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호

대안학교·대안교육

  • 곽대중 < 자유기고가 >

    입력2005-04-13 1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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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야에서 제도권으로, 특성화고교의 현주소
    • 문제학생인가 ‘문제적’ 학생인가
    • 파격적인 수업, 자유로운 아이들
    • “집보다 학교가 더 좋아요”
    • 교무실이 없다, 흡연실은 있다
    • 대학입시 성과는 “글쎄요…”
    • 간디학교 입학경쟁률은 4 대 1
    • 열악한 환경, 빠듯한 재정
    • 대부분 초임·미혼 교사 “사생활 없어요”
    대안교육과 관련한 풍경 하나. 지난 5월7일 저녁 서울 동숭동 흥사단 강당에서는 ‘위기의 학교교육, 어떻게 살릴 것인가’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당초 50여 명이 참석할 것이라 예상했던 이날 행사엔 최근 교육문제에 집중된 언론보도 탓인지 교육정책 전문가, 일선 교사와 학부모, 교육관련 단체 회원 등 200여 명이 입추의 여지없이 자리를 메웠다.

    이날 발제자 중 한 명인 서강대학교 정유성 교수는 평상심(平常心)을 갖고 교육문제를 바라보자는 다른 발제자의 주장에 대해 “현재의 국가중심 공교육 체제의 문제는 너무도 심각해 평상심을 갖고 이야기하기 힘들다”는 뼈있는 농담으로 서두를 뗀 후 “공교육과 사교육의 이분법을 넘어선 ‘민교육(民敎育)’으로서의 대안교육운동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풍경을 바꿔 경남 산청에 있는 간디학교 교무실.

    이병엽씨(38·경남 거제) 부부는 아들 준우의 입학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새벽부터 차를 달려 지리산 자락에 있는 간디학교를 찾았다. 소아 당뇨로 활발한 학교생활이 힘든 준우에게 좀더 자연친화적인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교과서와 씨름하는 지식 위주 교육보다는 인성교육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집과 학교만 왔다갔다 하고, 컴퓨터 게임에만 빠져 있는 아이에게 무언가 다른 교육, 다른 학교 생활을 경험하게 할 수 없을까 고민하던 중 간디학교 같은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돼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씨 부부는 정원(定員)이 차 입학이 불가능하다는 상담교사의 답변에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지금도 이씨 부부는 준우를 입학시킬 만한 다른 대안학교를 찾고 있다.

    다시 카메라의 초점을 돌려 살펴본 대안교육 풍경 셋.

    서울 서초구에 사는 P대학 교수 최모씨(55)는 지난 몇 개월간 셋째 아들 정욱이 문제로 억장이 무너질 지경이었다. 특별히 아이를 구속했던 것도 아니고,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착실히 학교를 다니던 정욱이 어느날 갑자기 가출을 한 것이다. 늦게 본 아들이라고 너무 애지중지 키웠나 하는 생각에 후회도 해보고 혹시 불량한 학생들과 어울려 지낸 것은 아니었나 하는 걱정 속에, 몇 주 만에야 식당에서 일하는 정욱이를 찾아낼 수 있었다.

    학교에 가기 싫다는 아이를 설득해 등교시키긴 했지만 다시 가출하기를 여러 번. 몇 주 전에는 머리에 염색을 하고 귓불을 뚫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최교수는 학교에 한번 들르라는 담임 선생님의 연락을 받았다. 결석 일수(日數)도 문제지만 학급분위기를 봐서라도 정욱이를 더 이상 학교에 다니게 할 수 없다는 최후통첩을 받은 것. 다행히 담임 선생님은 학교부적응 학생을 위한 대안학교 몇 군데를 소개해 주었고, 정욱이를 자퇴시킨 최교수는 요즘 아들을 진학시킬 대안학교들을 알아보고 있다.

    재야에서 제도권으로

    우리나라에 ‘대안’이라는 이름이 붙은 학교가 공식 등장한 것은 5년이 채 되지 않는다. 학교에서 퇴학당했거나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학생들을 불러모아 직업·인성교육 위주의 수업을 펼치던 학교, 뜻이 맞는 몇몇 사람이 농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만들기 시작한 학교, 혹은 무언가 특별한 교육을 해보겠다는 청운(靑雲)의 뜻을 안고 폐교 부지를 빌려 계절학교 형태로 운영되던 학교…. 이렇게 교육계의 ‘재야(在野)’로 외롭고 배고픈 길을 가던 학교들이 제도교육의 틀 안으로 들어간 것은 지난 1998년의 일. 현행 교육법상 대안학교는 고등학교 과정만 인정받아, ‘특성화고등학교’ 중 대안교육분야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91조 1항은 특성화고등학교를 ‘소질과 적성 및 능력이 유사한 학생을 대상으로 특정분야의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또는 자연현장실습 등 체험 위주의 교육을 전문적으로 실시하는 고등학교’라고 설명한다. 교육법에는 특성화중학교도 명시돼 있지만 아직 구체적 설치요건 등이 마련되지 않아, 만약 중학교 과정의 대안학교를 가게 되면 현재로서는 검정고시를 보아야 중졸 학력이 인정된다. 또한 초등학교 과정의 대안학교는 의무교육 실시 위반으로 ‘200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3년 이하의 실형’을 받는 범법행위로 간주된다.

    따라서 대안학교라고 해 모두 인가(認可)를 받은 것은 아니다. 먼저 대안교육에서 말하는 ‘대안’에 대한 정확한 합의가 있어야겠지만, 현재 초·중등을 포함한 크고 작은 20~30개의 대안학교 중 대안교육분야 특성화학교로 인정받은 학교는 고등학교 11개뿐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제도교육과 다른 독특한 교육법으로 소문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나 거창고등학교 등의 경우 흔히 대안학교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으나, 98년 이후에는 ‘대안학교’라고 하면 인정받은 11개 특성화고등학교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그로부터 4년. 개교(開校) 초기 학생모집에서부터 난항을 겪던 대안학교는 지난 몇 년간 이상적인 학교모델의 하나로 외부에 알려졌다. 일부 학교의 경우 대학진학 결과를 교육성과의 하나로 소개하면서 최근에는 정원의 수십 배에 달하는 지원자가 몰려드는 인기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특히 경남도교육청이 간디학교 중학과정에 해산명령을 내린 것은 대안교육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성화고등학교로 인정받은 11개 대안학교를 찾아 이들 학교의 현주소를 살펴보았다.

