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호

“좋은 골퍼는 캐디하기 나름”

3년차 캐디가 본 베스트골퍼, 워스트골퍼

  • 윤미란 일동레이크GC 캐디

    입력2006-10-13 10: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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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디는 골프를 치는 사람들을 위해 잔심부름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골퍼들이 최적의 조건에서 기분 좋은 샷을 날리도록 분위기를 이끌어주는 ‘동반자’다. 아니 어쩌면 동반자에 머무르기보다는 정신 집중을 돕거나 기술적인 조언까지 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PC통신 하이텔에 캐디일기를 연재하는 한 캐디가 들려주는 최고의 골퍼와 최악의 골퍼. 그리고 프로캐디를 지향하는 캐디들의 삶을 들여다 보았다. 》
    나는 윤미란. 나이는 27. 경력 3년차 캐디다. 내가 캐디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아무래도 경제적인 요인 때문이다.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이벤트회사에서 ‘공연 기획자’로 활동했지만 몸이 힘든 것에 비해 수입이 너무 적었다. 이곳저곳 일자리를 찾아보다가 발견한 것이 캐디. 캐디에 대해서 아는 바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다지 호감을 갖고 있는 직업은 아니었다. 거리에 무가로 배포되는 정보지를 보면 직업에 대한 소개는 거의 없고 ‘고소득 보장, 1주일 120만원+α’라는 선전문구만 있었던 기억 때문이기도 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캐디가 고소득 직종이라는 것과 연관해 어떤 떳떳하지 못한 일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근무를 하면서 이 직업이 밖에서 생각하듯 무작정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과 대부분의 캐디들이 저마다의 꿈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즈음은 왜 이 일이 고소득 직종이라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직원 대우는 받지도 못하면서 모든 일은 똑같이 해야 하고 의료보험, 국민연금 하나 없이 몸 하나로 살아가는 직업이 바로 이 캐디인데….

    캐디 되면 떼돈 번다?

    나는 라운딩 나가서 “언니들은 좋겠어. 공기좋지 운동하지. 돈도 벌지…”라고 말하는 골퍼들을 보면 기분이 상한다. 공기 좋은 건 그렇다 치더라도 볼이 어디로 가는지 신경쓰며 진행을 돕고 하루 9∼10시간을 코스에서 지내야 하는데 그걸 누가 운동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분께는 돈을 줄 테니 하루 9∼10시간씩 운동하는 셈 치고 이 일을 해보시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공기좋은 곳에서 운동하고 돈도 벌어 좋겠다고 말할지 궁금하다.

    나는 골프가 좋다. 처음부터 골프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골프를 좋아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돈을 벌려고 캐디가 되었지만 지금은 만족하고 이 직업에 충실하며 살고 있다. 3년 전 어느 6월 나는 신설 골프장인 홍천 비발디파크에 입사했다. 골프에 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던 나는 그곳에서 5개월간 근무하면서 일단 골프에 맛을 들였다. 캐디라는 직업 자체를 몰랐던 나는 그곳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어렴풋이나마 골프를 이해하게 되었다. TV에서 보던 것처럼 캐디는 무조건 큰 보자기를 머리에 써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속칭 ‘몸빼’ 같은 바지를 입지 않아도 됐다. 그렇게 5개월을 일하는 동안 골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틈틈이 골프관련 서적을 사고 자체 연습장에서 시간날 때마다 연습도 했다. 골프는 아주 돈이 많은 갑부들만 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보이지 않는 손님과 라운딩을 나가는 기회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골프에 대한 편견을 조금씩 고쳤다.



    나는 손님을 대할 때에는 늘 같은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분이 매너가 좋지 않은 ‘워스트’건 훌륭한 매너를 갖춘 ‘베스트’건 일단 내 일에 충실하자는 것이 3년간 일을 하면서 터득한 캐디철학이다. 내가 ‘워스트’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다른 캐디들도 다 매너가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어떤 캐디와 라운딩 궁합이 맞지않아 트러블을 일으킨 사람이라도 다른 캐디와 나가면 베스트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거리를 멀리서 대충 불러주고 클럽을 가지고 갔는데 그 거리가 아니어서 클럽이 틀렸을 때 “바꿔드리겠습니다”라고 해야 하는데도 “그냥 치세요”라고 했을 경우 골퍼는 상당히 기분 나쁠 것이다. 그래서 성난 골퍼가 한마디 했다면 그 캐디는 캐디대로, 골퍼는 골퍼대로 서로에 대해 불신감을 일으켜서 그날의 라운딩은 엉망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상황이 어찌됐건 캐디가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베스트’와 ‘워스트’

    예전에 내가 교육생 때 어느 고참 캐디와 라운딩을 나간 적이 있다. 그 팀이 진행이 너무 늦어 앞팀과 한홀 반 정도 차이가 났다. 그 선배 캐디는 계속 진행을 유도하며 홀아웃한 손님은 다음홀로 바로 이동해달라고 부탁했다. 기어이 한 골퍼가 “얘, 재촉 좀 하지마. 너 때문에 더 못 치겠잖아”라고 짜증섞인 말을 했다. 선배 캐디는 그래도 꿋꿋하게 “죄송합니다. 앞팀과 간격이 너무 벌어져서 그럽니다” 라고 했고 손님은 여전히 툴툴거리며 라운딩을 끝냈다. 마지막 가방정리를 할 때 선배 캐디는 손님에게 다시 사과의 말을 했다. 그러자 손님께서 “우리도 늦었지뭐. 그래 괜찮아” 라며 얼굴을 펴고 돌아갔다. 와아! 내 눈에 비친 그 선배 캐디의 모습은 정말 프로 그자체였다. 라운딩 때 쌓인 불쾌한 마음을, 끝내고 나서라도 풀려는 자세가 본받을 만했다.

