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게 뭐처럼 보이냐?”
“돌”
자연 공부도 시킬 겸해서 수석의 형(形)이 무엇이냐고 물어본 것이었는데, 조카의 대답은 너무 간결했다. 잘못된 물음이었구나 싶어 얼른 고쳐 물었다.
“이게 뭐처럼 생겼냐?”
“돌”
또다시 명쾌하고도 간결한 대답이 나와, 나를 어지럽혔다. 이 일은 수석문화사에 입사해, 매달 전국의 베테랑 수석인들을 만나 취재하고 또 그들의 멋진 소장석(所藏石)을 감상해온 나의 수석관(壽石觀)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맞다. 돌이다. 아무리 멋진 수석이라도 그것의 본질은 돌이다. 가끔 수석인들은 이 사실을 잊고 사는 경우가 있다.
한갓 돌에 지나지 않는 자연물에 수석인들은 화려한 옷을 입혀 수석이라 칭한다. 또 이를 감상하며 정서적인 안정을 취하고 이러한 문화를 인류가 향유할 수 있는 최고의 정신문화로 자부하기도 한다. 수석인들의 자부심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선택의 미학

예술품은 대개 예술가가 물질적 혹은 정신적 재료를 이용해 그의 능력으로 창조한 것이다. 수석은 이러한 창조 행위는 아니다. 그래서 수석을 ‘선택의 미학 속에서 추구되는 종합적인 예술’이라고 말한다. 종합적인 예술이라는 말 속에는 그 어떤 예술가보다 위대한 자연이 빚은 작품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자연이 수백년 혹은 수천년 간 어루만지며 만들어 낸 작품을 예술가의 안목으로 발견해 내는 것이 수석이고, 그 발견은 바로 창조와 다름없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석을 ‘선택의 미학’ 혹은 ‘발견의 미학’이라고 부른다.
이런 이론을 들을 때마다 억지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었다. 말없는 돌을 가지고 억지춘향식으로 예술이니, 자연의 작품이니, 신이 빚은 작품이니 하며 법석을 떠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취재를 거듭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수석은 사람들의 안목을 충족시킬 만한 그 무엇을 지니고 있다고….
진화론은 네 발로 땅을 짚고 다니던 원인류(猿人類)가 진화를 거듭해 두 발로 설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해서 자유로워진 손에 무엇인가를 쥐게 됐는데, 그것이 나무와 돌이었다. 이처럼 돌은 원인류의 첫 허전함을 채워주는 그 무엇으로 인류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돌은 인류 문명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에는 가장 중요한 도구이자 무기를 만드는 재료로 쓰이면서, 구석기와 신석기 문화를 이끌어 나갔다. 청동기와 철기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도 돌은 건축 자재를 비롯한 다방면에서 소재로 이용되고 있다.
도구나 무기나 재료로 쓰인 돌은 전부 사람이 가공한 것들이다. 인공(人工)이 가미된 돌인 것이다. 그러나 수석은 다르다. 수석은 자연이 빚어냈다. 이처럼 자연이 빚은 예술을 찾아(이를 探石이라고 한다) 감상하는 것이 수석이다. 수석인들이 감상하는 돌 속에는 자연의 경치가 축소되어 있다. 이 축소된 자연을 바라보면서 연상력을 통해 원래의 자연으로 펼쳐내 감상하는 것이 수석인의 예술관이다.
때문에 마리아상을 한 수석을 탐석하면 그 만큼 경건히 어루만지게 된다. 경북 경산군에 사는 정춘덕씨는 달마 형상을 한 수석을 탐석한 후 이 돌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달마와 선(禪)에 관련된 책자를 십여 권이나 읽었다고 한다.