    대안학교 학생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퇴학생 학교에 다닌다”는 말이다. 이것은 대안학교 교사나 관계자들도 공통으로 지적하는 문제 중 하나다. 특성화고등학교 법제화 초기에 언론매체와 교육당국에서 대안학교가 갖고 있는 여러 성격 중 ‘학교 부적응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안적인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라는 측면을 너무 부각해, 아직도 다른 학교에서 퇴학당한 이른바 ‘불량학생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선입견이 널리 퍼져 있다. 실제 정부에서 대안학교를 제도교육 내부로 끌어들이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게 된 것은 96년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 중도탈락자 종합대책’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하여튼 시행 초기에 퍼진 이러한 시각 때문에 요즘도 대안학교를 설립하려면 지역주민들부터 설득해야 한다. 충북 청주에 있는 양업고등학교는 지금의 터에 학교를 세우기까지 네 번이나 자리를 옮겨야 했고 공청회에 아홉 번 불려가야 했다. 퇴학당한 학생들을 모아 가르치는 학교라는 소문이 퍼질 때마다 주민들의 반대시위가 시작됐다. 학교 부지(敷地)를 매입하려는 마을 입구엔 플래카드가 걸리고, 공사현장에 주민들이 몰려와 공사를 방해하기도 했다.

    이 학교 조현순 교감은 “우리 학교 설립을 반대한 어느 마을 입구에 혐오시설이라는 뉘앙스가 담긴 플래카드가 걸린 것을 보았을 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고 지난날을 회고한다. 주민들의 반대가 심하면 어쩔 수 없이 학교를 옮겨야 했다. 지금의 자리에 건물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윤병훈 교장이 나서 자란 고향 마을인 덕택이 컸다.

    화랑고등학교도 경주시 양북면의 현재 위치에 자리잡기까지 경남·북의 여러 지역을 전전해야 했다. 폐교 부지를 매입해 계약하려 하면 곧바로 그 지역 주민들 사이에 반대여론이 일었다. 화랑고의 경우 지금 있는 곳이 세 번째 자리다.

    대안학교치고 이런 과정을 밟지 않은 곳이 드물다. 일단 대안학교라 하면 ‘불량한 학생들의 집합처’로 여기기 때문이다. 대안학교 설립취지에 중도탈락자 및 부적응학생을 대상으로 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11개 대안학교 중 중도탈락자 및 부적응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곳은 양업고·영산성지고·화랑고·원경고·동명고·두레자연고 등 6개교이며, 이 여섯 개 학교 중에도 순수하게 중도탈락자만 선발하는 학교는 몇 되지 않는다.

    또 ‘학교부적응’ 의미도 폭력, 절도 등의 전과가 있다든지 가출 경험이 많은 탈선형보다는 엄격한 제도교육을 거부하고 좀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공부하기를 원하는 정도인 경우가 많다. 화랑고등학교 서종만 교장은 “학교부적응 학생을 문제아로 보지 말고 좀 다른 개성을 가진 학생으로 보아달라”고 당부한다. “독특한 개성을 좋은 쪽으로 승화하면 사회 발전에 큰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서교장의 지론이다.

    ◇ 양업고 - 우수한 시설, 자유로운 분위기

    양업고(良業高)는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파된 1800년대, 전교(傳敎) 활동 중 과로로 숨진 최양업 신부의 이름을 따 지은 학교다. 천주교 계열로 학교장인 윤병훈 신부가 부적응 학생을 위한 학교를 만들자고 정진석 대주교에게 건의해 설립됐다. 교감을 비롯 사감, 상담교사 등 3명의 수녀 교사도 있다.

    양업고에 들러본 사람은 먼저 우수한 시설에 감탄하게 된다. 학생회장으로서 다른 대안학교를 찾아볼 기회가 몇 번 있었던 3학년 명환이는 “우리 학교가 전국에서 최고”라며 무척 자랑스러워한다. 보통 7억~8억원의 비용으로 폐교부지를 매입하여 설립한 다른 학교들과 달리 양업고는 학교건물에만 40억 원을 투자했다. 단과대학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다.

    양업고 기숙사는 12개의 홈(home)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홈은 방 세 개짜리 아파트 형태며 이중 두 개 방은 학생들이, 나머지 한 개는 담당 교사가 생활한다. 홈의 이름이 귀엽고 예쁘다. 남학생들이 생활하는 홈은 느티나무·참나무·박달나무·대나무 등 나무 이름에서 따왔고, 여학생 홈은 오리온·물병·페가수스·카시오페이아 등 별자리 이름을 빌려왔다. 홈에는 1, 2, 3학년이 고루 섞여 있고 홈장(長)은 3학년이 맡는다. 모든 학생들은 3층과 별관(여학생)에 있는 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아래층에 있는 교실로 등교한다.

    양업고의 특징 중 하나는 교무실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교육지원실’이 있는데 교사들이 행정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가끔 들르거나 교사·학생의 휴게실로 쓰인다. 방송시설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어, 점심시간에 흘러나오는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누구나 들어와 새로운 음반으로 갈아 끼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교실은 과목별로 나뉘어 있다. 국어실, 영어실, 수학실 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 교실의 이름도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새롭게 고쳤다. 현재 국어과목을 수업하는 곳은 ‘버들내’, 과학실은 ‘유레카’, 사회실은 ‘집강소’, 컴퓨터실은 ‘클릭’, 가사(家事)실은 ‘인생과 사랑’이라는 팻말을 붙여놓았다. 각 교실은 담당 교사의 집무실이기도 하다. 교실마다 담당 교사의 책상이 있고, 교사는 이곳에서 학생들을 기다린다. 물론 학생들은 수업시간표에 따라 교실을 옮겨 다닌다. 운동복 차림,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모습, 혹은 아직도 잠에서 덜 깬 부스스한 얼굴로…. 그러나 이를 탓하는 교사는 없다. 여기에선 학교, 혹은 선생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강제는 거의 없다. 윤병훈 교장은 “격려하고 지지해주면 아이들은 저절로 자란다는 것이 그 동안 학교장을 맡아오면서 새삼 느낀 점” 이라고 말한다.

    1시간 30분의 긴 점심시간 동안 교사와 학생이 어우러진 축구 한 판이 벌어졌다. 이어 시작된 오후 수업. 시작종이 울린 지 꽤 지났는데도 재웅이를 비롯한 몇몇 친구들은 느긋하게 샤워를 마치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까지 취하며 교실을 찾아간다. 세계사 수업시간. 한쪽에선 기영이가 피아노를 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선 여학생들이 모여 인터넷 사이트를 감상하고 있다. 담당교사인 김덕수씨(39)는 전혀 당황하거나 화난 기색 없이 “얘들아, 우리 공부하자”는 말을 나지막이 반복할 뿐이다.

    미안했는지 딴전 부리던 아이들이 하나 둘 책상에 둘러앉는다. “자, 382쪽 펴고…” 이제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한발을 옆 걸상 위에 올려놓고 수업을 듣는 아이, 수업은 반쪽 귀로만 듣는 채 이어폰을 끼고 머리를 흔드는 아이, 모자를 눌러 쓰고 무언가를 열심히 긁적거리는데 자세히 보니 만화를 그리고 있는 아이…. 옛 미국 TV 드라마에서나 보던 수업장면이다. “그럼 진도는 언제 나가느냐”는 질문에 조교감은 “진도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따라오게 하는 것”이라며 “대학진학을 목표로 한 학생에겐 희망에 따라 보충수업을 해준다”고 설명했다.

