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호

소니의 미국시장 공략과 코카콜라의 왕좌 지키기

  • 홍성태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경영학

    입력2006-10-13 1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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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카콜라는 수없는 도전을 받았지만, 그래도 100년 이상 선두기업의 자리를 방어하고 있다.또한 콜라전쟁으로 상대적 점유율은 줄어들 었을지언정, 시장 수요는 엄청나게 증가하였다. 애틀란타시의 코카 콜라 박물관 전광판에는 전세계에서 마시는 코카콜라 병의 숫자가 쉴새없이 게시되고있다. 매일 8억3400만병이 소비되고 있으니 1000단위 숫자가 바뀌는 것은 눈에 보이도 않는다. 》
    오늘날 소비자 시장은 시장 개방의 압력, 기술의 급속한 확산 등으로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이에 각 기업은 시장 점유율의 증가를 통하여, 즉 다른 회사의 희생을 딛고 이익을 얻어야 하는 상 황에 이르렀다.

    단순한 경쟁의 수준을 넘어서 전쟁의 양상으로 바뀌어가는 작금의 마케팅 상황을 전술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군사전략의 원리가 유용하다. 마케팅에서는 이미 군사전략 용어들을 많이 빌려 오고 있다. 예를 들어 ”판매고 300억원 돌파” ”500만 상자 고지 점령” ”일본 제품의 무차별 융단 폭격” ”오디오 시장에서의 한판 격돌”등 군사용어들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그러나 군대에서 차입된 것은 용어뿐 이지,그 용어의 뒤에 숨어 있는 군사 전략의 틀 안에서 마케팅 경쟁의 상황을 이해해 본다.

    전쟁의 기본적인 틀은 공격과 수비다.이를 동시에 설명하는 것을 창과 방패를 모두 설명하려는 모순적 시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기업에 있어서는 두 가지 전략을 균형 있게 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공격과 수비의 개념을 ‘일본업계의 미국 가전시장 공격‘ 및 ‘코카콜라의 방어‘라는 두 가지 대표적 사레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 제1부 공격편:일제 텔레비젼의 미국시장 점령 ]

    텔레비전은 미국 기업의 산업적 리더십, 기술적 발명력, 상업적 기업가 정신을 보여주는 대표 제품이었다. 텔레비전의 판매는 놀라우리만치 급속히 신장하여 50년대가 끝나기도 전에 미국 가정의 80% 이상의 흑백 텔레비전을 보유하였다.



    50년대 미국에서 판매되던 텔레비전은, 물론 모두 미국 기업이 생산한 제품이었다.그 당시 미국에서는 RCA, GE, 제니스, 모토로라 등 27개기업이 텔레비전을 생산하였다.그러나 오늘날, 텔레비전을 생산하던 미국 기업들은 전멸하였다.일본 기업의 다양한 공격 앞에 무릎을 꿇고만 것이다.이 비극적인 전사를 살펴본다.

    측면공격

    공격전에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은 적이 경계를 늦추고 있는 곳에 힘을 집중한다는 것이다.그래서 공격기업은 마치 표적기업의 정면을 공격할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측면이나 후면을 공격하게 된다(양동작전).

    미국에 진출한 첫 일본제 텔레비전은 소니로 1961년이었다.소니를 비롯한 일본 기업들의 초기 진입전략은 미국 기업들과 직접적인 대결을 피하는 전형적인 측면공격이었다.소니 제품은 건전지로 작동 하는 280달러 짜리 8인치 텔레비전이었다.1962년에는 3개의 일본 기업이 미국에 진출하였고, 63년에는 10개 기업이 진출했다.미국의 텔레비전시장이 17인치와 19인치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지 만, 일본 기업들은 12인치 이하의 시장에만 판매하였다.

    일본기업들은 텔레비전의 크기에서뿐만 아니라 마케팅에서도 측면공격을 시도했다. 소니를 제외한 일본 기업들은 미국 생산업자나 소매업자의 상표를 부착함으로써 미국 상표와 경쟁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그래서 초기 몇 년간은 유통 경로에서 미국 기업과 직접 대결하지 않았다.가격에 있어서도 일제 텔레비전은 소형이었으므로, 자연히 미국 것보다 낮게 매겨졌다.

