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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렁한 개그, 이상한 유머가 유행하는 이유

신세대 유머코드 지배자 3인이 말하는 요즘 개그

  • 하태원 scooop@donga.com

썰렁한 개그, 이상한 유머가 유행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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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개그와 현재의 개그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물론 많은 변화가 있지만 근본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과거에 다 사용하던 개그지만 현재 상황에 적합한 유형으로 바꿔 놓은 것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최근 네티즌 공모 유머에서 1위 한 내용은 ‘어떤 사람이 화살을 쏴, 사람 머리 위의 사과를 맞히고는 아이앰 윌리암 텔 이라고 했다. 다음 사람도 역시 화살을 쏜 뒤 아이앰 로빈후드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 번째 사람은 사과가 아닌 사람을 맞혔다. 그 사람 왈, 아이앰 쏘리’란 것이었습니다. 이는 과거에 유행하던 학교와 핵교의 차이를 묻는 것과 근본은 다르지 않습니다. 학교는 다니는 것이고 핵교는 댕기는 것이라던 것 말입니다.”

삼행시만 해도 옛날부터 있던 것을 다른 형식으로 유형화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백재현씨는 어린 시절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개그를 소개해줬다. 어느 레스토랑에서 과일 안주를 받아든 손님이 벌컥 화를 낸다. 내가 언제 과일을 시켰어요. 마른 안주를 시켰지. 그러자 레스토랑 주인은 드라이어를 가지고 와 열심히 과일을 말리며 이렇게 말한다. 왜 이렇게 안 마르지?

백씨는 “이런 옛날 코미디를 원용한 것이 최근 ‘사바나의 아침’에서 선뵌 개그예요. 사바나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던 원시인은 빨간 신호가 바뀌지 않아 애를 태웁니다. 이를 보다못한 동료 원시인이 해결책을 제시하지요. ‘도끼를 가지고 와 위협해 봐. 파랗게 질릴 거야.’ 어때요, 우습지 않으세요.”

‘순풍산부인과’는 ‘개그콘서트’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이홍렬쇼’ 같은 토크쇼는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앞에 언급한 프로그램보다 훨씬 강하고 질기게 시청자들의 웃음샘을 자극하는 프로그램인지 모른다. 98년 3월 첫 방송을 시작한 SBS의 시트콤 순풍산부인과는 그야말로 순풍에 돛단 듯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급기야 ‘순풍’은 지난 1월 실시한 전국 시청률 조사에서 1주일 내내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KBS 뉴스9’와 ‘MBC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을 ‘넉넉한’ 차이로 앞서는 등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평균 30%대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순풍’은 이미 4대 통신에 순풍동호회를 탄생시키는 등 500회를 지난 시점에도 좀처럼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지속되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미국 동포사회에서도 순풍을 모르면 대화가 안 될 정도다.

하지만 김병욱(39) PD는 그야말로 날마다 지독한 산고(産苦)를 겪으며 나오는 프로그램이 바로 순풍산부인과라고 주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순풍제작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후 1시부터 새벽별 볼 때까지 내용을 정하고 대사를 가다듬는 회의를 계속하고 주말에는 오전11시부터 밤새 촬영하는 강행군을 2년 넘게 해오고 있는 것. 결국 김병욱 PD를 비롯한 제작진이 교대로 쓰러져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5월8일 낮 12시. 그날 새벽 4시까지 촬영했다는 김병욱 PD가 졸린 눈을 비비며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순풍도 웃음을 전한다는 면에서는 개그 프로그램이나 토크쇼와 유사하지 않습니까?

“순풍산부인과가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프로그램인 것은 맞지만 일반적인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토크쇼와는 다른 형태의 웃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개그콘서트나 토크쇼는 출연자의 순발력이나 재치에 의존해 웃음을 주는 ‘스탠딩 개그’ 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지만 시트콤은 잘 짜인 각본이 웃음을 준다는 면에서 차이가 큽니다. 남을 웃기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순풍에서는 개개 출연자의 즉흥연기 같은 것을 인정하지 않나요?

“철저히 배제하고 있습니다. 순간순간 웃길 수도 있지만 절정의 순간을 위해 그것을 참는 것이 시트콤입니다. 그래서 ‘애드립’을 허용하지 않고 개그맨은 가급적 시트콤에 활용하지 않습니다. 일례로 스탠딩 개그의 달인인 이홍렬씨가 5월 초 순풍산부인과에 출연했지만 드라마에는 잘 적응하지 못하더군요. 대사에 복선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개인의 순발력이나 애드립이 필요하지 않으니 답답해하더라고요.”

더 벌어진 세대간 웃음공감대

96년부터 MBC에서 PD로 활동하다가 SBS로 둥지를 옮긴 김 PD는 이후 ‘좋은 친구들’ ‘LA아리랑’ 등 시트콤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다. 시트콤 전문PD를 표방한 김 PD는 순풍 제작 초기 출연진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중견연기자들이 지금까지 닦아온 자신의 연기스타일을 고집하는 데 비해 김PD는 시트콤에 맞는 연기를 주문하면서 연기자들의 몸짓까지 하나하나 교정하려고 했기 때문. 김PD는 당시만 해도 시트콤이란 장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시기였기 때문에 그와 같은 마찰은 불가피했다고 말한다.

