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양극단에 대한 중용적 입장은 바로 탄력적 상호주의다. 이 상호주의의 ‘탄력성’ 내지 ‘신축성’은 (1)제공하는 양(量)보다 더 적은 또는 더 많은 양을 되돌려 받을 수도 있는 비등가성 (2)주는 시점보다 늦게 되돌려 받을 수도 있는 비동시성 (3)주는 것과는 다른 성질의 것, 즉 경제적 이익을 주고 이산가족상봉 또는 화해나 평화를 받을 수도 있는 비대칭성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자”는 엄격한 상호주의를 주장하며 탄력적 상호주의를 ‘저자세 외교’로 비방하는 것은 북한의 이중적 속성을 고려치 않은, 시대착오적 냉전세력의 주장을 무분별하게 대변한 정치공세다.
탄력적 상호주의만이 남북 화해와 교류협력을 확대시켜 민족내부 특수관계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의 적성(敵性)이 약화되고 상호주의의 탄력성이 더욱 커진다면, 마침내 ‘아낌없이 서로 돕는’ 사실상의 통일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상승 메커니즘의 발전은 여러 단계를 거쳐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평화통일로 귀착될 것이다.
‘한반도정치’의 개막을 통해 가시권(可視圈)에 들어온 평화통일은 적어도 20~30년 동안 여러 단계를 거쳐 달성될 것이지만, 크게 보아 ‘민족통일’과 ‘국가통일’의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민족통일은 교류·협력의 점진적 확대를 통해 화해와 평화가 정착하고 민족내부의 자유 왕래와 교류·협력이 제도적으로 완전히 보장된 단계, 정부가 말하는 ‘사실상의 통일’ 단계를 가리킨다. 이전 정부에서 확정된 남북연합(confederation) 방안은 이 민족통일의 완성 상태일 것이다.
이 상태는 ‘국가통일’로 들어가는 시발점이 된다. 포용정책은 일단 ‘국가통일’을 뒤로 미루고 바로 이 ‘사실상의 통일’, 즉 ‘민족통일’의 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가통일’은 남북연합을 시발점으로 ‘연방국가’의 중간 단계를 거쳐 완전한 통일을 이루는 전 과정을 가리킨다.
이 통일국가의 체제 성격은 세계사의 흐름, 중국의 이데올로기적 변화, 남북한의 국력 격차 및 북한의 ‘현대화’ 정책 등을 감안할 때 역사 필연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귀착될 것이다. 따라서 국가통일은 암묵적으로 북한이 ‘현대화’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접근하는 변화를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단계에서는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말을 삼키는 것이 통일 전략 면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입각한 통일’을 촉진한다.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은 실은 흡수통일이기 때문에 이 말을 자꾸 쏟아내면 북한은 정치적으로 긴장하여 지금 진행중인 남북 협력조차도 더 확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입각한 통일’을 외치는 냉전세력은 결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입각한 통일’을 달성할 수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북한이 스스로 변화해 나갈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대북 구걸 외교를 하지 말고 대북 협상 과정에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입각한 통일을 떳떳이 주장하라”는 냉전 세력의 요구는 전략적 우매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이번 남북공동선언문이 통일상태의 체제성격을 모호하게 방치하고 있다는 트집도 같은 수준의 것이다.
냉전적 대북정책은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남북의 국력 격차를 크게 벌려 북한을 압박, 붕괴시키는 흡수통일의 기조에 서 있었다. 그러나 탈냉전과 긴장 완화 속에서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려는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이 남북 격차 확대 전략을 고수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문제를 초래할 것이다.
남북한간의 교류·왕래 폭과 기회가 확대돼 가면 필경 현재 수준의 남북격차를 방치하는 것조차 큰 부조리를 야기한다. 나중의 통일비용도 비용이려니와 현격한 남북격차로 치러야 할 남북한의 사회비용도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북한내 냉전세력의 남한내정 간섭
가령 10만 명 정도의 탈북자만 남한으로 유입되어도 남한의 초보적 복지체제는 붕괴되고 말 것이다. 북한도 남한의 각종 사이비종교 및 범죄집단의 유입으로 몸살을 앓을 것이다. 이럴 경우 남북한은 통일을 추구하면서 되레 철조망을 더 겹겹으로 둘러쳐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한다.
