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호

해체와 통합 거쳐 다원성·대중성으로

  • 장일범 음악평론가

    입력2006-10-04 1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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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에 만들어지고 있는 음악들은 전통적 범주로는 분류하기가 어렵다. 장르를 넘나들고 전혀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한데다가, 복고주의적 성향마저 띠기 때문이다. 》
    21 세기를 맞은 현대음악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졌다. 청중들의 귀도 어떠한 음악이나 새로운 사운드에도 충격을 받지 않을 만큼 단련되어 있다.

    현대에 만들어지고 있는 음악들은 전통적인 음악의 범주로 분류되기가 어렵다. 장르의 구분이 모호하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이질적 요소들이 결합되어 우리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일례로 새로운 스타일로 레코딩된 그레고리오 성가가 수백만 장씩이나 판매되고 록 싱어가 오라토리오를 발표해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20세기 현대음악이 흘러온 방향이 전위성·추상성·엘리트 중심주의의 특징을 보였다면 오늘의 음악은 다원성·대중성·비결정성·간결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음악을 소비하는 대중의 취향도 다양해져서 특정 이념이나 기법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 현재의 흐름이다.

    오늘의 음악은 복고주의적인 신낭만주의 음악이 커다란 조류를 형성하고 있으며 거기에 기존 체제의 음악에 식상한 음악인들과 음악 팬들에 의해 제3세계 각국의 민속음악이 담긴 ‘월드 뮤직’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존 코릴리아노:대중과 함께하는 철저한 대중주의자



    최근 화제의 영화 ‘레드 바이올린’의 사운드 트랙을 맡아 화려한 작곡 세계를 보여주며 아카데미상 영화음악상을 수상한 이탈리아계 미국인 존 코릴리아노(John Corigliano).

    1999년의 몬트리올 경매장, 17세기 이탈리아 장인 부조티에 의한 탄생, 18세기 오스트리아 신동소년의 돌연한 죽음, 19세기 옥스퍼드에서 펼쳐지는 연주와 섹스의 즉흥 2중주, 20세기 상하이 격동의 문화혁명…. 코릴리아노는 3세기를 아우르는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문화가 녹아 있는 ‘레드 바이올린’의 여정과 마술같이 얽혀 있는 비밀들을 음악으로 작곡해낼 수 있는 그런 뛰어난 작곡가다.

    코릴리아노는 지나친 지적 권위주의와 아카데미즘 때문에 현대음악을 멀리하는 일반 청중이 즐겨 감상할 수 있는 음악을 작곡한다. “청중은 돈을 지불하고 음악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청중이 공부를 하고 와야 한다면, 돈은 청중이 지불하는 게 아니라 작곡가가 지불해야 한다. 작곡가의 음악을 공부해 주었으니까”라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철저히 대중적인 현대음악 작곡가다.

    그의 첫번째 성공은 1964년에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이탈리아 스폴레토 페스티벌에서 창작상을 받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후 그가 12년 만에 작곡한 오페라 ‘바스티유의 유령’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역사상 24년 만에 현존 작곡가가 작곡한 오페라가 무대에 오르는 쾌거를 낳았다.

    코릴리아노는 상복이 많은 작곡가다. 또 작곡으로만 자신의 생활을 꾸려가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1991년엔 클래식 음악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로마이어상을 받았으며, 같은해 에이즈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상실감·분노·절망감 같은 정서를 표현한 ‘교향곡 1번’으로 그래미상에서 현대음악과 관현악 부문상을 받았다. 교향곡 1번은 발표되자마자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켜 많은 나라에서 연주 요청이 쇄도했으며 캐슬린 포신의 안무로 밀워키 발레단이 무용으로 만들어 공연하기도 했다. 이 곡으로 미국 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된 코릴리아노는 1997년엔 그래미상 클래식 부문을 휩쓸어버렸다. ‘교향곡 1번’과 현악 4중주곡 ‘고별’로 ‘올해의 음반상’ ‘올해의 현대 작곡상’ ‘올해의 실내악 연주상’ 3관왕이 된 것이다.

