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사용하지만 그 의미를 물어보면 얼른 대답하기 곤란한 단어들이 있다. 아마도 갈등(葛藤)이란 용어가 그런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생각된다. 갈등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2개 이상의 대립하는 경향이 거의 같은 세기로 동시에 존재하여 행동결정이 곤란한 상태’라고 설명되어 있다. 쉽게 말해서 어느 두 진영이 강력하게 대립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라는 극단적 형태의 물리적 충돌까지는 가지 못하고 서로 으르렁거리고만 있을 때, 이런 현상을 우리는 갈등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갈등이란 용어는 심리학에서 가장 먼저 사용됐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등장하는 저 유명한 대사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To Be or Not to Be?)”는 주인공 햄릿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복잡한 심리상태를 나타내는데 프로이트 이후의 심리학자들은 이런 인간의 내적 고뇌를 설명하는 수단으로 갈등이란 용어를 채용했다.
갈등 많은 사회의 초상
따지고 보면 우리 생활은 곧 갈등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지금 일어나서 아침 운동을 할 것인가 아니면 자명종을 10분쯤 늦춰 놓고 비몽사몽의 나른함을 조금 더 즐길 것인가에서부터 출근길에 버스를 탈 것인가 지하철을 탈 것인가, 끊기로 결심했던 담배를 다시 시작할 것인가 참을 것인가 등등 우리 일상사는 선택의 문제로 가득 차 있고, 그 선택이 단순하지 않을 때(또는 단순하지 않다고 느낄 때) 그런 심리상태가 갈등 상태라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이처럼 갈등이란 용어가 심리학자의 진료실을 벗어난 지는 이미 오래다. 바로 사람들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과 대립이 지속될 때 그런 관계를 설명하는 용어로 갈등이란 말이 쓰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 조직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족 구성원 간에도 심각한 대립이 발생한다. 부부간의 갈등,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갈등의 양상이 심각해지면 어느 한 쪽이 회복 불능의 피해를 보거나 아니면 결국 가정이 파탄나는 상태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마을, 직장, 학교, 지역 사회, 국가 등 점차 커지는 조직 속에서 나타나는 갈등의 양상은 이제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아니라 ‘집단 대 집단의 관계’로 발전한다. 한 조직 내에서 2개 이상의 대립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그 구성원이 양편으로 나뉘었는데 양쪽 세력이 비슷하다면 곧 집단적 갈등관계가 조성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 주위를 한번 둘러보자. 아니면 신문을 한번 펼쳐보자. 어떤 사회적 갈등의 현장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일반 직장에서 나타나는 갈등의 대표적인 예는 아마도 상사와 부하 직원 간의 갈등, 노사 갈등일 것이다. 학교에서는 교장이나 교감 등 학교 행정을 책임지는 관리자와 평교사들 사이에, 학급에서는 공부 잘 하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많다. 일부 아파트촌에서는 재개발 시행 여부를 놓고 주민들 사이에서 의견 대립이 벌어지고, 지역 사회에서는 개발 이익의 극대화를 원하는 주민들과 무분별한 개발에 반대하는 환경단체들 사이에 갈등이 나타난다. 그런가 하면 쓰레기 소각장 설치 문제에서 보는 것처럼 지역민과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공방이 불거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갈등구조는 사회 전반에 걸쳐서 진행되고, 또 그로 인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피해를 보는, 그런 것들이 아닐까 한다. 그런 예로는 영호남간의 지역갈등, 최근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의약분업 논쟁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이익집단들끼리 공익을 담보로 벌이는 직업간의 갈등,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고용자와 피고용자라는 사회계층간에 나타나는 노사 갈등, 사회정의의 실천인가 기득권의 고수인가로 대표되는 시민단체와 권력 간의 갈등 등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왜 갈등이 많은가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 생활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사회에 비해서 우리 사회가 살기에 얼마나 피곤한 사회인지 잘 알고 있다. 살기에 피곤하다는 것은 곧 우리 사회에 내재하는 갈등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훨씬 더 심각하다는 말이 된다.
