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호

프로그램 개발에 푹 빠진 386 벤처기업가

  • 곽희자 자유기고가

    입력2006-10-04 1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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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5년 200만원을 쥐고 시작한 사업. 아직은 성공했다 할 수 없지만 성공할 가능성이 큰 중소기업인이라고 자부한다.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는 좌우명을 가지고 성공의 계단을 차분차분 오르고 있는 젊은 사장의 인생과 도전. 》
    90년대 중반 한 대학교수는 신문마다 매일같이 인터넷 기사가 큰 지면을 차지하는 걸 보고, ‘도대체 인터넷이 뭐기에 이렇게 많은 지면을 차지하느냐’며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후 자신이 직접 인터넷을 배워 이용하면서 ‘신문의 모든 지면을 인터넷 기사로 채워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터넷의 편리성과 위력에 폭 빠졌다고 했다. 알면 안 만큼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편리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주역의 자리에서 당당히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보인기술의 류호찬(37세) 사장. 그를 만나러 갔을 때 “전 아직 성공한 사람이 아닌데요”라며 멋쩍어했다. 이에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 찾아왔다”고 하자 “그건 맞는 말”이라며 활짝 웃었다. 류 사장은 현재 30명의 직원과 함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서초동 주택가에 자리한 회사는 1층과 4층 2개의 사무실을 빌려 1층에선 관리팀과 마케팅팀이, 4층에선 디자인팀과 개발팀이 일을 하고 있었다. 집중을 요하는 업무들이다 보니 사장실이 있는 4층 사무실은 사람이 많은데도 간간이 들리는 전화벨 소리 외엔 조용했다. 보인기술은 그동안 대용량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CD-ROM 타이틀 제작과 인터넷 서비스 기술을 개발해왔다. CD-ROM 타이틀 제작으로는 ‘두산 세계대백과’ ‘멀티미디어 북한백과’ 등 주로 대용량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것들을 제작해 필요한 정보를 손쉽고 빠르게 검색할 수 있도록 했다.

    류사장은 두산 세계대백과를 제작할 때는 두 달간 거의 하루 걸러 밤을 새우며 만들었다고 했다. 여기서 타이틀 제작은 단순히 타이틀 제작만이 아닌, 데이터를 배열하고, 검색까지 가능하게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힘이 드는데, 이용자들이 간편하게 느낄수록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은 일이 많은 것이다. 이와 함께 자체상품으로 7개에 달하는 CD-ROM도 제작해 판매를 해왔다. 그 대표적인 상품이 ‘대한민국현행법령 CD-ROM’ ‘대한민국 판례집 CD-ROM’ ‘민원사무서식 CD-ROM’ ‘의학논문 정보 CD-ROM’ 등이다.

    ‘대한민국현행법령 CD-ROM’의 경우 5만2000페이지에 달하는 대한민국 전체 법령을 한 장의 CD-ROM에 담고 하이퍼텍스트를 자동생성시키는 로직을 개발해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98년 정보통신부로부터 신소프트웨어 상품대상 멀티콘텐츠 부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인터넷 쪽으로는 95년 데이콤, 롯데와 함께 Cyber Shopping Mall 서비스를 개발해 큰 호응을 얻었는가 하면, 앞선 기술로 각종 기업체의 시스템 통합서비스를 구축해 그 기술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류사장이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에 뛰어든 것은 95년, 이 사업을 하기 전에 그는 선배가 운영하는 ㈜큐빅테크라는 캐디캠 (컴퓨터로 설계도면을 그려 공장에 있는 기계를 이용, 가공케 하는 프로그램) 소프트 개발 회사에서 3년간 근무했다.

    당시 이 회사는 20여명의 직원을 둔 탄탄한 기술력을 가진 회사로, 그는 개발부로 발령을 받았다. 이때 그는 컴퓨터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던 터라 회사에서 살다시피 하며 일 배우기에 매달렸다. 그는 프로그램을 배우고 개발을 하면서 매우 놀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세상의 새로운 변화의 추동력이 여기에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일도 나와 잘 맞았고, 전산 처리가 갖는 파워가 굉장히 큰 힘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이곳에 내 인생의 방향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돼 몸을 혹사하면서 일을 했다.”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

    이때 그가 개발한 것은 DNC((Distribute Numerical Control-가공데이터를 이용, 공작기계를 작동시키는 프로그램) 가공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을 그는 혼자서 6개월 동안 매달려 개발했다. 프로그램 개발에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통신 프로그램의 경우 프로그램만 짜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off-line)상에서 적용시켰을 때 되는 곳이 있고, 되지 않는 곳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수정해 나가는 작업이 매우 힘들었다. 통신 프로그램 개발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이 이해가 됐다.”