    코릴리아노는 정열적이면서 사색적이고 예민한 감성을 곡을 통해 표출한다.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그는 그의 음악 안에서 이런 모든 호기심과 지식과 애정을 때로는 슬픔으로 때로는 유머로 표출해낸다.

    “요즘같이 녹음 기술이 발달한 시대엔 사람들이 연주회장에 음악만 들으러 오게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연주회장에 온 청중에게 단지 음악만이 아닌 그 무엇에 대한 충족감을 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현대음악이 음악인들, 연주가들을 위한 음악이 돼버린 것이 청중이 우리 시대의 음악을 멀리했던 이유라고 설명한다.

    토마스 아데:음악사를 바꿀 21세기 모차르트

    토마스 아데(Thomas Ade). 요즘 세계 음악계는 이 30세가 채 안 된 젊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지휘자를 주목하고 있다.

    1993년 22세의 나이로 런던에서 리사이틀을 연 이후 영국 음악계의 중심으로 우뚝 선 이 청년은 현재 올드버러 페스티벌의 음악감독, 버밍엄 현대음악 그룹의 음악감독, 왕립 음악아카데미의 교수로 활동하면서 피아노 연주, 작곡, 지휘를 하고 있다. 이렇게 바로크, 고전과 낭만 시대의 천재들처럼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활약하는 그의 독창성과 음악성은 영국인들이 모차르트·베토벤·퍼셀·브리튼과 비교하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다.

    1989년 BBC의 ‘올해의 음악가’ 부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피아니스트로서 두각을 나타낸 아데는 점차 작곡에 무게를 두고 1990년 첫 작품인 5개의 엘리어트 심포니를 작곡하게 된다. 아데의 대표 작품은 ‘살아 있는 장난감(Living Toys)’이다. 올리버 크누센과 협연한 런던 초연 이후 급속하게 비평가의 흥미와 갈채를 받은 이 작품은 스트라스부르·베니스·파리·뉴욕·도쿄 등 세계 50개 도시에서 연주됐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장난감’은 성공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알메이다 오페라가 첼튼햄 페스티벌에서 처음 무대에 올린 아데의 1995년작 오페라 ‘화장한 그녀의 얼굴’은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면서 찬사를 받는다. “찬란한 창작의 성취” “천부의 재능을 지닌 작곡가에 의한 찬란한 오페라” “팝음악과 쉽게 접목시킬 수 있는 진정 새로운 재능을 지닌 작곡가” “타고난 대가임을 선언한 강인한 생동력”…. 이 오페라는 다시 EMI를 통해 CD로 발매되어 클래식 팬들의 사랑을 받는다. 이어 아데는 1997년 5월과 1998년 2월에 각각 ‘라이프 스토리’와 ‘살아 있는 인형들’ 두 앨범을 발표,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로 우뚝 서게 되었으며 1998년에는 그라모폰 어워드 ‘에디터의 선택’ 대상을 수상한다. 아데는 그의 최초 대규모 오케스트라곡인 ‘아쉴라’에서 또다시 진가를 발휘한다. 1997년 10월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버밍엄 심포니와 초연한 이 곡은 현재도 유럽 곳곳에서 승전보를 타전중이다.

    아데는 현재까지 모두 26개의 작품을 완성했는데 이 작품들로 유명한 음악대상들을 석권했다. 현재 29세의 토마스 아데는 활기 찬 영국무대 또는 영국 음악시장에서 불가사의한 거물로 성장했으며 현재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로 떠오른 것이다.

    존 아담스:미국적 음악요소로 세계 오페라 제패

    존 아담스(John Adams)는 20세기 후반 오페라 작곡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미국 작곡가다. 그의 오페라 ‘중국의 닉슨’과 ‘클링호퍼의 죽음’은 우리 시대에 작곡된 오페라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작품들이다. 초연 시에 모택동의 부인 강청도 관람했던 ‘중국의 닉슨’에는 닉슨·모택동·주은래·강청 그리고 헨리 키신저가 주요인물로 등장해 동양과 서양의 불가능한 만남에 관해 노래하고 있다.

    특히 1993년 현대 오페라 부문 디아파종상을 수상한 ‘클링호퍼의 죽음’은 시적 열정으로 오케스트라의 풍요로움과 성악의 아름다움을 포착해냈다.

