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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相珍 의쟁투위원장 도피중 극비인터뷰

“청와대 복지수석 아직도 사태본질 파악 못해”

  • 하태원·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청와대 복지수석 아직도 사태본질 파악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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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달의 계도기간을 거쳐 8월1일 실시된 의약분업을 두고 혹자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고 말한다. ‘진료는 의사가, 처방은 약사가’ 하면 된다는 의약분업이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2차에 걸친 의사들의 집단 폐업사태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신상진(申相珍·44) 대한의사협회 의권쟁취 투쟁위원회 위원장이 사법당국의 소환에 불응해 잠적한 뒤 처음으로 ‘신동아’에 ‘목소리’를 냈다. 》
‘삐리리리∼.’ 8월14일 오후 6시 ‘신동아’ 9월호 마감이 임박한 시점에 기자의 휴대폰이 울렸다.

“저 신상진입니다.”

지난 7월초 검찰의 소환에 불응, 도피생활을 시작한 뒤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신상진 의권쟁취투쟁위원회(이하 의쟁투)위원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온 것. ‘신동아’는 성난 의료계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신상진 위원장에게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요청해 두었던 터였다.

1달 반 정도의 도피생활로 많이 지쳐 있었을 법한데, 신위원장의 목소리는 시종 생기가 넘쳤으며 자신감에 차 있었다. 지난 6월 강행했던 1차 집단폐업 때보다 여론이 나빠졌고 일반 국민들의 저항이 거세졌지만 이제는 많은 의사들 사이에 개악(改惡)된 약사법이나 불완전한 의약분업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공감대가 확산됐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

수배중인 신위원장은 검경(檢警)의 포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크고 작은 집회에 자신의 육성이 담긴 투쟁지침을 여러 차례 전달했다. 또한 의협 지도부에 지도력 공백의 조짐이 있다고 느낄 경우 인터넷을 이용, 회원들의 분발을 독려하는 글을 게재해 기세를 올리는 등 ‘잠수’중에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발신지 추적을 피하기 위해 10여개의 휴대전화를 번갈아 가면서 사용한다고 알려진 신위원장은 2시간 여에 걸쳐 진행된 기자와의 전화인터뷰 도중에도 서너차례 전화를 끊었다 다시 거는 치밀함을 보였다.

“난 강경파가 아니다”

“감옥에 가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악법을 어겼다 해서 무고하게 범법자가 되고 마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한 신위원장은 “개악된 약사법이 재개정되고 올바른 의약분업이 실시될 때까지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에 검찰에 자진 출두하지는 않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신 위원장은 “의사들이 집단 행동에 나서고 있는 것은 정부가 강제로 시행하는 잘못된 의약분업을 거부하고 올바른 의약분업을 시행하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신위원장은 “이유야 어찌됐건 의사들의 집단행동 과정에 생겨나는 의료사고나 크고 작은 불편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강성 이미지로 비치고 있는 신씨는 집에 두고 온 두 딸은 물론 아내를 보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보고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미 철이 든 큰 딸이 수배자로 TV에 비치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에 대해서도 “아마 내 딸은 나를 존경할 것이다”라며 태연한 모습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렵사리 2차 폐업을 감행했습니다. 1차 폐업 때보다 여론이 악화된 것도 사실입니다. 김재정(金在正) 회장 등 의협 간부나 의쟁투 지도부가 구속되고 수배되는 등 공개적인 활동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여러모로 여건이 불리한 상황인데 앞으로 의료계의 파업을 어떻게 전망합니까?

“이번 의약분업은 의사에게서는 조제권을 송두리째 빼앗은 반면 약사에게는 배타적인 조제권을 부여하는 한편 의약분업 이전에 누리던 의사의 처방권마저 일부 부여하는 등 의사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개정된 약사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불평등이 치유되지 않는 한 의료계의 투쟁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아울러 현재 상태의 의약분업이 시행될 경우 많은 개원의들과 앞으로 병원을 열거나 대학병원에서 활동할 의사들의 생존권이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의료보험 수가의 현실화도 반드시 관철되어야 합니다.”

