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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조작은 있었다”

96년 판문점 북풍사건 ‘청와대 보고서’

  • 조성식 mairso2@donga.com

“북풍조작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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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년 4월5일 식목일 아침. 이양호 국방부장관은 한 여인에게 연정의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린다에게’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당신을 사랑하는 L’로 끝맺고 있다. 그날 오후 2시20분 이장관은 국방부에서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위사태와 관련한 대책회의를 주관했다. 이 회의에서 그는 대북 정보감시태세인 워치콘(WATCH CONDITION) 격상조치를 지시했다. 이어 3시쯤엔 안보 관련부처 장관들이 참석하는 안보정책조정회의에 참석했다. 북한군의 무력시위는 3일간 이어졌지만 미군은 이를 대수롭잖게 여겼다. 총선을 3일 앞둔 4월8일 밤 합동참모본부 상황실. 청와대쪽에서 “여론이 15% 이상 좋아졌다”는 격려전화가 걸려온 후 한 장교가 들뜬 목소리로 “총선 승리합시다”라고 외쳤고 일부 장교들이 박수를 쳤다. 》
지난 4월18일 예비역 육군 대령 김남국씨(육사28기)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96년 4월 총선 직전 청와대와 군 수뇌부가 당시 판문점에서 일어났던 북한군 무력시위 상황을 왜곡·과장함으로써 총선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충격적인 주장이었다. 김씨에 따르면 당시 군 수뇌부는 청와대 지시에 따라 정보감시태세인 워치콘을 무리하게 격상시켜 안보 위기감을 조성했다. 또한 대국민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북한군의 무력시위 날짜까지 조작했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자신의 일기(육군수첩)를 바탕으로 한 그의 증언은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고 언론도 이를 크게 다루었다.

그러나 국방부는 당시 상황일지와 워치콘 격상 관련 문서를 내세우며 김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워치콘 격상은 판문점 위기상황에 따른 정상적인 조치였으며 북한군 무력시위 날짜가 조작됐다는 주장은 김씨의 착각이라는 것. 북풍에 관련된 것으로 거론된 당사자들도 자신들의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이처럼 양측의 주장이 크게 엇갈리며 김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더 이상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자 이 일은 언론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에 따라 북풍의 실체는 수수께끼가 돼버렸다.

그렇다면 김씨는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했을까. 그가 ‘소설’을 썼거나 국방부와 관련자들이 뭔가 숨기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신동아’의 심층취재에 따르면 김씨는 결코 무모한 주장을 하지 않았다. ‘신동아’는 이를 뒷받침하는 몇 가지 새로운 증거를 확인하고 확보했다. 이는 북한군의 무력시위 날짜와 워치콘 격상 발령일 등 핵심 쟁점들에 대한 국방부 발표내용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는 증거들이다.

당시 청와대와 군 지휘부의 교감 여부는 북풍의 실체를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다. 김남국씨에 따르면 당시 유종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뒷날 육군참모총장이 된 김동신 당시 합참(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과 몇 차례 통화하며 판문점 상황을 보고 받고 대국민 홍보전략을 지시했으며 김작전본부장은 이를 충실히 이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통화한 적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신동아’는 당시 두 사람의 통화사실을 목격한 현역 장교의 증언을 확인했다.

청와대가 이미 지난해 하반기 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했으며 그 결과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됐다는 점도 눈여겨볼 일이다. 지난해 10월 김동신 육군참모총장이 임기 5개월을 앞두고 전격 해임된 데는 이 청와대보고서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밝혀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김 전총장은 96년 북풍사건의 한 주역이다. 아울러 지난해 8월 육군 중앙수사단을 시켜 북풍사건을 청와대에 진정한 김남국 대령(당시 정보학교 어학처장)을 불법연행하는 한편 자신의 부하를 시켜 김대령을 회유 또는 협박한 혐의도 받고 있다.