    그는 세계 음악계에서 ‘새로운 현대 음악사조’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대표적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미니멀리즘의 후계자이면서 동시에 바그너·시벨리우스·브루크너 등 대규모 낭만주의 교향곡들의 열려한 숭배자인 아담스는 리듬의 힘과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이 주조를 이루는, 아주 독창적인 음악을 창조해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대부분의 무조음악보다 훨씬 새롭고 역동적이며 설득력이 있다. 그의 음악의 예술적 특성은 무겁고 심각한 작품에 밝고 화려한 면을 갖고 있는 아이러니에 있다. 음악의 민족성에 관심을 보여왔고 자신의 조국인 미국의 음악, 즉 재즈·록·솔·가스펠적인 요소를 포함한 미국적인 악센트와 아메리카니즘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멀리서 찾는 대신에 모든 것을 홈그라운드에서 찾아냈다.

    크 로노스 쿼텟(Kronos Quartet)은 음악예술의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 모두에 마음을 열고 우리를 미래로 인도하는 악단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초연하고 작곡가에게 새로운 곡을 위촉해서 바로 ‘오늘’의 음악을 들려준다. 창단한 해인 1973년부터 그들을 위해 작곡되거나 편곡된 작품이 무려 400여 곡에 이르니 모차르트·베토벤·슈베르트·브람스의 4중주곡을 모두 합친 것보다 두 배 이상이나 많은 숫자다.

    4중주단이지만 전통적인 클래식 현악 4중주 레퍼토리는 거의 연주하지 않는다. 중세 수녀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음악에서 기욤 드 마쇼의 르네상스 음악 같은 고음악에서부터 쇼스타코비치·베베른·존 케이지·탄둔·슈니트케·볼프강 림·필립 글래스·실베스트로프·진은숙에 이르는 20세기 현대음악, 그리고 제임스 브라운·척 베리의 리듬 앤드 블루스, 마일스 데이비스·빌 에반스·존 콜트레인 같은 재즈, 지미 헨드릭스의 록과 존 레논의 팝 그리고 컨트리 음악에 이르는, 폭넓은 장르의 음악을 자신들의 용광로에 녹여 표출하는 악단이다. 뿐만 아니다. 이들은 숨어 있는 무명의 현대작곡가 발굴에 매우 적극적이다.

    크로노스의 미덕 가운데 중요한 것 하나는, 일반인들의 현대음악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을 가죽바지에 장화 등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무대의상과 무대배경 그리고 음악연주를 통해 극복해낸다는 것이다. 봐서 즐겁고 들어서 기쁜 ‘즐거운 현대음악’의 개념을 크로노스는 만들어내고 있다. 파격과 재기발랄함이 있으나 ‘현대음악의 구도자’라는 별명답게 작업중심은 어디까지나 진지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

    최근 LG 아트홀 개관 기념 실내악 축제에 초대되기도 했던 크로노스 쿼텟은 그들 스스로 음악 문화를 주도하고 개척한다는 점에서 21세기에도 주목할 만한 연주자들이다.

    류이치 사카모토:폭넓은 관심으로 다양한 음악 유행 창조

    배 우이자 모델·작가 그리고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다양한 예술 영역에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는 전천후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

    그는 ‘감각의 제국’으로 유명한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사카모토 자신이 직접 출연하고 영화음악도 만들었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1983),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1987) ‘마지막 사랑’(1991) ‘리틀 붓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스네이크 아이즈’(1998) 그리고 가장 최근에 국내에서 개봉된 일본 영화 ‘철도원’(1999)의 영화음악을 통해 대중들과 끊임없이 만나고 있다. 사카모토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 사운드 트랙으로 1988년 아카데미상, 골든글로브 그리고 그래미상을 동양음악가로는 처음으로 거머쥔 주인공이며 여세를 몰아 뉴욕·LA 영국의 영화비평가 협회상까지 휩쓸었다.