    1963년중엽에 이르자 미국의 주요 기업들은 컬러 텔레비전 시장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하였다.흑백 텔레비전도 계속 생산 판매했지만 ‘미래는 컬러의 시대‘라고 생각하였다.점차 감소하리라 에상되 는 흑백 텔레비전 시장에서 제품의 개선이나 경쟁을 등한시한 것은 당연하였다.

    일본은 64년부터 컬러 텔레비전을 조금씩 내놓았다.일반적으로 일본제 텔레비전들은 미국제보다 크기가 작았다.소니 이외 다른 일본 텔레비전들은 여전히 미국의 유통업자나 생산업자의 상표를 부착 한 채 판매되었다.

    미국 시장을 정면 공격할 자원도 지식도 없던 일본으로서는 측면공격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그들은 방치된 시장의 틈새를 찾아겨우 자리잡은 것이다.그런데 다행히 미국 시장의 컬러텔레비 전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할 때 진출했기 때문에, 일본이 출현했다해도 서로 뺏고 빼앗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 유발되지는 않았다.

    실제로 60년대 중반까지는 미국기업이 일본기업에 변다른 반격을 가하지 않았다.미국 기업들은 16인치 이하의 소형 텔레비전 시장을 잠재력이 있는 분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더구나 소형보다는 대형이 이익도 많았으므로 17인치 이상의 모델에만 게속 몰두했다.

    그런데 미국 기업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시장이 있었으니, 바로 두 대 이상의 텔레비전을 구매하는 가정이었다.이러한 고객이 구매하는 두번째 텔레비전은 소형이거나 휴대용 또는 흑백인 경우가 대부 분이었다. 일본 제품들은 이러한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점차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 중반이 되자 미국 기업은 일본의 도전에 대한 반응으로 16인치 이하의 소형 모델들을 생산하기 시작한다.그러나 이제 일본 기업들은 더 이상 측면공격에 만족하지 않고 공격 범위나 강도에 저 극성을 띄게 된다.

    정면공격

    측면공격의 성공은 결국 정면대결로 가지 않을 수 없다.신규 진출 업체가 제품라인을 확대하여, 유동을 잠식하고 시장에서 점점 더 큰 부분을 장악하게 됨에 따라 선두기업의 영역에 점차 근접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시장성장이 둔화하면서 시장점유율 확대는 기존 선두기업의 희생위에서만 가능해지게 된다.이제 포지티브-섬 게임은 전형적 인 제로-섬 게임으로 바뀌어, ‘이에는 이, 눈에는 눈‘과 같은 정면대결로 치닫게 된다.즉 상대편의 약점보다 강점을 공격하여 누가 더 강한 힘과 인내력을 가지고 있느냐고 승부를 겨루게 된다.

    일본기업의 정면공격은 우선 제품 자체에서 나타났다.16인치 이하를 주로 취급하던 일본은 66년을 기점으로 미국 기업의 주제품인 19인치 텔레비전의 수출을 점차 늘렸다.일본 기업들은 자기들이 명 백한 약자일 때는 엄살을 섞어 동정을 구하지만, 일단 유리한 위치로 바뀌면 표변하여 앞뒤 가리지 않고 돌격하는 성향이 있다.1966년이 되자 도시바, 히티치, 파나소닉은 일제히 자기 상표를 부착해 미국기업에 정면으로 맞설 준비를 갖추었다.

    정면공격을 성공시키려면 강력한 힘의 우위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의 정면 공격은 획기적인 기술 개발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1969년 히타치는 텔레비전의 진공관을 100% 트랜지스터화한 일명 솔리드스테이트(solidstate) 텔레비전을 내놓았다.다음해에는 일본의 주요 생산업체가 모두 솔리드 스테이트로 바꾸었다.텔레비 전의 트랜지스터화야말로 일본 기업들이 미국 기업들을 기술적으로 앞서는 전환점이 되었다.진공관 대신 트랜지스터를 사용하면서 불량률을 낮추고, 고장 수리를 줄일 뿐 아니라, 전기도 절약할 수 있었던 것이다.또한, 생산면에서는 자동화를 촉진할 수 있었다.

