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호

날 수 없는 백두 정찰기 2200억만 날렸다

자주국방 헛꿈 ‘백두사업’

  • 이정훈 hoon@donga.com

    입력2006-10-10 1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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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략정찰의 자주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시작된 백두사업에 투입된 국민 예산은 무려 2억1000만 달러다. 지금 환율로 따지면 무려 2200억원 정도가 되는 대형 사업이다. 혹시 우리 국민은, 결국은 ‘뭔가 보여주지도 않고’ 끝날 것이 뻔한 영화 ‘린다-양호 스캔들’을 보기 위해 무려 2200억원의 입장료를 지불한 한심한 관객은 아닐까? 백두사업은 왜 잘못되었고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 살펴본다.》
    에이전트 린다김과 이양호 당시 국방장관이 주고받은 연서(戀書)가 공개됨으로써 그동안 관계자들 사이에서만 회자되던 백두사업의 문제점이 국민 앞에 던져졌다. 그러나 많은 언론은 백두사업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그저 ‘린다’와 ‘양호’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에 대해서만 집요히 관심을 기울였다. 양호는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하고, 린다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호사가들은 “섹스냐? 키스냐?”란 화두를 만들어, 골라보라고 한다. 클린턴이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했을 때, 법정에서 그것이 ‘섹스’였는지 ‘오럴’이었는지가 문제가 됐던 것을 빗댄 것이다.

    지금의 백두사업은 사방으로부터 두들겨 맞는 ‘동네북’ 신세가 됐지만, 시작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이야기는, 100억 달러라는 거대한 무역 수지 흑자 시대에 출범하고서도 북방 사업을 한다며 폼만 잡다 ‘흑자를 다 까먹고’ 사라진 노태우 대통령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88서울올림픽과 흑자 수지를 지렛대 삼아 노대통령이 북방 외교에 주력할 때, 북한은 그에 대한 대응책으로 핵 개발이라는 ‘확실한 한 방’ 개발에 주력했다. 북한이 이렇게 움직이고 있었으면 응당 노대통령도 더 확고한 대북 억제수단을 마련하는데 진력했어야 하는데, 그는 덜렁 “우리는 핵을 갖지 않겠다”며 ‘비핵화 선언’을 해버렸다. ‘순진하게’도 우리가 먼저 비핵화를 선언하면 북한이 따라올 것이라고 믿은 것인데, 김일성과 김정일은 ‘주권 사항’ 운운하며 핵 개발을 향한 ‘마이 웨이’를 구가했다.

    이런 상황에 노정권이 물러나고 김영삼(YS)정권이 들어섰다. 문민정부를 자처하던 YS정권은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등 북한에 대해 더욱 유화적인 조처를 취했다. 그에 대해 북한은 93년 5월 동해로 노동 미사일을 발사한 데 이어 바로 ‘핵 확산 금지 조약(NPT)’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핵과 미사일로 한국 겁주기’를 계속했다. 급기야 94년 3월 판문점에 나온 북한 대표 박영수는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함으로써, 북한은 그들 나름의 자존을 지키면서 미국과 핵 문제를 타결 짓기 위한 고위급 회담을 정례화하는데 성공했다.

    미국에 의존해온 북한정보

    이 고위급 회담은 북한 외교부의 강석주 부부장과 미 국무부의 갈루치 차관보를 대표로 했다고 해서 ‘강-갈 회담’으로 불렸다. 지루하게 계속된 ‘강-갈 회담’은 94년 10월21일 제네바에서 ‘미국은 KEDO(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를 만들어 북한에 원자력 발전소를 제공하고, 대신 북한은 현 시점부터 핵 개발을 중단한다’는 합의를 도출해냈다(제네바 합의).