    그의 음악에는 난해하고 쉬운 음악, 유럽음악과 동양음악, 현대음악과 과거음악이 복잡하게 섞여 있다. 도쿄 국립예술대학을 졸업한 뒤 대학 시절 심취했던 전자음악과 민속음악에 대한 관심을 고도로 전문화해서 1978년에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MO)라는 테크노 악단을 결성, 일본의 테크노 음악을 이끌어갔다. YMO가 발표한 11장의 앨범은 거의 밀리언 셀러가 되었다. 백남준과도 작업을 같이했을 정도로 실험적인 음악에 관심이 있고, 독일 그룹 크라프트베르크와 함께 테크노음악 활동도 했을 만큼 여러 방면에 관심이 많은 팔방미인이라서 그의 스타일을 딱 꼬집어서 말하기는 힘들다. 최근에는 ‘불협화음(Discord)’이라는 클래식 앨범과, 20년간의 숙원이던 피아노 솔로앨범 BTTB(Back to the Basic)를 발표해 역시 대단한 인기를 누린다. 이 BTTB앨범에서 사카모토는 뉴에이지풍의 음악에서 피아노 현에 다른 물체를 끼워 연주하는 프리페어드 피아노 등 독특한 방식으로 접근한 실험적인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성을 선보였다.

    시대와 국경, 그리고 음악의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늘 열정적인 호흡으로 강렬한 이미지의 파장을 선사하는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 하지만 그에게서는 일본 내음이 물씬 풍긴다. 그는 일본풍 음악의 국제화에 성공한 인물인 것이다. 최근 내한 공연을 통해 젊은층을 감동시키며 나이먹지 않는 감성의 연주자임을 보여준 사카모토가 또 어떤 새로운 예술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윈턴 마살리스:재즈의 르네상스를 불러온 ‘21세기의 스윙’

    재 즈는 1990년대에 들어와서야 미국 음악에 클래식과 함께 하나의 예술로서 당당히 자리를 굳혔다. 특히 1991년에 시작해서 지금도 매주 화요일에 열리는 링컨 센터 재즈 프로그램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사실은 높아진 재즈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에 제2의 재즈 부흥기를 가져온, 아니 전세계에 재즈 부흥기를 가져온 주인공이 바로 윈턴 마살리스(Wynton Marsalis)다.

    현존하는 트럼펫 주자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연주자인 윈턴은 클래식과 재즈 부문 트럼펫 통합 챔피언이라고 할 수 있다.

    윈턴은 재즈 가문인 마살리스 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엘리스는 피아니스트이고 형 브랜포드는 테너 색소폰 주자다. 윈턴은 줄리어드 음악학교를 거쳐 아트 블레이키의 재즈 메신저스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재즈와 클래식 양쪽에서 수차례 그래미상을 수상하고 90년대 이후에는 그의 링컨 센터 재즈 밴드를 이끌고 전세계를 순회하면서 재즈의 전령사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1991년에 윈턴은 세계적인 예술의 전당인 링컨 센터 재즈 프로그램의 음악감독으로 취임, 대규모 청중을 동원해서 클럽 중심의 소규모 재즈에 익숙하던 청중의 패턴을 바꾸어 놓았다. 이 프로그램은 해가 갈수록 인기를 모아 척박했던 재즈 풍토에 일대 변화를 준 계기가 되었다.

    클래식적인, 우아하고 화려한 톤과 감각에만 의존하지 않는 그의 지적인 플레이는 재즈의 열정과 실내악적인 면을 두루 포괄한다. 천재적인 재능에 넘치는 의욕을 겸비, 거듭되는 녹음과 공연을 통해서 기량을 보여주는 윈턴은 1992년 발레 모음곡 ‘시티 무브먼트’, 1996년 발레 모음곡 ‘점프 스타트와 재즈’를 통해 듀크 엘링턴의 뒤를 잇는 재즈 작곡가로서 확고히 자리잡았다. 1995년에 링컨 센터 재즈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한 재즈 오라토리오 ‘들판에 뿌려진 피’로 재즈 음악인 사상 처음으로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요즘 윈턴 마살리스의 행보는 그 어느 때보다 숨가쁘고 다채롭다. 듀크 엘링턴 탄생 100주년 기념 앨범 제작과 1999~2000프로젝트로 7장짜리 연작 앨범 ‘21세기를 향한 스윙’을 속속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즈의 미래를 늘 진지하게 생각하는 몇 안 되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인 마살리스에게 이 ‘21세기’ 앨범은 결코 거창한 제목이 아니다. 재즈사를 새로 쓰는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앞으로도 주목된다.