    정면대결 체제는 유통의 변황에서도 나타났다.유통에서의 변화는 제품유형의 변경이나 자기 상표 부착 등의 변화보다 월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미국 기업이 소유하고 관리하는 유통구조에서 벗어나 일본기업이 직접 통제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일본기업들은 ‘소니-아메리카‘와 같은 현지 판매망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포위공격

    포위공격은 적의 전선을 여러 곳에서 공격해 적으로 하여금 정면뿐만아니라 측면, 후면도 동시에 방어하게 만드는 전략이다.일본 기업은 60년대에 주로 측면공격과 정면공격을 가하였으나 70년대로 들어서면서 포위공격까지 곁들였다.1970년대 초반부터 스크린의 크기를 늘려온 일본 기업들은 70년대 중반이 되자 미국 기업들이 생산하는 모든 크기의 텔레비전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또한 일본 의 자체 유통경로를 통하여 세차게 미국 제품을 밀어내면서 판매를 급신장시켰다.

    이렇게 미국 기업이 포위를 당하게 된 이유로 미국 생산업체의 수가 급격히 줄어 일본 업체의 수보다 적었다는 것도 들수 있다.1976년에 흑백 텔레비전의 98%는 수입품이었으며, 컬러 텔레비전을 포함한 일본 제품의 점유율은 45%를 넘어서기 시작했다.1970녀대 말이 되자 소매점마다 미제 텔레비전보다 일제 텔레비전이 더 많이 눈에 띄게 되었다.

    한편 제품개발에서도 포위공격을 찾아 볼 수 있었다.1970년대 후반까지 일본은 VTR의 침투를 성공시켰다.VTR에 관한한, 미국 기업들은 손을 써볼 틈도 없이 일본 기업에 시장을 내주고 말았다.그 후 일본은 스테레오 텔레비전과 더불어 모든 커뮤니케이션(라디오, 전화)과엔터네인먼트(오디오, CD, 전자오락) 관련제품으로 미국제품을 압도해 들어갔다.

    게릴라 공격

    게릴라공격이라는 것은 소규모 간헐적인 공격을 서로 다른 여러 지역에 감행함으로써 적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히고 사기를 떨어뜨려 종내에는 손들게 하는 전략이다.이러한 전략의 기본이 되는 조건 은 나보다는 적의 진을 빼는 효과가 훨씬커야 한다는 점이다. 별이득도 없는 싸움터에 적을 끌어들이거나 짜증나게 함으로써, 심리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에너지를 고갈시키려는 시도이다.

    일본 기업들이 일부러 게릴라 전략을 쓴 것은 아니라 해도 결과적으로는그렇게 된 경우가 많다.1962년부터 81년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미국을 끊임없이 짜증나게 하였다.덤핑, 담합, 부정, 독과점법 위반 등이 그 내용이다.

    일본 기업들은 처음부터 드러내 놓고 덤핑을 해댔다.이에 미국 기업들이 1968년 반덤핑 소송을 걸었으나 보통 1년이면 완결되는 소송을 일본기업들은 3년이나 질질 끌었으며, 71년 덤핑 판정을 받아 과세액이 산정되었으나 일본의 섬유류 대 미 수출 제한과 맞물려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일본에는 기계수출협회 산하에 텔레비전 수출위원회가 있다.그들은‘5개회사 규정‘이라는 자체 규정을 두어 미국 수입업자를 5개씩 지정한후 다른 회원사의 미국 회사는에는 서로 팔지 않도록 하였 다.또한 최저가격을 설정하여 일본의 텔레비전 생산업체들을 보호하였다.이러한 담합은 미국 측에 실질적인 피해를 줄 뿐아니라 개방경쟁에 익숙한 미국 기업들에는 짜증나는 일이었다.미국은 이 러한 담합 행위가 독과점법 위반이라고 항의하였지만, 일본은 과열 경쟁에 따른 불만 및 불법활동에 대한 예방조처에 불과하다고 발뺌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본 기업들이 ‘관리 가격‘ 이하로 미국에 판매하고, 비밀계좌를 이용하여 미국 수입업자에게 별도의 할인액을 지급하였음이 드러났다.할인액의 부정 지급과 텔레비전 산업의 곤경에 대한 청문회가 열린 76년, 새 덤핑 벌금 4억 달러가 부과되었다. 이에 일본 기업들은 강력하게 항의하며 엄청난 자료로 압도해 나가면서 미국 무역대표부의 은퇴한 고위 관리자를 로비스트로 고요하여 벌금을 4600만 달러로 삭감시켰다.이 삭감에도 또한 부정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미국 정부는 관세국을 개편하기에 이른다. 규정에 따르면 일본은 최소 1억4000만 달러에서 7억 달러의 벌금을 내야 했던 것이다.

