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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보고|신도시 라이벌 10년

‘잘난 분당’, ‘못난 일산’?

  • 안영배 ojong@donga.com

‘잘난 분당’, ‘못난 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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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산에서도 신도시 독립 논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분당처럼 총선 후보가 공약으로 들고 나올 정도로 첨예하게 이슈가 된 적은 없다. 오히려 일산은 고양 구시가지 사람들과 조화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는 게 시민단체인 고양여성민우회 김인숙 대표의 말이다.

“일산 신도시는 아파트 하나 건너편에 농림지가 있을 정도로 도농 복합도시다. 그리고 도시와 농촌 지역이 조화롭게 살아가보려는 정서가 있다보니 구시가지 사람들과 신시가지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적은 편이다. 또 일산에서는 시민단체의 활동이 활발한 것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고양시의회가 준농림지 내에 러브호텔 신축 등을 허용하는 조례안을 통과시키려 하자, 신시가지 시민단체들과 구시가지쪽 시민단체들이 힘을 모아 저지한 일도 있다. 이런 과정에 ‘이방인’들과 ‘토박이’들의 연대감과 결속감이 생기는 것이다.”

또 김인숙 대표는 “일산도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사이에 문화시설, 생활편의시설에서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건강한 시민정서’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갈등 요소를 봉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은근히 일산 주민들은 수준높은 시민의식을 자랑했다.

어떤 이들은 일산이 개방적이고 연대의식이 강한 분위기라면 분당은 폐쇄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기질을 갖고 있다고 한다. 분당과 일산의 지형적 특성에서 그 원인을 찾아보기도 한다. 분당은 동서남북이 영장 불곡 청계 맹산 등 높고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지형이고, 일산은 서해와 닿는 한강 하구의 평야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일산의 지형적 특색은 아파트 개발에서도 나타난다. 자유로를 타고 일산으로 진입해보면 신도시를 중심으로 덕양구의 화정과 행신, 이웃 파주시 등에서 아파트 개발이 방사선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산 신도시 개발과 연계해 아파트를 짓다 보니 일산 구시가지를 포함해 그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아파트 타운으로 엮어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고양 토박이인 신기철씨(고양시민회 사무국장)는 “이방인과 원주민의 색깔 차가 엷어지는 것도 이런 아파트촌 건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산의 정책 역시 폐쇄적이기보다는 대외 개방형이다. 일산은 국제화운동을 통한 세계 일류 도시를 지향한다. 최근에는 외국민 3만명을 포함해 80만명이 찾은 ‘2000고양세계꽃박람회’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동북아 무역경제에 중추가 될 동양 최대규모의 국제종합전시장도 건립할 예정이다. 또 김포공항과 인천국제공합이 인접해 있어 서울시의 국제기능 일부를 흡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독립군 스타일의 분당

한편 분지지형인 분당은 탄천을 끼고 남북으로 길쭉한 신도시가 덩그라니 건설돼 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판교 IC를 거쳐 분당으로 진입하면 거대한 아파트촌 하나가 고립된 채 세워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게다가 분당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는 남과 북으로 외떨어져 서로 다른 세상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그런지, 분당은 독립지향적이다. 분당구청은 분당을 서울의 테헤란 벤처밸리에 이어 새로운 벤처요람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힌다. 분당주민이 분당에서 일하고 분당에서 사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취지다. 말하자면 분당의 자급자족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테헤란밸리에서 분당으로 이동하는 정보통신(IT) 벤처기업들이 늘고 있다. 올들어 4월 현재까지 분당신도시 업무용 땅 15필지 1만8000㎡가 몽땅 정보통신관련 벤처기업에 팔린 상태다.

이렇게 분당이 새롭게 벤처 타운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벤처 메카인 서울 강남에서 20분 거리인 데다 건물 임대료와 땅값이 강남보다 훨씬 싸고 근무환경까지 쾌적하기 때문이다. 또 한국통신 본사(정자동)와 SK텔레콤연구소(초림동), 포스데이타(서현동) 등 전자 통신 분야의 대기업과 연구소들이 입주해 벤처 비즈니스에 필수인 초고속통신망 등 기본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독립형인 분당과 개방형인 일산의 이질적 성향은 이주민 구성에서도 나타난다. 일산은 서울의 마포구와 은평구 등 주로 강북지역에서 이주해온 사람이 많으며, 분당은 서울 강남구와 강동구 등 주로 강남 지역에서 건너온 사람이 많다.