    1층 로비에 있는 게시판에는 이색적인 대자보가 붙어 있다. “공개사과문. 며칠 전 제가 무지한 생각으로 술을 사 학교로 가져오다 수녀님께 걸렸습니다. 선배들께는 저의 방종함을 보여드려 모범이 되지 못했음을 사과드리며 추후에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2학년 진욱이가 써 붙인 것이다. 대현이도 옆에 비슷한 내용의 글을 써 붙였다. 진욱이와 대현이가 밤에 기숙사에 술을 갖고 들어오다 걸린 것이다. 학교 한켠에 흡연장소가 마련되어 있지만, 교내 음주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들에 대한 학교의 처벌은 없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이렇게 사과문을 붙이고 화장실 청소라는 벌을 택했다.

    “전국적으로 매해 실업계 고교 3만5000여 명, 인문계 고교 1만5000여 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습니다. 마지못해 학교를 다니는 잠재적 탈락자를 합치면 10만 명에 근접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중 40명만 품에 안을 수 있어 안타깝고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조현순 교감의 말이다.

    전남 영광에 있는 영산성지고, 경북 경주에 있는 화랑고, 경남 합천에 있는 원경고 등 세 학교는 원불교 재단이 세운 것이다. 때문에 교육내용과 운영 방식이 상당히 비슷하다. 영산성지고(靈山聖地高)는 그중 가장 먼저 설립되었으며 재적응형 대안학교의 모델이 되고 있다. 교육부에서 대안학교를 특성화고등학교로 지정할 때 시설기준 및 학교운영의 표준으로 삼은 곳도 바로 영산성지고였다.

    영산성지고는 원불교 성지인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에 있다. 영광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한 시간 간격으로 있는 군내버스를 타고 다시 30분 정도 들어가야 신축공사가 한창인 영산성지고에 도착하게 된다.

    성지고에는 다른 학교에 없는 것이 있고, 반면 다른 학교에는 반드시 있는 것이 없다. 고교 4학년생이나 스물세 살 된 1학년생, ‘세대주’는 있되, ‘학급별 수업 시간표’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성지고는 무학년 무학급제로 운영된다. 1, 2, 3학년으로 나누어진 학년 체계가 있지만 이는 형식적인 구분일 뿐이며 대신 국어사랑과, 문화구성과, 생명사랑과, 생활체육과, 역사탐구과, 음악과, 영어사회과, 봉사활동과, 생활창작과, 학습네트워크과, Mathpia 등 11개의 대학식 과(科)가 존재한다.

    문화구성과에는 사진·만화·비디오·연극·영화 등에 관심 많은 학생들이 속해 있고, 국어사랑과는 문학감상·글쓰기·교지편집·학교신문 발간 등에 천착하는 학생들로 구성돼 있다. 학습네트워크과는 학습 정보 공유에 관심 있는 학생들의 과이며, 수학탐구과에는 수리와 상급학교 진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모인다. 학생들은 학기 시작과 함께 여러 과 중 하나를 선택해 소속한다. 같은 과 학생은 기숙사에서도 ‘한 세대’를 이룬다. 함께 생활하는 각과 담임교사가 ‘세대주’다. 각 세대의 인원은 7~8명이다.

    매 학기 초에는 수강신청을 한다. 국어·영어·수학 등 공통 필수과목과 일본어·독일어 등 선택과목, 현장학습·생활요가·공예 등 특성화 교과 중에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을 고른다. 대부분 교사의 지도 아래 선택하지만 한꺼번에 많은 과목을 신청하든, 싫어하는 과목만 따로 떼어 다음 학기에 신청하든 개인의 자유다. 대신 출석률이 저조해 과락(科落)을 맞게 되거나 3년간 필수 이수과목을 다 듣지 않으면 ‘4학년생’ 생활을 해야 한다.

    성지고는 학생 평균 연령이 높다. 대개 20세 전후다. 학생 선발 때 연령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19세 이상은 선발하지 않는 양업고, 화랑고 등 다른 대안학교들과 다른 점이다. 23, 24세 학생들이 28세의 교사와 함께 공부하고, 운동하고, 토론도 하면서 뒤늦은 배움의 싹을 틔운다.

    4월28일 원불교의 가장 큰 행사인 대각개교절(大覺開敎節)을 맞아 성지고는 인근에 있는 영산대학교 학생들과 작은 축제를 벌였다. 대학시절 교생실습을 나왔다 다시 교사로 오게 된 성지만씨(28)가 학생들과 함께 뛰노는 모습은 흡사 의좋은 형제처럼 보였다. 학생 중 절반 정도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일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경우고, 나머지 절반은 자율적인 교육환경을 원했거나 뜻하지 않게 배움의 기회를 놓친 경우다.

    성지고의 역사는 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74년 원불교에서 고등공민학교를 개설한 것이 시작. 82년 고등학교 과정 각종학교 설립인가를 받은 후 영국의 서머힐 스쿨을 모델 삼아 학교 부적응, 중도탈락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인성 중심 교육을 선도해왔다.

    그러나 원불교 재단의 후원을 받고 있다 해서 재정이 튼튼한 것은 아니다. 자력 생활과 이소성대(以小成大)를 강조하는 원불교 원칙과, 과거 더욱 심했던 ‘문제적’ 학생에 대한 사회의 삐딱한 시선 때문에 성지고는 험난한 80, 90년대를 보내야 했다. 학생들이 나서 양계(養鷄)와 도자기 판매로 재정을 보조했고, 지역주민들이 교내로 들어와 철수하라고 소란을 피우는 시위까지 감내해야 했다.

    송기웅 교사는 “다른 학교는 특성화고등학교가 법제화되는 시점에 급히 학교설립을 준비한 경향이 있지만 성지고는 10여 년 동안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것이 가장 큰 자랑이자 저력”이라고 이야기했다. 최근 성지고는 과거 폐교부지 앞에 새 건물을 지어, 유사한 교육이념을 가진 중학교 설립을 서두르는 중이다.

    ◇ 화랑고·원경고 - ‘마음일기’ 쓰는 교사와 학생

    화랑고와 원경고는 성지고와 더불어 원불교 계열 학교다. 그러나 이들 학교가 특정 종교를 강요한다든지 종교적 내용의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면 ‘마음일기’를 쓴다는 것. 마음일기는 학교생활을 하면서 자기 마음에 일어난 여러 변화와 갈등을 차분하게 생각해볼 수 있게 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마음에 요란함은 없었는가, 감사생활을 하였는가, 남에게 유익을 주었는가 등의 기준 아래, 잘못한 일이 있었으면 무엇 때문이었는지, 마음에 파란을 일으킨 대상이 있었다면 지금 심경은 어떠한지 등을 매일 일기장에 담는다. 원경고에서 발행하는 마음일기 모음집 ‘원경마을이야기’에는 학생과 교사들의 솔직한 이야기, 마음의 그림들이 담겨 있다.