    이때 그는 개발한 프로그램을 다양한 통신기기에 적용시켜 보기 위해 한 공업고등학교의 넓은 공작실에서 혼자 밤늦게까지 작업하는데 자신이 그렇게 비참하고 처량하게 느껴질 수가 없더란다. 그러나 당시 이 제품이 일부에선 이미 납품이 되고, 영업부 쪽으로부터 개발을 독촉하는 압박이 심했기 때문에 이런 감상에 오래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6개월 만에 프로그램 개발을 마쳤을 때 그는 보람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답답함도 느꼈다.

    “그 당시 지방에 프로그램을 깔아주러 가면 대부분의 기업주들이 이 소프트웨어가 모든 걸 해결해 주는 것으로 알고 ‘일단 몇 명 자를 수 있다’는 인원절감부터 생각하고 시스템을 도입하자마자 숙련된 기술자들을 무조건 내보냈다. 원래 전산화의 목적이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작업을 단순화하는 것인데 인원절감만 생각하고 숙련공들을 내보내니 기술 발전이 없었다.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면 전산을 통해서 직원들을 재교육하고 이들에게 높은 수준의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 기업의 전체적인 활력을 높여야 하는데 그런 분위기가 안 돼 답답했다.”

    이런 구조가 되지 않다 보니 현장에 시스템을 세팅하러 간 류사장은 해고의 압박을 받는 기술자들로부터 달갑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고, 도움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류호찬 사장은 소프트 개발에 대한 전문지식을 체득해 95년 인포페이스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여기서 잠깐 류호찬 사장의 전력을 짚어보면 그는 63년 경상북도 문경에서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고, 교직생활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세 살 때 상경, 줄곧 서울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책읽기를 좋아해 그의 아버지(서울 중앙여중 교장 재직중 91년 타계)는 자신이 못 이룬 학문의 길을 아들이 걸어주길 바랐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과학 서적을 많이 읽었어요.

    이걸 보고 아버지는 좋아하시면서 실험 기구도 많이 사다주셨는데, 뒤에 가서 매일 청계천 전자상가들을 쫓아다니며 라디오 부품들을 사다 조립이나 하고 공부는 하지 않자, 하루는 관련 서적들을 모두 압수하고 더 이상 못하게 했어요.”

    무엇에든 한번 빠지면 깊이 빠지는 성격인 그는 당시 공부도 한번 하면 몰두했기에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내내 성적이 상위권이었다.

    200만원으로 사업 시작한 운동권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하고 그는 서울대 수학과를 진학했다. 물리를 좋아했던 그는 대학원에서 이론물리 쪽으로 공부할 계획을 세웠으나 뒤에 운동권에 가입하고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이 꿈은 멀어졌다. 대학 4학년 때 자연과학대학 학생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운동의 전면에 나선 그는 85년 5월 삼민투위(민중, 민족, 민주) 사건으로 구속되어 국가보안법과 집시법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민주당 김민석 의원도 이때 함께 구속되었다고 한다. 감옥에 있으면서 그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었다.

    87년 6·29선언을 며칠 앞둔 6월23일 그는 만기 출소해 잠깐 한겨레사 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다가, 민청련으로 자리를 옮겨 이곳에서 정책위원으로 3년간 일했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활동으론 생활이 되지 않아 취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이때 취직하는 것에 대해 선배들이 느껴야 했던 가책이라든가 갈등 같은 것은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들어간 곳이 바로 선배가 운영하던 (주)큐빅테크였고, 여기서 3년간 일을 배우고 있을 때 멀티미디어 쪽에서 일하던 후배로부터 함께 CD-ROM 타이틀 제작을 해보자는 제의가 들어와 95년 회사를 차리기로 했다.

