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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븍숀(거북선)’, ‘아이숑가이 (이성계)’로 쓸 수는 없다

한국어 로마자표기 연구에 50년간 사재 7억원 쏟아부은 김복문교수의 항변

  • 박은경·자유기고가

‘죠븍숀(거북선)’, ‘아이숑가이 (이성계)’로 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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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표기법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이 6·25 전쟁 때다. 당시 경복고 3학년에 재학중이었는데, 부산 피란 시절 한미합동헌병사령부에서 근무하게 됐다. 그 때 만났던 미국인 열이면 열 모두 내 이름은 물론이고, 그곳에 조사 받으러 온 한국인들 이름을 우리말 발음과 전혀 다르게 불렀다. 거기다 같은 미국인인 데도 사람마다 발음이 제각각이었다.

그 후 4년 동안 미국에 유학했고, 18년 동안 코트라 해외 무역관장으로 미국 캐나다 등지에 파견돼 일했다. 이때 국어 로마자 표기법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게 됐다. 해외바이어들을 만나면서 제대로 된 로마자 표기법 없이는 능률적인 업무 수행이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수출입과 관련해 해외바이어가 클레임을 걸어온 경우 많은 문제가 바로 로마자 표기법과 연관돼 있었다. 예를 들면 ‘거래하던 한국 회사가 물건을 받고 돈을 떼먹었으니 찾아 달라’고 하는데, 도무지 발음상 이름이나 회사명을 알 수 없는 식이다. 또 우편물을 보냈는데 한국에서 연락이 없다며 불평을 늘어놓는 바이어도 있었다. 한국 회사 주소의 로마식 표기를 잘못한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일이 자주 발생해 ‘도대체 한국인은 못 믿겠다’며 거래를 끊는 사례가 많았다. 국어 로마자 표기법과 관련해 발생하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현장에서 체험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를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뿐이다.”

김회장은 50년이 넘도록 로마자 표기법을 붙잡고 씨름하게 한 사적인 이유도 있다고 했다.

“내 나이 올해 일흔이다. 그 동안 일제식민 시대와 6·25 전쟁을 거쳤다. 그 와중에 친한 친구 여러 명과 형 두 명이 죽었다. 그때 결심했다. 뭔가 가치 있는 일을해 먼저 간 사람들이 못다한 삶을 내가 대신 살겠다고… 로마자 표기법이 바로 그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무모하리만큼 한우물을 파며 50년 인생을 바쳐온 김 회장의 뚝심은 바로 ‘죽은 자의 영혼에 닿아 있는 마음’에서 우러나오고 있는 셈이다.

로마자 표기법과 관련해 김회장은 지난해말 법정에 서는 일까지 겪었다. 국립국어연구원 김모씨가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김회장을 비방하는 글을 두 차례 올린 것이 고소사건으로 이어졌다.

“처음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모 장관이 귀띔해 주어서 뒤늦게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어처구니없는 중상모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인터넷에 올린 김회장 비방 글

김회장은 그 글을 보는 순간 심장마비를 일으킬 만큼 화가 났다고 했다. 서울지검에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김씨를 고소한 김회장은 당시 발췌한 글을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었다. ‘나라 걱정’이라는 제목으로 99년 4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인터넷상에 올려진 글은 다음과 같다.

“(중략) 그가 무슨 경위로 약 50세쯤 되었을 때 국립인 충북대학의 무역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교수라고 하면 전문분야의 실무 능력이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대학원에서 학문을 수련한 사람이 되는 법인데, 그의 경우는 무척 특이하다. 아무튼 그는 해외에서 근무할 때부터 로마자 표기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중략) 나아가 자기 스스로 표기법을 만들기에 나섰으니 이른바 김복문식의 ‘모의발음부호법’이라는 표기법을 들고 나와 지금까지 약 20년간 선전을 하고 다니면서 동조자를 모으고 있다. 모의발음부호법이란 기괴한 이름은 아무리 반복해서 읽어봐도 그 명칭 자체가 이해가 안 되지만…(중략)