‘분당소프트21’이 지난해 분당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분당으로 이사오기 직전 주거지역은 서울 강남이 38.4%, 서울 강북 22.5%, 수도권 16.7%, 성남 구시가지 7.5%, 원주민 1.7%, 기타 13.3%로 나타났다.

분당에서 5년 살다가 최근 부모님이 사는 일산으로 이주한 이강문씨(사업·일산구 탄현동 건영아파트)는 이렇게 말한다.

“일산은 주로 서울 강북권에서 살던 사람들이 생활편의시설 등 문화적 혜택을 누리고 싶어서 이사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는 분당에 살기 전에는 서울 은평구에서 살았는데, 강북에 살던 친지들이 일산에 많이 모여 있어 이곳으로 이주해왔다. 친지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생활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고 만족해 한다.

반면에 분당으로 이사온 사람들은 일산 이주민들과는 이주 목적이 좀 다르다는 점을 느꼈다. 주로 강남권에서 이미 문화적 혜택을 누리던 사람들이 이제는 서울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면서도 공기 좋고 붐비지 않는 분당에서 여유로운 주거 환경을 즐기고 싶어하는 듯했다.”

부동산 사정에 밝은 이씨는 실제로 아파트 시세에 있어서도 분당과 일산 주민의 성향 차이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일산은 주엽역 주변 등 생활편의시설이 밀집한 중심지역에 위치한 아파트값이 외곽지역보다 비싼 반면, 분당은 교통편이 별로 좋지 않아도 한적하고 공기가 상큼한 외곽 지역의 아파트가 더 비싸다는 것.

분당은 정보맨, 일산은 기자

분당과 일산에 거주하는 주요 직업군도 확연히 구변된다. 일산구청이 조사한 ‘일산구 관내 주요 인사 현황자료’에 의하면 언론인 100명, 연예인 91명, 법조인 17명, 3급 이상 공무원 17명, 군 장성 출신 42명, 정당인 68명 등이다. 일산구청 관계자는 “이는 주민등록표 상에 기재된 직업을 기초로 한 것으로, 실제 수치는 훨씬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한다.

구청 관계자는 비공식적으로는 언론인 600∼700명, 배우 탤런트 가수 등 연예인 300명, 문인 200명 정도가 일산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며 강북에 위치한 행정기관 소속 공무원의 수도 상당하다고 밝힌다.

이중 특히 일산이 거대한 ‘기자촌’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거의 모든 중앙언론사가 강북과 여의도에 몰려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일산에는 현재 SBS 방송국 스튜디오와 MBC 방송국 사옥 부지가 있다.

일산에 거주하는 언론인 김모기자(41)는 “주민 중에 기자가 하도 많아서 일산에서 생활민원이 터지면 그 즉시 언론에 보도되거나 해결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역뉴스면에서 분당에 비해 일산이 보도되는 빈도도 훨씬 많다고 한다. 기자들이 많이 살다보니 일산이 그 ‘덕’을 보는 셈이라고나 할까.

한편 분당에는 수백명에 달하는 대기업체 임원, 사업가를 비롯해 판·검사 등 법조인(200여 명), 전현직 고위관료(50여 명), 군 장성 출신(200여 명)들이 살고 있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분당경찰서 정보과에 따르면 서울 강남에 근거지를 둔 전문 직업군이 폭넓게 저변을 형성하고 있다. 게다가 신기동 느티마을 등 공무원아파트를 중심으로 국가정보원 직원들도 1000명 가량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로 분당의 시민단체인 ‘21세기 분당포럼’의 경우 현재 회원이 1500여명인데 이중 교수가 670명, 기업체 임원 420명, 언론인 50명,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종 종사자가 200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현재 분당에 살고 있거나 분당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분당포럼 대표 이영해 교수(47·한양대 산업공학과)는 “분당 하면 지금까지 ‘돈깨나 있는 외지인들이 몰려 사는 쇼핑하기 좋은 신도시’쯤으로 알려져 왔는데, 이런 통념을 깨고 국내 최고의 싱크탱크를 만들어보자는 뜻에서 지난해 5월 이 모임을 만들었다”고 밝힌다. 이 단체는 분당 주민들로 이뤄진 훌륭한 인재풀을 활용해 지역 자치단체 및 국가의 당면 현안을 깊이 있게 토론하고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분당에서는 연고별, 출신 학교별 소규모 친목모임이 활발한 편이라고 말한다. 경북고 54회 졸업생인 이교수는 동기생도 25명이나 분당에서 살고 있고, 동문회 주소록을 보면 분당에 사는 경북고 출신들이 600명이나 된다고 밝힌다. 또 이교수의 출신대학인 고려대 졸업생의 경우 3000명 정도가 분당에 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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