    “회사를 차리려고 보니까 수중에 자금이라곤 200만원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부모님과 장인으로부터 2억원을 지원받아 강남역 근처에 8평 규모의 사무실을 얻고 직원 3명을 데리고 인포페이스라는 회사를 차렸어요.” 업무를 프로그램 부문과 데이터 가공, 디자인 부문으로 나누어 프로그램 부문은 류사장이 맡았지만 문제는 영업이었다.

    “CD-ROM 제작에 있어 기술력은 뒷받침이 되는데, 내 자신이 개발자 출신이다 보니 영업에 대한 노하우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먼저 우리의 기술력을 보여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 샘플을 만들어 시연했다. 반응은 상당히 좋았다.”

    이렇게 먼저 이름을 알리고 나니 하나둘 일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글과 컴퓨터’ ‘정보시대’ ‘상식백과’ 등 주로 대용량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타이틀을 제작했다. 이때 류사장은 CD 타이틀을 멀티미디어적 요소를 많이 가미해 재미있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많은 데이터 속에서 사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손쉽고 빠르게 찾아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빠른 검색 처리를 주요 장점으로 내세웠다. 이러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용역도 늘어났다.

    아무튼 이렇게 사업이 한창 번창해갈 때 인터넷을 사업화해보겠다는 친구가 찾아와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혼자 하는 것보다 힘을 합하면 좀더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96년 친구가 운영하는 보아테크사와 류사장의 인포페이스를 합쳐, 보인인터랙티브사를 법인으로 등록했다(98년 ㈜보인기술로 회사명 변경).

    그러나 이 친구와는 사업 방향이 달라 1년간 함께 일하고 헤어졌다. 회사를 합하고 나니 직원은 모두 20여명으로 늘어났다. 이때 멀티미디어 쪽으로는 계속 대용량 데이터 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CD-ROM 타이틀 제작을 하며, 인터넷 쪽으로는 컬처 코리아 웹사이트를 만들어 문화 게시판, 갤러리, 한국의 전통문화, 세계 영화기행 등을 비롯해 지하철 문화정보와 문화 뉴스를 함께 올렸다.

    한국의 전통문화 메뉴에는 전통음악의 세계와 무예의 세계를 각각 만들어 국악과 택견에 대한 자료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네티즌들의 호응이 좋았던 지하철 문화 정보에서는 지하철 역세권 문화지도를 만들어 지도상에서 지하철역을 클릭하면 역 주변 지도가 나오게 하고 다시 원하는 장소를 클릭하면 해당 장소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알 수 있게 했다.

    류호찬 사장은 합병을 한 96년에 매우 의욕적으로 일했다. 정보통신부 주관으로 한 정보화촉진기금 사업자로 선정돼 8억원의 국가 지원금을 받아 ‘CATV망을 이용한 멀티미디어, 인터넷 서비스 기술개발’과 ‘멀티미디어 콘텐츠 자동생성기의 개발과 이와 연동된 관리/검색 시스템의 개발’ 등을 해냈다. 그런가 하면 이때 용역만 받아서는 회사 운영도 어려우니 탄탄한 기업으로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자체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생각하고 상품 개발에도 적극 나섰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바로 ‘대한민국 현행법령 CD-ROM’이다.

    96년에 개발에 들어가 97년 2월 출시까지 꼬박 1년이 걸린 이 CD-ROM은 당시 경쟁 상품이 있었지만 검색속도가 월등히 빠른 데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법도 간편하게 만들어 이용자들의 반응이 타제품보다 월등히 좋았다. 그리고 법조문 안에서 참조하는 관련법령과 별표서식을 10만 여건의 하이퍼링크(밑줄 그어진 곳에 마우스를 누르면 관련 정보를 보여주는 기능)로 연결해 편리하게 이용하게 하고, 법조문과 별표서식을 보조 창을 이용해 한 화면에서 동시에 비교해가며 참조할 수 있도록 했다.

    류호찬 사장은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법률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어가고 있는데도 마땅한 데이터베이스가 없는 데 착안해 이 상품을 만들었는데 나오자마자 반향을 일으켜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상품을 통해 얻은 기술력이라고 한다. 이 상품개발로 데이터 가공 프로세서도 전체적으로 자동화됐다. 그런가 하면 자동화하는 과정에 법조문의 오류도 발견하게 되었다.