    전 통을 벗어난 파격적인 연주 복장과 펑크 머리로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 고전 음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젤 케네디(Nigel Kennedy). 그는 연주에서건 스타일에서건 어디에서나 튀는 사람이다.

    6년 전 클래식 음악계에서 잠시 안식년을 가지겠다고 선언하기 전에 이 바이올리니스트는 베스트 셀러였던 비발디의 ‘사계’ 앨범과 최고의 예술적 연주 중 하나로 손꼽히는 엘가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통해 세계 정상을 정복했다.

    클래식 바이올린계의 록커 나이젤 케네디는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에게서 받은 영향을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앨범에서 차용해 ‘케네디 익스피리언스’라는 앨범으로 내놓았다. 자신의 바이올린으로 헨드릭스의 록 음악을 뜨겁게 연주한 것이다. 그는 클래식 바이올린으로 지미 헨드릭스를 연주했고 또 이 곡들은 케네디의 미국 순회 공연 레퍼토리로 당당히 선택됐다. 이 앨범에서도 볼 수 있듯 나이젤 케네디는 아무도 실행하지 못하는 아이디어들을 도발적으로 무대 위에 올려놓고 스스로 심판을 받는다. “예술가는 남을 흉내내기보다는 예술적인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면서. 케네디는 스스로 개성적인 상품으로 자신을 만들어놓는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다.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과 재즈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그라펠리에게서 영향을 받고 또 그 영향들을 뛰어넘은 이 괴짜 바이올리니스트는 클래식 콘서트와 재즈, 록 간의 균형을 맞춰가면서 여전히 자신의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그는 비평가들을 적당히 놀리면서 즐거워한다. 이제는 이름도 그냥 케네디로 바꾸었다. 그래서 콘서트에서나 음반에서 모두 ‘케네디’라고만 불린다.

    늘 새로운 실험에 몰두하는 케네디는 록을 하고 싶은 마음에 기타와 드럼 앙상블을 만들어 1996년 ‘카프카’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2년 전에는 첼리스트 린 해럴과 함께 듀오 연주회를 갖고 함께 역사상 처음으로 바이올린과 첼로로만 연주하는 희귀한 레코딩을 했는데 린 해럴로부터 “지금까지 들어본 어떤 것보다 변칙적인 언어”로 평가받았다.

    클래식 연주자는 꼭 콘서트 홀에서 연주해야 한다는 통념에서 벗어나 지미 헨드릭스의 작품을 동네 퍼블릭 바에서도, 150여 석짜리 작은 홀에서도 연주하는 등 새로운 청중을 만나기 위한 시도들을 펼쳤다.

    바흐도 연주하고 지미 헨드릭스도 연주하는 케네디. 돈 키호테처럼 상상을 불허하게 만드는 그만의 놀랍고도 재미있는 세계가 앞으로도 변함없이 펼쳐질 것이다.

    황성호:컴퓨터 음악의 국가대표

    한 국 컴퓨터 음악의 선두주자는 작곡가 황성호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모태가 된 작곡동인 제3세대와 전자음악 동인 뎐롱회의 창립 멤버로 창작활동을 시작한 그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컴퓨터 음악, 전자음악과 어쿠스틱 음악 분야에 걸쳐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작곡가 중 한 명이다.

