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호

평화적 정권교체 이룬 아프리카 민주주의 꽃

  • 조주청

    입력2006-09-28 1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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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서는 역사상 가장 격렬한 살육전이 전개되고 있다. 15개국이 분쟁에 휘말려 피를 튀긴다. 종족, 영토, 종교 문제가 분쟁의 씨가 되기도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가장 보편적인 분쟁 원인은 권력의 칼을 한번 잡은 지도자가 하나같이 독재자가 되어 죽을 때까지 그 칼을 놓지 않으려는 데 있다.

    아프리카 서부도 예외없이 피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시에라리온은 지금도 내전으로 피를 흘리고 있고, 코트디부아르는 작년 말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대학생들의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치안 상태가 나쁘다는 나이지리아에서도 종교와 정치 문제가 뒤섞여 피를 뿌린다.

    사하라 사막을 종단하는 죽음의 자동차 경주 파리-다카르 랠리로 잘 알려진 다카르(Dakar)는 아프리카 대륙 서단에 자리잡은 세네갈(Senegal)의 수도다.

    작년 말, 우리 대사관저에 교민들이 모였다. 웃음꽃이 피어야 할 송년회인데도 모두가 침울한 표정이었다. 김대성(金大成) 대사가 말문을 열었다.

    “결전의 날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 이 난관을 헤쳐나갑시다.”



    2000년 2월27일에 20년 동안 정권을 잡고 있는 현 대통령 듀프(Diouf)와 야당 후보들의 대결구도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예정이었다.

    민주적인 선거로 야당 후보가 당선되어 여당 후보인 대통령이 순순히 정권을 넘겨준다는 것은 아프리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부정선거를 치르든,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든, 아니면 선거를 연기하든, 어떤 식으로라도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 빠질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내전 상태가 되면 경제는 급전직하하고 치안은 공백 상태가 된다. 머나먼 검은 땅에서 피땀 흘려 일궈 놓은 우리 교민들의 사업 기반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무엇보다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라이온수산의 이해진 사장, 나오미가발의 박용석 사장, 정부 파견 태권도 지도자 박익수 사범, 한인회장 양대석씨는 김대사와 이마를 맞대고 39가구 140여명인 우리 교민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비상계획을 세웠다. 부둣가에 위치, 해상 탈주가 용이한 나오미가발 공장이 유사시 집결 장소로 선정돼 비상식량까지 비축했다.

    비상연락망을 구축하고 김대성 대사는 일일이 교민들 사업장을 돌며 폭도들의 약탈에 대비한 방범 시설을 체크했다.

    마침내 ‘결전’의 날이 왔다. 결과는 현 대통령 듀프(65)가 1위를 했지만 과반수 획득에 실패했다. 3월19일 2차 투표가 긴장감 속에서 실시됐다. 예상을 뒤집고 1차 투표에서 2위를 했던 웨이드(Wade·74)가 압도적인 표차로 듀프를 눌러버렸다. 듀프는 측근들에게 둘러싸였다. 모두가 듀프의 명령 한마디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간, 선거에 이긴 웨이드는 다카르를 떠나 누가로 내려갔다. 듀프 대통령의 고향인 누가에 가서 선거에 진 아들 듀프의 늙은 어머니를 위로했다.

    다음날 다카르로 올라온 웨이드에게 기자들이 질문을 던지자 그는 “조용히 대통령의 전화만 기다린다”는 대답만 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강성파 측근들에 둘러싸였던 대통령 듀프는 살며시 빠져나왔다. 그리고 선거에서 이긴 그의 정적 웨이드에게 전화했다.

    “승리를 축하합니다.”

    아프리카에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뿜었다.

    선거에서 지고 깨끗하게 승복한 현 대통령 듀프, 그는 아프리카 민주주의에 큰 족적을 남긴 역사의 인물이 되었다. 우리 대사관저에서도 환호성이 터졌다. 가슴 죄던 김대성 대사는 술잔을 높이 들고 “세네갈 민주주의 만세”를 외쳤고, 우리 교민들은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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