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디지털 세상’이다. 18세기 산업혁명에 비견되는 정보통신 혁명의 격변기.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는 생활 곳곳에도 영향을 끼쳐 이제 컴퓨터, 인터넷 없이는 돈 벌기도, 사람 노릇하며 살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 돼버렸다.
20~30대에게 디지털 혁명은 희망이자 축복이다. 연공서열, 전관예우, 관리와 로비. ‘젊은 영웅’의 탄생을 허락지 않던 아날로그식 폐쇄장벽들이 빠른 속도로 무너져가고 있다. 그러나 중장년층은 어떤가. 사회 지도층으로, 경제활동의 중심 세력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할 나이에 이들은 일찍이 경험한 바 없는 혼란과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중장년 대상 인터넷 비즈니스 컨설팅 업체 ‘이-비전’의 장혜정 사장은 “40대 이후 사람들을 흔히 인터넷 블랙홀 세대라 부른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디지털 사회 편입이 불가능한 것도 아닌데, 막연한 두려움과 배타성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디지털 경제의 핵심은 ‘변화를 긍정하는 것’이다. 세상이 변했음을, 내 직장과 가정이 변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혁신은 시작된다. 사실 정보통신 혁명의 핵으로 일컬어지는 인터넷은 지금까지 등장한 그 어떤 컴퓨팅 프로그램보다 쉽고 간편한 것이 특징이다. 컴퓨터를 켤 수만 있으면 마우스 클릭 한두 번, 타자 몇 자 치는 것으로 순식간에 ‘정보의 바다’로 다이빙해 들어갈 수 있다.
문제는 언제, 어떻게 시작하느냐는 것. 물론 이에 대한 답도 이미 나와 있다. 지금 바로, 무작정 뛰어들어야 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성공적인 변신을 이뤄낸 이들은 하나같이 ‘두려움 없이, 절실하게’ PC 앞으로 의자를 당겨 앉아 좋아하는 것, 꼭 필요한 분야부터 깊이 파고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쟁이 기질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두려움없이, 절실하게
끈기나 적극성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손’만 디지털화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다 바꾸겠다’는 강렬한 의지다. 변화 속에서 살아남고 좀더 풍요로운 인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이 길밖에 없다는 혜안과 추진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결심을 실천한 이들에게 더 달고 큰 과실이 기다리고 있다. 오랜 세월 갈고 닦아온 내공과 세상 경험에 디지털의 속도감이 성공적으로 결합하면 젊은이들로서는 쉬 다다를 수 없는 시너지가 창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너무 거창한 계획을 세우면 도리어 방해가 된다. 몇 가지 ‘원칙’에만 충실하면 일주일 만에도 인터넷 세상의 능숙한 항해자가 될 수 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PC를 구입하는 것이다. 식구 몫의 다른 PC가 있다 할지라도 되도록 자기만의 기기를 마련하는 것이 좋다. 맘에 드는 학습서가 있으면 한 두 권 구입할 수 있겠지만 너무 책에만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다. 난해한 책에 머리를 박고 있다 보면 컴퓨터가 더욱 멀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특별한 목적이 없는 한 각 프로그램의 작동 원리며 활용법을 통째로 익히려 안달할 필요는 없다. 요즘 웬만한 프로그램은 화면에 떠오르는 설명만으로도 대강의 조작이 가능하니 컴퓨터 앞에 앉아 이리저리 뜯어보는 시간을 오래 갖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컴퓨터를 경외시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컴퓨터는 소모품이며 쉽게 고장나는 물건도 아니니 비싸다고 애지중지하기보다는 호기심을 갖고 구석구석 활용해보라는 뜻이다.
가정에서건 직장에서건, 누군가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면 주변의 ‘컴도사’들은 내심 긴장을 한다. 질문 공세를 퍼부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 묻는 사람도 같은 질문을 두세 번 반복하기란 민망스러운 노릇. 또 “이렇게 쉬운 것도 모르냐”는 핀잔을 들을까 봐 입조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컴퓨터는 학습 대상이 아니다. ‘기계’일 뿐이다. 책을 뒤지는 것보다는 직접 묻는 것이 백번 빠른 길. 부끄러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묻는다. 정 미안하면 다른 식으로 보상을 하면 된다.
일단 컴퓨터를 켤 줄 알게 되면 무조건 인터넷부터 들어가 본다. 이런 세상이 있었나 싶게 많은 정보, 새로운 화면들이 눈과 머리를 즐겁게 한다. 여기에 타자 실력과 마우스 다루는 법까지 알고 있으면 금상첨화.
타자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틀리지만 하루 1~2시간씩 일주일만 연습하면 채팅하고 전자우편 주고받는 것쯤은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다.
컴퓨터를 늘 켜놓는 것도 중요한 일. 전기세 많이 나올까 겁내기보다는 ‘비싼 컴퓨터를 샀으니 본전을 뽑아야겠다’는 마음을 갖는다. 켜고 끄는 것이 귀찮아 컴퓨터를 멀리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정진홍 교수는 “인터넷엔 유치한 것들이 많다. 별것 아니다 싶어 바로 손을 놓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별것 아니다 싶은 것’을 가지고 열심히 놀다 보면 또 다른 세계가 보인다”고 말한다. 이성의 눈보다는 감성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라고 조언한다. 디지털은 느낌이요 감성이기 때문이다. 채팅이나 동호회를 통해 사이버 친구를 사귀고, 자녀들과 컴퓨터 앞에 앉는 시간을 자주 가지는 것도 인터넷에 한 발 가까이 다가서는 지름길이다.