박학다식한 聯想力이 수석하는 첫째 조건
좋은 수석을 소장하려면 남보다 뛰어난 심미안(審美眼)이 있어야 한다. 심미안을 가지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내 경우에는 먼저 수석 이론에 관한 책을 읽었다. 여러 권 책을 읽다 보면 여러 책에 중복해서 소개된 내용이 발견되는데, 그것만 파악해도 일단은 성공이다. 그리고는 필자가 현재 일하고 있는 ‘월간 수석문화’ 등 수석 전문지를 읽는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탐석한 다양한 수석을 매달 잡지에서 접하는 것은 심미안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세 번째로는 매년 봄 가을 전국 각지에서 개최되는 수석 전시회를 찾는다. 아무래도 사진으로 보는 수석보다는, 실물로 보는 수석이 심미안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네 번째로는 수석 산지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여 직접 탐석여행에 나서는 것이다. 이러한 순서를 거쳐 심미안을 쌓아나가면 초보자들도 산지(돌밭)에 나가 어떤 수석을 탐석해야 하는지 감을 잡게 된다.
수석인은 박학다식(博學多識)함을 많이 강조한다. 특히 미술과 관련된 분야에 박학다식해야 좋은 돌을 탐석할 수 있다. 때문에 수석인 중에는 화가나 서예가, 또는 고서화를 수집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이러한 준비를 끝냈으면 수석을 감상하는데 필요한 연상력(聯想力)을 갖춰야 한다. 연상력이란 조그만 돌에 갇혀 있는 수천 수만 년의 자연을 역사에 빗대 객관적으로 풀어낼 줄 아는 능력이다. 연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역사서·종교서를 비롯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취미로 수석을 즐기는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김대중 대통령도 청와대에 수석을 두고 즐긴다고 한다. 그 외에도 숱한 연예인과 음악인, 미술인 등 예술계 쪽 종사자들이 수석을 즐기고 있다.
수석을 즐기는 사람들은 대개 장년층이다. 젊은 수석인도 있지만 그래도 나이가 든 분들이 주로 수석을 즐기고 있다. 수석인들은 공통적으로 고서화나 골동품 수집, 낚시, 분재, 난 기르기 등을 취미로 병행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것은 점점 흥미를 잃어가는데, 유독 수석만은 그렇지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한 원로 수석인은 그 이유를 “나이가 들수록 낚시는 힘에 부치고, 난이나 분재는 잠깐이라도 관심을 놓으면 죽어 여간 애를 태운단 말이지. 그러나 수석은 그런 일이 없어요”라고 설명했다.
수석의 매력은 돌의 불변성에 있다. 탐석한 돌을 잘 닦아 감상할 수 있도록 좌대(나무로 조각한 받침)나 수반(자기나 동으로 만든 수석 받침)에 올려놓으면, 한 달 이상 방치해도 변함이 없다. 수석 즐기기에는 늘 물을 뿌려주는 양석(養石)이라는 과정이 있지만, 이러한 과정을 생략해도 돌은 죽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원로 수석인들은 지금의 삶에서 더 이상의 변화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수석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은 사람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다 보면 ‘일상에 쫓기다 보니…’라는 핑계로 자연을 잊고 홀대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멋진 자연을 화폭에 옮겨 안방에 걸어 두거나, 정원을 지어 “여기가 무릉도원입네” 하며 시를 짓고 살아온 사람도 적지 않다.
수석이 바로 자연을 옮긴 그림이고 정원이다. 자연을 닮은 돌, 즉 ‘축경(縮景)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돌이 수석이다. 금강산 만물상을 닮은 돌을 탐석해 자기(瓷器) 수반이나 동(銅)수반에 고운 모래를 깔고 올려 놓으면, 수석인은 안방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히 금강산을 노니는 신선이 된다.
우리나라의 역사에는 수석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온다. 삼국유사에는 80여 개의 돌을 보고 불경을 설했다는 승전(勝詮)법사 이야기가 있다. 조선 세조 때의 서화가인 인제(仁齊) 강희안(姜希顔)은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괴석(怪石)은 굵고 곧은 덕을 지니고 있어서 참으로 군자(君子)의 벗이 됨이 마땅하다’며 수석을 찬양했다.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한 다산 정약용도 직접 탐석한 수석으로 작은 산(石假山)을 만들고 그 주위를 파내 연못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지금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