    1977년 재무성은 일본과의 무역전쟁을 피하기 이해 벌금을 5000만달러로 삭감해달라고 의회에 요청하였다. 의회는 결정을 보류한 채 이 문제를 재무성에서 상무성으로 넘겼다.상무성이 덤핑 벌금 6600 만달러, 관세 부정 벌금 1000만 달러, 도합 76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한 것은 덤핑소송이 시작된 지 12년이 지나서였다.그 벌금 액수라는 것은 일본 기업의 1년분 할인액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었고, 대부분의 미국 기업들은 이미 텔레비전 생산을 중단한 후였다.

    또한 70년 독과점 규제법 위반으로 소송이 시작되었으나 82년 기각되었는데,표면상의이유는 일본 공정거래위원회가 재판에서 압수 서류의 사용을 금지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제적인 이유는 자동 차 수출 자율규제의 법적 근거를 무효화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위협에 굴복하고만 것이다.

    이와같이 일본 텔레비전 제조업체들은 끊임없이 미국 기업과 정부를 괴롭혔다.미국 기업들은 20여 건의 불공정 무역 소송을 제기하였고 37차례에 걸친 조사가 진행되었으나, 결과는 유야무야된 것이 대부분이다.

    미국과 일본 간의 텔레비전 전쟁에서 승자는 단연 일본이다.1950년대 27개에 달하던 미국 텔레비전 생산업체 중 80년까지 살아남은 업체는 GE, RCA, 제니스의 3개뿐이었다.1986년 RCA는 GE에 매입된 다. 그마저 87년에는 프랑스의 톰슨 CSF에 매입됨으로써 제니스만이 미국의 유일한 생산업체로 남았었다.그런데 제니스는 95년 한국의 LG전자에 매입되었다.미국 내 텔레비전 제조업체는 전멸한 셈이다.

    코 카콜라는 1886년약사 출신으로 남군 장교였던 존 펨버튼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다.코카콜라는 처음에는 코카나무 잎에서 나오는 코케인과 콜라열매에서 나온 카페인을 섞은 일종의 만병통치약으로 판매되었다. 그러다 1903년이 되자 코케인을 원료에서 제거하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70년 후에는 카페인조차 제거한(caffeine-free) 콜라가 주요 제품이 된다. 코카콜라는1915년 한 손으로 쥐기에 딱 알맞은 6.5온스 짜리 독특한 병을 만들면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다.코카콜라의 엄청난 인기를 보고 모조품도 많이 생겨나지만, 코카콜라를 위협할 만한 경쟁 기업은 되지 못했다.

    펩시의 끝없는 도전

    펩시콜라는 1930년대의 불황으로 가격에 민감해진 소비자들에게, 동일한 가격(5센트)으로 두 배(12온스)를 마실 수 있다고 강조하며 큰 병을내 놓으면서 코카 콜라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다.코카콜 라가 손에 딱 들어오는 크기인 6.5온스 짜리 병을 12온스 짤리 큰 병으로 바꿀 수 없었기 때문에 펩시의 저가격 공격은 효과를 발휘한다.펩시는 코카콜라의 치대 강점인 독특한 병 모양에서 그들의 최 대 약점을 찾아낸 셈이다.이와 같이 경쟁 제품의 약점을 찾기가 쉽지않은 경우, 경쟁 제품의 강점을 뒤집어 보면 약점이 발견되기도 한다.