    KBS·MBC·국립국악원·국립합창단·유니버시아드 조직위·한국 음협 등의 위촉으로 실내악은 물론 관현악·합창·국악 실내악곡 등 다채로운 작품들을 선보인 그는 1980년 전자음악연구회를 시작으로 뎐롱회 등 한국 전자음악에서 중요한 단체들을 설립했고 현재 한국 컴퓨터 음악대회를 주관하면서 인터랙티브한 컴퓨터 음악 활동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전자음악은 타이베이·홍콩·베이징·브라티슬라바, 상 파울루 국제대회에서 입상, 연주되면서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데 CNN의 ‘인사이드 아시아’에도 소개된 바 있다. 황성호는 한국의 대표적 작곡가답게 다양한 장르에 다양한 관심을 기울여왔다. 1970년대 말부터 무용음악은 황성호의 주된 활동 영역이 돼 이정희·김화숙·정귀인 등과 공동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연극과 TV드라마 음악도 작곡한 바 있는 황성호는 즉흥음악에도 관심이 많아 타악기 주자 최경환, 인도음악가 김창수와 더불어 일련의 즉흥연주 작품들을 발표했다. 케이블 뉴스 ‘YTN뉴스’의 시그널 음악을 맡아 국내 최초로 무조주의 음악을 뉴스 프로그램 시그널로 사용한 것도 그의 다채로운 활동 가운데 하나.

    특히 1999년 12월에 모스크바 음악원 볼쇼이홀에서 열린 오케스트라 정규 연주회에서 연주된 그의 ‘파랑도’는 러시아 작곡가들에게 동양음악에 대한 자극을 준 수작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의 어쿠스틱 음악의 특징은 노리·파랑도·토우 같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한국적인 멋과 색채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적 색채를 담아, 그가 필생의 역작으로 삼고 있는 오페라 ‘구운몽’ 작업은 그래서 더더욱 기대가 된다. 컴퓨터·전자음악 그리고 어쿠스틱 음악 전방위에서 21세기의 벽두를 꾸준한 걸음으로 제패해나갈 그의 새로운 음악들이 기다려진다.

    원일:현대적이면서 한국적인 뿌리를 갖춘 대중성

    19 90년대 후반 영화에서, 연극과 뮤지컬에서, 무용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곡가로 손꼽히는 원일. 그의 인기의 원인은 현대적이면서도 뿌리는 우리 것에 닿아 있는 음악 특성에 대중성을 갖춘 작곡 스타일 때문이다. 중학교 때까지 클라리넷을 전공하다가 국악의 세계에 빠져 태평소와 피리를 전공했고 국악작곡가로 출발한 원일. 그는 이윤택의 연극 ‘바보각시’에서 음악을 맡으면서 연극 무대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서울예술단의 대형 뮤지컬 ‘바리’를 작곡하고, 한태숙의 연극 ‘레이디 멕베스’에서는 악기 연주와 구음으로 성격을 창조해냈다. 대학 시절 음악을 맡았던 ‘춤, 그 신명’ 이후에는 배정혜의 ‘두레’ 같은 한국무용과 김선미의 ‘숨결’ 같은 현대무용에도 참여하는 등 무용음악도 다수 작곡해왔다. 1997년 영화 ‘아름다운 시절’, 1999년 영화 ‘꽃잎’으로 두 차례나 대종상 영화제 음악상을 받은 원일은 ‘이재수의 난’ ‘링’의 영화음악도 맡았다. 특히 ‘꽃잎’에서는 해금을 사용, 국악을 모르는 젊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외에 대중음악 그룹 패닉과 넥스트 라이브 앨범에 참여하고 인디 록 밴드 황신혜 밴드의 작업에도 참여하는 등 다양한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가장 잘 들여다보게 해주는 작품은 1997년에 출반한 그의 첫 작품집 ‘아수라’다. 대부분 원일 자신이 직접 가사를 쓴 이 ‘아수라’에는 구음과 랩, 록 그리고 시낭송까지 한데 어울린 독특한 음악세계가 담겨 있다. 아코디언과 더블베이스, 피아노, 전자기타, 신시사이저 같은 서양악기에서 징·꽹과리·해금·피리·장구 같은 국악기가 함께 어울리고 있다. 한국 사람 중 서양음악 작곡가는 없다고 말하는 원일. 최근 33세라는 나이에 최연소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이라는 중요한 직책에 올라 국립무용단의 환골탈태에 기여할 거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원일은 류이치 사카모토가 그렇듯이 한국적인 것을 국제화할 수 있는 작곡가이며 우리 음악의 미래를 바꿔놓을 선두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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