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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한 의사 방치한 병원은 죽음의 집”

전 서울대병원·삼성의료원 의사의 고백

  • 이종태 한국의료평가센터소장

“미숙한 의사 방치한 병원은 죽음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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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8월 서울 강남 S병원에 20대 남자 환자가 고열로 입원했다. 이 환자는 윌슨씨 병(Wilsons disease)으로 진단돼 디-페니실라민(D-penicillamine)으로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이 병은 13번 염색체 이상으로 생기는 유전적 질환의 하나로, 체내에 구리가 과다 축적되어 장기가 상하는 병인데 디-페니실라민은 구리를 제거하는 치료제다. 그런데 이 치료제의 대표적 부작용은 범혈구 감소증이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정도 검사를 받아야 한다. 만약 범혈구 감소증이 발생하면 백혈구 수가 줄어들어 환자가 감염으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이 환자의 피를 검사한 결과 백혈구, 혈소판 등 범혈구 감소증이 있었고, 백혈구의 감소로 인한 면역기능 저하로 감염이 발생하여 패혈증이 있었다. 이 환자는 항생제 등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패혈증증후증(sepsis syndrome)이 발생, 사망하고 말았다.

이 환자의 의무기록지를 검토한 결과 담당의사는 디-페니실라민을 수 개월동안 사용하면서도 피검사를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일 전혈검사(피검사)를 주기적으로 실시했다면 범혈구 감소증 발생을 확인, 약제를 끊음으로써 범혈구 감소증의 진행을 막고, 골수 기능이 회복. 백혈구 등이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되어 감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생명을 잃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담당의사는 아무 생각도 없이 무조건 약만 계속 투여하는 중대하고, 치명적인 과실을 범한 것이다.

오진으로 잘못 치료해 사망

97년 1월 젊은 남자가 림프종 치료를 받던 중 패혈증에 걸려 사망한 일이 있었다. 사망원인은 림프종이 백혈병으로 진행되었고, 감염되어 합병증이 발생, 이것이 패혈증으로 진행된 것이었다. 환자의 의무기록지를 자세히 검토해 보았다.



해부병리과의 검사결과 이 환자는 처음에는 저등급 림프종(low grade nonhod-gkins lymphoma)으로 나왔다. 림프종은 완만히 진행되는 저등급 림프종, 빠르게 진행하는 중등급 림프종, 급격히 진행되는 고등급 림프종 3가지가 있는데 치료 방법이 각각 다르다. 저등급일 경우 일반적으로 치료해도 완치가 거의 안되며, 병은 7~10년 간다. 중등급과 고등급은 완치가 가능하며, 치료를 하지 않을 시 중등급 환자는 수개월 내에, 고등급환자는 수 주내에 사망하게 된다.

따라서 저등급일 경우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환자에게 부작용이 적은 치료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중등급과 고등급은 병이 빨리 진행되고, 완치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부작용과 독성은 심하지만 고강도의 치료방식을 택하게 된다.

이 환자는 저등급에 준하는 치료를 1년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사실은 중등급 림프종 환자였다. 해부병리과는 첫 잠정 진단 후 2주 정도 지나 최종결과를 중등급으로 진단했고 그 결과지가 의무기록지에 붙어있었다. 담당의사가 이를 확인하지 않고 저등급 치료를 계속하는 바람에 결국 환자를 죽게 한 것이다.

만약에 경험 있는 의사였다면 환자가 사망하기 훨씬 전에, 처음 진단에 의심을 가지고 다시 한번 환자의 상태를 평가하기 위하여 의무기록지를 검토해보았을 것이고, 그렇게 했더라면 의무기록지에 붙어 있는 최종결과지를 보고 즉시 치료 방법을 바꾸었을 것이다.

해부병리과 의사도 잠정진단 결과와 최종진단 결과가 다르면, 결과지를 내보내면서 담당의사에게 전화나 서면으로 잠정진단이 바뀌었다고 알려주어야 한다. 그렇게만 했다면 젊은 환자가 어이없게 사망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백혈병양 반응과 백혈병의 혼동

97년 6월 20대 남자 환자는 천안의 D병원에서 서울 S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당시 환자는 고열과 황달기가 있는 상태에서 매우 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D병원의 기록은 다음과 같았다.

“환자는 고열과 황달을 주소(主所)로 내원, 진단적 검사결과 말초형 티 세포 림프종(PTCL, peripheral T cell lymphoma)으로 의심되며 환자와 보호자가 원하여 전원시킵니다.”