당시 김총장은 처음엔 청와대의 조사를 대수롭잖게 여겼다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고 당시 천용택 국정원장과 여권 실세인 K, H의원 등 정치권 실세들을 상대로 구명로비를 폈으나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동아’는 청와대 모 수석비서관실에서 작성해 대통령에게 올린 ‘96년 판문점 북풍사건 조사보고서’를 단독입수했다. 이 보고서와 당시 상황이 자세히 기록된 김남국씨의 일기 그리고 관련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96년 판문점 북풍사건의 실체를 추적했다.

문제의 ‘청와대 보고서’

A4 용지 27쪽 분량의 청와대보고서는 지난해 10월 중순쯤 모 수석비서관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이 보고서의 작성자인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 김동신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에 대한 자체 조사 후 김남국 예비역 대령의 북풍 주장을 믿을 만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 과정에 청와대 조사관은 여러 경로에서 적지 않은 압력을 받았으나 끝내 이를 물리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를 받은 김대통령은 “언젠가 꼭 밝혀야 할 것”이라며 진실 규명 의지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최초의 호남 출신 육군참모총장인 김동신씨가 해임된 것은 그 직후였다.

보고서 제목은 ‘96년 4월 15대 총선 직전 발생한 판문점 북풍사건 관련 보고’. 모두 10개의 항목으로 구성된 보고서는 먼저 북풍사건의 개요를 설명하고 있다. 이어 조사과정, 북풍체계도, 이양호 당시 국부방장관을 비롯한 북풍 관련자들의 혐의사실 등을 적시한 뒤 결론을 맺고 있다. 맨 끝에 당시 국방부 합참근무자 명단과 15대 총선에서 북풍이 끼친 영향을 분석한 자료가 첨부돼 있다.

보고서는 “96년 4월4∼6일 판문점 북측 구역에서 총 3회에 걸친 북한군 무력시위가 있자, 당시 청와대와 국방부, 합참은 사건 내용과 상황을 알지 못하는 일반 국민들에게 북한이 당장 전쟁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과장·왜곡해 공포와 불안 및 긴장을 조성해 15대 총선에 이용했다는 명백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미국 정부와 주한미군은 판문점 지역을 제외한 모든 전선에서 북한군의 특이한 군사동향이 없어 심각한 군사 도발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 외교적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총선을 앞둔 시점에 청와대와 국방부 및 합참이 안보상황을 표와 연결시키기 위해 북풍을 조작했다는 것. 군사적으로 엄격히 통제돼 기밀이 유지돼야 하는 합참의 핵심시설인 지휘통제실을 언론에 공개하는가 하면 전투복 차림을 한 합참의 장군들이 판문점뿐만 아니라 서해5도와 DMZ 등 다른 지역에서 도발이 일어날 듯 예단하며 국민에게 위기 의식과 긴장감을 확산시켜 여당에 유리한 득표환경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보고서 작성자는 당시 군 수뇌부가 북풍조작을 통해 조직적으로 총선에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유권자들의 안보의식을 자극해 여론을 15% 이상 반등시켜 특히 수도권과 강원도 지역에서 당시 집권당인 신한국당 후보를 압도적으로 당선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것. 그에 따르면 15대 총선에서 득표율 10% 내 표차로 국민회의 후보가 2위로 낙선한 선거구는 38개에 이른다(서울:24, 경기:10, 인천:4). 이를 두고 보고자는 “미군 통제 지역인 판문점에서 일어난 북한군의 사소한 무력시위 동향을 빌미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을 위반한 행위가 명백하다”고 결론짓고 있다.