―오랜 세월 사람들을 웃겨왔는데 웃기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우리나라는 웃음에 대한 냉소주의가 상당히 강합니다. 흔히 ‘썰렁하다’고 말하듯 누가 웃긴다는 것에 대해서도 반감을 가진 경우가 많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일상사를 이야기해도 쉽게 웃어주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요. ‘너 한번 웃겨봐’ 한 뒤 팔짱을 끼고 바라보는 식이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코미디 장르가 널리 사랑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의 코미디를 보면 점점 처절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서세원쇼의 토크박스는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 위한 몸부림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아주 극단적이고 독한 경험이 아니면 시청자들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자주 발견됩니다. 오죽하면 출연자들이 이제는 어지간한 얘기를 해서는 주목받지 못할 것이라며 출연을 꺼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겠 습니까? 가벼운 생활 주변의 유머를 듣고 즐기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과장된 몸짓에 광대짓을 하는 유머를 보면 당시에는 깔깔대고 웃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왠지 씁쓸한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이는 건전한 웃음이 아니지요.”

과장연기에 자극받은 시청자는 더 큰 자극과 과장을 원하게 되고 그걸 따르다보면 유머는 어느덧 서글퍼진다는 것이 김 PD의 확고한 지론. 그는 바보짓과 과장연기는 시트콤을 망치는 지름길이라는 확신으로 무장한 채 ‘순풍’의 촬영에 들어가면 철저한 계산과 치밀한 복선을 깔아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제공한다.

―시청자들은 웃음을 수동적으로 공급받는 존재인가요?

“과거에는 TV를 통해 공급되는 유머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PC 통신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통신에 자주 들어가 요즘 애들이 무엇을 보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하는지 유심히 살핍니다. 요즘 유머의 경향은 어떤 유머가 어떤 경로로 보급 되는지 모른다는 것이지요. 요즘 뜬다는 3행시, 5행시도 누가 어떻게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부지불식간에 청소년들을 사로잡고 있지 않습니까?”

―최근 유머의 경향은 어떻습니까?

“원래 ‘코미디 패션’은 유행주기가 짧았지만 요즘은 더 심하다는 느낌입니다. 보름에 한 번꼴로 주기가 바뀌는 바람에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또한 웃음의 공감대도 한결 줄어드는 느낌입니다. 예를 들어 80년대 유행했던 ‘참새시리즈’는 아버지와 아들이 다같이 즐기던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게 무슨 유머냐’며 화를 내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결국 요즈음 유머는 집단 한정적이고 세대간 공감의 폭도 좁은 것 같습니다.”

―시리즈물이 유행하다 보니 그전 유머를 모르면 공감할 수 없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만득이 시리즈’가 대표적인 경우지요. 만득이 시리즈가 처음 생길 때부터 웃음을 나눈 사람들에게는 계속되는 시리즈가 배꼽 잡을 정도로 재미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도대체 만득이가 누군데?’라는 질문부터 해야 하니 재미가 없지요. 일종의 부분적인 집단의식이지요.”

―순풍산부인과도 처음부터 본 사람은 재미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남들이 웃을 때 ‘저 사람이 왜 저렇게 웃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측면이 있지 않습니까?

“시트콤은 매일 방영되는 한 편이 자기 완결성을 갖는 형태입니다. 하지만 연속되는 드라마이다 보니 극중 등장인물들의 말투나 행동·성격 등은 계속되는 것이지요. 시청자들이 즐거워하는 것은 아마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드럽게 웃긴다

김병욱 PD는 순풍산부인과를 ‘캐릭터’시트콤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만든 시트콤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소동위주의 스토리 전개 방식인 데 비해 순풍은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심리가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동력이라는 의미에서다. 그는 현실에 뿌리박지 못한 캐릭터는 생명력이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이웃집 아저씨 같고 이웃집 아줌마나 오빠 같은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다혈질에 조금은 권위적인 원장 오지명, 비굴하고 쪼잔한 인간의 전형 박영규, 귀여운 무식함의 결정체 선우용녀, 힘세고 잔머리 잘 굴리는 미달이 등 누구하나 빠지지 않는 막강 캐릭터다. 하지만 이런 캐릭터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방송을 거듭하면서 시청자들의 기호에 따라 성격을 계속 변화시켜 왔다. 선우용녀가 대표적인 경우로 처음에는 깔끔하고 대가 센 여자로 나왔지만 말투나 캐릭터가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판단, 푼수기가 넘치면서 귀여운 바보의 이미지로 재포장했다는 것.

―순풍산부인과가 추구하는 웃음은 어떤 것입니까?

