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호

“팝송 퀴즈 PC 게임이 최고의 영어공부였다”

최우수 영어학습교로 뽑힌 대전 대신고

  • 최영재 cyj@donga.com

    입력2006-10-10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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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 대신고등학교는 올해 초 교육부가 실시한 99년 교과교육연구활동 평가에서 전국 초·중·고 2000개 연구팀 가운데 최우수팀으로 뽑혔다. 이 학교는 영어 수업시간에 교과서를 덮고 팝송·컴퓨터 게임·영화·연극·퀴즈를 다양하게 이용했다. 게다가 이 멀티 미디어 수업 시간에는 영어만 사용하도록 했다. 학교 영어 교육의 심각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는 지금, 이 학교의 영어 교육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독특한 수업 방식을 알아보았다.》
    오늘은 팝송 수업 시간이다. 송경주 교사(31)가 교단에서 영어로 간단하게 인사한다. “This is pop song class. Do you like pop song?”“Yes!” 하고 학생들이 소리쳤다. 곧이어 컴퓨터로 조작되는 54인치 파워포인트 모니터가 교단 왼쪽에 켜진다. “Look at the monitor. we have two aims.” 송교사의 말이 끝나자, 파워 포인트 스크린에 첫번째 학습목표가 영문으로 떠오른다. 「Through pop song, students are able to develop listening, writing, reading, speaking skills」 두 번째 학습 목표가 곧이어 떠오른다. 「Through pop song, students are able to have a lot of interest in English.」

    파워 포인트가 꺼지자 송교사는 학생들을 향해 돌아선다. “Let me introduce one excellent team. This team is battle cruiser.” 송교사의 말이 끝나자, 교실 한 복판에서 몇몇 학생들이 엉거주춤 일어설 준비를 한다. “Are you ready?” “Yes.”“Really?” 웃음이 터져나왔다. 학생들은 박수를 치고 4명의 학생들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앞으로 나온다.

    이들이 나오자 송교사는 “This team prepared for one fantastic pop song”이라고 말한 뒤 옆으로 빠졌다. 앞에 나온 학생 가운데 리더격인 학생이 나서서 수업을 진행한다. “I introduce my team member. I’m leader. My name is ○○○ . This is ○○○. This is ○○○ ….” 소개가 끝나자, 리더는 노트북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학생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러자 곧 교단 왼쪽 파워포인트 스크린에 영문 자막이 뜬다. 「Please enjoy yourself.」

    자막이 꺼지자 박신양과 전도연이 주연한 영화 ‘약속’의 뮤직비디오 ‘Good bye’가 흘러나온다. 이 곡은 지난해에 영화 ‘약속’ 삽입곡으로 크게 히트한 팝송이라 모르는 학생이 없다. 교실 안의 모든 학생이 파워포인트 스크린에서 눈을 뗄 줄 모른다.

    뮤직 비디오가 끝나자, 스크린에는 영문 질문 하나가 떴다. 「I can see the ( ) living in your eyes.」 조금 전에 들었던 뮤직비디오 가사 가운데 일부분이다. “Who can answer this question?”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손을 든다. 한 학생이 일어나 “Pain.”이라고 답한다. 정답이다. 진행자는 노트북 컴퓨터를 조작하던 팀원에게 “Can you show me some example?”이라고 물었다. 다시 파워포인트 화면에 영문이 오른다. 「He has a lot of pain in his back.」 진행자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Who can translate this sentence?”….