    “제품을 다 만들어 실험을 하는 단계에서 하이퍼링크를 하는데 에러가 많이 발생했다. 처음엔 우리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는 줄 알고 찾아봤더니 법령집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이미 수정되거나 삭제된 법령이 참조하는 법에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태에서 계속 개정이 되고 있었다.”

    이 CD-ROM 개발로 이런 문제 항목들에 대한 리스트가 일괄적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당시 만들어진 리스트는 조 단위까지만 한 것으로 여기까지만 하는데도 수백건의 오류가 발생했는데, 항, 목, 단까지 찾으면 문제 법령은 수없이 많을 거라고 류사장은 말했다. 당시 이 문제가 한 신문에 보도되면서 법제처가 발칵 뒤집혔단다.

    “어느 날 법제처로부터 이런 식으로 기사화 하면 어쩌냐며 한번 보자고 전화가 왔다. 그래서 만난 자리에서 기사와 우리는 상관없고, 자동화 과정에 이것이 밝혀졌다고 하자 오해를 풀고 법령 정비를 하겠다며 오류가 발생한 리스트를 받아 갔다.”

    그러나 이 작업은 예산도 많이 드는 데다, 법제처만 나서서 되는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법을 다시 제정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손조차 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란다. 이 법령 CD-ROM은 그런대로 판매도 많이 되었다. 지난해 광복절에는 홍보 차원에서 10만장(시가 30억원 상당)을 무료 배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만든 ‘HS 수출입정보 CD’는 실패했다. 이는 시장조사도 없이 막연히 ‘이것 괜찮겠다’ 생각하고 만들었다가 실패한 경우.

    “많은 벤처기업들이 초기에 상품을 기획해서 개발하면 실패할 확률이 많은데, 이것은 바로 충분한 시장조사 없이 참신성만 가지고 상품을 만들어 팔려고 하기 때문이다. 현재 많은 벤처기업들이 이런 시장조사를 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해 문제다. 이와 함께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는 대부분이 상품 개발에만 주력하지 상품 개발 이후 시장진입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상품을 만들어 놓고도 마케팅 비용이 없어 사장시키는 경우가 많다.”

    보인기술은 자체 상품 CD-ROM을 지금까지 7개 만들었는데 ‘HS 수출입 정보 CD-ROM’을 제외한 ‘대한민국 판례 CD’ ‘의학논문 정보 CD’ ‘민원 사무서식 CD’ 등은 좋은 반응을 얻었다. ‘민원사무서식 CD’는 지난해 도봉구청과 함께 개발한 것으로 서울시를 비롯해 각 구청과 군청 등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전국 250여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사용중인 4300여쪽 분량의 각종 민원사무서식 2000여건이 모두 전산화돼 각급 자치 단체에 업무 전산화와 예산절감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이 CD롬은 모든 공공기관은 물론 개인용 PC에서도 사용이 가능토록 구성했으며 자치단체별 서식에 맞게 수정 편집 및 저장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민국현행법령 CD롬 전체를 함께 수록해 민원서식의 근거법령까지 동시에 검색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민원서식은 서울시에만도 500카피가 들어갔다. 의학논문 정보 CD의 경우는 전국 의과대학 도서관에 거의 들어갔으며. 대한민국 판례 CD도 반응이 좋아 처음 출시됐을 때 하루 3000만원의 판매율을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자체 상품이 개발돼 판매 수익이 오르고, 용역 개발 부문에서도 데이터베이스와 인터넷을 연동시키는 솔루션으로 시스템을 개념화해 적용한 기술이 인정받으면서 SI(Systems Integraion-시스템 통합서비스) 사업도 많이 하게 되었다. 이렇게 활발하게 기업이 운영되면서 매년 매출이 2배 이상 늘어났다. 이 당시 직원은 30여명으로 늘어났다.