    원경고 박영훈 교감은 대안학교를 “벤처사업 중 최고”라고 말한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다. 다른 대안학교들이 1학년생부터 모집해 학교 문을 연 것과 달리 원경고는 1, 2, 3학년을 동시 모집해 개교했다. 자신이 몇 번 학교를 옮겼는지 헷갈릴 만큼 ‘문제적’이었던 아이들, 이들을 부여안고 막 개교한 학교에서 초임 교사들이 벌인 사투(死鬪)는 눈물겨운 것이었다. 첫 졸업생을 내던 날 졸업식장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원경고 첫해의 이야기는 경인방송 최병화 PD의 손에 의해 ‘내일은 태양’이라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올해의 어린이 청소년 프로그램상’ ‘한국방송프로듀서상’ 등을 받았다. 최PD는 원경고의 개척기를 “아이들은 제 가슴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정체를 알지 못해 떠돌았고, 선생님들은 그 실체 없는 바람의 끝자락을 붙잡고 몸부림쳤다”는 말로 요약했다. 이러한 소감은 ‘대안학교에서 만난 바람의 아이들’이라는 부제를 단 책 ‘교실이데아’(예담출판사)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쉬는 시간에는 자못 이색적인 광경이 연출된다. 이곳 교무실도 학생들의 놀이터 같기는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다. 선생님과 장난 치고, 한쪽 탁자에서 만화책 보고, 그러면서 또 뭔가를 계속 졸라댄다. 원경고는 학부모가 학생에게 보내오는 용돈을 교사가 관리한다. 학생들은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교사에게 달려가 용돈을 타야 한다. “에게~, 선생님 이것밖에 안 줘요” 하고 투정 부리는 모습은 원경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화랑고에 들어서면 인사성 바른 학생들의 모습에 조금 당황하게 된다. 낯선 사람을 보면 누구랄 것 없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마음이 닫혀 있는 아이들이 아님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어느 대안학교나 마찬가지지만 이곳에서도 머리를 울긋불긋하게 염색한 학생, 귀고리를 몇 개씩 한 학생, 화장을 짙게 한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일반 학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많은 자유를 주면 너무 방만해지지 않을까. 서종만 교장은 “그것은 대안학교 교육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오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딱 6개월만 하고 싶은 대로 가만히 놓아두면 알아서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화랑고 2학년 학생들이 농업실에 모여 허전한 교실벽면을 새로 꾸미고 있다. 혜영이는 열심히 종이를 오리고 한쪽에서는 필이와 고은이가 무언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눈다.

    “만약 인문계 고등학교를 갔으면 제대로 공부하고 있을까”라는 필이의 물음에 고은이는 “끌려가긴 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마 중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거야. 마치 소모품처럼.” 중학생 시절 ‘학교를 꽤나 괴롭힌’ 학생이었다는 고은이는 이제 말투도 신경 쓰고 요란한 머리와 화장도 제법 단정하게 다듬을 줄 아는 소녀가 됐다.

    “하고 싶은 것 하지 말라고 말리면 더 하고 싶어지잖아요. 여기선 그런 거 뭐라고 하는 사람 없으니까 오히려 하고 싶은 마음이 안 나요.”

    혜영이의 말이다.

    영산성지고가 재적응형 대안학교의 모델이라면 경남 산청에 있는 간디학교는 이념지향적 대안학교의 대표주자다. 98년 건국 50주년을 맞아 교육부에서 펴낸 ‘교육 50년사’에는 “간디학교가 정규학교로 인가 받게 된 것은 종래의 규격화된 학교교육 관행에 비추어 획기적인 변화”라고 평가하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간디학교를 찾아가려면 그야말로 험난한 과정을 밟아야 한다. 산청읍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외송에서 내려 다시 1.5km 정도 걸어 올라가야 산 중턱에 그림처럼 자리잡은 간디학교를 만날 수 있다. 요란한 벽화가 그려진 학교 건물 앞에 앉아 지리산 맑은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다 보면 왜 간디학교가 이곳에 자리잡았는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

    간디학교가 지향하는 인간형은 ‘전인적인 인간, 공동체적인 인간, 자연과 조화된 인간’이다. 이러한 목표는 일반 학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지만, 간디학교는 이것을 구호로만 내걸지 않고 직접 실천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전인적인 인간을 만들기 위해 간디학교가 내세운 이색적인 교육목표 중 하나는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 간디학교는 씨뿌리기, 모내기, 김매기, 밭 갈기 등 모든 농사일을 경험게 한다. 단순한 체험 수준이 아니라 ‘지구에 홀로 남더라도’ 스스로 씨를 뿌려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옷 만들기도 중요한 수업 중 하나. 일반고등학교의 가사 시간처럼 교과서를 통해 이론만 익힌다든지 간단한 바느질이나 뜨개질 정도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남녀 학생 모두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만들어 입는 수준이 되도록 한다. 집짓기 시간에는 자기가 살아갈 집을 구상하고 실제로 건축하는 방법을 배운다.

    최근 이 문제로 경남도교육청과 불협화음이 일어났지만, 다른 학교에서 볼 수 없는 간디학교만의 특징이 중·고등학생들을 섞어놓은 것이다. 13세 중학생부터 고3생까지 북적거리는 분위기에서 색다른 활력이 느껴진다.

    지난 4월19일 오후. 간디학교 운동장에 중학과정, 고교과정의 ‘간디인’들이 시끌벅적 모여들었다. 운동장 전면에는 ‘4·19 정신 계승 마라톤 대회’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간단하지만 엄숙한 기념식을 마친 후 행사를 주최한 동아리 ‘역사마당’ 회장인 3학년 지선이의 출발신호에 따라 마라톤이 시작됐다.

    산길을 따라 달리는 이 마라톤은 달리기라기보다 산행에 가까웠다. 마라톤 대회의 참가조건은 2인 1조. 중학과정 2학년인 기흥이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아버지 남응우(44)씨도 얼떨결에 아들 손을 잡고 마라톤 대열에 끼었다.

    “제도권 교육은 대안학교에서 위기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에도 여야가 있듯이 교육에도 간디학교와 같은 야(野)가 있어야 서로 부족한 점을 메워갈 수 있지 않을까요. 무조건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태도는 희망을 짓밟는 것과 같다고 믿습니다.”

    기흥이에게 간디학교 입학허가서가 날아온 날 너무 기뻐 직장 동료들에게 식사 대접을 했다는 남씨는 “사회여론이 간디학교를 지지하고 있으니 반드시 좋은 소식이 들려올 것”이라고 최근 간디학교 사태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경남도교육청이 간디학교 중학과정에 해산명령을 내린 표면상의 이유는 고등학교에 배정된 지원금을 중학교에 유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간디학교 측은 “중고등학교 통합과정으로 운영중인 간디학교의 실정을 무시한 것이며, 학교 형태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중학과정 운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진 것인데 이제 와 해산명령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실제 교육계에서는 제도권 교육에 저항하는 듯한 인상을 풍겨온 간디학교에 괘씸죄를 적용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간디학교는 2000년 11월까지 해산하라는 명령을 이미 어겼고, 2001학년도 중학과정 신입생 모집도 강행하며 ‘불복종’을 계속하고 있다.