    캐디들이 흔히 얘기하는 ‘워스트와 베스트’의 차이는 간단하다. 골퍼의 성향보다는 캐디가 어떻게 이끄느냐에 따라 워스트와 베스트로 나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날 골퍼의 기분에 따라 차이가 날 수도 있겠지만 캐디가 얼마나 노련하게 골퍼를 유도하느냐에 따라 분위기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한 유명한 워스트가 있었다. 그 손님은 자신의 볼만 봐주기를 원하는데 일단 허공을 향해 날아간 볼이 땅에 떨어질 때면 숨쉴 틈도 주지 않고 “공이 어디로 갔느냐”고 물어온다. 그럴 때 바로바로 대답을 해주면 아무말 없이 라운딩을 하는데, 만약 하나라도 놓친다면 그때부터 그 손님의 비아냥이 시작된다. 그 손님은 캐디를 우습게 봐서 그런 건지 평소에도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말을 아주 심하게 했다. ‘클럽으로 ×××(좋은 뜻으로 머리)를 패버려’라고 하는 걸로 봐선 정말 사람 같지 않았다. 그런데 우스운 건 여자일행과 함께 오면 절대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골프장에는 외국사람들도 자주 오는 편인데 특히 일본인이 많다. 다행히 고교 시절 일본어를 공부했기 때문에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왕초보 캐디시절 한번의 실수로 자존심이 완전히 구겨진 적이 있다. 나는 숫자 7을 일본어로 ‘시치’라고만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거리단위일 경우 ‘나나’라는 발음으로 읽는다는 것을 모른 게 화근이었다. 한 일본 골퍼는 홀컵까지 170야드가 남아있었다. ‘하꾸시치쥬야도 데스’(170야드입니다)라고 했는데 그 일본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다시한번 묻기에 다시 얘기를 했다. 그때 같이 나간 선배 캐디는 일본어를 잘했는데 그 선배 캐디가 지나가자 그 일본인은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러자 그 선배는 ‘하꾸나나쥬야도데스’라고 했다. 어, 나나가 뭐지? 그 얘기를 들은 손님이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클럽을 바꾸는 것이다. 그 손님은 내 발음을 110야드로 이해했던 것이었다. 그 손님은 라운딩 끝날 때까지 나에게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프로 캐디를 향해서

    다른 골프장에서도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골프장 캐디들은 직접 볼을 치기도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은 괜히 나온말이 아니다. 내가 직접 골프를 칠 줄 알아야만 골퍼들의 준비스윙 자세를 봐줄 수도 있고 잠깐이나마 레슨을 해줄 수도 있는 법. 우리 회사의 ‘슈퍼캐디’가 되기 위한 필수요건이다.

    나는 초창기에 볼 치는 걸 상당히 즐겼다. 처음에는 무조건 야구방망이처럼 휘두르다가 우리 골프장 프로들이 자세를 봐주고 가르쳐준 뒤 금방 폼이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엔 볼이 맞기만 해도 즐거웠고 나날이 비거리가 늘어갈수록 말로 하지 못할 쾌감을 느꼈다. 일찍 끝나건 늦게 끝나건 하루에 10분이라도 매일 연습하자는 계획 아래 열심히 볼을 쳤고, 그렇게 해서 우리 동기 중에서 제일 먼저 슈퍼캐디가 되었다.

    나는 캐디가 되기로 작정하면서부터 골프 지식을 쌓기로 했다. 골프장에 가보기도 전에 골프에 대해 알고 싶어서 무조건 자료를 구했다. 컴퓨터통신 골프 동호회에 가입해 골프에 관련된 자료를 다운받아 읽었고, 서점에서 골프관련 서적들을 하루종일 읽기도 했다. 처음엔 자료를 구하려고 동호회 회원으로 가입했는데 나중에 캐디로 근무하면서는 동호회원 대다수가 골퍼이기 때문에 손님인 회원들의 말을 듣고 싶었다.

    캐디가 보는 눈과 골퍼가 보는 눈은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름의 생각을 글로 올리면 많은 분이 관심있게 읽어주고 의견도 올려주었다. 나 또한 라운딩시 있었던 일이나 느꼈던 걸 편안하게 얘기하듯 글을 올렸기 때문에 골프동호회에 글을 올리고 나면 친구에게 얘기하고 나서 후련한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정말 다행인 점은 골프에 대해 알게 될수록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마음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는 프로가 나에게 와서, 시합이 있으니 백을 메달라고 부탁할 만한 실력을 쌓아 프로 캐디가 되기 까지 나는 골프를 정말 재미있게 배울 것이다. 내 하나의 소망인 프로 캐디를 향해서…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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