티 세포 림프종은 동양에서 발생빈도가 높고, 특히 고열과 말초혈액검사상 범혈구 감소증이 보일 때, 안 좋은 편이다. 치료는 일반적으로 중등급 림프종 치료에 따른다. 대부분의 환자는 원인 불명성 발열이라는 임상 진단 하에 그 원인을 알아내느라 여러 검사를 받다가 최종 진단에 이르는데 평균 1~3개월 걸린다. 그러나 경험 있는 의사가 환자를 처음 볼 때부터 의심을 가지고 검사를 하면 바로 진단이 가능하다.

그런데 D병원에서 시행한 검사결과는 간기능이 매우 나쁜 것으로 나왔고 점점 악화되는 중이었다. 말초혈액 전혈 검사상(CBC complete blood count: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혈색소, 분화된 백혈구 수 등을 확인하기 위한 검사로 CBC 결과만 잘 판독하면 혈액관련 질환 및 기타 질환을 거의 대부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음) 백혈구 수가 증가해 있었고, 혈소판은 감소되어 있었다.

응급실에서 검사결과 백혈구가 상당히 증가되어 있었고, 블래스트(blast:주로 백혈병에서 보이며, 감염 등으로 인하여 백혈병양 반응시도 보임)도 나왔다. 간기능은 조금 좋아진 상태였다.

환자는 병실에 입원, 정확한 진단을 하기 위하여 추가적인 검사를 시행했는데 그러는 동안 발열도 사라지고 전반적인 상태가 좋아졌으며 검사결과도 빌리루빈이 계속 떨어지는 추세였다. 간기능 및 혈액응고장애 정도를 반영해주는 검사결과도 계속 좋아지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환자의 정확한 진단은 여러 임상적인 상태와 검사결과를 종합해내려야 한다. 임상병리과의 골수 생체검사결과는 백혈병으로 나왔지만 그것만으로 진단을 확정지어서는 안된다. 왜냐 하면 감염으로 인하여 백혈구와 블래스트가 증가하는 백혈병양 반응도 임상병리과에서는 백혈병으로 진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백혈병과 백혈병양 반응은 부검을 해도 조직학적 검사로는 감별이 안된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는 환자의 전신 상태나 병의 경과과정, 다른 검사의 결과 등을 참고하여 종합적인 진단을 붙여야 한다. 한 가지 검사에 의존해서 진단을 붙이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이 환자를 담당한 스태프는 임상병리과의 검사결과에만 의존, 백혈병으로 진단했고 이와 관련한 치료를 당장 시작하려고 했다. 나는 이 환자의 담당 전임의에게 말했다.

“지금 이 환자의 진단은 불확실한 상태다. 만약 백혈병에 의하여 환자가 발열이 생겼고 간기능 등 여러 장기가 손상되었다면, 백혈병에 대한 치료는 현재까지 전혀 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백혈병은 점점 진행될 것이다. 그렇다면 환자의 증상 발열과 간기능 검사 등은 점점 악화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환자는 어떤가. 발열도 없어지고, 간기능 검사 등 다른 검사결과도 질병이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았느냐. 이러한 것들은 백혈병의 경과와는 전혀 맞지 않는 것 아니냐. 병의 진행경과를 보면 바이러스나 기타 감염으로 인하여 전신상태가 나빠졌고, 백혈병양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현재 그 정확한 원인은 무엇이었든지 간에 현재 병의 정점을 지나 회복기에 접어 들었을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지금은 환자를 조금 더 관찰해야 할 상태다.

환자의 전신상태나 질병의 자연경과 과정에 기반을 두고 치료해야지, 진단에만 의존,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진단에 대한 좋은 치료가 있다 하더라도 환자가 치료를 견딜 수 없을 상태라면 치료로 인하여 환자의 고통만 더 증가시키고, 죽음을 앞당길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환자의 진단이 100% 백혈병이라고 치자. 그렇게 가정하면 환자는 백혈병이 있는 상태에서 감염이 겹쳤을 것이다. 현재 감염이 좋아지고 있다지만 완전히 조절된 것은 아닌 상태다. 또한 간기능은 어떤가, 간기능도 치료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진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지금 백혈병 치료를 하면 항암제에 의하여 회복되고 있는 간 기능이 다시 악화, 간기능 부전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에 감염질환이 회복되고 있는 중이라면 항암제에 의하여 면역기능이 완전히 제거돼 감염이 다시 악화, 환자가 사망할 가능성도 크다. 현재 환자는 전신상태도, 간기능도 회복되어 가고 있으니 백혈병이라 하더라도 지금 당장 치료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지켜보고 회복된 뒤에 치료하는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금 이 환자에게 백혈병 치료를 하는 것은 살인 행위다.”

