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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되는 공동체, 사라지는 한국어

조선족 민족교육의 현장을 가다

  • 김당 dangk@donga.com

해체되는 공동체, 사라지는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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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의 조선족 민족교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삼차구진에는 모두 5개의 조선족 소학교가 있다. 삼차구소학교와 장정·하북·동방홍·오성소학교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소학교들 모두가 학생 부족으로 폐교 위기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삼차구소학교는 지금 학생 수가 323명으로 줄어들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600∼700명에 달하던 학교였다. 다른 학교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학생 수를 보면 장정소학교 17명, 하북 79명, 오성 90명, 동방홍 48명 등이다.

쓰러져가는 민족교육을 보다 못한 삼차구진 주민들은 지난해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주민들은 5개로 흩어진 조선족소학교 학생을 모두 모아 통합 소학교를 만들고, 최신 교사와 학습 기자재를 구비해 경쟁력 있는 소학교로 키우자는 데 합의했다. 4층짜리 교사를 짓는 데 필요한 돈은 인민폐 260만 위안(元·약 3억4000만원) 정도. 시골에서 이런 큰돈을 모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삼차구 주민들은 지난해 10월부터 눈물겨운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월급이 500∼1000위안에 불과한 공무원들도 직위에 따라 자기 월급보다 많은 돈을 냈다. 주민들은 한 사람당 60위안씩을 내기로 하고, 한 톨의 쌀이라도 더 팔아 모금운동에 참여했다. 아이들도 코 묻은 용돈을 털었고, 주변 한족들도 힘을 보탰다. 여기에다 촌(村) 예산과 현(縣)정부의 지원, 성(省) 교육예산의 지원 등을 합쳐 주민들이 모은 돈은 130만 위안. 시골에서 이 정도의 돈을 모은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문제는 올 8월이면 기존 학교를 모두 폐교하고 신축교사로 들어가야 하는데 예산 부족으로 공사 진척이 느리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재관(高在觀) 삼차구진 진장(鎭長)과 김동철(金東哲) 목단강시 교육위 주임은 지난해 11월 북경(北京)의 국무원 민족사무위원회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조선족에게만 특혜를 줄 수는 없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삼차구 주민들은 올 봄 다시 한 번 허리띠를 졸라매고, 2차 모금운동에 들어갔다.

같은 지역의 한족학교는 학생 수가 그대로 유지되는 데 비해, 유독 조선족 소학교만이 학생수가 줄어드는 원인은 무엇일까.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면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농촌에 거주하는 조선족들이 도시나 해외로 떠나기 때문이고, 또 다른 원인은 조선족들의 출생률이 낮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로는 개혁개방 이후 팽배해진 중국 사회의 배금주의 풍토와 조선족 사회의 상대적인 소득 격차를 꼽을 수 있다.

실태 파악을 위해 휘남현 및 매하구시 지방정부와 민족사무위원회 관계자들의 협조로 관내 몇몇 학교를 둘러보고 나서 소학교와 초중 및 고중 교장 7명을 조양진 휘남빈관(輝南賓館) 회의실에 초청해 조선족 민족교육의 실태와 대책에 대해 들어보았다. 교육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일부 옮기면 다음과 같다(중국 정부 소수민족 정책에 비판적인 일부 교장의 발언 등을 고려해 이들을 익명으로 처리했다).



이농현상과 낮은 출생률이 근본 원인

“한족과 조선족 사이의 문화수준 차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교육제도의 측면에서 그 원인을 보면, 우선 조선족 학생은 한족보다 유치원부터 고중 과정까지 1개 과목(조선어문)을 더 수업해야 한다. 이를 시간으로 따지면 한족보다 1년을 더 배우는 셈이다. 교원 자질 문제도 있다. 자질이 우수한 대학 졸업자(조선족)들이 수입이 높은 일본과 한국 등 해외나 본토의 임해(臨海) 지역으로 진출해 교원 수준이 저하돼 있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민족정책에도 문제가 있다. 한족에 비해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다. 그래서 조선족들 가운데 아이를 한족학교에 보내는 가정이 늘고 있다.”(이교장·매하구시)