    팝송 ‘Good Bye’로 영어 수업을 발표한 이 팀 리더는 진행자다. 팀원들은 각각 할 일이 정해져 있다. 컴퓨터를 조작하는 팀원, 심지어 팝송을 직접 부르는 학생도 있다. 이런 식으로 어휘 공부가 끝나면 구문 공부가 이어진다. 팝송 수업을 발표하는 팀이 미리 준비한 단답형 문제를 학생들이 푼다. 팝송 가사를 바탕으로 한 영작 공부도 이어진다. 영작의 경우 7명씩 묶인 한 조가 협동으로 푼다. 이처럼 이 학교 영어수업에서는 학생끼리 서로 배우고 가르친다. 어휘·구문·독해·영작 등 팝송을 통한 멀티미디어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은 ‘Good Bye’를 노래부르며 전과정을 마무리한다. 물론 교단 옆의 파워포인트 스크린에는 음악에 맞춰 영문 가사가 자막으로 오른다.

    팝송팀의 수업 발표가 끝나자, 이 광경을 지켜보기만 하던 송경주 교사가 나섰다. Review Time이다. 그는 팝송 ‘Good Bye’에 나온 단어·숙어·구문 등을 학생들에게 복습시킨다.

    그 다음 팀은 10대뿐 아니라 젊은이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끈 컴퓨터 게임 ‘스타 크래프트’로 수업을 진행하는 학생들이다. 선생님이 그동안 그렇게 하지 말라고 주문하던 컴퓨터 게임이 수업 시간에 교재로 등장한 것이다. 이 팀은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게임의 현란한 전투 장면을 스크린에 재생하며 학생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사실 모든 학생이 영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고등학생치고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는 없다. 그러니 수업 집중도를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모두가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3분 정도 전투 장면이 진행되다 꺼지자, 팀 리더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 게임에 출연하는 six unit의 이름을 묻는 것이다. 물론 영어로 묻고 대답한다. 팀원들이 번갈아가며 각 unit의 생김새와 행동 양태를 영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면 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손을 들고 이를 알아맞히는 것이다. 또 게임에 나오는 다양한 명령어를 통해 듣기 훈련도 하고, 다양한 생활영어 표현도 공부한다.

    말하기 능력 크게 상승

    이 밖에도 퍼즐을 이용하는 팀, 영어 연극을 하는 팀, 애니메이션을 이용하는 팀 등 갖가지 대중문화가 수업에 동원된다. 팀별로 매주 한 번씩 발표를 맡고 수업 준비에 매달린다. 팀들은 영어 실력이 달라 소외되는 학생이 없도록 심화반 2명, 기본반 2명, 기초반 2명으로 팀을 꾸리고 있다. 팀원 6명은 각자 가장 자신있는 분야를 책임진다. 수업에는 교사용 노트북 컴퓨터와 54인치 대형 모니터가 동원된다. 파워포인트와 MP플레이어 같은 멀티미디어도 큰 몫을 한다. 한편 수업을 맡은 영어 교사는 발표가 끝날 때까지 지켜만 보다가 어휘를 재반복해주고 정리해줄 뿐이다. 이런 식이니, 뒤에서 엎드려 자는 학생은 거의 없다.

    대신고의 영어 수업이 그 동안의 영어 수업과 크게 다른 것은 말하기 능력을 키워준다는 점이다. 수업의 모든 과정을 영어로 해야 하므로, 말하기 능력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물론 발표식 수업 자체를 통해서 학생들의 능력이 올라가는 것도 있지만, 역시 이 수업의 묘미는 준비 과정에 있었다. 준비 과정 자체가 대단한 공부였다. 팝송 수업을 예로 들면, 수업을 발표하기 1∼2주 전부터 교사와 수업을 진행할 팀원이 모여 수업 계획과 진행 방법을 자세하게 토론하였다. 그 후 학생들은 실제로 곡을 선정하고, 멀티시스템을 이용해서 수업 자료를 제작했다. 준비 과정도 교사는 전체적인 흐름을 잡아주고 조언만 했다. 팝송팀은 한 학생이 전체 진행을 이끄는 리더를, 두 학생이 팝송에 나오는 중요한 어휘나 구문을 요약하고 설명하는 역을 맡았다. 또 한 학생은 팝송을 직접 부르는 가수가 되고, 나머지 한 학생은, 수업시간에 쓸 수 있도록 컴퓨터로 수업 자료를 만들었다. 팀원들은 방과 후에 모여서 자기 역을 연습해서 완벽한 수업 형태를 만들어 나갔다.