김씨는 토론하기 싫어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로마자 표기법에 관한 어떤 모임이 있었는데 약 세 시간에 걸친 모임에서 그는 자기 발표 시간이 되어서야 나타나 자기 발표만 하고 가버렸다. 다른 사람들 주장은 들어볼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략) 이런 반(反)학문적인 천박한 주장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은 제 정신이 아닌 것이다. 그런 반쯤 정신 나간 사람의 주장을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마치 김씨의 대변인인 것처럼 국회에서 되풀이한다. (중략)

김씨는 언어의 기본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외국인이 국어 발음을 잘 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자기가 고안한 방식대로 표기해두면 외국인이 우리 국어 발음과 아주 비슷하게 발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대저 외국인은 자기 언어 외의 언어에 대해서는 발음을 틀리게 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중략) 외국인들이 한국어 발음을 단번에 간판의 표기 하나 보고서 하기를 바라는 것은 꿈에 불과하다.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임을 알아야 한다. (중략) 그런 우매한 생각을 45년째 버리지 않고 있는 김씨다. 김씨의 머리야 이제 그 누가 바꿀 수 있을까만, 김씨보다 젊고 훨씬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김씨의 생각에 혹해 앵무새처럼 그의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미칠 지경이다. 이 나라가 언제 바로 될까.”

“그가 다시 찾아왔다. 자기의 로마자 표기법안만이 발음도 완벽하게 낼 수 있고, 컴퓨터로 철자 복원도 완벽하게 할 수 있음을 역설하고 돌아갔다. 나는 한마디도 안하고 듣고만 있었다. 물론 그의 주장이 옳아서가 아니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다. 아무 말 안하고 있는 게 낫지 무식한 그와 더불어 묻고 대답하고 토론하는 건 아무 소득이 없기 때문이다. (중략) 그는 자기 방법대로 하면 한글 철자가 (컴퓨터에서) 복원된다고 충북대학의 공과대학 교수팀이 말했다고 역설한다. 그 말은 한 마디로 허황의 극치여서 듣기가 민망했다.

로마자 표기의 쟁점은 모음도 모음이지만 어두(語頭)의 ‘ㄱ, ㄷ, ㅂ, ㅈ’을 어떻게 표기할 것이냐다. 우리에게는 ‘g, d, b, j’가 편하지만 서양인들은 한사코 ‘k, t, p, ch’를 쓰려고 해서 문제다. 이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인데 그는 태연히 자기 안에서 ‘g, d, b, j’를 쓰고 있다. 결론적으로 그의 선택이 옳지만, ‘k, t, p, ch’라야 한다는 서양인들의 엄청난 힘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에 대해 머리를 짜낼 일이지 엉뚱하게 모음을 가지고 일을 복잡하게 할 때가 아니다. 결국 그는 우리의 상황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면서 괜히 잘 모르는 국회의원들을 들쑤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아까운 황혼을 헛되이 보내고 있는 그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김회장은 “학자임을 자처하는 사람이 로마자 표기법과 관련해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공개된 인터넷상에서 원색적 언사를 써가며 비난을 퍼붓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노했다. 재판 결과 김 회장을 비방한 김씨는 ‘명예훼손’과 ‘모욕’ 두 가지 죄목으로 벌금형에 처해졌다.

사재만 6억~7억원 썼다

―오랫동안 관계 기관을 찾아다니고 탄원서를 내는 등 외로운 싸움을 해왔는데 후회해본 적은 없나.

“후회를 한 적은 없다. 다만 로마자 표기법을 둘러싸고 가장 애석했던 점이 코트라를 그만 두게 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사장이 돼 우리나라 무역계에 일조하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있었다.