    2차 대전을 거치면서 펩시는 확고한 기반을 닦아 코카콜라의 강력한 위협요소가 된다.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50년대에 이르자 행운은 다시 코카콜라에 돌아왔다.설탕 가격이 오르고 임금이 비싸지면서 펩시콜라는 5센트 짜리 콜라를 6센트, 7센트로 점점 올릴 수밖에 없었다. ”5센트에 두 배를 준다(Twice as much for a nickle)”는 말은 더이상 통하지 않았다.시장 점유율은 코카콜라의 5분의 1로 떨어졌다. 60년대가 되자 펩시는 당시 자판기와 상점의 수요가 대부분이던 콜라를 가정용 포장으로 바꾸었다.슈퍼마켓을 공략하면서 펩시의 큰 사이즈를 다시 특징으로 내놓게 되었고 이러한 노력은 점차 효과를 발휘하여, 펩시의 시장 점유율이 코카콜라의 거의 절반에 이르게 되었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펩시는 다시 한번 코카콜라의 강점들을 생각해 보았다. 코카콜라의 강점 중 하나는 펩시보다 역사가 깊다는 점이다. 즉 첫 번째 콜라도 펩시보다 더 오랫동안 시장에 나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권위가 확실히 코카콜라에는 강점이었지만, 그 또한 뒤집어보면 약점이 될 수도 있었다.나아가 많은 소비자일수록 코카콜라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젊은 사람들은 펩시를 좋 아했던 것이다.더구나 큰 병은 젊은이들에게 어필했다.

    이제 펩시의 전략은 코카콜라가 ‘진보에 뒤지고, 감각에서 뒤지며, 세대에도 뒤지는‘ 제품으로 보이도록 하는 것이었다.광고에는 마이클잭슨이나 라이오넬 리치 같은 젊은이들의 우상을 등장시켰다. 그들은‘새로운 세대의 선택(The choice of a new generation)‘을 슬로건으로내세웠다. 한편 젊은 층을 공략한다는 전략은 일관성 있게 유지하면서 젊다는 이미지를 다양한 그림, 말, 사진, 음악 등 으로 변화시켜가며 표현했다.펩시의 이러한 전략은 코카콜라의 우세를 조금씩 잠식해 나갔다.

    코카콜라는 선두를 고수하는 방어전략에 부심하게 된다.‘코크(Coke)‘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된 코카콜라는 콜라의 대명사다.즉 코카콜라는 콜라를 대표하는 ‘제품‘을 팔고 있는데 반해, 펩시콜라는 그 야말로 펩시라는‘브랜드‘를 파는 셈이었다.코크와 같은 본원적 상표(generic brand : 특정 브랜드가 제품을 총칭하는 경우)는 엄청난 자산이다. 코크는 이러한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80년대에 이르자, 콜라 맛의 원조라는 의미에서 ‘진짜 콜라맛을 찾으신다면(for real taste)‘이라는 테마를 내놓았다.즉 다른 어떤 제품도 다 ‘코크의 유사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진짜맛‘을 더 구체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소위 ‘머천다이즈 7X‘라 하는 코카콜라의 제조 비법에 관한 이점을 이용하기로 하였다.코카콜라 원액의 제조 비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서넛밖에 없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루머였다.그리하여 ‘진자 맛‘을 대변해 주는 슬로건으로서 ”코크는 바로 이 맛!(Coke is it!)”을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다이어트 콜라의 공격

    로얄 크라운(Royal Crown:일명 RC콜라)은 60년대에 들어서면서 강력한 측면공격을 시작하였는데, 다이어트 라이트(Diet Rite)콜라가 그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코카콜라를 긴장하게 만든 제품이었다.

    60년대말에는 RC의 다이어트 라이트가 다이어트 청량음료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이 되었다.코카콜라가 탭(Tab)이라는 다이어트 콜라를 만든 것은 70년대 들어서서였다.

    여하튼 다이어트 라이트의 성공으로 힘을 얻은 RC콜라의 매출은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했다.이에 따라 RC콜라는 이제 콜라시장의 전체 전선에 불을 댕길 것이냐, 아니면 다이어트 라이트에 자원을 집 중할 것이냐를 결정해야 했다.