    송경주 교사는 학생들이 만든 수업 모델과 자료에 감탄하면서, 아이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이 얼마나 무한한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송교사에 따르면 학생들이 스스로 대본을 써서 연출한 영어 연극인‘Hero’와 ‘Problem and Solution’수업도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오히려 영어 수업을 기다리는 학생도 생겼다. 어떤 그룹에서는 준비한 수업을 보여주기 위해 집에 있는 개인 데스크톱 컴퓨터를 학교에 들고오기도 했다. 한 학생은 스타 크래프트 게임 수업을 준비하다가, 99년 2학기 중간고사를 망치기도 했다.

    영어는 연습으로 익혀야

    지금까지 한국 영어 공교육은 영어를 무슨 복잡한 공식과 단어를 암기하는 방식으로 우리말 어순에 맞추는 독해 교육, 단어 암기와 문법 시험에 치우쳐 왔다. 말하기보다 빨리 읽고 답 찾기가 영어 공부라는 식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학교 2학년 서주형군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서군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0년 동안 살다가 한국에 돌아온 학생이다.

    “미국에서는 교과서 개념이 별로 크지 않아요. 한국에서는 독해와 문법을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하니까 매우 지루합니다. 또 한국의 영어 교과서에는 미국 실생활에서 쓰이는 단어가 별로 없더군요.”

    듣기 능력 시험을 입시에 포함시킨 것도 불과 몇년 전 일이다. 그나마도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말하기 지도는 이보다 더하다. 현재 대학입시 듣기 문항에는 말하기 문제가 5개 들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말하기 문제라고 볼 수가 없다. 정지된 문항이 살아 움직이는 의사 소통 기능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영어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기능이고 기술이다. 이 말은 영어를 학습이 아니라 연습(practice)으로 익혀야 한다는 뜻이다. 학교에서 배운 문법 규칙과 지식 체계로 영어를 배운 사람들은 막상 영어를 쓰려고 하면 배운 규칙이 생각나지 않아 영어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연습을 통해 영어를 익힌 사람들은 규칙을 생각할 필요없이 습관적으로 영어가 튀어 나온다. 지난해 송경주 교사의 영어 수업을 처음 접한 이 학교 3학년 김인환군의 말에서 이 사실은 잘 드러난다. “송선생님과 처음 영어 수업을 할 때는 정말 당황했습니다. 적응이 안 되더군요. 한번도 이런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그저 쓰고 베끼고 외우는 영어 수업이었어요. 새로운 방법으로 하니까, 단어도 속담도 금방 익힐 수 있었습니다.” 3학년 한재균군은 “수능시험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듣기와 말하기는 확실히 많이 늘었습니다. 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에 외국인을 만날 기회가 많은데, 새로운 수업을 하고부터는 외국인을 만나는 데 자신감이 생겼습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런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점도 생겼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관심사가 다른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학생들이 선택한 수업 주제는 대부분 인기 연예인·운동 선수·게임·동영상·인터넷 등이었다. 교사들의 관심사는 이와는 완전히 달랐다. 교사가 이해할 수 없는 수업은 공개하기 어려워 학생 생각이 무시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또 교사가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수업 조력자 구실을 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스타 크래프트 게임을 공개했을 때였는데, 교사가 게임 규칙을 알지 못해 수업 진행이 매끄럽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컴퓨터나 MP3, 파워포인트 같은 멀티 미디어를 나이 든 고참 교사들이 잘 조작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였다. 학생들이 준비해온 자료는 고도의 컴퓨터 기술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교사들을 애먹였다. 교육 경력 27년의 이석주 교사(55)는 “우리만 해도 등사기로 인쇄물을 만들던 세대다. 타이프와 컴퓨터가 나온 것은 훨씬 이후의 일이다. 우리 세대는 새로운 컴퓨터 문화를 익히는 것이 제일 어렵다”고 말했다. 이교사는 교육부가 주관하는 교사 재연수에서도 여기에 대한 보충은 없다고 말했다. 대학교수들이 나와서 교수방법 같은 이론은 늘어놓지만, 어린 학생들을 사로잡고 있는 대중문화와 컴퓨터를 다루는 교육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학교 영어 교사들은 전산실 최장문 교사의 도움을 받아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틈틈이 파워포인트, 리얼 플레이어, MP3 플레이어, 오디오 뷰, CD엑스트랙터 사용법을 익히고 있다.