이 말을 들은 담당 전임의는 “지금 치료하는 것이 살인 행위라면 살인을 할 수는 없잖아. 백혈병을 치료하는 항암화학요법 제제를 내 손으로 쓰지 않겠다”며 내 의견에 공감을 표시했다. 그런데 전임의가 치료를 할 수 없다고 하는데 담당 스태프가 직접 항암화학요법제제를 의무기록지에 써 내일부터 치료를 시작하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내 귀에 들어왔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치료를 하면 좋아지던 환자가 곧 죽을 것이 불 보듯 뻔한데 그냥 보고 있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어린 환자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급히 혈액종양내과 과장을 찾아갔다.

“현재 병동에서 살인 행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말릴 사람은 과장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함께 가셔서 환자를 살펴본 뒤 대책을 세워 주십시오.”

이렇게 간절하게 말하니까 과장은 “한번 병동에 가보자”고 했다. 병동에 도착한 나와 과장은 환자와 검토했다. 과장은 환자와 의무기록지를 검토하고 난 뒤 “지금 치료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치료를 늦추고 좀 지켜보자고 담당스태프에게 이야기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놓여 자리를 떴다. 몇 시간 후 과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담당 스태프의 의견은 이 환자의 병명은 백혈병이기에 꼭 치료를 해야겠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과장은 “스태프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하니, 환자를 담당한 스태프에게 맡기자”고 말했다. 나도 더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후 그 환자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담당 전임의에게 물어보니 “치료 시작 후 며칠이 안되어 상태가 악화, 중환자실로 내려갔지만 곧 죽었다”고 말했다. 나는 마치 전기에 감염이 된 듯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오진으로 인하여 진단이 늦어진 사례

98년 9월경 경기도 분당의 J병원에서 한 환자는 당뇨병성 족부궤양으로 내분비내과에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환자는 입원 당시 흉부방사성 사진을 찍었다. 이후 족부궤양에 대하여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우측 경부에 림프절이 감지되어, 재차 흉부방사성 검사 후 조직을 떼내 세포학적 검사를 시행했는데 결과는 상피세포성 폐암으로 나왔다.

나는 처음 입원 당시 시행한 흉부방사성 사진을 검토해보았다. 당시의 사진에 벌써 림프절이 커진 것이 조금만 경험 있는 의사라면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요즈음은 진단방사선과도 두경부만 전문으로, 흉부만 전문으로, 복부만 전문으로, 근골격계만 전문으로 보는 식으로 세분되어 각각 자기 전문 부분만 보고 판독하는 실정이다. 이 환자의 흉부방사성 사진을 판독한 의사도 흉부만 전문으로 보는 진단방사선과 의사였다. 그러나 흉부만 전문으로 보는 방사선과 의사라도 어느 정도 경험만 있으면 볼 수 있을 만큼 커진 림프절을 정상으로 판독한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처음에 정확하게 판독했다면 폐암이라는 진단이 몇 달간 지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명백한 진단 방사선과 의사의 과실인 것이다.

올해 1월 서울 S병원에 입원했던 60대 남자 환자는 4개월 전 위장관 조영술(위장내 촬영)을 받은 후 담당 의사로부터 아무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지내다가 토혈로 분당의 J병원 응급실을 방문, 위내시경 검사를 했고 위암으로 진단 받았다. 이때는 벌써 위암이 간에 전이돼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여서 고식적 항암화학요법(완치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증상의 완화를 목적으로 하는 항암화학요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환자의 보호자는 4개월 전에 상부위장관 조영술을 받았을 때 위암이 없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위암이 생기느냐며 상부위장관 조영술을 시행한 병원에 가 당시의 검사기록을 확인해보았다. 당시 상부위장관 조영술 결과는 위의 체부에 궤양이 있는 것으로 나왔는데, 같은 위치에 위암이 있었다. 따라서 4개월 전 상부위장관 조영술시 발견된 위의 병변은 위암이었다.

이 병원 의사는 중대한 과실을 범한 것이다. 위에 궤양이 발견되었으면 환자의 나이와 궤양 위치가 체부라는 사실을 감안하여 위내시경검사를 시행, 조직검사를 하고, 악성 유무를 평가해야 했다. 설사 조직검사결과 위궤양으로 나왔다 하더라도 항궤양 치료를 4주간 시행 후 치료에 대한 반응의 여부를 평가하여, 반응이 없으면 위암을 의심, 재조직검사를 시행해야 한다.

위의 사례를 정리해보면 상부위장관 조영술로 충분히 진단할 수 있었던 위암을 의사의 과실로 진단 기회를 놓치고, 4개월이 지난 뒤에야 제대로 진단을 하게 된 것이다. 이때는 벌써 위암이 간으로 전이되어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4개월 전 진단을 제대로 했더라면 환자는 토혈과 같은 응급상황을 맞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근치적 수술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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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태 한국의료평가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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