    간디학교 입학방법은 다른 학교와 약간 다르다. 성적이나 기존 학교에서의 생활기록은 거의 따지지 않는 타 학교들과 달리, 먼저 1차 서류전형을 통해 학업성적이 어느 정도며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학생을 모집인원의 2배수로 뽑는다. 2차 전형은 면접과 예비학교로, 1차 전형에 합격한 학생들에게 3박 4일간 간디학교 생활을 직접 체험하게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간디학교에 대해 ‘환상’을 가진 학생과 학부모는 현실적인 운영실태를 알 수 있고, 학교로서는 서류만으로는 알 수 없던 학생의 참모습을 가늠하게 된다.

    2차 전형에서는 학부모도 면접한다. 그 결과는 평가에 10% 정도 반영된다. 경쟁률은 보통 3~4 대 1로, 간디학교에 입학하려고 몇 년간 준비하는 학생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생겨난 신조어(新造語)가 ‘간디, 못간디’. 간디학교에 불합격하면 ‘못간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항간에는 선택된 학생만 뽑아 가르치는 귀족학교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간디학교 측은 “‘작은 학교’의 교육이념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학년당 학생 수를 20명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다”며 “선발을 투명하게 하려면 일정한 기준을 정할 수밖에 없다”고 답한다. 간디학교 양희창 교장은 간디학교의 좋지 않은 점도 찾아내 알려줄 것을 당부했다.

    “대안학교의 문제점도 부각시켜야 대안교육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공교육의 경우도 잘못을 자꾸 덮어두려고만 하다가 봇물 터지듯 문제가 쏟아져 나오는 것 아닙니까.”

    그는 대안교육이란 “대안을 만들어가는 교육”이라고 설명한다. 완성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뜻이다.

    4·19 마라톤 대회를 준비했던 지선이에게 간디학교의 교육방식에 만족하느냐고 물었다. 잠깐 생각하던 지선이는 “만족이라는 표현보다는 ‘감사’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강원도에서 온 고교 1학년 대현이도 “너무 많은 기회를 제공해준 학교에 감사한다”면서 “처음엔 갑자기 밀려든 자유 때문에 어리둥절했다. 그런 자유를 스스로 소화할 수 있어야 진정한 간디인이 되는 것”이라고 나름의 간디인 자격을 귀띔해줬다. 이날 벌어진 4·19 마라톤 대회에는 1등이 아니라 서로 19등을 하려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4·19 기념 마라톤이다 보니 19등에 의미를 부여한 것. 1등은 지은이와 상민이가 했지만 19등을 한 정은이와 중호가 더 큰 박수를 받았다. 참가자 전원에게는 커다란 과자 한 봉지씩 주어졌다. 일등도 꼴찌도 즐거운 간디학교의 모습이다.

    ◇ 두레자연고 - 방학마다 중국 두레마을 방문

    대안학교는 대부분 외진 산골에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대안학교에 대한 첫인상을 ‘논과 산에 둘러싸인, 쓸쓸하고 외로운 유배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게 대안학교가 산골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것은 생태주의적인 견지에서 자연친화교육을 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재정이 빈약해 주로 폐교부지를 찾다 보니 대중교통으로는 닿기 힘든 곳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지역적으로는 광주 전남·북에 다섯 곳, 경남·북에 세 곳, 충북에 한 곳이 있다.

    수도권에 위치한 대안학교로는 두레자연고와 국제복음고등학교가 있다. 두레자연고는 김진홍 목사가 이끄는 두레공동체에서 설립한 대안학교다. 기본적으로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학생선발이나 교과운영에서는 전혀 종교를 따지지 않는다. 경기도 화성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울에서 1시간 30분 정도의 거리. 그래서 두레자연고는 70% 이상이 수도권 지역 학생들이다. 부적응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되 자유로운 학교분위기를 원하는 학생들이 섞여 있으며, 99년에 설립해 아직 첫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했다.

    두레자연고의 가장 큰 장점은 30여 년간 빈민선교활동을 해온 두레공동체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 71년 서울 청계천에서 활빈교회로 시작했다가 76년 자리를 옮기면서 ‘두레마을’이란 이름을 내건 두레공동체는 두레선교회, 두레장학재단 등 다양한 부설기관을 갖추고 있으며 북한과 중국, 미국 등 42개국에서 두레마을운동을 펼치고 있다.

    두레자연고는 이 두레마을의 한복판에 있는 체육 문화시설을 교사로 사용해 학교 부지 마련을 위해 다른 학교들이 거쳤던 난관은 겪지 않았다. 오히려 두레공동체의 오랜 숙원 사업 중 하나로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수월하게 학교 설립을 준비할 수 있었다.

    재정과 관련해서도 한신교 교장은 “부족하다는 느낌도 풍족하다는 느낌도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대안학교의 자율성이 독일의 일반학교 수준보다 못 합니다. 아직 대안교육이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합니다. 그 첫 항해에 동참하고 있다는 데 자부심과 사명감을 느낍니다.”

    최근 독일 두레마을에 3개월간 머물며 그곳 교육현장을 견학하고 온 한교장의 소감이다.

    전국, 그리고 세계 각국에 두레공동체운동 관련 기관 및 마을이 있기 때문에 다른 학교에 비해 현장체험 기회가 많고, 비용마련도 수월하다. 매학기 국토 순례 및 문화유적지 탐방 활동을 하고 있으며, 방학기간에는 전교생이 중국 두레마을에 한 달 정도 머물며 봉사활동과 민족문화 현장학습을 한다.

    올해는 보름 정도의 일정으로 1학년은 중국, 2학년은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다. 벌써 학생들은 게시판에 각종 도면과 사진을 붙여놓는 등 한껏 들떠 있다. 작년에 중국을 방문한 한 학생은 “중국에서 우리 또래의 탈북 청소년들을 만나 보니 내가 너무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음을 실감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수도권에 인접한 만큼 문화체험 기회도 많다. 얼마 전에는 전교생이 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 수원에서 열린 음악회에 참석했다. 두레공동체는 장기적으로 대안중학교와 초등학교도 문을 열 계획이다.

    국제복음고교는 작년에 첫 입학생을 받은, 특성화고등학교 중 가장 막내 학교다. 복음고의 출발은 전북 무주에 있는 푸른꿈고등학교와 비슷하다. 한 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한 교사 몇 명이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보자는 꿈을 실천한 것. 상업고등학교 교사로 있던 차말단씨도 현재 교감을 맡고 있는 조규호씨의 권유에 국제복음고로 오게 되었다.

    “처음에 대안학교를 만들자기에 그냥 이상적인 신념을 이야기시는 줄 알고 ‘좋다’고 했습니다. 교사치고 대안적인 학교를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계시더라구요.”

    이상과 열정만 있지 손에 아무것도 쥔 게 없는 상태에서 대안학교를 만들겠다고 폐교를 찾아 전국 어디든 달려가는 조교감을 보며, 어떻게든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차교사를 비롯한 몇 명이 더 모였다.