    RC콜라는 그 결정을 스스로 내리지 못하였다.우유부단한 경영자들이 흔히 그러듯이 시장상황에만 예민해진 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것이다.그들은 결국 두 전선에서 동시에 싸움을 진행하는 격이되었다. RC콜라는 초기 공격 못지않게 이를 계속 지원해나가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어야 했다.

    오늘날 다이어트 라이트는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다.한대는 다이어트 콜라시장을 지배하던 그 상표가 없어지기 일보 직전에 있는 것이다. 코카콜라는그들의 막대한 이익을 다이어트 코라 상표인 탭에 쏟아부었다.반면에 RC콜라는 다이어트 라이트에서 나오는 얼마 안 되는 이익을 코카콜라의 대표 제품인 코크에 대항하는 무모한 공격에 다 허비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전략가 클라우제비츠는 ”힘을 집중시키라”고 말한다.다이어트 라이트의 사례는 우리가 흔히 빠지기 쉬운 제품라인 확대 유혹에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무(無)카페인 음료의 출현

    콜라 전쟁에 끼어든 또 다른 제품은 세븐업(Seven-Up)이다.1968년 세븐업회사는 레몬 라임의 청량음료를 언콜라(uncola)로 포지셔닝시켰다. ‘언콜라‘란콜라에 들어 있는 성분인 카페인을 첨가하지 않았다는 뜻히다.세븐업은 소비자들에게 코크나 펩시의 강력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져서 첫해에 시장을 15%나 장악하였다.

    ‘언콜라‘캠페인을 벌인 지 10년 후 세븐업은 필립립 모리스에 5억2000만 달러라는 전대미문의 가격으로 팔렸다.말보로 담배와 밀러 맥주등에서 성공을 거둔 필립 모리스는 세븐업에서도 똑같이 서공 하고 싶었던 것이다.말보로와 밀러의 마케팅에서 정확한 세분시장 선정과 이미지 형성으로 성공했던 필립 모리스는 세븐업에 대해서도 이미지 형성에 가장 주의를 기울였다.그리하여 성분을 내세우기보 다 노래하고 춤추는 발랄한 세븐업 광고를 내보냈다.

    마케팅 전략을 세우기 이전에 광고 제작에 먼저 신경을 쓰는 것은 흔히 범하기 쉬운 오류이다.예컨대 어떤 광고 유형이나 모델이 히트를 하면 그 다음 광고들은 제품이나 전략을 떠나 비슷한 유형으로 만들어지거나 동일한 모델을 등장시키려 한다.

    필립 모리스도 이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이다.노래하고 춤추는 것은 코크가 더 잘하는 것이었다.이를 흉내내서는 세븐업을 차별화할 수 없었다.

    필립모리스는 백지로 돌아가서 소비자가 왜 ‘無(un)콜라‘를 사 마셔야 하는지 그 명확한 이유부터 찾기로 하였다.그래서 먼저 콜라의 장점이 어디 있는지를 살펴보았다.먼저 콜라의 장점은 그 독특 한 맛에 있는데 그 독특한 맛은 콜라염래에서 온다.그렇다면 그 강점의 약점은 무엇이 되겠는가.

    콜라열매는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다.실상 콜라열매를 처리하는 과정에 자연산 카페인은 빠지고 만다.그러나 만약에 카페인이 전혀 들어 있지 않으면 FDA(식품의약국) 규정에 따라 이를 ‘콜라‘라고 부 를수없다.그렇기 때문에 FDA는 콜라라에 인위적으로 카페인을 넣도록 규정하고 있다.그래서 코카콜라는 카페인을 별도로 구매하여 첨가한다.

    결국 부모는 카페인을 제거한 커피를 마시면서 애들한테는 카페인이 들어간 콜라를 사주게 되는 셈이다.이러한 점을 간파한 필립 모리스는 세븐업의 초기 전략 처럼 무(無)카페인 전략을 도입했다.그 리하여 세븐업 캔에는 카페인이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neverhadit, never will)”임을 명시했다.이와 같은 무카페인 전략은 세븐업을 청량음료 전체시장의 4위에서 3위 브랜드로 올려놓 았다.

    그러나 세븐업은 이어 몇 가지 전략적인 실수를 범한다.

