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년부터 프로골퍼로 활동했으니 금년이 어느덧 43년째다. 대한민국 프로골퍼 1호인 연덕춘(延德春) 선생의 권유와 지도로 골 프에 입문, 프로골퍼로 살아온 한평생이지만 지금도 내가 걸어온 길 에 대해 후회는 없다. 다만 좀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체계적인 연습을 해 기량을 마음껏 발 휘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딱 30년만 젊어진다면 다시 한 번 멋지게 프로골퍼 생활을 할 수 있 을 텐데…. 》
당시는 프로 경기가 한국오픈과 프로선수권 경기밖에 없었으며 일반 기업의 스폰서 경기는 전무했다. 그래서 초기에는 한달에 한 번 정도 상금없이도 월례경기를 했고, 프로와 아마추어 선수들이 돈을 조금씩 추렴해 자체 시합을 한 뒤 성적대로 상금을 나눠 갖기도 했다. 경기가 많지 않았기에 자연히 연습도 소홀해졌다. 그러다가 한국오픈이나 프로선수권 대회가 닥쳐오면 그때부터 입시생 벼락치기 공부하듯 허겁지겁 연습볼도 치고 어프로치샷 연습이나 퍼팅연습 등을 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몸이 피곤해질 때까지 며칠을 연습하다가 몸과 마음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경기에 참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기 때는 긴장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이 크나 내가 한창 선수생활을 할 때에는 골프용품이 참으로 비싸고 귀했다. 하지만 역으로 골프인구가 많지 않아서 코스에서 라운딩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지금은 정반대가 돼 주말이면 부킹전쟁이 벌어지곤 하니 세월의 변화를 실감한다.
내가 국제경기에 처음 참가한 것은 62년 극동 아시아 골프서킷이었다. 홍콩 오픈과 일본 요미우리(讀賣)오픈이었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요미우리 오픈 당시 피터 톰슨(호주선수·브리티시오픈 5 회우승자)의 플레이였다. 이 경기는 도쿄(東京)에 있는 요미우리 골프코스에서3월에 중순 열렸는데 봄바람이 시속 15∼20㎞로 불어 ‘날고긴다’는 골퍼들도 75∼78타를 기록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조금만 실수를 해도 80타를 넘었다. 그와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그는첫날 72타, 둘째날 68타, 셋째날 64타를 쳤다. 마지막날 74타를 치고도 2위와 10타 이상의 차이로 우승하는 것을 보고 골프에도 신 의 경지가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66년 캐나다컵(지금의월드컵)에는 미국 대표로 아놀드 파머와 잭 니클라우스가 출전했다. 나는 세계 최강 선수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그들을 따라 다니면서 관전했다. 나는 그들의 경기를 보고 비거리를 좀더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쇠파이프에 붕대를 감아 그립을 만들어 잡고 자동차 헌 타이어를 구해 치기 시작했다.볼은 허리로 때려야 한다는 연덕춘 선생의 지시를 머리에 떠올리며 쇠파이프로 헌 타이어를 죽어라 하고 때렸다. 물론 허리를 써서더 세게 팼다. 그러나 무모했는지 한 1주일쯤 스윙을 하고 나니 허리가 아파서 더는 스윙을 할 수가 없었다. 한동안 고생을 하기 는 했지만 이 연습은 효과가 있어 비거리가 10∼15m 늘었다.
73년 한국 프로선수권 경기에서 우승한 것은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관악컨트리클럽에서 9월12일부터 4일간 벌어진 이 경기는 경기 내용 면에서도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4일간 68, 67, 70, 69타 로 매일 언더파를 기록, 합계 14언더파였고 3일째 단 한 차례 보기를 기록했을 뿐이다. 이때만큼 독하게 맘먹고 연습에만 몰두했던 때도 없는 것 같다. 그와 같은 피나는 연습이 나로 하여금 불안한 마 음을 억제하고 자신감을 갖게 해줘 우승으로 연결되었다고 생각된다.
나의 슬럼프 극복방법
경기 때 흔히 “마음을 편하게 먹고 해라, 마음을 비워라, 긴장하지 말고잘하라”는 격려의 말을 많이 해준다. 그러나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경기 때 긴장하지 않고 떨지 않고 잘할 수 있 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즉 편안한 마음으로는 경기 때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상당히 긴장해 있었지만 “내가 얼마나 피나는 연습을 했고 자신감을 갖도록 마음속으로 다짐했는데 무엇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갖느냐”는 말을 되뇌며 불안한 마음을 스스로 달래면서 평정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조금 긴장했을 때는 마음이 불안했으나 긴장이 심해지니, 그 때는 불안한 마음이 없어지고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정신 집중이 최고조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시력이 한층 좋아지 고눈에서 광채가 번득이는 것을 느낀다. 겉으로는 웃어도 가슴은 웃지않고 차갑게 긴장하고 차분한 마음을 유지했다. 이런 마음 상태를 유지하면서 경기에 임해야 진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나 는 생각한다.