    운이 좋아 때마침 학교 설립을 마음먹은 독지가를 만났다. 그의 재력과 교사들의 열정으로 국제복음고가 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 ‘운’이 도리어 학교와 교사, 학생들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완전한 기독교형 고등학교를 만들려는 설립자와 대안교육을 지향하던 교사들간에 뜻이 맞지 않아 진통을 겪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사장이 학부모들에게 찬조금을 요구하는 등 좋지 않은 일도 생겨, 결국 교육청에서 이사장을 해임하고 현재는 관선 이사진이 파견된 상태다.

    “개교 첫 해는 형언할 수 없이 힘든 날들이었다”고 학생부장인 이상호 교사는 말한다. 공사대금을 지불 못해 건축회사 인부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입학식도 잠깐만에 끝내고 학생들과 피신을 해야 했다. 학교 사정이 어수선하니 학생들도 동요했다. 학생들간에 폭력사태가 일어나기도 했고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를 뼈저리게 느낀 한 해였습니다. 아이들과 씨름하랴, 내·외적인 문제와 싸우랴,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더군요.” 조규호 교감의 말이다.

    그래도 교사들은 선생님을 믿고 따라 준 아이들이 가장 큰 재산이라며 고마워한다. 지난 5월4일, 일요일이 끼어 있는 어린이날 연휴를 맞아 복음고는 의무적으로 집에 가야 하는 가정교육의 날을 주었다. 그런데 2학년 성민이가 집에 가지 않으려 했다. 예전 학교에선 교문 앞에 차를 세워 교실까지 데려다 주어도 다시 담을 넘어 도망가던 아이였다. 성민이 어머니는 “애가 학교를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며 기뻐했다.

    최근 복음고를 지원하겠다는 새로운 독지가가 나타났다. 전 이사장과의 문제만 해결되면 원만한 학교운영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누구나 태어날 땐 울 듯이 언제나 시작에는 눈물이 함께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곧 학교가 정상화되면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교육을 실현하는 학교로 자리잡을 자신이 있습니다.”

    차교사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복음고는 인천시 강화군에 있으며 서울에서 버스를 타면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 한빛고·세인고 - 대안교육과 입시교육의 결합

    세인고와 한빛고는 대안학교와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의 중간 형태에 속하는 학교들이다. 그래서 스스로 인문계 특성화학교라고 부른다. 세인고는 주로 중하위권 학생들을, 한빛고는 중상위권 학생들을 불러모아 인문계형 대안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대안학교에 대해 주위의 비판도 만만치 않다. 대안교육을 연구하는 한 시민단체 간부는 “대안교육을 한다면서 대학입시에 주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는다. 이에 대해 한빛고 곽방오 교감은 “성적이나 지식 교과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가르치고 받아들이느냐가 관건이다. 우리는 인문계의 틀 안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대입에만 매달리는 것도 문제지만 대입을 터부시하는 것도 문제”라고 설명한다. 대안교육에도 다양한 학교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광주시에서 시내버스로 40분 거리에 있는 한빛고는 중학교 성적 30%, 봉사활동 점수 등 50%, 면접 20%의 전형요소로 학생을 선발한다. 개교 첫 해에는 학생들의 편차가 심했지만, 인문계형 수업내용에 대안적 교육방식을 원하는 학부모들의 관심이 높아져 신입생들의 실력도 그만큼 상향조정되었다.

    초기에 주로 전남 광주지역 학생들이 모이던 것과 달리 지금은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이 모여든다. 제주에서 온 2학년 진영이는 누나도 함께 한빛고를 다닌다. 혜빈이는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이유로 다니던 중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봐 전남지역에서 1등을 한 학생이다. 역시 검정고시로 중학교 졸업자격을 얻어 한빛고에 입학한 원경이는 “우리 학교가 제일 좋다”며 자랑을 아끼지 않는다.

    한빛고는 설립 과정에 거창고등학교를 모델로 했다. 인문계 고등학교 교과에 목공예, 옷 만들기, 도자기, 제과제빵, 생활요리, 테마기행, 유적답사 등 특성화과목을 결합했다. 거창고등학교에서 근무하다 한빛고로 옮겨온 정송남 교무부장은 “다양한 교과과정을 통해 학생들의 숨은 적성을 찾고 대학 선택 때도 그에 맞춰 학생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고 설명했다.

    전북 무주에 있지만 충남 논산에서 가는 것이 더 가까운 세인고등학교는 ‘5차원 전면교육’으로 유명한 원동연 박사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학교다.

    5차원 전면교육이란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다섯 가지 요소, 즉 지력·심력·체력·자기관리 능력·인간관계를 조화롭게 발전시켜 실력 있는 사람으로 길러낸다는 원동연 박사의 독특한 교육학습법이다. 원박사의 이러한 학습법은 중국연변과학기술대 부총장을 지낼 당시 좋은 결과를 얻은 적이 있으며, 요즘도 강의와 저서를 통해 자주 소개되고 있다. 세인고등학교는 이런 5차원 전면학습법의 실현장인 셈이다.

    세인고 손천수 교무부장은 “중하위권 학생으로 ‘공부는 무척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성적은 오르지 않는다’는 학생들을 선발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세인고 학생들은 모두 함께 일년에 한 편씩 영화를 제작한다. 배우, 감독은 물론 조명, 음향, 편집도 학생들이 담당한다. 전교생 모두 반드시 하나의 역할을 맡아야만 영화 한 편이 완성되는데 “조금씩이라도 자기 능력을 보태는 과정을 통해 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게 된다”는 것이 손교사의 설명이다.

    부산에서 온 3학년 주영이는 졸업하면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그냥 할 일이 없어서”란다.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는 것보다 오히려 솔직해 보였다.

    세인고에는 ‘일일 교사제’가 있다. 학부모들이 하루씩 교사를 하면서 학교현장을 체험한다. 계산대로라면 1년에 세 번 정도는 일일 교사로 참여하게 된다.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신호영씨(48)도 먼 거리를 달려와 일일 교사를 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 준비를 돕고 있던 신씨는 “여기 있는 아이들은 성적은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꿈과 비전이 있다.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는 지능뿐만 아니라 역경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꿈과 비전을 강조하는 세인고에 아들을 보냈다”고 큰아들 다윗을 세인고에 보낸 이유를 설명했다.

    신씨는 5년 전 우연히 원동연 박사의 강의를 듣고 “저런 교육법이 제대로 실시된다면 내 자녀를 맡길 수도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한다.

    대안학교가 제도권 교육체계에 진입한 지 4년. 한국교육개발원 이종태 박사는 “아직 평가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제도권에서 대안교육을 실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고 지난 4년에 대한 평가를 대신한다.

    서강대 정유성 교수도 “아직 해결해야 할 것이 많지만 대안학교 문제를 대중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성과”라고 말한다.