―코트라를 그만 두게 된 것과 로마자 표기법과는 무슨 연관이 있나. 코트라 시절 해외 무역관장 경험이 로마자 표기법 연구에 매달리게 한 직접적 원인이었다고 말하지 않았나.

“내게 있어 둘은 공교로운 인연을 가진 셈이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자면 코트라를 그만둔 건 엉뚱한 오해에서 비롯됐다. 79년 모의발음부호법을 들고 국회에 청원을 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백방으로 노력하다 안돼서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도와달라고 전화하고 찾아갔던 일이 있다. 당시 김영삼씨는 연금상태에 있었다. 하루는 전화를 걸었는데 비서가 받더니 신분을 밝히라고 했다. 별의심 없이 코트라 아무개 부장이라고 얘기했다.

그 일이 있은 직후 체신부에서 세 사람이 나왔다. 안방을 왔다갔다 하며 ‘전화에 이상이 있죠’하고 묻기에 ‘고장신고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냐’고 되물었다. 어물어물하던 체신부 사람들이 돌아간 며칠 후 회사에서 사표를 내라고 했다. 코트라 이사로 있던 친구 말이 내가 출판을 핑계로 부하직원에게 압력을 넣어 새마을금고에서 돈을 빌리게 했다는 것이었다. 그때 무역영어 책을 내는데 200만 원이 필요했으나 내가 가진 돈은 50만원 밖에 없었다. 부하직원 세 명이 그 사실을 알고 나중에 돈 벌면 갚으라고 하며 새마을금고에서 각각 50만원씩 대출해 빌려주었다. 그런데 그것을 두고 압력을 넣었다니 기가 막혔다.

그 일로 다시 김 전대통령을 찾아가 “사장이 사표를 쓰라고 한다”고 말했더니, 김 전대통령은 “김부장이 여기 왔다간 게 아무래도 문제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아마 내 생각으론, 연금상태에 있던 김영삼씨를 자꾸 찾아간 게 무슨 정치적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받았던 것 같다. 어쨌든 사표를 못 내겠다고 버티며 상공부 장관과 코트라 사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결국 자르지는 못하고 과장급인 전주 사무소장으로 발령을 내고 6개월인가 감봉 조치됐다. 그 후 신군부가 들어서고 80년 6월에 공무원 정화차원이라며 간부급 이상 전 직원에게 사표를 받아냈다. 선별적으로 사료가 수리됐는데 내 사표가 일착으로 수리됐다.”

―지금까지 로마자 표기법을 위해 사재 6억∼7억 원을 쏟아 부었다고 들었는데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썼나.

“정치인과 학계 사람들을 초청해 자비로 공청회를 여러번 열었다. 한 번 열 때마다 몇 백만 원의 경비가 소요됐다. 또 그동안 학자, 국회의원, 학회 등에 보낸 자료만도 엄청나다. 로마자 표기법 관련 책자를 만들어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 번에 200~300권씩 뿌린 것만도 세 번쯤 된다. 거기다 공청회 자료 등 각종 비디오테이프와 디스켓을 수없이 만들어 뿌렸다. 아마 그동안 뿌린 자료를 모으면 대형 트럭으로 한 트럭 분은 될 거다.

또 모의발음부호방식의 효용성을 검증하기 위해 미국인을 상대로 무수한 조사도 벌였다. 이 사람들은 자료 검토를 부탁해도 공짜가 절대 없다. 하다 못해 식사라도 대접해야 한다. 엄청난 자료를 타이핑하기 위해 들어간 용역비도 적지 않다. 한문, 영어, 로마자 표기, 특수부호 등 온갖 용어가 뒤섞인 자료는 전문가가 아니면 타이핑하기 힘들어서 일일이 맡겼다. 세월이 세월인만큼 이래저래 하다 보니까 많은 돈이 들어갔다.”

―사재를 쏟아부으면서까지 로마자 표기법에 매달리는 김회장을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은 많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그 동안 눈총을 받거나 불만을 산 일은 없나.