청와대 모 수석비서관실이 96년 총선 당시의 북풍조작 여부에 관심을 가진 것은 현 정부 출범 초기 ‘총풍’이라 불리는 ‘휴전선 총격요청 사건’의 실체가 밝혀진 후였다. 그때부터 내사에 들어가 증거를 찾던 중 지난해 6월 당시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는, 김남국 대령을 비롯한 현역 영관급 장교 3명의 진술을 확보하게 됐다. 그들의 증언을 통해 96년 4월의 ‘판문점 북한군 시위사건’이 선거에 이용된 경위와 당시 국방 관련 고위관계자들의 행적을 알게 됐다. 보고서엔 임복진 의원이 96년 9월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북풍사건을 파헤치려 애썼으나 국방부와 합참의 조직적인 은폐와 방해로 진상규명에 실패했다는 점도 언급돼 있다.

보고서에 나타난 북풍 관련자들의 당시 행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김동신 전육참총장과 유종하 전외무부장관. 김동신씨는 당시 중장으로 합참작전본부장이라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유 전장관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었다. 당시 유수석은 김동신 합참작전본부장에게 대언론 홍보강화를 지시했고 김작전본부장은 세 차례에 걸친 유수석의 전화지시를 충실히 이행한 후 그 결과를 합참의장과 국방장관에게 보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총선 승리합시다”

유수석의 1차 지시는 96년 4월6일 21시20분께. 지휘통제실에 있던 상황실의 한 중령이 외교안보수석의 전화를 받았다. 유수석은 처음에 김동진 합참의장을 찾았는데 합참의장이 거기에 없었다. 그러자 작전본부장 김동신 중장이 대신 전화를 받아 당시 판문점 북한군 투입 상황을 상세히 보고했다. 이어 김작전본부장은 유수석의 지시사항을 복명했다. “예, 전투복을 착용하고 즉각 브리핑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김작전본부장은 “청와대에서 작일(어제) 국방부에서 한 브리핑의 반응이 별로 안 좋았다고 한다”면서 자신의 직속부하인 작전처장 신상길 준장에게 “청와대 수석님으로부터 전화가 오면 지체 말고 ‘작전본부장 계신다’고 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신작전처장은 상황실에 근무중인 합참 정보·작전부서 요원들에게 “동작 그만!” 하면서 김작전본부장의 지시 내용을 다음 근무자에게 인수인계할 것을 지시했다. 이어 김작전본부장은 신상길 장군과 작전처 장교 3명에게 전투복을 입고 언론 브리핑에 나설 것을 지시했다. 신장군은 전략정보과장 김남국 대령에게도 전투복을 입고 브리핑에 참석할 것을 지시했으나 김대령은 거절했다. 신장군의 기자 브리핑은 23시30분께 이뤄졌다. 브리핑 장면 사진은 다음날 일부 일간지에 실렸다.

보고서에 따르면 유수석은 일요일인 4월7일 21시10분께 또다시 합참 지휘통제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작전처 장교가 지시대로 김동신 작전본부장을 바꿔줬다. 유수석이 뭔가를 얘기하자 김작전본부장은 “3일간 상황을 종합해 브리핑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장관님 지시로 저놈들 야간배치상황과 장비들을 사진촬영하고 있고 그 사진을 보도 준비중에 있습니다” “기자들을 판문점에 넣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다음날인 4월8일 20시30분께 유수석은 한 차례 더 김동신 작전본부장과 통화했다. 통화 후 김작전본부장은 상황실 근무자들에게 “너희들 그동안 수고 많이 했다. 청와대에서 여론이 15% 이상 좋아졌다고 한다. 이 시간 이후 기자 브리핑 그만 하라”고 말했다. 이에 작전처 소속의 한 중령이 “여론이 30% 이상 좋아졌을 텐데 청와대에서 잘못 파악한 것 같다”고 말했다. 15% 이상 빼앗았다면 결과적으로 30% 이상의 차이가 나는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그 장교는 이어 “총선 승리합시다”라고 말하며 박수를 유도했다. 이에 일부 근무자들이 박수를 따라 쳤고 누군가 “지난해(95년) 지자제 선거는 졌지만 이번 총선에선 여당이 압승하겠네”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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