    “대안학교가 ‘바로 이곳이 대안’이라고 선언하게 된다면 그 순간부터는 대안교육이 아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대안교육에서 말하는 ‘대안’이란 끊임없는 모색의 과정일 뿐 완전한 ‘대체(代替)’는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대안학교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영산성지고 곽종문 교감은 “공교육이 할 수 없는 것을 해야 대안학교”라고 정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곽교감은 지나친 이상주의를 경계한다. “대안학교는 공교육체제 내에서 풀 수 없는 문제를 보완하는 곳이다. 대안학교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곽교감이 대안학교에 관심을 갖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이종태 박사도 의견을 같이한다. 이박사는 “흔히 대안학교를 교육 유토피아로 생각하는데, 관심과 기대를 갖는 것은 좋지만 지나친 환상은 대안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대안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는 다양한 학교의 인정과 더불어 교과운영, 학생 선발권 등에 더 많은 자율성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안학교가 공교육체제에 편입되면서 재정적인 면에서는 많은 도움을 받고 있지만, 그만큼 간섭과 통제가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대안학교의 한 교사는 교육청의 재정지원에 대해 “받아도 답답하고 안 받아도 답답하다”며 한숨을 쉰다. 간디학교 문제도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수많은 불협화음 중 하나다.

    정부에서 모든 종류의 대안학교를 지원할 때 발생하는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화랑고 서종만 교장은 “대안학교를 만들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중에는 올바른 교육철학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교육청으로부터 어느 정도 재정지원을 받는지를 물으며 알량한 지원금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영산성지고 곽종문 교감도 “가끔씩 황당한 형태의 학교를 만들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학생은 설립자나 교사의 담보물이 아니다”고 말했다. 학생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을 만한 비전과 재정자립능력을 갖추어야 진정한 대안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이 곽교감의 견해다.

    현재 전국에는 특성화 고등학교로 인정받은 11개 대안학교 외에도 전북 진안에 있는 ‘진솔대안학교’, 경남 마산에 있는 ‘들꽃온누리학교’, 충남 부여의 ‘반딧불학교’ 등 비인가형 대안학교가 있다.

    그 외에도 전북 남원에 ‘실상사 작은 학교’, 광주시에 ‘도시 속 참사람학교’가 설립을 준비중이며 최근에는 초등 대안학교를 표방하는 ‘산어린이학교’까지 생겨났다.

    계절학교형 대안학교는 셀 수 없이 많고, 아예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은 채 홈스쿨링(homeschooling)하는 극단적 반(反)제도교육 성향도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공교육 붕괴로 인한 ‘이상조류’의 확산을 개탄해야 할 것인가, 학교의 형태와 교육방법이 한층 다양해지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반겨야 할 것인가. 대안학교 4년의 실험은 그 빛과 그림자를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세인고 교사 손천수(34)씨는 저녁 식사 후 잠깐 짬을 내어 전주시내에 있는 한 한의원을 찾았다. 허리통증이 더 이상 참지 못할 지경에 이른 것. 학교가 문을 열고 지난 3년간, 그는 다섯 시간 이상 잠을 자 본 적이 거의 없다. 학생들이 모두 잠든 것을 확인하고 이런저런 행정업무와 수업 준비 등을 하다 보면 새벽 한두 시를 넘기는 것이 예사. 세인고는 전주시내에 집이 있는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교사가 학생 거처 바로 옆 건물에서 생활을 한다.

    24시간을 학생과 함께

    이러한 생활은 비단 세인고만의 풍경이 아니다. 거의 모든 대안학교가 학생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교사도 학생들과 함께 자고 깨는 공동생활을 한다. 세인고처럼 교사 전용 생활관을 둔 학교가 있는가 하면 양업고나 영산성지고처럼 아예 한 방에서 함께 생활하는 경우도 있다.

    사정이 좀 나은 학교는 기숙사를 전담하는 사감(舍監)을 두고 있지만 대개의 학교에선 3, 4일에 한 번씩 숙직이 돌아온다. 그나마 학교가 외진 곳에 있어 숙직이 아니더라도 집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주말 부부가 아니라 월말 부부가 된 지 오래입니다. 미혼 교사의 경우 학생들과 똑같이 의무귀가일이나 방학, 명절에만 집에 가는 것이 일반적이죠.”

    힘들어도 아이들을 보면 행복하다는, 교사 생활 4년차인 어느 대안학교 교사의 말이다.

    꼭 이러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대안학교 교사의 대부분은 초임(初任)인 경우가 많다. 화랑고는 아예 초임 교사만 선발했다.

    서종호 교장은 “처음 교사생활을 시작할 때의 열정과 의지가 아니면 첫걸음 떼는 대안학교에서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 갓 대학을 졸업한 교사, 혹은 교사 자격증은 있지만 교단에 대한 열정만 지닌 채 다른 직장을 갖고 살아가던 사람들을 선발했다”고 설명한다.

    미혼 교사도 많다. 한 여교사는 “학교 울타리를 벗어날 일이 거의 없고 남자 선생님들과도 한솥밥을 먹으며 가족처럼 지내다 보니 연애할 기회가 없다”며 웃었다.

    두레자연고는 교사 공채 당시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에 기독교적 마인드를 갖추고 있고 미혼인 지원자만 선발했다. 한신교 교장은 “성직자와 같은 희생의 마음 없이는 대안학교 교사생활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끝 종이 울리면 집으로 돌아가는 습관이 몸에 밴 교사들은 적응하기 힘들다’는 것이 한 교장의 설명이다.

    학생 수가 적으니 일반학교에 비해 행정업무가 적으리라 짐작도 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대안학교 교사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대안학교를 아이들과 함께 뛰어 놀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수업하는 한적한 시골 분교(分校) 정도로 바라보아서는 큰 코 다친다는 것이다.

    이런 낭만적인 생각에 젖어 지원했다가 ‘속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한 교사는 이를 두고 “스스로의 고상한 낭만에 속았다”고 표현했다.

    과중한 행정업무는 매한가지

    일단 제도권 안에 들어온 대안학교의 경우, 일반학교와 똑같이 수많은 행정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교육청에 일상적으로 해야 할 보고와 기록도 많을뿐더러, 제도교육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민 학교들이다 보니 특별 연구와 보고과제도 적지 않다. 또 획일적이고 정형화된 일반학교보다 자율적이며 다양한 개성의 학생들이 모여 있어 매일 바람 잘 날이 없다.

    양업고 김덕수 교사(39)는 “공교육의 형식을 따라가며 거기에 대안적인 내용을 채워넣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말한다. 출석부 정리하고 생활기록부 작성하는 것도 일반학교보다 몇 배 더 시간이 든다. 게다가 단순 주입식 수업방식에 거부감을 느끼는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수업 준비도 일반학교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해야 하고 연구를 많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예 교재를 따로 만들어야 하는 경우까지 있어 업무 하중은 더욱 늘어난다.

    그럼 이들의 봉급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대안학교 교사들의 월급봉투는 학교마다 천차만별이다. 이를 결정하는 큰 열쇠는 교육청의 지원을 받느냐 여부. 대안학교가 특성화고등학교로 인정받은 98년 당시, 각 교육청마다 관련 조례 등이 완비되지 못해 대부분의 학교장은 ‘앞으로 3년간 지원을 일절 받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했다.