    수업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한 것도 문제였다. 교사의 경우 하루에 4∼5시간씩 수업을 해야 하고 여러 가지 잡무에도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연구 활동에 전념하기가 쉽지 않았다. 학생들이 만들어온 수업자료가 어설프면 다시 제작해야 하는데 여기에도 시간이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현행 대학 입시 제도와 맞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싫든 좋든 현행 영어 교과서를 무시할 수 없다. 교과서에 매달리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것이다. 대신고가 개발한 영어 수업 모형은 수능용이라기보다는 실생활에서 학생들이 말하는 데 필요한 자신감과 표현을 익히기 위한 것이었다. 이 학교 3학년 김인환군은 “새로운 수업을 일주일째 하다 보니 불안감이 생기더군요. 독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어요. 결국 대학 입시와 이 수업을 연결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대학 입시 제도에서 영어는 독해와 듣기, 말하기로 되어 있다. 특히 독해는 유형별로 문제가 이미 고정되어 있으므로 기계적으로 문제를 많이 풀어본 학생이 절대 유리하다. 2학년 오도건군의 말은 한국 영어 교육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학교에서 토익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해도 학생들은 관심없습니다. 대학입시와 관계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능 만점을 받으나, 0점을 받으나, 영어 한마디 못하기는 마찬가지라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신고도 모든 영어시간을 발표식 수업으로 끌고가지는 못하고 있다. 입시에 매달려야 하는 3학년은 아예 적용하지 않는다. 1·2학년도 교과서 한 단원이 끝날 때마다 1시간 정도, 발표식 수업을 하고 있다.

    대전 대신고의 독특한 영어 수업을 개발한 곳은 이 학교 영어 교사로 이루어진 ‘영어연구회’이다. 1999년 3월께 영어 교사 모임에서 교사 한 사람이 영어수업에 한계를 느낀다고 운을 뗐다. 2002년부터 대학입시가 바뀌는데 지금까지의 독해·문법·어휘 위주 수업으로는 학생들의 흥미와 적성에 맞게 가르치는 것이 힘들다는 말이었다. 그 순간 영어연구회 팀장인 송경주 교사는 문법과 독해로 얼룩진 영어 수업, 매일 치르는 단어 시험, 지겨워하는 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한다. 이 자리에 모인 영어교사들은 학생들의 흥미와 적성을 채워주면서도 학습 효율성을 이끌 수 있는 수업방식을 토론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대전 대신고 영어연구회는 탄생했다. 구성원은 팀장 송경주(31), 이석주(55), 권경호(55), 김이철(45), 변창식교사(45)로 꾸렸다. 가장 나이가 적은 송경주 교사가 팀장을 맡은 것은, 아무래도 한 살이라도 젊은 사람이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발상 자체가 가능했던 것은 이 학교 교사 집단의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대신고 교사 집단은 다른 학교보다 덜 권위적이었던 것이다.

