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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조작은 있었다”

96년 판문점 북풍사건 ‘청와대 보고서’

  • 조성식 mairso2@donga.com

“북풍조작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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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호 당시 국방부장관은 워치콘 격상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보감시태세인 워치콘은 크게 4단계로 나뉜다. 워치콘의 변경 권한은 한미연합사령부에 있지만 최종 승인권자는 미군 합참의장이다. 워치콘4는 평상시, 곧 별다른 위협징후가 없을 때의 감시태세다. 적의 위협이 증가하면 워치콘3 상태로 들어간다. 한미연합군은 93년 북한이 NPT(핵확산금지협약) 탈퇴선언을 한 이래 워치콘3를 유지해왔다. 워치콘2는 적의 위협 및 공격징후가 현저한 경우에 해당한다. 워치콘2가 발령되면 미군의 조기경보기가 한반도로 날아오고 미군 정보분석팀이 급파된다. 워치콘1은 그야말로 전쟁을 코앞에 둔 상태로 적의 위협이 급격히 증가했을 때 취해지는 조치다. 6·25 이후 워치콘1이 선포된 적은 없다.

국방부에 따르면 96년 4월5일 워치콘이 3에서 2로 바뀌었다. 워치콘이 격상한 것은 81년 북한군의 대규모 공군 훈련 이후 15년 만의 일이다. 90년대 들어 북한 고위인사의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왔을 때나 북한의 NPT 탈퇴 선언,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도, 동해안 잠수함 침투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워치콘 3을 유지했다. 그렇다면 96년 4월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위는 과연 얼마나 위험한 사태였을까. 이 의문에 대해선 뒤에 자세히 짚어보기로 하고 다시 청와대보고서로 돌아가보자.

96년 4월5일 14시20분께 국방부 정책실장실. 북한군의 무력시위 사태와 관련한 국방부 고위관계자들의 회의가 열렸다. 주요 참석자는 이양호 국방부장관, 국방부 정책실장 박용옥 소장(현 국방부차관), 정책기획관 김인종 소장(현 2군사령관), 대변인 윤창로 소장 등 국방부 주요 장성들과 김국헌 정책실협상전략과장, 김남국 합참전략정보과장, 김선홍 합참합동작전과장 등 대령 3명이었다.

박용옥 정책실장이 북한군의 판문점 동향을 보고하자 이양호 장관이 “워치콘 격상 문제는 어떻게 돼가나”라고 물었다. 이에 김남국 대령이 “현 상황에선 아직 거론하지 않고 있다”고 대답하자 이장관은 “연합사부사령관에게 내가 얘기하지”라고 말했다.

다시 박정책실장이 “기자가 질문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느냐”고 묻자 이장관은 “장성 대장(연합사부사령관)이 미측과 협조하면 바로 격상될 테니 한미 합의로 워치콘이 격상됐다고 하는 것이 좋겠지”라고 말했다. 회의가 끝난 직후인 오후 3시쯤 박정책실장은 언론 브리핑을 통해 워치콘을 3에서 2로 격상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4월5일 KBS MBC 밤 9시 뉴스). 하지만 청와대보고서에 따르면 이는 한미 협의과정을 거치기도 전 한국군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으로 워치콘이 실제 격상된 시점은 4월7일 이후라는 것.



무리한 위치콘 격상

보고서에 따르면 미군측 정보실무자는 선거에 악용할 우려가 있다며 한국측의 워치콘 격상 협조요청을 거부했다. 그러나 연합사부사령관을 위시한 한국군 관계자의 끈질긴 요구에 미8군 정보참모(미군 준장)가 설득돼 미측의 수집자산 증가(정찰기 동원 등)도 없는 워치콘 격상이 형식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장관은 4월5∼7일에 연합사부사령관 장성 대장과 합참정보본부장 유정갑 중장에게 미측과 협조해 워치콘을 빨리 격상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군 수뇌부는 위기감 조성에 급급해 언론에 군사기밀을 마구 공개하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벌였다. 기자들을 군사통제지역인 합참 지하벙커(지휘통제실. 군사2급비밀시설)에 출입시켜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각종 군사기밀이 노출되게 만든 것. 이장관은 한 술 더 떠 4월7일엔 지휘통제실에서 전방의 1사단장과 자신이 통화하는 모습을 국방부 기자단에 공개했다(96.4.7 중앙일보 사진). 4월8일엔 국방부 긴급대책회의 장면을 촬영케 한 후 또다시 기자단을 지하벙커로 안내해 긴박한 근무현장을 공개했다.