    결국 한푼의 지원비도 받지 못한 그 3년 동안 학교운영비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교사 급여는 가장 후순위(後順位)로 밀렸다. 세인고 교사들이 99년 개교와 함께 받았던 첫 월급은 20만원 정도. 간디학교도 15만원 정도의 ‘용돈’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약속된 3년이 지나 교육청으로부터 일정 정도의 학교운영비가 지원되면서 일반학교 수준의 급여를 받는 곳이 생겼지만 아직도 50만원 내외의 얇은 월급 봉투를 내줄 수밖에 없는 학교도 적지 않다.

    설립 재단의 실정에 따라 급여 수준이 달라지기도 한다. 종교 재단이 설립한 학교의 경우 그나마 신자 등 후원자들을 모집하기가 수월하지만, 설립자의 개인적인 의지로 만들어지거나 시민들이 힘을 모아 세운 경우 한 달 살림을 꾸려가기가 힘에 겹기만 하다.

    시설이 가장 우수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양업고의 경우도 윤병훈 교장신부가 후원서를 들고 직접 전국을 돌며 학교에 대한 지원을 부탁하고 있으며, 지난 3월부터 교육청의 재정지원이 끊긴 간디학교의 경우는 학부모와 시민들의 후원으로 지탱하고 있다.

    일반학교에서 20여 년간 교사생활을 했던 화랑고의 서종호 교장은 “일반학교에서 몸담았던 26년보다 화랑고를 이끈 지난 3년이 훨씬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교사들의 급여 수준이 낮은 것은 교육부에서 지정한 교사정원보다 더 많은 교사들을 채용하고 있기 때문. 현행 교육법상 교사의 수는 학생 수에 비례하기 때문에, 전교생을 합쳐봤자 일반계 고등학교의 2~3개 학급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의 교사 정원은 그만큼 적을 수밖에 없다.

    학생 수가 120명인 대안학교의 경우 각 교육청에서 지정한 교사정원은 행정직원과 강사를 포함해 15명 정도. 그러나 실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20명이 넘는다. 결국 15명에게 지원되는 교사급여를 20명이 나눠 받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 공예, 연주 등 특성화 교과를 가르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차비라도 지급하려면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대안학교에 출강하여 민요 등을 가르치는 대학강사 성모 씨는 “선생님들을 볼 때마다 강의비를 받는 것이 너무도 송구하다”며 “아마도 페스탈로치가 살아 있다면 바로 이분들일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산성지고 곽종문 교감은 “교과편성과 학기운영에 더 많은 자율권을 줘 집중수업, 과목통폐합 등을 실시하면 같은 지원 조건에서 더 많은 교사를 확보하고 더 나은 교육을 실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한다.

    재적응형 대안학교의 한 교사는 “일반 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하겠다고 내보낸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거두어 가르치려 애쓰는 학교들이니만큼 국가에서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며, 일반학교와의 형평성 시비를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 대안학교를 육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 “대안학교에 대한 재정지원을 시·도교육청의 일반 운영비가 아닌 교육부의 특별교부금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학생 수 120명 정도의 대안학교 하나를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은 한 달에 대략 3000만 원 정도. 1년에 3억~4억이 필요한 셈이다. 간디학교 입학절차를 문의하러 온 학부모 정향미씨(37·충남 대전)는 “우리나라 교육을 믿지 못해 자녀들을 조기유학 보내려는 재력 있는 부모들이 그 돈을 모아 이런 대안학교들을 많이 설립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부실기업에 쏟아붓는 몇 조원의 공적 자금 중 조금이라도 대안학교에 투자한다면 우리나라 교육에 비약적인 발전이 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한 대안학교 교실에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은 거침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큰 기대를 갖고 입학했으나 실망한 이야기, 부실한 교육환경, 일반학교보다 훨씬 자유롭긴 하지만 그래도 존재하는 규제들, 그리고 컴퓨터실의 인터넷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와 식당 반찬투정까지.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도대체 만인(萬人)을 만족시키는 교육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런데 몇 시간 동안 계속된 대화 과정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도출한 결론 아닌 결론은 “그래도 우리 선생님들은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한 학생은 “친구 같고 큰형 같은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이 학교도 벌써 그만두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다른 학생은 “선생님을 볼 때마다 나도 선생님이 되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다소 ‘오랜만에 듣는’ 이야기를 했다.

    세인고 손천수 교사는 “중학교 때까지 선생님이 이름 한번 안 불러준 아이들, 교사와의 관계가 단절됐던 아이들이 교사와 가까워지고 동등한 위치에서 마음을 열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부터가 대안학교의 가능성”이라고 말했다.

    실제 대안학교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교사와 학생을 구분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학생과 함께 바위 위에서 대화하는 모습, 음악 동아리 학생들과 어울려 드럼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면 누가 교사고 학생인지 쉽게 분간되지 않는다.

    양업고 점심시간에는 웃통을 벗어 젖힌 채 학생들과 족발 내기 축구를 하는 남자 선생님, 옆에서 ‘야, 잘한다 잘해!’를 외치는 수녀 선생님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간디학교의 4·19 마라톤 대회를 지켜본 한 외부인은 학생들 사이를 분주히 돌아다니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젊은 교장 선생님을 보고 “참 이런 학교가 다 있네” 하며 신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학생들은 자신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교사들에게 자연스런 존경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교사양성·지원 시급

    대안학교가 풀어가야 할 많은 숙제 중에는 교사 양성도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이종태 박사는 “대안교육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할 만한 전문적인 교사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는 곳은 간디학교. 간디학교는 대안적 철학과 교육과정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이에 근거해 대안교육을 담당할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교사연수원’을 시작하였다. 연수원에서는 대안학교 예비교사(교사자격증 소지자, 현직 교사 등)를 대상으로 대학원 과정에 준하는 교사양성과정을 계획하고 있다.

    학기당 10주, 1년 3학기 총 30주 과정으로 매주 토요일 오후 6시부터 일요일 오전 10시까지 주말 강의를 한다. 철학 강의 및 세미나, 전공교과 교재 개발, 특성화 교과 수련, 교육현장 실습 등 4개 과정을 거치게 되며, 평가위원의 인증과 함께 졸업위원회를 통과하면 졸업이 인정된다. 물론 공식적인 대안학교 교사 양성기관은 아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사범대학 등에 ‘대안교육과’를 설치해 전문적인 대안교육 연구와 교사 양성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대안학교 교사에 대해 특수학교 교사에 준하는 처우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 교사는 “물론 스스로 선택한 길이고 특별한 대가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언제까지 무조건적인 희생만 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지금은 초기단계여서 헌신적인 교사들의 집결이 가능하지만 앞으로 대안학교가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교육부에서 ‘도심형 대안학교’를 공립으로 추진할 경우 이러한 학교에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근무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한 지원문제가 반드시 대두할 것이라는 게 교육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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