나도 선수 생활을 한참 할 때 깊은 슬럼프에 빠질 때가 있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모든 것이 전혀 자신이 없을 때가 있다. 스윙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의욕도 없고 골프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은 심정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이런 상황이 생길 때는 정말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때는 사실 심신이 극도로 피로해 있을 때인 것이다. 이럴 때 나는 밤낮으로 실컷 잠을 자는 것이 제일 좋았다. 그러고 나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골프 클럽을 잡고 싶을 때 다시 연습에 들어가야 한다. 다행히도 내 슬럼프는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대개 한 3일 쉬고 나면 다시 골프 클럽을 잡고 싶어지고 의욕도 생겼다.
내가 가진 독특한 습관이지만 난 휴식 시간을 가지고 다시 연습으로 들어가 연습장에서 타석을 정할 때 늘 내가 좋아하던 자리에서 시작 한다. 또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 맞는 클럽을 선택하여 연습을 시작하는 습관이 있다. 한양컨트리클럽 연습장 왼쪽에서 3번째 타석에서8번 아이언으로 연습을 시작하면 잊었던 스윙 감각과 자신감을 쉽게 찾을수 있어 슬럼프를 벗어날 수 있었다. 코스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홀이있다. 그러면 코스가 한가할 때 그 홀에 가서 볼을 몇 개 때려보면 쉽게 스윙 감각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한양컨트리클럽 ‘헤드프로’로 있던 80∼89년에 최상호 프로가 함께 있었다. 77년 칠전팔기로 프로가 되어 이듬해 여주오픈에서 우승을 하면서 촉망받는 신인 선수였던 그는 체구가 다른 선수에 비 해작았지만 연습량이 대단한 노력파였다. 최상호를 ‘퍼팅의 귀재’라며 모두들 부러워했지만 그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보통 연습볼을 치거나 코스연습을 한 후에는 대개 퍼팅연습을 생략하 거나 연습을 해도 20∼30분에 그친다. 그러나 최상호는 짧게는 1시간이고 보통 2시간 넘게 퍼팅그린을 떠날 줄 모른다. 그리고도 때로는 집에서 카펫을 깔아놓고 몇 시간씩 퍼팅연습을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최상호가 퍼팅 귀재란 소리를 들은 것은 그런 노력의 대가인 것이다. 그 후 최상호는 81년과 82년에는 6번의 경기에서 3번 우승을 하는 등 매년 3,4승씩을 기록하며 생애 43승이라는 대위업을 달성했다. 이는 한국의 프로골퍼로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힘을 주지 말라’
‘힘을 주지 말라.’ 초보자에게 꼭 해두고 싶은 말이다. 골프를 처음 시작하면 누구나 장타를 치고 싶다는 소망을 갖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장타를 의식해 어깨에 힘을 주고 쳐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스윙의 원리와 기본을 충실히 익혀야 한다. 기본만 잘 배우고 스윙의 원리대로 친다면 힘들여 치지 않아도 의외의 장타가 나오는 법이다.
외국의 유명선수들은 1∼3세 때 골프를 시작한다고 하는데, 그들은 드라이버도 아이언도 아닌 퍼터로 볼을 굴리는 것부터 배운다고 한다. 1∼3세 때 무슨 힘으로 골프 클럽을 휘두르겠는가? 따라서 처음 에는 퍼팅으로 시작해야 하지만 우리의 여건이 퍼팅으로 시작할 수 없으므로 연습장에 가서 가까운 거리부터 익혀나가야 정석이다. 처음부터 볼을 맞추고 때리다 보면 자연히 더 강하게 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이기 때문에 자꾸 힘을 주는 습관이 생겨 올바른 스윙을 익히는 데는 큰 방해가 되는 것이다.
흔히 ‘프로는치고 먹고, 아마는 먹고 친다’는 말이 있다. 이는 프로는 먹기 위해, 살기 위해 열심히 잘 쳐야 하는 직업이고, 아마는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을 위하여 하는 운동이라는 뜻이 다. 프로는 스코어가 필요하지만 아마는 멋진 스윙에 굿샷이면 만족해야한다. 한때 프로 골퍼로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던 나도 이제는 평범한 아마추어 골퍼의 위치로 돌아가고 있다. 한평생을 바친 프로 골퍼의 생이 끝나는 것 같아 서글픈 생각이 드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아마추어 골퍼로 돌아가니만큼 스코어에 연연하지 않고 멋진 스윙에 만족하면서 ‘그린’을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