김동진 당시 합참의장은 정보판단을 부풀려 북한군 위협을 강조하는 한편 정보판단관을 바꾸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4월6일 1400시. 대통령 주재로 전 국무위원이 참가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열렸다. 그 직후인 6일 1600시. 김합참의장은 지휘통제실에서 상황대책회의를 주관했다. 정보·작전본부의 장군들과 각 부서 대령급 주무장교들이 10명 이상씩 모두 20여명이 참석했다.

회의에서 김합참의장은 먼저 북한정보부차장(합참정보본부차장) 박현진 소장에게 판문점 상황을 물었다. 박장군은 “종전에도 있었고, 이번 상황도 별것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김합참의장은 “왜 교범대로 정보판단을 하지 않았느냐. 어느 놈이 정보 판단했느냐”고 화를 냈다. 합참전략정보과장 김남국 대령이 “제가 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김합참의장은 “야 임마. 북한군이 서울로 포를 쏠지, 판문점에서 총격으로 쓸어버릴지, 미사일로 원전을 때릴지 너희들이 어떻게 아느냐. 정보에는 저런 엉터리 장교만 있느냐. 누구 사람 없어?”라고 큰소리로 질책했다. 회의가 끝난 후 정보판단관은 김남국 대령에서 합참전투정보과장 홍호선 대령으로 바뀌었다.

당시 합참정보본부장 유정갑 중장은 이양호 국방장관의 지시에 따라 부하들에게 워치콘 변경작업에 협조할 것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96년 4월6일 0700시. 유정보본부장은 정보상황대책회의에서 주무부서인 징후분석과의 과장 정양 대령(공군)에게 워치콘 격상을 지시했다. 정대령이 “미군 실무자는 위협이 없다고 하며 그럴 상황이 아니다”고 대답하자 유정보본부장은 한번 더 같은 지시를 내렸다.

이에 정양 대령의 호출을 받은 김대영 중령이 달려와 직접 유정보본부장에게 보고했다. 김중령은 징후경보과에서 워치콘 징후를 분석하는 실무장교. 김중령은 “연합사 미군 실무자들은 오히려 지난 3월30일 북한 김광진 대장의 ‘일천배 보복’ 발언과 관련된 비상 징후도 작일 내렸으며, 선거가 다가오니 신중이 요구된다는 견해를 보였다”고 보고했다. 유정보본부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워치콘을 한 단계 격상하는 한국측 의견서를 즉각 써오라”고 지시했다. 이에 김중령은 관련공문을 작성, 이날 오후 늦게 유정보본부장의 결재를 받아 주한미군의 2개 관계기관에 전달해 협조를 구했다.

유정보본부장은 또 0700시 대책회의에서 “미군이 상황을 브리핑해야 한국사람은 믿는다”면서 홍호선 전투정보과장에게 미측 실무자와 협조하도록 지시했다. 그에 따라 이날 오전 미8군 존 라이츠 대령이 국방부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했으며 이는 그날 밤 KBS 뉴스와 다음날인 4월7일 일간지에 보도됐다.

유정보본부장은 또 부하인 항공사진해석단장 김응수 대령에게 “미군과 협조해 판문점에 북한군이 구축한 교통호와 박격포 진지, 항공사진 등을 미군 요원이 브리핑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4월8일 김대령과 연결된 미군 요원이 국방부 기자실에서 판문점 요도, 항공사진 등을 갖고 브리핑했다.

청와대보고서는 당시 청와대와 군 수뇌부가 판문점 상황을 선거에 악용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그에 따르면 당시 합참의 최초 정보판단은 다음과 같았다. ‘북한군의 기도는 판문점 임무포기 선언 직후 판문점의 책임 당사자인 미군을 겨냥, 정전협정을 무력화시키고 미·북간 장성급 회담의 성사 및 핵사찰 문제와 관련해 추가적인 이익획득 등 미·북간의 각종 현안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려는 다목적 카드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북한의 군사위협에 대해서도 ‘예전에도 종종 있었던 시위성 활동이며 군사적 무력도발 가능성은 낮으나 예의주시가 요망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합참의 정보 판단은 김동진 당시 합참의장이 정보판단관을 바꾼 직후(4월6일 1600시) 180도 바뀌게 된다. ‘판문점에 투입된 부대는 도끼만행 사건을 일으킨 호전적인 부대로 군사적 무력도발 가능성이 심각하게 우려되므로 철저한 군사대비태세가 요망된다’(96.4.8 밤 9시 KBS 뉴스).