    이렇게 96년 한 해는 탄탄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제품 개발에 힘썼고, 97년에는 제품을 상품화해 판매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이렇게 한창 사업이 번창할 무렵 IMF가 터져 보인기술도 한 차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용역을 준 회사들로부터 계약이 모두 취소되고, 시장 자체가 꽁꽁 얼어붙어 상품이 판매되지 않아 직원들 월급도 제대로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먼저 인원을 절반 정도로 줄이고 자체 상품을 최대한 안정화시켜 판매를 확대했다. 당시 법령 CD의 경우 ‘한글과 컴퓨터사’가 총판을 맡아 판매하며 회원제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들 회원들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이들 관리와 함께 상품 광고를 통해 판매를 강화해 나갔다. 이 전략이 먹혀 들고, 일단 구조조정이 된 상태라 상품판매로 어느 정도 회사 유지는 가능케 되었다.”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

    이때 신규상품 개발은 거의 하지 못했다. 이렇게 몇 개월을 어렵게 지내고 있을 때 김대중 대통령이 IMF를 돌파하고 실업자를 구제할 유일한 길은 벤처기업육성이라고 들고나오면서 벤처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과 함께 코스닥이 만들어지고 서서히 시장이 회복세를 타기 시작했다.

    보인기술은 지난해 상반기에 인력을 보강하고 내부 질서 체계를 세우는 내부진영 정비에 주력했다. 그러다 중반기부터 본격적인 신규상품 개발에 들어갔다. 현재 보인기술이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B2B 솔루션(Business to Business-기업간 거래). 기존 HTML을 확장한 SGML(standand generalized markup language)/ XML(extended markup langu age)의 기반기술을 인터넷에 적용시켜 B2B(business to business -기업간 거래)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보인기술의 매출은 10억원, 올해 들어서면서 30억원을 돌파했고, B2B가 개발되는 올해 말쯤엔 70억원 정도가 될 것이라고 류사장은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소프트 사업은 제조업과 달리 사람의 머리와 손끝에 모든 것이 달려 있기 때문에 개인이 가지고 있는 지적인 자산들을 어떻게 끌어내고 회사의 필요 업무에 집중시키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사람 관리가 가장 어렵다고 했다.

    그는 규모가 작은 회사일수록 개인 의존도가 높아 개인이 문제가 됐을 때 회사에 미치는 영향과 타격이 큰 만큼 소규모 벤처기업들이 개개인에 의존하는 시스템이 아닌 조직체계에 의거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그만두고 나가도 바로 보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직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먼저 회사 내 직원 개개인과 파트너십을 만들어내고, 회사의 이익이 창출됐을 때 자기 능력에 따라 가져갈 수 있음을 최대한 부각시켜, 이러한 것들을 중심으로 비전을 공유해 나가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기본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직원들에게 능력에 따라 연봉제를 주고 있는데 다른 회사에 비해 적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의 연봉은 5000만원이라고 한다.

    기술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업이 가능하다 생각하고 누구나 쉽게 뛰어드는 벤처사업, 하루에도 수십개의 벤처기업이 문을 열고 닫는다. 이에 대해 류호찬 사장은 “기술력 못지않게 안정된 기업운영의 틀을 갖추는 것도 중요한데 대부분의 벤처기업이 이런 준비 없이 기술과 아이디어만 가지고 무조건 뛰어들었다 쉽게 도태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 벤처사업은 처음부터 경쟁관계에 돌입하기 때문에 탄탄한 기본기술과 남들보다 우위에 선 앞선 기술을 얻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함도 강조했다. 무수한 세포분열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벤처기업. 이중엔 시류를 좇아 한탕주의식으로 반짝이는 아이디어 하나 들고 치고 들어왔다 주가가 오르면 빠지는 기업도 있어 문제다. 류사장은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B2B 사업에조차 이런 마인드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어 자중이 요구된다고 했다.

    그는 내년이면 코스닥에 들어가고 개발될 B2B 솔루션으로 미국에 진출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지난달 시카고 박람회에 가서 보니까, 지금 우리가 개발하려고 하는 것이 개발되면 미국에서도 기죽지 않겠더라. 개발이 완료되면 내년 초 먼저 미국에 현지법인을 세워 판로를 뚫은 후 동남아로 진출할 생각이다. 잘 될 것으로 본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실패를 거의 맛보지 않았다는 류호찬 사장, 그는 어린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무슨 일이든 목표를 세워 하도록 가르침을 받아 지금도 일을 할 때면 목표를 세워놓고 도전한단다. 지금까지 이렇게 목표를 세운 일을 이루지 못한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이유는 그 일을 하는 동안에는 오직 그 일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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