“으레 그러려니 하고 이젠 포기한 상태다. 오히려 군자금까지 타서 쓰고 있다.”

―군자금이라니?

“일제시대 잔재를 털어 내고 새로운 방식의 로마자 표기법을 따르는 것은 독립운동과 마찬가지 아닌가. 세종대왕이 과학적으로 창조한 우수한 한글을 후대에 와서 엉뚱한 로마자 표기로 세계 사람들에게 잘못 알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점을 들이대며 농 반 진 반으로 식구들한테 ‘독립운동 하는 데 일조하는 셈 치라’고 말한다. 과거 선조들이 독립운동을 할 때는 독립자금을 두루 후원 받았는데 나는 독립자금 대주는 사람도 없으니 당신이 대신 후원금을 대라고 아내한테 얘기하면 이젠 그냥 웃어넘긴다.”

“국민혈세의 낭비다”

―그 동안 아내에게 탄 군자금이 얼마나 되나.

“대부분 필요한 경비는 내가 벌어 쓰고, 내 뜻에 공감하는 주위 사람들이 좋은 일 한다며 십시일반 조금씩 보태주는 경우도 있다. 또 얼마 전까지 일본 오사카 경법대학에 객원교수로 적을 올리고 있었는데 거기서 나오는 돈이 매월 얼마씩 됐다. 로마자 표기 연구를 꼭 완성하라며 꼬박꼬박 월급으로 보태줬는데 사정이 생겨서 지금 그 돈은 끊어졌다.

다행인 것은 일본에서 끊기자 영어과외가 풀렸다는 점이다. 아이들을 가르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고 있다. 이래저래 가족들에게 큰 부담을 주진 않았는데 지난 번 아내가 탄 적금 500만 원은 고스란히 받아 챙겼다. 실은 그게 좀 미안하다.”

―지금까지 논란이 일고 있지만 그래도 이미 새로운 표기법이 시행됐는데, 이제 그만큼 했으면 손 뗄 때도 되지 않았나.

“무슨 소린가. 이제부터 시작이다. 조만간 그동안 써오던 안내표지판이며 각종 정부 자료, 관광 홍보물 등을 전부 새로운 표기법으로 바꿔야 하는데 돈 들어갈 일이 남았다. 이를 위해 엄청난 국민 혈세를 쏟아 부어야 할 판인데 어떻게 보고만 있겠나. 더군다나 현행 안이 문제가 많은 마당에 두 번 세 번 같은 실수로 막대한 세금을 낭비할게 할 순 없는 일이다.”

헌법재판소를 통해 ‘잘못된 장관의 고시는 헌법소원의 직접 대상이 된다’는 점을 파악했다는 김회장. 로마자 표기법과 관련한 서류더미들로 집안이 발 디딜 틈 없이 어질러진 가운데 벽 곳곳에 붙어 있는 손때 묻은 쪽지들이 눈길을 끌었다.

‘승패(勝敗)는 병가상사(兵家常事), 일희일비(一喜一悲)는 대금물(大禁物), 승자(勝者)는 최후(最後)에 웃는다.’

‘사생관(死生觀), 삶과 죽음이 똑같다. 밤 오고 낮 오든. 죽음이라는 것은 뜬구름이 없어짐. 여러 자연의 상태는 뜬구름.’

‘인지위덕(忍之爲德), 참는 것이 덕(德)이다.’

그간 50 평생을 살아오면서 체득한 인생관의 일단을 보는 듯한 문구들이었따.

다음 페이지에는 로마자 표기법과 관련해 김회장이 여러 인사들에게 자문을 구하며 주고받은 서신들을 소개한다. 특히 한국어의 M-R식 로마자 표기법 창안자 라이샤워 교수, 주한 영국대사 해리스, 주한미군 총사령관 틸럴리 등은 김교수의 표기에 대해 관심을 토로하고 있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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