    제네바 합의가 나오기까지 한국 사회는 북한을 ‘연착륙시켜야 하는가’ ‘흡수통일시켜야 하는가’로 시끄러웠다. 북한 핵 개발과 미사일 개발을 막을 현실적인 방안도 갖고 있지 못하면서도 뜬금없이 ‘연착륙 대 흡수통일’ 논쟁을 벌인 것이다. 그러다 제네바 합의가 나오자 매파는 물론이고 비둘기파까지도 갑자기 “미국이 북한에 너무 많은 것을 양보했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불만은 한국이 전략 정보를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여론을 형성하는데 일조했다.

    정보는 크게 인간정보-신호정보-영상정보로 나뉜다. 인간정보(HUMINT)는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으로, 적국에서 귀순한 사람이나 적국에서 파견한 간첩, 그리고 우리 쪽에서 적국으로 침투시킨 공작원으로부터 얻는 정보를 말한다. 미국과 비교했을 때 인간정보에서 앞서는 것은 당연히 한국이었다. 그러나 인간정보는 과장되는 경우가 많고 모르는 분야는 끝까지 모른다는 한계가 있다.

    신호정보(SIGINT)는 적국에서 오가는 숱한 무선 신호를 잡아 분석함으로써 얻는 정보다. 때문에 이 정보를 수집하다 보면, 적국에서도 비밀리에 주고받는 고급 정보가 걸려들 수가 있다. 신호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감청기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감청기는 항공기에 실을 수도 있고 지상 고지에 세워 사용할 수도 있다. 백두 정찰기가 바로 항공기에 실은 감청기다. 린다김 사건에서 백두사업과 별건으로 거론된 동부지역 전자전 장비는 지상 고지에 세운 감청기인 것이다.

    영상정보(IMINT)는 인공위성이나 정찰기 또는 무인항공기(UAV) 등에 실은 촬영장비로 적진을 찍어온 정보. 미국은 ‘열쇠 구멍(Key Hole)’이라는 별명을 가진 KH-12와 KH-14 첩보위성으로 가상적국을 촬영하고 있다. 촬영장비를 실은 U-2R기도 사용한다. 무인항공기를 이용한 적진 촬영은 이스라엘에서 주로 연구됐는데, 최근에는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한국은 이렇다 할 영상정보 수집기가 없었는데 백두사업과 한 세트로 추진되는 금강사업이 바로 영상 정보 수집용 정찰기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 세 종류의 정보 중에서 한국은 인간정보를 제외한 신호정보와 영상정보를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해왔다. 인간정보는 주관적인데 반해 신호정보와 영상정보는 객관적이다. 객관적인 정보가 약하다 보니 항상 우리는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북한의 상황을 곡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상황에 미국이 북한과 제네바 합의에 도달하자, 미국에 모든 것을 의존하지 말고 우리도 독자적인 신호정보와 영상정보 수집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국은 ‘냄비 기질’의 사회이기 때문에 한번 한쪽으로 기울면 이것저것 따져보지 않고 그냥 쏠려버리는 특징이 있다. 미국은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반대했지만 한국은 “우리의 주권 사항인데, 무슨 소리냐”며 이를 강력히 밀어붙였다. 그래서 ‘전략 정찰의 자주화’란 기치를 내걸고 백두산까지 북한 전역을 상대로 신호정보를 감청하는 정찰기를 도입하는 백두사업과, 금강산 인근까지의 북한 지역을 상대로 영상정보를 촬영하는 정찰기를 도입하자는 금강사업이 추진되었다.

    “독자적인 대북정보를 수집하자”