청와대보고서에 언급된 관련자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보고서엔 북풍을 주도한 인물 5명의 당시 행적이 드러나 있다. 그중 가장 관심을 끄는 인물은 역시 김동신 전육참총장이다. 김남국씨의 일기엔 그와 유종하 외교안보수석의 통화 장면이 청와대보고서보다 훨씬 자세히 그리고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사실이라면 군 지휘계통을 어지럽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청와대보고서도 그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당시 판문점 사태를 부풀리는 데 청와대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누가 거짓말했나

김남국씨가 지난 4월18일 기자회견에서 두 사람의 통화사실을 폭로하자 김동신 전 육참총장은 언론을 통해 “유수석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고 통화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또 “작전본부장은 정보본부에서 판단한 자료를 토대로 작전상의 조처만 하는 자리”라며 “혹시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호남 출신인 나를 그런 일에 개입시키겠느냐”고 반박했다. 김씨는 ‘신동아’의 취재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다만 가족을 통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얘기”라는 말을 전해왔다.

유종하씨도 김씨와 마찬가지로 통화사실을 부인했다. 그는 언론을 통해 “당시 청와대 상황실에 보고된 내용을 요약·정리해 대통령께 보고했지만 합참작전본부장(김동신)에게 전화 지시를 한 적은 없다”고 했다. 또 “청와대가 국방부장관이나 합참의장이 아닌 합참작전본부장에게 지시했다는 것은 관례에도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김남국씨는 명예훼손에 걸릴 엄청난 거짓말을 늘어놓은 셈이다. 아울러 청와대 조사관은 엉터리 조사를 했고 대통령도 허위보고서를 받은 셈이 된다. 과연 그럴까. 유일한 증거는 김남국씨의 일기. 당시 합참전략정보과장이었던 김씨는 정보판단을 ‘정직하게’ 한 죄로 합참 상황실(지휘통제실)에서 대기하며 며칠을 보내는 동안 두 사람의 통화를 세 차례 목격했고 이를 그때그때 일기에 적어놓았다고 한다.

기자는 이 일기의 신빙성을 검증하기 위해 당시 합참 상황실(지휘통제실) 근무자들을 상대로 탐문취재에 나섰다. 그러나 그들은 현역군인이라는 신분 제약 탓인지, 아니면 기억력의 한계 때문인지 명쾌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대부분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거나 “모른다”며 긍정도 부정도 아닌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96년 4월6일 직속상관인 김동신 합참작전본부장의 지시에 따라 한밤중에 전투복을 입은 부하장교들을 뒤에 배치시키고 기자들에게 긴급브리핑을 실시한 당시 합참 작전처장 신상길 준장은 “브리핑을 여러 번 했던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종하 당시 외교안보수석과 김동신 작전본부장과의 통화 여부에 대해선 “모른다”며 비켜갔다. 그는 또 당시 워치콘 상황에 대해 “알아도 말할 처지가 아니다”며 입을 다물었다.

당시 합참상황장교로 지휘통제실에 근무한 것으로 알려진 영관장교 A씨는 “그때 근무했는지 안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워치콘 상황에 대해선 “상황실은 워치콘 결정과 상관없다”며 “기억나는 게 없다”고 말했다. 또 김남국씨에 대해선 “그 양반이 가끔 (상황실로) 내려와 커피를 사주곤 했는데 그래서 내 이름을 기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역시 합참상황장교로 지휘통제실에 근무했던 영관장교 B씨. 당시 한 일간지엔 기자들에게 브리핑하는 신상길 준장의 뒤에 B씨가 다른 영관장교 2명과 함께 차렷 자세로 서 있는 사진이 실려 있다. 세 명 모두 전투복 차림이다. 그러나 B씨 또한 “본부장(김동신)이 누구와 통화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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