이런 이유에서 남북격차를 벌리거나 방치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통일에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당면한 민족화해도 해칠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정치 시대’는 남북 격차 확대 또는 방치에서 남북격차 완화로 나아가는 근본적 전략수정을 요구한다.
따라서 대북 포용정책은 교류 협력과 통일 과정의 원활한 진전과 사회적 비용 절감을 위해 남북격차를 줄이고 한반도에서 민족의 공동발전을 추구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남북공동선언의 “민족경제의 균형발전” 조항은 이런 전략적 의지를 담은 것이다.
우리는 이 남북 공동 발전 과정에 북측 냉전세력이 저지를 수 있는 실책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가령 북한의 국영매체나 사회단체를 위장한 대남공작기구의 강경세력들이 남한 야당의 주장이나 특정신문의 논조를 비판하는 것은 실은 북한의 국가기관이 남측의 ‘내부문제’를 간섭하는 것이다.
이것은 의 ‘내부문제 불간섭’ 조항에 위배되는 것이고 남북정상회담 및 의 기본정신과 배치되는 것이다. 야당과 언론이 정부·여당과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은 한국의 기본질서에 속한다. 따라서 북측의 당 및 정부기구만이 아니라 당이나 정부가 운영하는 매체와 대중조직이 야당과 언론의 논리를 공격하거나 국내의 대북정책 논쟁에 개입하는 것은 바로 ‘내부문제간섭’에 해당한다.
한국정부의 기본 입장은 북측 냉전세력들의 이런 실책을 공식적으로 지적하고 시정하는 것이다. “남한의 특정 정파나 매체의 북한비판에 대해 국영매체와 당기관지를 통하는 것 외에 달리 대응할 수 없다”는 북측의 불만은 어디까지나 북한체제의 옹색한 특이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만약 북한에 정부와 당도 비판할 수 있는 정당과 언론이 존재한다면, 이들이 남한 야당과 특정매체의 논조를 공격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무장평화와 영구평화
탄력적 상호주의에 기초한 남북교류의 확대와 남북공동발전을 정치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다. 한반도 평화정착의 출발점은 일단 남한의 튼튼한 안보체제와 국방력이다. 남한의 강력한 안보체제는 북한이 무력도발과 전쟁을 포기하고 평화적 해결책으로 나아가도록 유도하는 기본적 강제력이다. 튼튼한 안보체제는 따라서 대북 포용정책의 전제다. 이것은 일종의 ‘무장평화’를 보장한다.
그러나 이 무장평화를 뛰어넘는 ‘영구평화’를 창설하고 정착하는 관점에서는 두 가지 유형의 평화를 구별해야 한다. 첫째의 평화는 휴전협정을 위반하여 벌어지는 무력도발을 종식하는 것이다. 무력도발의 완전한 종식은 사실상의 영구평화다. 또 다른 의미의 평화는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법적 영구평화다.
이 평화는 둘다 정치·군사적 화해의 진전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전자, 즉 사실상의 평화는 ‘군사행동 무력사용 중지’ 및 ‘긴장완화’라는 말로 에 다 명시된 것이므로 남북이 당사자로서 합의서를 실천에 옮기기만 하면 해결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후자의 영구평화는 휴전협정 당사자들(북한, 미국, 중국)과 남한을 포함한 다자간 평화협정 체결에 의해서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남북공동선언에서 ‘평화’ 조항이 빠졌다고 비난하는 것은 남북한 문제의 다차원성과 국제법적 사실관계를 무시한 당파적 트집이다.
남북한 상호간의 적성 및 북한주적론의 완화와 해소도 이 두 가지 평화상태의 달성과정과 연계해 진행해야 한다. 물론 사실상의 평화가 정착하더라도 아직 평화협정 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한 상황에 군사적 주적 개념 철폐는 시기상조일 것이다.
따라서 이런 과도기 상황에는 사실상 의미를 잃은 주적 개념을 형식적으로 존속하되 가령 일본식의 ‘잠재적 위협’ 개념으로 변형시켜 ‘주적 개념’의 해소를 준비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한반도정치 시대에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어느 때보다 더 큰 역사적 용기와 새로운 상상력이다. 막 개막된 ‘한반도정치’를 더욱 발전시키고 통일을 실질적으로 추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냉전적 고정관념이라는 ‘걸림돌’을 제거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