“주은래(朱恩來) 총리 시절에 중국 공산당에서 조선족 어문은 북조선(북한) 어문을 따르라는 지시를 했다. 그래서 조선족 어문은 평양말과 비슷하고 서울말과 차이가 크다. 조선족 소학·중학교의 조선어문 교원 합격자는 평양어 중심의 어문을 수학했고 영어를 모르기 때문에 외래어가 많은 서울말을 잘 모른다. 거기다 교원 대우가 전반적으로 저하되어 있기 때문에 조선어 교원을 확보하기가 곤란하다. 그래서 조선어를 배운 한족 교원들이 조선족학교에 들어와 있다. 특히 영어나 컴퓨터 과목의 조선족 교원이 부족하다.”(문교장·통화시)

“예전에는 조선족 교육수준이 한족보다 우월했다. 지난 60년대 주은래 총리는 ‘56개 민족 가운데 조선족 문화수준이 최고’라고 말했다. 지금은 뒤떨어졌다. 그 원인은 우선 교원 대우 저하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조선어문 교원은 찾기가 어렵다. 연변대 조선족 졸업생들은 교원보다는 연해(沿海) 지구 한국기업을 선호한다. 영어 교원도 없다. 개혁개방 이후 영어가 중요해졌지만 조선족의 경우 중국어와 조선어 2개를 배워야 해 한족들에 비해 영어 배우기가 어렵다. 우리 학교 영어 교원 8명 가운데 1명만 조선족이고 나머지는 한족 교원이다.”(김교장·유화현)

“우리 학교 대학 진학률은 75%가 넘는다. 진학률이 높아야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조선족학교에 보내지, 낮으면 한족학교로 보낼 것이다. 예전에 도 제2중이 진학률이 낮자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한족학교인 5중으로 옮겼다. 그러다 보니 한족학교 우수생 중에는 조선족이 많다. 그러나 한족학교에서는 조선어문 과목을 안 가르치기 때문에 이 아이들은 조선어를 잘 모른다. 우리 학교도 앞으로 수년내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이번 학기 3월 초 고중 3학년 학생 가운데 21명이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중 절반은 학업 저하로 대학 진학이 불가능해진 탓이고 나머지 절반은 가계가 곤란해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안 되기 때문에 그만둔 것이다.”(방교장·매하구시)

“대학 졸업자들이 외국기업을 선호하는 현상은 중국에서도 논란거리다. 조선족도 돈벌이만 찾지 말고 연구·문화기관에 많이 진출해야 한다. 또 우리 조선족 학생들은 대학 진학률은 높지만 실력이나 성취도는 낮게 평가받고 있다. 실제 능력이 떨어지면 졸업해도 출로가 없다. 우리 민족도 대학 진학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직업·전문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림교장·통화시)

“재외동포의 지위는 모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과 조선(북한)이 경제 면에서 발전하면 중국 내 조선족의 지위도 높아진다. 한국이 발전했기에 조선족도 경제와 기타 방면에서 지위가 높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적인 방안 중 하나는 한국의 사립학교들과 자매결연을 하는 것이다. 또 민족 발전을 위해서는 교육·문화의 발전이 중요하다. 그중에서 민족언어가 중심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조선어문 출판물 수요가 적고 교재 비용이 높아 민족 출판물의 제한이 크다. 따라서 한국에서 ‘조선족학교 도서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된다.” (최교장·휘남현)

교육 관계자들도 인정하고 있지만 조선족 동포 가운데 젊은 사람들이 대도시로 나가는 것은 이미 막을 수 없는 추세가 되어버렸다. 현재의 중국 조선족 공동체는 지난 70년대 산업화와 함께 불어닥친 급격한 이농현상으로 아이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던 한국의 농촌을 시공간(時空間) 을 거슬러 그대로 옮겨다 놓은 느낌이다. 북경과 상해(上海) 천진(天津) 대련(大連) 청도(靑島) 등 대도시에는 고향을 떠나온 조선족 남녀가 넘친다. 그중에서 대학을 나오고 능력 있는 인재들은 한국의 대기업이나 무역회사 등에서 일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대부분 가라오케나 술집·식당·사우나·안마소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황유복 교수(黃有福·북경 중앙민족대학 민족학과·256쪽 관련 기사 참조)는 오래 전부터 조선족 이민사와 민족교육 문제를 연구해온 대표적 권위자다. 황교수에 따르면 현재의 조선족 민족교육의 위기는 80년대 개혁개방 이후 특히 92년 한·중 수교 이후 경험한 미증유의 사회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황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문화혁명 이전까지 대학교육과 직업 분배(정부의 직장 배정)를 통해 대도시로 진출한 조선족 인구는 35%나 된다. 황교수의 얘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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