    당시만 해도 IMF 관리에 들기 전이라, 우리는 우리가 상당한 재력을 갖고 있다고 ‘착각’했었다. 그래서 언감생심 미국이 운용하는 U-2R기 수준의 정찰기를 가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U-2R기는 북한 영공에 들어가 전략 정찰을 할 수 있는 비행기다. 한국이 U-2R기를 북한 하늘로 침투시키면 자칫 전쟁이 재발할 수도 있으므로, 미국은 ‘세상없어도’ U-2R기는 한국에 팔지 않는다. 그래서 대안으로 거론된 것이 북한 땅에는 들어가지 않고 우리 영공을 비행하며 북한을 정찰할 수 있는 전략 정찰기를 만들자는 안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정찰기는 세계에서 단 한 대도 만들어진 바 없다.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초강대국은 전략 정찰기를 갖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나 영국·독일·일본·중국 같은 강대국들은 전략 정찰기를 ‘개발도-보유도’ 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전선(前線)이 없기 때문이다. 전선을 맞댄 주적이 없으니 가상적국에 대해서는 첩보위성을 통한 전략 정찰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에 대비할 수 있기에 장거리를 살피는 전략 정찰기는 따로 보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중국은 대만과 대립하고 있지만 최소 거리가 130㎞ 이상인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다. 대만의 국력으로는 중국을 침공하기도 어렵지만 대만해협이라는 바다가 있어 대만이 몰래 중국을 기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국은 전략 정찰기를 가질 필요가 없다. 중국과 러시아, 중국과 인도 사이의 긴장도는 그저 국경수비대끼리의 몸싸움이나 소총 사격을 하는 정도라 남북한 대치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은 단 한 번도 세상에 나온 적이 없는 새로운 전략 정찰기 개발에 착수했다. 이 정찰기는 U-2R처럼 미사일이 도달하지 못하는 고고도로 비행하는 것이 아니라 저고도로 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도 이 정찰기는 U-2R기 수준의 기능을 가져야 한다며 철저히 U-2R를 벤치마킹했다. U-2R기에 어떤 장비가 탑재되는지. U-2R의 내부 공간이 어떻게 되는지는 전문가들은 다 알고 있는 사항이다. 따라서 U-2R과 비슷한 크기의 내부 공간을 가진 제트기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온 대답이 서방세계의 부호들이 자가용으로 구입하는 중형 제트기였다.

    이러한 제트기로는 미국 레이시온 항공기 제작사의 ‘호커800XP’, 같은 미국 회사인 세스나사의 ‘시스테이션Ⅲ’, 프랑스 닷소사의 ‘팰콘50EX’가 있다. 여객기를 타면 스튜어디스들이 “조종 장비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소지한 휴대폰을 꺼달라”고 부탁한다. 이처럼 비행 조종장치는 휴대폰을 사용할 때 나오는 미세한 전자파에도 영향을 받을 만큼 예민하다. 반대로 비행기 안에서 무선 전자제품을 사용하면, 빠르게 돌아가는 제트 엔진 등에 영향을 받아 오작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감청기는 휴대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한 전자기기다. 따라서 이를 항공기에 탑재할 때는 감청기와 항공기 모두가 간섭을 받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 일이 여간 어렵지 않다(촬영기는 전자적 요소가 적어 감청기에 비해 전자 간섭이 적다. 백두사업에 비해 금강사업이 조용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저고도로 비행하는 감청용 정찰기는 미국에서도 개발한 적이 없다. 따라서 백두 정찰기를 만든다면 감청기와 조종 장비 사이에 간섭을 막는 새로운 방법이 창안되어야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한국은 이러한 능력이 전혀 없었다. 이러한 능력을 가진 나라는 사실상 미국뿐이다.