[ 인생 시련기에 눈뜬 인터넷 신천지 ] 위성복, 조흥은행장
지 지난해 7월, 국내 최초로 독자시스템을 갖추고 인터넷 뱅킹 서비스를 시작한 조흥은행. 조흥은행의 발빠른 변신은 사이버 금융에 대한 위성복(62) 행장의 확고한 의지와 비전 제시에 힘입은 바 크다.
위 행장은 금융권에서도 디지털 마인드가 가장 앞서가는 CEO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을지로 조흥은행 본점의 위행장 집무실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두 대의 최신형 PC. 한 대는 전자결제·전자우편 등 회사 업무 및 개인 용도로 쓰이는 것, 또 한 대는 시시각각 변하는 국제금융 동향을 실시간 중계하는 모니터 구실을 한다. 그중 개인용 PC에는 청소년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튀는’ 디자인의 헤드폰이 연결돼 있다. 다이얼 패드(인터넷 무료 전화)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원래 새 물건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요. 휴대전화도, 전자수첩도 또래 중에선 상당히 일찍 사용한 축에 속하지요. 94년엔 전자수첩에 야담류 유머를 한 50개쯤 입력해 놓고 수시로 꺼내 활용(?)하곤 했어요. 일정 관리며 약속 체크도 그걸로 했습니다.”
96년 상무이사 시절 출장차 비행기를 탔다 외국인이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놓고 열심히 작업하는 모습을 보았다. ‘야, 좋다! 나도 저렇게 한번 해봐야지.’ 다음 출장길, 그의 손에는 어김없이 노트북 컴퓨터가 들려 있었다.
97년 런던 출장 때에는 영국의 전자화폐회사 몬덱스가 런던 근교 스윈돈에서 몬덱스카드(전자화폐)를 시험 운행중이란 소식을 접했다.
“인터넷 사용이 보편화되면 전자화폐 운영 노하우가 대단한 부가가치를 갖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행도 확 바뀌어야겠구나, 금융 이야말로 인터넷 열풍의 최전선·정중앙에 위치한 산업이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98년 8월 행장으로 취임한 그는 전자 결제를 시작하는 등 곧바로 은행 체질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같은해 11월, 부실 책임론에 밀려 돌연 상임고문으로 물러앉으면서 3개월간의 짧은 행장 생활을 마감했다. 지난해 4월 행장으로 재선임되기까지의 5개월은 적지 않게 고통스런 나날이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생활이 느슨해졌지요. 소일거리를 찾다 인터넷에 눈을 돌렸습니다. 그 동안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바쁜 일과를 핑계로 차일피일 미뤄온 일이었어요. 하루 2~3시간씩 웹 서핑을 즐기고 각종 PC 활용 기능도 익혔습니다.”
“인터넷 모르면 승진도 없다”
우선 재미있다 싶은 것부터 손대기 시작했다. 유머나 ‘여자 옷 벗기는’ 사이트도 들어가 봤다. 금융 관련 정보들을 샅샅이 훑으며 ‘무(無)경계, 무한 증식의 신천지’ 인터넷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때의 경험은 행장 복귀 후 그가 e-금융부를 설치하는 등 조흥은행에 인터넷뱅킹 드라이브 를 거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요즘 위행장의 생활은 인터넷으로 시작해 인터넷으로 끝난다. 하루 20여 통의 전자우편을 주고받는데, 그중에는 직원들이 보낸 것들도 4~5통씩 끼어 있다. 물론 일일이 답장을 해준다. 계좌 조회나 이체 서비스도 인터넷 뱅킹을 이용한다. 조흥은행은 홈페이지 방문 고객 중 특정회차 고객에게 상품권을 주는 이벤트를 벌이고 있는데, 우연히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자신이 당첨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위행장은 “조흥은행에 나보다 혁신적인 직원은 없다”고 호언장담한다.
“고색창연한 본점 건물 벽에 ‘www.ch b.co.kr’이란 도메인 주소를 커다랗게 써 붙인 것도 제 아이디어였습니다. 컴퓨터를 사는 직원이 있으면 그 값의 반은 회사에서 지불합니다. 디지털 마인드가 없는 사람은 결코 지점장이 될 수 없다는 말도 했어요. 제 자신도 책이나 인터넷,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배우며 앞서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위행장은 머지 않은 시점에 점포 없이 사이버상에서 운영되는 가상은행이 세계 금융의 중심이 되리라 내다봤다. 그래서 조흥은행의 새 로고 ‘CHB’에 담겨 있는 속뜻도 ‘사이버·휴먼 뱅크(Cyber·H uman Bank)’다. 때가 되면 e-금융부를 별도의 가상은행으로 독립시킨다는 복안이다.
“한 기업의 경영진이 디지털 마인드를 갖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조직과 각 구성원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직원들에게만 컴퓨터 도사가 되라, 인터넷 사업으로 돈을 벌어오라고 다그치는 것은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실효성도 없어요. 이왕 할 거라면 단순히 PC 다루는 법만 배우기보다 생각 자체를 디지털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기능은 ‘대리’가 가능하지만 비전은 누구도 대신 제시해주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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