“순풍의 모토는 사회상이 반영된 자연스러운 유머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유행하는 유머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 옆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소재로 삼기 때문이지요. 코미디는 현실을 과장하는 경우가 많지만 순풍은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를 웃음의 소재로 삼습니다.”

김병욱 PD는 순풍이 추구하는 웃음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 두 가지를 들었다.

사례1) 박영규는 우연히 고급 승용차 안에서 산통(産痛)을 호소하는 만삭의 여인을 순풍산부인과로 데려간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여인은 국내 굴지의 과자업체 회장의 며느리. 회장은 영규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어떤 일을 하느냐고 물었고 당시 ‘백수’였던 영규는 사실대로 밝힌다. 그러자 그 회장은 ‘당신같이 착한 시민이 직업이 없어서 되겠느냐’며 부하직원을 통해 일자리를 알아보겠다는 말을 한다. 영규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전화통에만 붙어 전화를 기다리지만 사흘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 참다못한 영규는 회사로 전화를 시도하지만 회장님 목소리를 듣기는 하늘에 별따기였다. 결국 천신만고 끝에 통화를 했고 그 회장은 다시 ‘알아보겠다’는 말을 했지만 미온적인 반응. 김병욱 PD는 이번에야 백수를 면하나 보다 하며 기대했던 영규의 막판 절규를 통해 메시지를 전한다. 순풍식 처절한 복수극이다.

“나 일반시민인데 그 집 과자 맛이 왜 그래. 다시는 그 과자 안 사먹을 거야.”

사례2) 표인봉의 반항. 여성적이고 소극적인 표간호사로 등장하는 인봉은 오지명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반항을 결심한다. 인봉이 선택한 저항은 과감하기(?) 이를 데 없다. 지명이 설교할 때 지명이 보지 못하는 테이블 아래에서 다리를 약간 꼬고 나서 다른 간호사들에게 마치 엄청난 저항을 한 것처럼 허풍을 떤다. 술자리에서 지명이 술을 단숨에 들이키라고 하면 거의 원샷을 한 뒤 술을 조금 남기는 것이 인봉의 저항방식이다. 술잔을 두 손으로 받으라는 호통을 들으면 두 손을 내민 뒤 한 손을 모호하게 뒤로 걸치고는 나는 한 손으로 받았다고 큰 소리친다.

김병욱 PD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상식적으로 풀어가면서 소시민들이 가진 웃음샘을 과격하지 않은 방식으로 자극하는 것이 순풍의 웃음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전국 백일장에서 두 번이나 장원을 했고 학창시절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익명의 편지를 보낼 때마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할 정도로 글재주가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김PD. 그는 “울음과 웃음은 종이 한 장 차”라며 “내게는 너무도 슬픈 사연이 다른 사람에게는 즐겁고 웃음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상식과 관습의 벽을 허물어라

그러면서 들려준 것이 미달이의 짝사랑 이야기. 미달이는 혜교 남자친구에게 관심을 갖는다. 미달이는 혜교 남자친구의 관심을 끌기 위해 혜교방에 들어갔는데 그 순간 혜교가 방귀를 뀐 것. 혜교는 창피한 나머지 미달이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운다.

미달이는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혜교의 남자친구는 들은 척 만 척. 밤새 눈물을 흘린 미달이는 며칠이 지난 뒤 우연히 길에서 혜교 남자친구와 마주친다. 미달이는 그 당시 방귀사건에 대해 설명하면서 억울하다고 호소하지만 혜교의 남자친구는 건성이다. 짝사랑하는 남자가 사라진 뒤 미달이는 땅바닥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김 PD는 이 내용도 누구나 한번은 겪었을 만한 일상사를 재미있게 극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미달이로서는 한없이 억울하고 슬픈 이야기지만 TV를 보는 시청자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을 수 있는 소재라는 것.

김 PD는 “일반인의 심리 기저에 있는, 일종의 잠들어 있는 웃음을 일깨우는 작업을 하는 것이 순풍산부인과를 시작하면서 세운 목표”라며 “이런 웃음의 코드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속적인 웃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세대 유머코드를 알아보기 위해 만난 3명의 ‘유머전문가’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386세대였다. 이들은 유머에 대해서는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수 답게 최근 유머의 경향에 대해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작가 김일중씨는 ‘버전업 할 수 있는 동조의 미학’이라고 풀이했고 개그맨 백재현씨는 ‘어떤 상황을 절묘하게 유형화시키는 것’이 요즘 개그라는 것. 하지만 순풍의 김병욱 PD는 ‘옆집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친근한 캐릭터들이 만들어 내는 잔잔한 웃음’이 요즘 사랑받고 있는 유머이며 앞으로도 사랑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웃음박사들도 앞으로의 유머경향에 대한 질문에는 “요즘아이들의 웃음코드는 그 변화가 너무 빠르고 무쌍하다”며 “확실한 것은 그들을 웃기기 위해서는 기존 관습과 상식의 벽을 두들겨 깨야 한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신동아 200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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