잠시 선진국 생활의 예를 들어 보자. 부모 자식간의 문제는 선진국이라고 해서 우리와 크게 다를 점이 없지만, 적어도 선진국에서는 자녀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부모는 찾아보기 힘들다. 부모가 아이들 등을 떠밀어서 학원이나 과외공부에 내모는 일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아이들 은 실력껏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만 공부하고, 그것만으로 직장을 구하고 생활해 나가는 데에 별로 부족함이 없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공부 잘하는 아이와 공부 못하는 아이를 차별하지 않고, 부잣집 아이와 가난한 아이를 차별하지 않으니 아이들이 학교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다. 이런 사회라면 부모자식간의 갈등도 훨씬 적을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그렇다고 해서 갈등이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에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그 정도가 약하다는 말이다).
부부간 문제도 우리보다 훨씬 덜 심각하다. 선진국의 이혼율이 우리보다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부부로 함께 사는 동안에는 배우자를 존중한다는 사회적 룰이 확립돼 있으니 갈등이 덜할 수밖에 없다. 집안일은 부부가 공동으로 하고, 주5일 근무제가 정착돼 있으니 주말은 어김없이 부부 단위로 생활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처럼 퇴근길 남편을 유혹하는 유흥업소들이 별로 없으니 아무래도 부부 사이가 우리보다 더 돈독할 것이 당연하다. 고부 갈등 역시 부부 중심의 전통이 확립돼 있는 서구 사회가 우리처럼 심각할 이유가 없다.
직장과 사회에서의 갈등도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선진국이라고 해서 직장과 사회에서 고용주와 피고용자, 관리자와 피관리자, 부자와 빈자,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 사이에 계급과 계층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런 구별은 어쩌면 우리나라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구별이 우리처럼 심각한 갈등의 양상으로까지 발전하는 경우는 드물다. 바로 갈등을 사전에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사회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고, 또 사회 자체가 합리성과 공정성의 바탕 위에서 작동해서 갈등이 불거질 소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합리성· 공정성과 갈등의 정도
합리성과 공정성이 존중받는 사회에서는 갈등 자체가 발생하기 힘들다. 회사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우리나라에서 일반 직장인들이 겪는 갈등의 전형적인 예는 상사의 부당한 요구와 무례한 행동을 참아내기 어렵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례는 직장인들이 글을 올리는 인터넷 상에서도 무수히 찾아볼 수 있는데, 상사가 부하의 업적을 마치 자기 것인 양 가로채고, 수시로 불필요한 야근을 시키고, 또 여자의 경우에는 함부로 추근거리는 등 그 양상은 가위 천태만상이다. 여기에 더해서 자신의 잘잘못에는 상관없이 구조조정이라는 미명하에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신분상의 위기감까지 느끼는 직장인이라면, 그런 직장을 과연 다녀야 하는지 아니면 그만두어야 하는지 심각한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선진국이라면 이런 일이 우리만큼 흔히 발생할 수 있을까? 선진국의 제대로 된 회사에서는 상사가 부하 직원을 도와주지는 못할지언정 오히려 괴롭히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인사 관리가 정착된 회사에서는 그런 무능한 사람이 높은 자리까지 오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혹시 선진국에서 직장인이 이런 부당한 일을 겪었다면 그는 어떤 행동을 취할까? 그 사람은 필경 회사의 고충처리 부서나 최고경영자, 아니면 지방자치단체의 근로자 보호 센터를 방문해서 자기가 겪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해결책을 구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신고를 접수한 담당자는 즉각 다양한 압력 행사수단과 법적 장치를 동원해서 신고자의 고충을 해결해줄 것이다.
이런 사회라면 피고용인이라는 사회적 약자가 고용인이라는 강자의 힘에 눌려 억울함을 당하는 일도 드물 것이다. 이렇게 사회적 약자가 제도적으로 보호받는 사회에서는 노사 관계도 유연해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개인적 갈등이 사회적 갈등으로 퍼져나가기 전에 그 사회가 신속하게 갈등을 해소해서 사회의 안정성이 확고히 유지되는 것이다.
지난 4월에 치러진 총선은 우리 사회에 드리운 지역 갈등의 골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전국이 1일 생활권인 좁은 나라에 서 이처럼 지역 감정이 심화된 데에는 물론 오랫동안 쌓인 갖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역 감정의 갈등은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제도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역대 위정자들이 공정하고 합리적인 인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지역 개발 정책을 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며, 또 공정하고 합리적인 법과 제도 마련에 등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선진국들에 비해서 우리의 사회적 갈등이 훨씬 더 많고 더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아직 그들만큼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회 운영의 틀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서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가족 단위의 생활 을 중요시하는 사회적 관행들이 미처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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