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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대특집|역사의 대전환, 남북화해시대

두뇌자원 활용한 벤처형 ‘제3의 길’

북한의 국가발전전략

  • 송문홍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두뇌자원 활용한 벤처형 ‘제3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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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벤처나 소프트웨어산업 등 북한에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야라도 최소한의 ‘기본’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바로,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철도 도로 항만 등 북한의 사회간접시설 확충이 ‘화두’로 대두된 배경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경의선 연결 및 복선화, 남포 신의주 등 공단 조성 및 인프라 확충 비용으로 적어도 9조8000억원이 소요될 것”이라는 추정치를 내놓기도 했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로 북한의 전력난을 꼽는다. 공단 조성이든 사회간접시설 확충이든 모든 경협 안건의 대전제가 되는 게 바로 전력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전력난 현황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추정치가 달라 정확한 평가가 어렵지만, 상상 이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북한도 인정한다. 일례로 북한의 조창덕 내각 부총리는 지난 2월3일 조선중앙통신과 한 회견에서 “지금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으며, 생산과 건설에서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 자료에 의하면, 1998년 현재 북한의 전력설비는 7390MW. 이는 한국의 발전설비 4만7983MW의 15% 규모에 불과한 데, 그나마 발전량은 170억kWh로 한국의 발전량 2372억kWh의 7.2% 수준에 불과하다.

단지 발전량의 문제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노후화된 송·배전 설비 문제도 심각한 상태. 그래서 이미 오래 전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선 “KEDO가 건설중인 원자력발전소가 완공된다고 해도 송·배전 설비가 없으면 무용지물 아니냐” “북한의 발전설비 및 송·배전 설비를 개·보수하기보다는 차라리 새로 짓는 게 낫다”는 얘기까지 나돌았을 정도다. 북한의 송·배전 손실률은 최소 16%에서 50%까지로 추정되고 있다(한국의 송·배전 손실률은 1998년 기준으로 4.9%).



몇 년 전부터 흘러나왔던 원산 남포 신의주를 경제특구로 지정한다는 얘기도 결국 에너지 문제 때문에 본격 추진되지 못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즉 에너지 문제가 국가 전반의 개발전략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과 관련, 한 북한 전문가는 연형묵 자강도당 비서가 김정일 위원장의 높은 평가를 받는 가장 큰 배경으로 에너지 문제 해결에 대한 그의 공헌을 꼽았다. 연형묵은 원래 엔지니어 출신, 그것도 “발전소 겉모양만 보고도 설계도면을 그려낼 수 있을 정도의” 천재적인 엔지니어인데, 그가 국가적인 에너지난 속에서 자체 개발한 중소형 발전터빈을 자강도에 많이 도입, 그나마 북한 내에서 자강도가 에너지 사정이 가장 낫다고 한다.

전력 지원의 한 가지 예

북한의 에너지난과 관련해서는 그동안 국내외에서 이런저런 지원방안이 제시되곤 했다. 일례로 99년 4월 장영식 당시 한전 사장은 정부 내 사전조율을 거치지 않은 채 평양 인근에 10만kW급 화력발전소 건설계획에 대해 “추진 중”이라고 공개했다가 사퇴하는 일도 있었다. 이번 정상회담 후속 협상에서도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남한의 유휴전력을 북쪽으로 송출한다든지, 남아도는 석탄 1000만t을 보내는 문제 등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근본적인 전력 해결의 실마리를 풀기에는 아직 문제가 많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어려운 문제는 탈냉전 이후 잠재적인 테러국가에 대한 전략물자 지원을 제한하는 ‘바세나르 체제’(구 COCOM, 즉 전략물자수출통제기구)의 장벽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것. 이 문제와 관련, 남북 정상회담이 합의된 4월 이후 미국측에서는 “남한이 유휴전력을 북한에 제공할 경우, 북한이 이를 군수용으로 사용할 때 이를 막을 방안이 무엇이냐”는 문의가 국내 전문가들에게 많이 들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한 북한 전문가는 한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북한도 주요 전략물자인 전력을 제공받는 데에 제약요인이 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대규모 화력발전소를 지어주는 것 같은 방식이 아니라 공장단위, 마을단위로 사용할 수 있는 중소형 발전터빈, 혹은 태양열이나 풍력, 가스터빈 등 바세나르 체제의 제한품목에 포함되지 않는 형태의 지원을 내심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컨대 공장 5개를 묶어서 이 공장들에만 독점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장비를 지원받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전력의 군수용 전환 의혹도 제기되지 않고, 낡은 송·배전설비를 전면적으로 다시 깔아야 하는 부담도 덜 수 있다”

북한은 정치적 측면에서도 이런 방식을 선호한다는 얘기도 있다. 계속해서 앞의 전문가 말이다.