    한국은 호커800XP와 시스테이션Ⅲ, 팰콘50EX를 생산하는 각 항공사에게, 감청기를 실었을 때 생기는 간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서 응찰하라고 했다. 이렇게 되자 세 항공사는 자기네 항공기와 결합했을 때 생기는 전자 간섭을 줄일 수 있는 감청기 생산회사를 찾게 됐는데 이것이 매우 복잡해졌다. 복잡하다는 것은 그만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교롭게도 시스테이션Ⅲ를 생산하는 ‘세스나그룹’과 팰콘50EX를 생산하는 ‘닷소그룹’에는 감청장비를 생산하는 회사가 없었다(있더라도 실력이 약했다). 반면 호커800XP를 생산하는 레이시온그룹에는 E-시스템즈라는 감청장비 생산회사가 있었다. 아무래도 같은 그룹사 소속이면 의사 소통이 원활해 간섭을 줄이는 방안도 찾기 쉬울 것으로 한국은 판단했다. 그래서 호커800XP를 생산하는 레이시온 항공기 제작사와 E-시스템즈사로 구성된 ‘레이시온 컨소시엄’은 타 후보에 비해 20% 정도 비싼 가격을 제시하고도 백두사업을 따내게 되었다. 우리로서는 ‘싼게 비지떡’일 수 있으니, 제값 주고 제대로 된 물건을 받자고 판단한 것이다. 더구나 그때는 비록 흑자 수지는 사라졌어도 OECD에는 가입할 무렵이라, 우리는 주머니가 두둑하다고 판단했었다.

    그런데 백두 정찰기 제작을 끝냈을 때 과연 레이시온 컨소시엄이 우리가 요구한 성능을 발휘하는 정찰기를 제작해 주었는지 우리로서는 검증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택한 방안이 ‘구관이 명관’이라고 다시 미국 정부에 의존해보자는 것이었다.

    즉 미국 정부에 일정액의 수고비를 주고, 레이시온 컨소시엄이 생산한 백두 정찰기가 우리가 요구한 대로 만들었는지 검증케 하고 그에 대한 보증을 서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레이시온 컨소시엄에 속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백두 정찰기에 관한 모든 정보가 미국에 넘어가, 전략 정찰의 자주화는 ‘물 건너’가게 되었다.

    여기서 처음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아주 중요한 결함이 발견되었다. 미국의 U-2R기는 27㎞ 상공을 비행하는데도 1960년 소련 미사일을 맞고 격추되었다. 그런데 일반 제트기와 같이 10㎞내외 상공을 비행하는 백두 정찰기가 북한 미사일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까? 백두 정찰기는 대략 휴전선 40∼50㎞ 남쪽에서 휴전선을 따라 비행하며 북한 지역을 정찰하는데, 이 경우 북한이 지대공 미사일 쏘면 이 정찰기는 영락없이 격추된다. 이러한 가능성이 발견되자 이 정찰기를 조종해야 하는 공군 쪽에서 “이 비행기는 안된다”는 의견을 강력히 제기했다.

    셋째는 정찰기 외부 구조 변경 문제였다. 백두 정찰기는 정찰기 외부로 레이더 파를 쏘고 쏜 레이더를 받아들이는 안테나를 뽑아야 한다. 비행기는 매우 예민한 기계여서 기체외부에 새로운 장착물을 붙이면 속도 등이 크게 변하게 된다. 공군은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항공기 측면의 검토가 생략된 채 제작한 백두 정찰기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넷째로는 소프트웨어 상의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소프트웨어는 백두 정찰기에 탑재한 감청기를 작동시키는 프로그램인데, 적절한 시기가 되면 이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그런데 업그레이드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었다. 소프트웨어 제작사인 E-시스템즈에서 1억 달러라고 하면 1억 달러를 줘야하고, 2억 달러라고 하면 2억 달러를 다줘야 백두 정찰기를 놀리는 사태를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피해가려면 한국 기술자들을 소프트웨어 개발에 함께 참여시켜, E-시스템즈로부터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술을 얻어내도록 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을 아예 간과한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다섯째로는 “왜 백두 정찰기를 구입하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었다. 항공기에 탑재하는 감청기는 협소한 공간 등의 문제 때문에 감청 능력에 제한을 받는다. 반면 지상에 설치하는 감청기는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으므로 감청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한미연합 감청부대인 ○부대는 휴전선 곳곳에 감청기를 세워 충분한 감청 능력을 구축해 놓았다.