    첫째, 라이크(Like)라고 불리는 무카페인 콜라 를 만들어 초점을 흐리고 말았다.힘을 모으지 못하고 오히려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만든것이다. 그런데다가 무카페인(no caffeine) 전략에서 한 걸음 더나아가무설탕(no sugar), 무인공향료(no artificial flavor), 무색소(no color)에까지 발을 뻗치고자 했다.

    실상 미국인들은 색소가 섞인 당양한 색갈의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젤로(Jell-O)와 같은 여러 색갈의 젤리를 샐러드 위에 얹어 먹기도 하고, 쿨-에이드(Kool-Aid)라고 하는 색소음료도 즐겨 마셔왔다.

    카페인도, 설탕도, 향료도, 색소도 없는 것이 좋은 음료라는 세븐업의 주장은, 여태까지 즐기던 음식을 부정하라는 말과 같았다. 이에 소비자들은 인공향료나 색소가 건강에 그다지 해롭지도 않은데 뭘 그렇게 문제를 삼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세븐업은 최근에 다시 ‘언콜라‘캠페인을 시도하고 있다.그러나 제품에 대한 뚜렷한 이미지를 남기지 못한 채 우왕좌왕 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펩시 챌린지

    펩시가 70년대 중반에 내놓은 전략은 ‘펩시 챌린지‘다.이것은 눈을 가리고 콜라 맛을 본 후, 좋아하는 콜라를 선정하도록 하는 테스트다.이 테스트에서 사람들은 펩시를 코크에 비해 3대 2정도로 더 많이 선택하였고, 그 결과가 텔레비전 광고에 이용되었다.펩시가 코크보다 9% 더 달기 때문에 사람들이 눈을 가리고 한 모금 마셨을때는 펩시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특히 젊을수록 단 것을 좋 아하므로 젊은이들에게 어필하려는 펩시에 부합하는 전략인 듯 보였다.

    그런데‘펩시 챌린지‘의 성과에 당황한 코카콜라가 클 신수를 저지르고 만다.코카콜라는 85년 갑자기 그들의 내용물을 바꾸어서 펩시콜라만큼 단 맛의 뉴코크(New Coke)를 내놓은 것이다.

    이제 그들이 주장하는 지진짜 맛(real taste)은 더 이상 진짜 맛이 아니었다. 일격에 자기 자신의 위치를 흔들어 놓고야 만 것이다.고객들의 반발로 인하여 뉴코크를 내놓은 지 3개월도 채 못가서 코 카콜라는 다시 오리지날의 맛을 소비자에게 돌려주는데, 되돌아온 코크의이름은 클래식 코크(Classic Coke)였다.이 클래식 코크라는 것은 결국 뉴코크를 죽이는 결과를 자초하고 만다.

    코크와 펩시의 시장점유율은 550년대 5대 1에서 1960년대에는 2.5 대1이 되었으며 코카콜라가 만들어진 지 100년이 되는 1986년에는 1.1 대 1이 되고야 만다.

    방어를 통한 번영

    코카콜라는 수없는 도전을 받았지만, 그래도 100년 이상 선두기업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또한 콜라전쟁으로 상대적 점유율은 줄어들었을지언정, 시장 수요는 엄청나게 증가하였다.애틀란타시의 코카콜 라박물관 전광판에는 전세계에서 마시는 코카콜라 병의 숫자가 쉴새없이 게시되고 있다.매일 8억 3400만 병이 소비되고 있으니 1000단위 숫자가 바귀는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오늘날, 코카콜라는 브랜드 가치만도 40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코카콜라는 새로운 도전들에 대비하여 전세계 방방곡곡으로 시장을 넓혀 가고 있다.코카콜라가 진출해 있는 국가는 현 재 195개국으로 북한, 리비아, 이라크를 제외한 사실상 전세계 국가다.유엔 회원국 150여개보다 더 많다.

    또 한편으로는 소비자의 어떠한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게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콜라의 종류만 해도 클래식 코크, 뉴 코크, 체리 코크, 다이어트 코크, 탭, 카페인-프리다이어트 코크, 카페인- 프리 탭 등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이에 그치지 않고 콜라 이외의 청량음료 제품도 끊임없이 개발하는 등 선도기업의 자리를 지켜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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