“화력발전소 같은 대형 발전장비를 제공받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사안이 된다. 즉 국가 차원에서 조율을 거쳐 나올 수 있는 대형 프로젝트이고, 따라서 이런저런 옵션이 따라붙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으로서는 당연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조만간 활성화될 남북경협은 북한의 향후 국가발전계획에 ‘기반’을 깔아주는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남측과 다양한 경협사업을 통해 북한경제는 회생의 실마리를 찾고 나아가 독자적인 발전의 길을 모색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남북간에 상호연계 효과는 더욱 커지고 평화정착 무드가 자리잡게 된다. 그러면 북한이 생각하는, 향후 남북경협의 바람직한 형태는 어떤 것이 될까? 몇몇 북한 전문가 그룹의 의견을 취합해보면 그것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바람직한 경협을 위하여

첫째, 사회간접시설의 경우 북한이 원하는 것은 남한의 경험과 자본이지 그걸 빌미로 대규모 인력이 북한에 들어오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또 사업 내용과 완공후 운영에서 남측의 통제를 받게 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둘째, 북한이 단기적으로 남측에게서 원하는 사안은 중공업처럼 시일이 오래 걸리는 분야가 아니라 당장 활용할 수 있고 단기적으로 성과를 볼 수 있는 협력분야다. 예컨대 건설자재 지원, 봉제 신발 등 수출상품 분야, 광산 석탄 등 자원개발을 위한 장비 등이 그런 예들이다.

셋째, 자존심을 상하면서까지 받고 싶지는 않다. 예컨대 남쪽의 IMF 이후 유휴설비를 북측에 공여한다는 얘기가 나오곤 했는데, 북한 쪽에선 남쪽에서 자꾸 ‘유휴설비’라고 하니까 받기가 곤란해지는 문제가 있다. 차라리 ‘협력설비’ 등 다른 이름으로 제안했다면 훨씬 수월하게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의견들과 관련, 대북사업에 오래 종사한 한 인사는 “우리는 남북경협에서 그동안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쫓는 듯한 행태를 자주 보여왔다”고 말한다. 매사를 대형 프로젝트 위주로 생각하고, 소형 프로젝트도 대형 프로젝트 속에 용해시켜버리는 발상을 견지해왔다는 것. 대형 프로젝트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사안으로 변질되고, 결국 정치 기류에 좌우될 위험성이 커진다.

요컨대 남북경협의 진정한 의미와 효과는 소규모 경협사례가 많이 축적되는 데서 찾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예컨대 1000만달러짜리 남북경협 프로젝트 한 건보다는, 10만달러짜리 소규모 프로젝트 100건이 북한 사회에 진정 도움이 되고, 북한에 진정한 변화를 불러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대립과 반목으로 점철해온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남과 북이 전쟁을 벌이지 않을 요량이라면, 북이 제풀에 붕괴해버림으로써 남이 그 부담을 고스란히 다 져야 하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면, 남은 북의 자력갱생 의지를 도울 수밖에 없다. 물론 북이 남에 총부리를 대는 상황이 재연되면 안되겠지만, 정치적 상호신뢰는 경제적 상호연계가 심화될 때 함께 깊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국가발전전략은 우리에게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서두에서 거론한 ‘호기심’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2000년 6월13일 오전, 순안비행장에서 백화원영빈관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남북 두 정상은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55년만에 처음 만나는 사이에 서로 속깊은 얘기를 나누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마음 속에는 집권 이래 줄기차게 대북 포용정책을 견지해온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 어느 정도 ‘믿음’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함축적인 뜻을 담아 이런 한 마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남과 북이 힘을 합쳐 한번 잘해 보십시다”

신동아 2000년 7월호

3/3
송문홍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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