    “군인들은 아주 순수하다”

    린다김 사건이 터졌을 때 백두사업과 함께 거론된 동부지역 전자전 장비가 바로 지상에 설치한 감청기다. 이미 지상에 설치한 감청기만으로도 충분히 감청할 수 있는데, 감청 능력이 더 뛰어나지도 않은 백두 정찰기가 들어오게 됐으니 중복 투자 아니냐는 시비가 인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인사들은 유사시 국군이 북진을 해서 전선이 북쪽으로 올라갔을 경우, 백두 정찰기는 그 즉시 새로운 전선으로 이동해 전선 너머 적진을 감청할 수 있으니 효율적이지 않으냐고 지적한다. 그러나 지상 감청기 역시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으므로, 굳이 미사일을 맞을 가능성이 큰 항공기로 정찰할 필요는 적어진다.

    백두사업은 이처럼 사업을 추진할 때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문제점이 나타나 끙끙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상당한 사업비가 미국으로 건너가, 중단하는 것도 여의치 않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IMF가 터져 주머니마저 텅텅 비어버리자 백두사업은 더더욱 ‘계륵(鷄肋)’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백두사업을 추진해온 사람들은 “백두사업에 한번 빠지면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몰라, 머리가 하얗게 센다”며 ‘백두론(白頭論)’을 거론한다.

    이에 대해 일부 인사들은 “그러한 시행착오들은 전략 정찰의 자주화를 이루기 위해 어쩔수 없이 지불해야 하는 수업료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한다. 미국도 이러한 시행착오를 수없이 반복해 가며 U-2R기를 발전시켰으니, 우리도 전략 정보의 자주화를 위해서는 이 정도의 판단 착오는 수업료조로 지불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이러한 주장도 나름대로는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 현실론이므로 무조건 배척할 수는 없다.

    여기서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이 바로 이양호 당시 국방장관과 린다김이라는 로비스트가 벌인 작태다. 지금까지의 보도를 종합하면 린다김과 이양호씨는 96년 초 처음 만난 것으로 보인다. 그해 4월 이장관은 백두사업이 이렇게 어긋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사랑하는 린다’에게라는 제목의 연서(戀書)를 만들어 린다김에게 보냈다. 국방 문제로 고민하고 고민해야 할 사람이 장사꾼으로 온 여성에게 빠져 국가에 대한 고민을 제쳐 놓고 연서나 쓰고 있었던 것이다.

    통상 500억원에서 1000억원 사이의 무기 구매 사업은 국방부 장관이 최종 결재하고, 1000억원 이상의 무기 구매 사업은 대통령이 최종 결재한다. 96년 6월21일 김영삼 대통령은 백두사업 기종으로 국방부가 올린 호커800XP와 E-시스템즈 안을 최종 결재했다. 이장관이 린다김을 만난 지 5개월도 못 돼는 아주 짧은 시간에 백두사업은 레이시온 컨소시엄으로 결정된 것이다.

    당시 이장관은 동부지역 전자전 장비로 이스라엘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미 백두사업이라는 선물을 건네 주고도 뭐가 모자랐는지 주한 이스라엘대사관의 무관인 나흐만 쏘버에게 린다김을 에이전트로 쓰라고 이야기한다(장관이 누구를 에이전트로 쓰라고 권하는 것은 이미 기종 결정이 끝났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 사업은 프랑스의 톰슨-CSF사의 것으로 결정되었다). 왜 이장관은 린다김에게 이렇게 쏙 빠졌을까.

    린다김은 5월11일 서울 안세병원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군인들은 아주 순수하다”고 말했다. 순진한 군인이란 이양호씨를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이장관은 너무 순진해서 린다김이 금품으로 로비하지 않아도 넘어갔다는 뜻일까. 아니면 뭔가 로비가 있었다는 뜻일까. 이장관의 순진함, 더 큰 시야에서 본다면 노태우-김영삼으로 이어지는 정권 전체의 순진함은 엄청난 국익을 손상했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은 린다-양호 스캔들의 속편을 보지 못해 안달하고 있다. 한 전략가는 “이양호씨의 망신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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