―폐업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목소리가 엄연히 존재하는 데다 2차 폐업에는 그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는데도, 신상진 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일부 강경파가 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저는 결코 강경파가 아닙니다. 저는 오직 의사협회 회원들의 종합적인 의견을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즉 대다수 회원이 이번 의약분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강경하기 때문에 그들 의견을 대변하는 제가 강경한 것으로 비칠 뿐입니다. 2차 폐업 결정만 해도 대다수 회원들의 의견이지 신상진이나 의쟁투 간부들의 의견은 아니었습니다. 사법당국에서는 제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데 저는 그 법을 위반한 적이 없습니다. 집행부나 제가 강제로 폐업을 유도한 것이 아니고 대다수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한 행동입니다. 폐업에 동참하지 않은 분들에 대해 의협 차원에서 불이익을 준 경우도 없습니다.”

흩어지면 죽는다

―경찰에서는 신위원장을 잡기 위해 체포 전담조가 조직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신위원장을 비롯한 의쟁투 간부들에 대해 서둘러 수배령을 내리는 등 활동을 위축시키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들이 주장하는 ‘강경파’ 신상진 하나 잡는다고 활화산처럼 일어난 의사들의 분노를 꺾을 수는 없습니다. 2000년 6월 이전의 의사들과 현재의 의사들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전공의들이나 개원의들이 싸워봐야 며칠 안 갈 것이라고 복지부 관리들이나 청와대 복지수석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같은데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것입니다.”

―검찰에 자진 출두할 의사는 없습니까?

“검찰 소환에 불응해 잠수한 이유도 부당한 공권력에는 따르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제대로 된 의약분업이 시행될 수 있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의쟁투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고, 저에게도 구속되지 않고 사회에 남아 할 일이 있습니다.

또 한가지 의료인 내부에 있는 강경파와 온건파를 아울러 하나의 목소리를 내도록 조율해 나가는 일도 해야 합니다. 현재 집단폐업에 참가한 의료인 구조는 지도부 일부에 온건파가 있고 나머지 대다수는 강경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뢰받는 지도부가 극소수 온건파를 끌어안아야 합니다. 소수의 온건파가 주도권을 잡고 대다수의 강경파를 끌고 갈 경우 일시적인 봉합은 될지언정 진정한 사태해결을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2차 폐업을 두고 의료계에 불협화음이 표면화된 것은 사실이다. 폐업 자체에 반대하는 경우도 많았고, 폐업에 참여하면서도 다른 의견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6월 폐업 때와는 달리 이번 재폐업에는 다른 목소리들이 구체적으로 나왔다.

7월25일 의쟁투의 반발을 묵살하고 의협이 의료계 재폐업 유보를 선언했고, 같은 달 30일에는 각 병원 전공의들의 재폐업 결의가 잇따르는 가운데 일부 전공의들이 대학로에 모여 재폐업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기도 했다.

다음날인 7월31일 의사들의 회원제 사이트인 메디게이트(www.medigate.net)에 ‘재폐업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모임’이라는 토론방이 열렸고, 일부 개원의도 PC통신 하이텔에 ‘폐업투쟁을 반대하는 의사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폐업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 대열에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도 동참했다.

반면 신위원장은 7월23일 경기도 과천에서 열린 ‘약사법 개악 규탄 및 의협회장 석방 촉구대회’에서 ‘녹음연설’로 의사회의 폐업투쟁을 촉구했다. 또한 7월31일자 투쟁지침에서 공개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일부 광역시도 의사회가 폐업결정을 유보하고 있는 사실은 벼랑에 내몰려 있는 우리 의료계의 단합을 크게 해치는 일이며, 이는 위험천만한 사태로 인식됩니다… 그 어떠한 이유로도 우리 의사 사회에서 단결이 훼손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의료계의 전시상황입니다. 적전분열의 책임은 엄중히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의료계 내부에서 감지되고 있는 분열조짐에 대해 내린 추상 같은 ‘대동단결’ 지침이었고, 이후 의료계는 전공의를 필두로 재차 폐업이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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