    덜 권위적인 교사 문화가 창조적 발상 키워

    송경주 교사는 “우리 학교에서 창조적 발상이 가능한 것은 선배 교사가 젊은 교사의 생각을 수용해주기 때문이다. 사실 인터넷을 뒤져보면 전국의 젊은 영어 교사가 만든 개인 홈페이지가 많다. 여기에는 엄청난 아이디어가 들어 있다. 이 아이디어가 일선 학교에서 먹히지 않으니까, 사이버 공간에서 묻히고 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계 경력이 5년 정도 되는 송교사는 실제 모든 면에서 의욕이 넘쳤다. 혈기왕성한 그를 팀장으로 출범한 영어연구회는 99년 4월부터 ‘학습자 중심의 영어 능력 향상을 위한 수업 모형과 수업 자료 개발’이라는 주제로 연구를 시작했다. 대신고 영어교사들은 기존 수업 방식과 수업자료로는 큰 변혁을 이끌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고 원하는 토픽을 정해서 직접 영어로 수업을 공개하는 모험적인 방법을 시도하기로 했다. 학생 스스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육, 곧 학습자 중심의 능동적 탐구학습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취지로 99년 4월 중순부터는 학생들이 준비한 수업을 공개했다. 처음에 학생들이 준비한 수업은 단순한 게임이나 이야기로 흥미를 끌지도 못했고, 학습 효율성도 떨어졌다. 또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이런 수업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잘 적응하지 못했다. 영어수업에 더 부담을 느끼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한다. 가령 어떤 반은 우스갯소리인 ‘덩달이 시리즈’를 영어로 1시간 동안 진행하려다가 3분도 못하고 끝내기도 했다. 연구회 교사들의 노력은 이어졌다. 16종 영어 교과서를 분석한 후 학생들이 좋아하는 팝송을 중심으로 자료를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팝송 30곡이 교재로 태어났다.

    이 밖에 독해를 하기 전에 그림을 보여주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법도 나왔다. 매주 회화시간에 비디오를 보여주고 듣기와 말하기를 훈련하기도 했다.

    영어연구회는 9개월 동안의 연구 활동을 끝내고 결과물을 포트폴리오와 CD로 제작해 1999년 12월 교원대학교에 제출했다. 그러다 2000년 1월18일에 전국 최우수팀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제2의 교과서 만들겠다

    송경주 교사는 작년에 시작한 영어 수업 실험을 올해도 계속하고 있다. 연구 제목은 ‘학습자 중심의 영어 전용 수업을 위한 수업 모형과 수업 자료 개발’로 잡았고, 역시 교육부 주최 교과교육 연구활동에 계획서를 냈다. 이번에는 멤버도 바꾸었다. 다른 영어 교사 7명과 함께 팀을 꾸렸고 팀장은 역시 그가 맡았다. 올해의 계획은 지난해와 조금 다르다. 지난해에는 일정한 틀도 없이 그냥 즉흥적으로 이것저것 시도해본 것이었다면, 올해는 그런 시도를 체계화해서 자료로 만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팝송과 영화, 영자신문, 퀴즈로 이루어진 ‘제2의 교과서’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그는 “학생들이 만든 다양한 자료가 교재로 정리되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자료라도 한 번 쓰고 묻힐 가능성이 큽니다. 또 다른 학교에 퍼뜨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학생들과 함께 제2의 교과서를 만들어 여기서 시험문제도 낼 수 있게 하겠습니다. 또 교과서가 완성되면 이를 전국영어교사협회와 교육청에 보내 전국 영어 선생님에게 참고자료로 보급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만약 송교사의 야심 찬 구상이 실현된다면, 모든 영어 교사가 똑같은 CD롬과 자료로 발표식 수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컴퓨터를 특별히 잘 다루지 못하는 고참 교사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중학교 1학년부터 영어 교육을 받지만 외국인을 만나면 벙어리가 되는 것이 한국 영어 공교육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역시 현행 대학 입시제도였다. 대전 대신고의 실험은 지금은 비록 미약하지만 한국 영어 공교육을 바꿀 중요한 몸부림에 틀림없다.冬



    교육&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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