들을 은근히 차별하고 무시하는 게 만연해 있다. 오락프로, 토크프로 심지어 시사프로에서도 잘 생기고 날씬하고 일류대 출신이 선(善)이고 나머지는 악이라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을 여과없이 방송하고 있다. 미팅프로에서 못생긴 사람은 왕따당하고 롱다리만 사람 대접 받고, ‘살빼기 작전’ 한다며 뚱뚱한 사람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장면이 그대로 방영되고 있다. 이런 프로가 시청자들의 무의식에 드러나지 않게 영향을 끼쳐 시청자들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그런 프로들이 바로 남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주는 프로다. 립싱크를 한다고, 가창력이 없는 가수들이 판친다고 화내지 말고 그런 무의식적 차별에 화내야 할 것이다.”

그럼 그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뭔가. 대답은 간단하다.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릇된 시청률 경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방송사 고위층의 의지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용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차별 없고 다양한 의식을 담은 프로를 자꾸 만들고 꾸준히 내보내면 된다. 시청률을 자꾸 이야기 하는데 좋은 프로라는 ‘체험 삶의 현장’이나 ‘가족오락관’ ‘열린 음악회’ 등이 처음부터 시청률이 높았던 것은 아니다. 한 6개월 지나니까 시청률이 올라간 것이다. MBC 같으면 금방 없앴을 것이다.”

―일선 PD가 깨어 있으면 되지 않겠나?

“솔직히 PD는 힘이 없다. 만약 새로 ‘음악캠프’를 담당하게 된 젊은 PD가 평소 생각하던 대로 국악을 중간에 삽입하겠다는 의욕을 보였다고 하자. 바로 위의 CP인 나도 동감하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치자.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당장 국장은 청소년 음악프로에 무슨 국악이냐고 할 것이다. 국장이 동의한다고 해도 전무와 사장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시청률이 올라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러나 국악이 나오는 순간 시청률은 떨어질 것이다. 그게 현실이다.

자연다큐멘터리 PD로 유명한 박수용 PD(교육방송)를 보라. 그는 호랑이에 빠져 일년 내내 호랑이 담는 일에만 열중했다. 위에서 동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의 자연다큐를 두고 시청률이 낮다느니 높다느니 하며 따지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은 이상을 좇지만 현실을 많이 받아들이는 축에 속한다고 말한다. 완벽해지려다보면 불행해질 뿐이라고 말한다. 회색인이라기보다 현실주의자라는 것이다.

사실 방송사도 하나의 조직이고 조직원이 윗사람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재작년 드라마 ‘왕초’를 찍을 때 일이다. 당시 연출자는 시대 배경이 되는 일제시대와 6·25 전후를 재현하기 위해 의정부에 대규모 세트를 지었다. 그러나 그 PD는 상사에게 불려가 엄청 혼났다고 한다. 의욕이 앞서 제작비를 너무 많이 쓴 게 문제였다. 사실 당시로서는 대규모 세트였다. 하지만 요즘 MBC 본사 복도에는 ‘왕초’의 세트가 담긴 커다란 사진이 ‘허준’의 세트 사진과 함께 걸려 있다. MBC의 자랑이라는 듯. 이후 그 PD는 기자들에게 “그런 무모한 일을 벌이는 사람도 있어야 다른 PD나 후배들이 편하다”는 말을 했다.

주철환씨에게는 후배를 위해 일을 저지르는 용기 없었을까? 물론 그에게 도전의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차원의 일이지만 그가 87년 오락프로그램 ‘유쾌한 스튜디오’로 데뷔했을 때다. 얼마나 의욕이 넘쳤으면 겁도 없이 초대손님으로 당시 인기 최고였던 강수연을 섭외하려 들었다. 주위에서 모두들 어림없다고 했지만 도전의식인지 오기인지 끝내 강수연에게 전화를 했다. 강수연이 특유의 목소리로 무슨 프로냐고 묻기에 아기자기한 오락프로라고 설명했다. 한참을 조용히 듣고 있던 강수연이 갑자기 하하하 하며 크게 웃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저 그런 거 안 해요” 한마디였다. 또 학생시절 좋아했던 김추자를 섭외하려 했다. 첫 프로에 평소 좋아하던 사람을 초대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씨는 한시간짜리 단독으로 출연하는 프로가 아니면 하지 않겠다고 했다. 모두 실패했지만 그런 도전의식이 나쁠 수야 없다.

―현실만 탓하는 것은 너무 비겁하지 않나?

“난 진짜 프로듀서는 방송사 사장이라고 생각한다. 사장이 얼마나 프로그램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지휘해 나가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일선 PD가 국악프로를 하자고 말하는 것과 사장이 국악프로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간부회의 시간에 던지는 말 중 어느 것이 더 효과가 있겠는가. 일선 PD의 제안에는 ‘그거 누가 보냐 괜한 전파낭비하지 말라’고 하겠지만 사장이 시키는데 하지 않을 PD는 없을 것이다.”

―사장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한국적 현실에서는 PD보다 고위층의 의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어차피 PD는 방송사에서 월급받는 직원이라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일선 PD는 ‘남에게 결정적 상처’를 주지 않는 프로를 만들면 된다. 그 이상은 사장 몫이다. 사장이 어떤 방송철학과 의지를 가지고 하느냐에 따라 대중문화에 방송이 차지하는 몫이 달라질 것이다. 난 문화관광부 장관보다 오히려 방송사 사장이 대중문화 고양에는 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슬픔·차별을 주지 않는 방송

―어떤 방송 철학을 말하는가?

“다양성의 존중이다. TV를 보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노인층을 위한 프로는 거의 없다. 장애인을 위한 프로도 마찬가지다. 시청률에 얽매이지 않고 시청자의 다양한 욕구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또 누구에게든 슬픔이나 차별을 주지 않는 방송을 만들겠다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화여대에서 ‘TV제작실습’과 ‘대중문화 읽기와 쓰기’를 강의한다. 아직은 교수로 완전히 바뀌지 않았는지 기자가 내심 원한 ‘방송과 조직에 대한 통렬한 공격’대신 인터뷰 내내 방송과 PD에 대한 애정의 말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 도중 수업에 대해 물어보려고 찾아온 파릇파릇한 신입생들과 재학생들에게 최상의 친절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교수로서 새로운 애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PD가 된 후 개인적으로 가장 기뻤던 일이 뭐냐는 질문에 자신의 우상들과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고등학생시절 그의 우상은 김민기와 양희은이었다. 고1년생 주철환은 양희은이 가수 데뷔 전 통기타 카페에서 ‘세노야’를 부르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그는 그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금까지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다음날 친구들에게 천사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가 연출한 ‘일요일 일요일 밤에’ 첫회 초대 손님은 양희은이었다. 지금은 김민기나 양희은과는 형과 동생, 누나와 동생처럼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자신의 우상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이제 ‘교수 주철환’은 새로운 우상들을 만나고 있다. 그가 연출했던 프로에서 항상 놓치지 않으려 했던 ‘젊음’을 아직은 순수하게 간직하고 있는 새내기 대학생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는 행복해 보였다. 봄향기를 가득 담고 그의 연구실 창문 틈으로 살짝 넘어온 햇살처럼.

신동아 200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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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선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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