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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술문화 기행

데킬라는 목구멍으로, 코냑은 콧구멍으로

  • 권삼윤 문명비평가

데킬라는 목구멍으로, 코냑은 콧구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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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와 함께 위스키 대국인 아일랜드 사람들도 위스키보다는 맥주를 즐겨 마신다. 이들은 영국인들과는 달리 쌉쌀한 맛이 나는 ‘기네스’란 이름의 흑맥주를 선호한다. 가스등이 켜진, 300년쯤 된 고풍스런 바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기네스를 마시는 정겨운 모습은 이제 아일랜드가 아니고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맥주하면 맨 먼저 독일의 뮌헨이 떠오른다. 60년대에 이곳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전혜린이 “마로니에의 흰 꽃이 활짝 핀 나무 아래 테이블에 앉아서 마셨던 검붉은 마이복(Maibock)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모색(暮色)이 짙어가는 거리의 여기저기서 구운 소시지에 겨자를 발라먹으면서 쭉 들이켰던 금빛 맥주 한 컵, 그리고 겨울의 따스한 난로가에서 데운 맥주를 마시던 기억…”이라는 수필을 읽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널따란 공원, 백조가 한가로이 노니는 호수, 그리고 아름다운 중국식 탑이 있는, 뮌헨에서도 특히 유명한 ‘중국정원’을 찾았다가 어느 카페에서 한 건장한 여종업원이 한 손에 다섯 개씩, 모두 열 개의 머그를 들고 나르는 모습을 보고 한동안 얼이 빠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맥주를 마셔대면 저런 식으로 맥주를 나를까 하는 생각에 독일이야말로 진짜 ‘맥주대국’이구나 싶었다.

독일사람들은 정말 맥주를 사랑하는 것 같았다. 많이도 마셔댔다. 앉은자리에서 대개 2000cc짜리 세 개, 즉 6000cc는 거뜬하게 마셨다. 우리처럼 마시는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그렇지, 마음먹고 마신다면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갈 것 같았다. 매년 10월 바이에른주의 주도인 뮌헨에서 열리는 ‘10월축제’를 우연히 목격한 어느 여행자는 “500만 명의 사람들이 마치 코끼리가 물을 들이키듯 순식간에 500만ℓ의 맥주를 들이켰다”며 혀를 내둘렀다.

술집이 늘어선 거리는 주말이면 새벽 2∼3시까지 흥청거렸지만 누구 한 사람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술을 즐기되 폭음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그들은 대화를 부드럽게 이끄는 윤활유로 술을 활용할 뿐, 술에 원수진 사람처럼 마셔대지는 않는다.



서양사람들은 안주를 잘 먹지 않는 편이지만 아주 안 먹는 것은 아니다. 독일에선 소시지와 아이스바인(독일식 돼지족발)이 안주로 자주 올랐다. 독일은 겨울이 길다 보니 육류를 오래 보관할 필요가 있어 소시지와 같은 훈제요리가 발달했는데, 이게 훌륭한 맥주 안주가 된다. 기름을 쫙 뺀 데다 짭짤하게 간도 돼 있어 내 입에도 잘 맞았다. 거기에 양배추를 노란 겨자소스에 버무려 만든 독일식 김치를 더하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뮌헨의 맥주집 호프브로이의 홀을 가득 채운 3000여 명의 손님이 소시지를 앞에 놓고 커다란 피처를 비워대는 모습을 보니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에서 “마시자, 마시자” 하면서 주인공이 불렀던 ‘축배의 노래’는 독일에서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장면이라 생각됐다. 이를 증명하듯 그 영화의 무대가 된 하이델베르크대학의 한 벽면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교황에게는 술이 있으나 여자가 없고, 술탄(오스만투르크제국의 황제)에게는 여자는 있으나 술이 없네. 그러니 술과 여자를 모두 가진 우리 인생이 훨씬 즐거울 수밖에.’

맥주냐, 말 오줌이냐

기후조건상 포도 재배가 불가능한 알프스 이북지방에선 와인보다는 보리·홉 등의 곡물로 빚는 맥주가 대종을 이룬다. 19세기 이래 정부가 맥주 제조권을 장악하고 법령으로 맥주의 순도와 원료를 규제하는 등 맥주의 품질 향상에 노력하면서 각 지방마다 독특한 맛의 맥주를 생산하는 독일은 말할 것도 없고, 네덜란드에선 1864년 하이네켄이란 사람이 1592년에 설립된 암스테르담의 하이스태크 양조장을 인수, 쓰지만 부드러운 맛을 내는 하이네켄을 만들고 있으며, 덴마크에선 1801년 야곱센이 설립한 칼스버그사에서 텁텁한 맛의 칼스버그를 내놓고 있다.

맥주의 본향은 체코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유를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보헤미안들이 오늘의 맥주를 있게 한 주인공인데다, 세계 최대의 맥주회사인 미국의 안호이저 부시사가 체코의 유명한 ‘부드바르’ 브랜드를 미국식으로 고쳐 ‘버드와이저’란 제품을 내놓았을 정도니 말이다.

