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2일 탈당 기자회견 때 ‘광란의 정치파티’라는 표현으로 정치권을 비판했는데요. 이는 주로 한나라당에 대한 환멸을 나타낸 표현 아니었습니까.
“그때 이총재의 공천 행태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치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치적 신의인데, 이기택·김윤환 선배 등 이회창씨를 총재로 만드느라 애써온 사람들이 (공천에서) 탈락하는 걸 보고 ‘아, 정치는 이런 거구나. 정치는 이렇게도 하는구나’ 하고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래서 당을 떠나 밖에서 차분하게 정치의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그랬던 겁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그는 ‘자아비판’을 전제로 이총재를 격렬히 비난했다. 자아비판이란, 이를테면 이런 표현이다. “98년 6월 당헌상 임기가 보장된 조순 총재를 내쫓는 데 앞장서는 부끄러운 짓을 서슴지 않으며 이회창 총재를 맹목적으로 지지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을 지키는 ‘DJ 저격수’ 역할도 열정적으로 수행해 왔다”며 자신의 주된 임무가 ‘저격수’였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총재 주변 측근들이 문제
―기자회견 때 ‘내시’라는 표현도 썼는데요?
“이총재 측근들 중 문제 있는 사람들을 표현한 겁니다. 이기택·김윤환씨 등을 모양 좋게 배려했으면 당 단합에 크게 도움이 됐을 겁니다. 당시 공천은 이총재의 뜻이라기보다는 이총재를 둘러싼 주변 인사들의 뜻이 작용된 것으로 봅니다.”
―당내에서야 신의가 문제됐는지 몰라도 바깥에선 ‘개혁적인 물갈이’라며 평이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공천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도 나쁘지 않았구요.
“개혁과 혁명은 다릅니다. 개혁은 신구 조화로 이뤄야 합니다. 반면 혁명은 다 바꾸는 것입니다. 신의도 지키면서 개혁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전당대회만 염두에 두고 공천한 것이죠.”
―당시 공천에서 밀려난 사람들 중엔 구시대 정치인의 표본으로 시민단체들도 퇴출 대상자로 꼽았던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구시대 표본이 그 사람들뿐입니까. DJ도 그에 해당합니다. 민주당엔 없습니까. 시민단체 주장이 꼭 옳다고 할 순 없습니다.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신의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지지하고 도와준 사람들을 버리면 안 됩니다. 지역구는 주지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배려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전장에 나가 부상을 입은 병사를 돌보지 않는 지휘관을 가진 집단은 사기가 엉망입니다. 그래서는 누가 전장에 다시 나가려 하겠습니까. 그 집단이나 지휘관은 전투능력을 상실합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이총재는 전장에서 부상을 입은 병사를 돌보지 않은 비정한 지휘관이다.
“지도자가 자신에게 충성하다 소외된 사람을 배려하지 않으면 그 집단의 사기가 오르지 않습니다. 다시 전사가 태어나지 않아요. 한나라당에 지금 전사가 있나. 없어요. 당과 총재를 위해 전투하다 부상입으면 자기 혼자 그 상처를 안고 가야 합니다. 당과 총재가 외면하면 누가 전투하겠어요. 지금 누가 나서요. 아무도 안 나서려 해요.
정형근 의원 같은 이도 이제 나서지 않습니다. 당과 총재를 위해 열심히 싸워봐야 혼자 희생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개혁지향적인 젊은 의원들도 ‘폼 잡다 홍준표 꼴 난다’며 몸을 사리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당이 운영되면 나중에 대선 때 크게 문제가 될 겁니다. 참된 장수는 내가 죽더라도 부하는 살려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만 살겠다고 하면 부하들이 그 장수를 위해 충성을 바치겠습니까. 부하들 마음이 다른 데 가 있으면 그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지난 총선은 결코 이총재가 잘해서 이긴 게 아닙니다. 영남 지역에 있는 반DJ 성향의 유권자들이 뭉쳤기에 이긴 겁니다.”
―전장에 나가 부상당한 병사를 돌보지 않았다는 건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겁니까.
“김윤환 전의원은 이총재를 대통령 후보로 만들고 당 총재로 만든 1등공신입니다. 그의 정치노선이 바람직하냐 그렇지 않으냐는 문제와 이총재가 그를 배려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 하는 문제는 별개입니다. 당 이미지가 손상되더라도 그를 배려해 신의를 보여줬어야 합니다. 이총재의 정치경력이 일천해 그런 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당의 사기를 높이고 결속력을 갖추려면 전장에서 상처 입고 후송된 사람을 가장 먼저 돌봐야 합니다. YS DJ JP는 그걸 제일 중시해요. 여론 보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구제하고 살립니다. 그러니 충성하는 사람이 많지요.”
한나라당은 하이에나 집단
―공천에서 떨어진 중진의원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낀 건 아닙니까.
“그런 감정이 좀 있지요. 나를 내치지 않았습니까. 의원 그만두고 1년6개월 동안 당에서 내쳐졌지. 한나라당 지도부에서 나에 대한 배려를 털끝만큼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거꾸로 나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더라구요. 아하, 정치판은 하이에나 집단이구나. 하이에나가 어떤 동물입니까. 하이에나는 시체만 찾아 다닙니다. 동료가 쓰러지면 동료 시체를 밟고 지나가지 않습니까. 하이에나 세계에선 동료들에게도 상처입은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됩니다. 동료라도 뜯어먹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선 당이라는 게 의미가 없지요. 어차피 선거권, 피선거권도 없고. 법률적으로 당 구성원도 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일단 떠나 있자, 본업(변호사)에 충실하자, 그래서 탈당한 겁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이총재에게 ‘보복적 리더십‘을 버리라고 말했는데요.
“큰 정치를 하려면 가슴에 칼을 품어선 안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당시 공천은 칼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이총재 리더십에 대한 비판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것이 ‘포용력이 없다’는 것 아닙니까.
“같은 맥락이에요. 포용력이 없다는 것은 대쪽 이미지와 상통합니다. 정치에는 적합지 않은 이미지입니다. 정치는 재판이 아닙니다. 잘못된 사람도 달래서 데리고 가는 게 정치입니다. 이총재가 대권을 잡으려면 대쪽 이미지를 빨리 불식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판사 때나 어울리는 얘기입니다.”
그는 의원직을 잃기 직전까지 ‘저격수’ 임무에 충실했다. 99년 3월9일에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 3월3일 대정부질의 때 그는 DJ 대선자금과 총풍사건을 공격했다.
―막판까지 대여 투쟁 선봉에 섰는데요. 장렬한 전사를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까.
“그해 2월24일 나와 친한 국민회의 선배가 ‘이번엔 좀 나서지 말라’고 충고하더군요. 판결이 임박했다면서 말입니다. 알겠다고 했지요. 이틀 뒤 이부영 총무가 ‘대정부질의 때 DJ 정부 1년을 평가해야 하는데 정치 분야를 총괄 질의해달라’고 부탁합디다. 사약을 받아놓은 사람에게 또 이런 걸 주문하나 싶었지요. 그렇지만 안 하겠다면 비겁해 보일 것 같아 이총무의 부탁을 받아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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