맥주는 와인과 마찬가지로 중세시대에는 수도원에서만 제조됐다. 그들은 양조권을 독점해 경제권을 장악했고 그리하여 유럽사회를 지배했다. 교회의 우월적 지위를 실질적으로 지탱한 것은 거대한 영지와 양조 독점권 같은 경제력이었다.

그렇다고 당시 최고의 두뇌집단이었던 수도원이 포도와 보리의 품종 개량과 양조기술의 발전에 기여한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특히 12∼13세기에 홉의 첨가법을 개발해 지금의 맥주를 있게 한 공로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체코의 맥주가 탄생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보헤미아왕국의 웬체슬라브왕이 교황에게 맥주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며 일반인들도 양조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진언한 끝에 허락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체코는 맥주산업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었다.

보헤미아 맥주는 밀, 보리, 귀리에다 홉·주니퍼(서양향나무)·감귤 등을 넣어 향과 맛을 낸 것인데, 경도가 아주 낮은 물을 사용하는 까닭에 맛이 담백하고 홉의 향도 짙다. 특히 프라하에서 서쪽으로 70km 정도 떨어진 필젠(Plzen)에서 생산되는 필제너(Plzener) 맥주는 ‘담백맥주(필젠타입 맥주라고도 함)’란 용어를 만들어 냈을 만큼 맛이 담백하다.

필제너는 맛이 뛰어날 뿐 아니라 건강에 좋다는 임상실험 결과도 나와 있어 의사가 환자에게 치료 차원에서 권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공장을 구경하겠다며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나자 회사측은 공장 옆에 레스토랑을 만들어 놓고 이른 아침부터 관광객들을 맞는다. 현지에서 생맥주 맛을 본 맥주 애호가들은 한 술 더 떠서 “맥주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성지순례 하는 마음으로 평생에 한 번은 필젠을 찾아야 한다”며 필제너 칭찬에 열을 올린다.

체코를 한동안 지배했던 옛 소련이 필제너의 소문을 모를 리 없었고, 마침내 ‘그 정도는 문제없다’며 맥주공장까지 차렸다. 필젠 현지에 전문가를 파견하고 시설도 그에 못지않게 꾸몄다. 공들여 만든 시제품이 나오자마자 우선 필젠으로 보내 평가를 청했다. 그때 필제너는 이렇게 답했다. “댁의 말(馬)은 아주 건강합니다.” 소련이 만든 맥주를 말 오줌이라고 비아냥거린 것이다.

기후로 나눠지는 술 문화권

러시아에선 부드러운 맥주보다는 독한 보드카가 제격이다. 러시아 대평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주인공들이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 위해 아주 자연스럽게 술을 한 잔씩 하는데, 그게 바로 러시아를 대표하는 보드카다.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를 이기려면 독한 술을 찾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술은 민속성에 연유한다기보다는 기후에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더운 지방에선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 술은 가능한 한 마시지 않으려 하고, 설령 마시게 되더라도 도수가 낮은 술을 가볍게 마신다. 반면 추운 곳에서는 추위를 잊기 위해서라도 술을 마셔야 하는데, 그럴 경우 독한 술이 더 경제적이다. 또한 기후에 따라 자라는 작물이 다르니 빚는 술의 종류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차이가 세계를 몇 개의 술 문화권으로 나눈다. 알프스 남쪽의 지중해 연안은 와인 문화권,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폴란드 핀란드 등은 보드카 문화권,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캐나다 등은 위스키 문화권, 체코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같은 중부 유럽은 맥주 문화권, 몽골과 중앙아시아는 아이락(馬乳酒) 문화권, 중국은 바이지우(白酒) 문화권, 일본은 청주 문화권, 동남아시아는 무(無)알코올 문화권, 중동과 이슬람지역은 금주(禁酒) 문화권, 남아메리카는 치차(옥수수술) 문화권, 미국은 모든 술을 다 즐길 수 있는 ‘옴니 문화권’으로 분류할 수 있다.

보드카의 어근인 ‘보다(voda)’는 러시아어로 물이라는 뜻이다. 보드카가 러시아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모스크바 공국 말기인 16세기이고, 지금의 제조법이 완성된 것은 1794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대학의 루이스 교수가 러시아에 흔한 자작나무 숯으로 불순물을 없애는 방법을 개발하면서부터였는데, 그리하여 보드카는 무색무취의 증류주가 됐다. ‘크리스털 클리어’라고 하는 이 제조법은 러시아혁명을 거치면서 외부 세계에 알려졌다. 보드카는 보리를 주원료로 만드는데, 알코올농도가 85%가 될 때까지 농축했다가 마실 때는 물을 타서 40% 정도로 낮춘다.

러시아 다음으로 보드카를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폴란드. 비브로바, 지트니아, 주비로프 등 종류도 다양하다. 알코올 도수가 무려 90도인 스비리두스도 나온다. 이들은 반드시 건배를 하고 술을 마시는데, 이때는 ‘건강을 위해’라거나 ‘가족을 위해’라고 외친다. 그리고는 다음 건배 때까지 잔에 손대지 않고 음식을 들거나 노래를 부른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에도 보드카가 있다. 물론 그 제조방법은 러시아로부터 배웠다. 스웨덴에서는 자기네 보드카를 ‘스납스(snaps)’라고, 핀란드에선 ‘코스텐코르바(kostenkorva)’라고 부른다. 보드카답게 독하긴 해도 맛은 좀 달다. 원료로는 감자가 사용된다. 이들은 이를 식전주(食前酒)로 조금씩 마실 뿐 러시아인들처럼 시도 때도 없이 마시지는 않는다.

지금 미국에선 이 독한 보드카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러시아에서보다 더 많이 팔린다. 세계적인 보드카 브랜드인 압솔루트와 스미르노프도 미국에서 나왔다. 독주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미국이야말로 독주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인들은 안주 없이, 아니 맥주를 안주 삼아 독한 술을 마신다. 우리가 만들어 낸 것으로 알고 있는 폭탄주는 미국에서 건너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아무 데서나 술을 살 수도, 마실 수도 없다. 경기장 안으로 술을 들고 들어갈 수가 없으며, 세븐 일레븐 같은 편의점에서도 술을 팔지 않는다. 술을 파는 레스토랑도 흔하지 않다. 술을 마실 때도 서로 잔을 권하거나 ‘2차’를 가자고 꼬드기는 사람이 드물다. 이는 독주에 대한 견제장치일지도 모른다.

데킬라의 황홀경

대표적인 독주로는 멕시코 사막에서 자라는 용설란 줄기를 재료로 해서 만드는 멕시코의 국민주 데킬라를 들 수 있다. 40도쯤의 독한 술인 데킬라는 톡 쏘는 맛 때문이라도 입안에 오래 지체하지 말고 목구멍으로 가볍게 털어 넣어야 한다. 냄새가 없고 맛은 산뜻하다. 데킬라는 그 자체로도 즐겨 마시지만 이것을 베이스로 한 칵테일, 즉 마가리타가 더 인기 있다.

마가리타는 데킬라에 ‘큐라소’라는 오렌지즙과 레몬주스를 섞은 것인데 잔 모양이 퍽 특이하다. 아주 넓게 생긴 잔의 가장자리를 레몬으로 적시고 소금을 두텁게 발라 내놓는다. 마시는 사람은 잔을 돌려가며 소금을 핥으면서 마신다.

소금의 짠맛, 그리고 레몬의 신맛이 데킬라의 톡 쏘는 맛과 어울려 빚어내는 황홀한 경지는 오직 몸으로 느껴질 뿐, 말로는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만약 그때 감미롭고 경쾌한,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애틋한 곡조를 흥얼대는 마리아치(멕시코의 떠돌이 악사)라도 곁에 있다면 ‘별유천지 비인간…’의 탄성이 절로 나올 것이다. 마야·아즈텍 등의 찬란한 고대문명을 간직하고도 오랫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멕시코인들은 이렇듯 데킬라와 마리아치를 통해 위안을 얻었다.

멕시코 동쪽의 카리브해는 럼의 고향이다. 럼은 사탕수수를 이용해 만든 증류주로서 알코올농도는 위스키에 가깝다. 유럽인들은 자기네 찻잔에, 또 커피잔에 설탕을 넣어 먹기 위해 아프리카 흑인들을 대거 이곳으로 끌고와 사탕수수밭을 일구게 했는데, 이제는 이 사탕수수가 럼의 재료가 되어 오히려 이들의 애환을 달래준다. 럼의 최대 산지는 레게음악의 진원지이기도 한 자메이카와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 등의 작품을 쓰며 말년을 보낸 쿠바다. 최고급 브랜드인 바카르디, 아바나 클럽 등도 쿠바에서 나왔다.

럼은 칵테일 베이스로도 유명하다. 사탕수수라는 천연 당분에서 추출된 것이라 다른 재료들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카리브의 경관 또한 칵테일 마시기를 부추긴다. 007시리즈 영화에 자주 나오는 장면처럼, 티없이 파란 하늘과 넘실대는 파도, 야자수, 여기에 아름다운 여인까지 곁에 있다면 누구나 밋밋한 병술보다는 미묘한 색상을 자아내며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칵테일을 찾을 테니까.

영화 ‘칵테일’에서 주인공 톰 크루즈는 나비 넥타이도 매지 않았고, 셰이커를 흔들지도 않는다. 술병을 이리저리 던지면서 폼만 열심히 잡을 뿐이다. 실제 바텐더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렇지만 어느 여자 손님이 그를 유혹하기 위해 칵테일 ‘오르가슴’을 주문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남들 앞에서 큰 소리로 말하기 껄끄러운 단어인 ‘오르가슴’을 대놓고 이름으로 삼을 만큼 칵테일은 도전적인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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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Opinion Leader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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