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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암 환자가 된다는 것

  • 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한국에서 암 환자가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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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명을 알고 나서 환자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략 3가지다.

“70%는 죽었구나 하는 생각에 큰 절망에 빠집니다. 희망을 잃는 거지요. 20%는 암이 죽음의 질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요. 그러면서도 억울한 심정은 어쩔 수 없이 들죠. 10% 정도만이 현실을 냉정히 인정하고는 꼭 싸워 이기겠다는 결의를 다집니다. 이런 마음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아무래도 암을 극복할 가능성이 커요.”

암환자 모임 이정갑 회장의 설명이다.

95년, 서른세 살 때 위암 판정을 받았던 김승겸씨는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부터 생존율이 10% 이하라는 얘기에 충격받지 않으려고, 태연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했다”고 말한다. 10% 생존율은 낮은 게 아니다, 나는 당연히 그 10%에 든다고 믿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이후 김씨가 힘든 수술을 견뎌내고 자기만의 방법으로 병을 이겨내는 데 큰 버팀목이 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다수의 환자는 그렇지 못하다. 가족들도 마찬가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한다. 누구에게 조언을 구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의사는 늘 바쁘고, 그렇다고 사태를 이해시켜 줄 다른 사람을 찾기도 난망하다.



이미 이 단계를 경험한 환자나 병 치료에 얼마간 성공한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믿어라, 그리고 공부하라”고 조언한다. 암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면 의사의 설명을 이해할 수 없음은 물론 자기에게 맞는 치료법을 선택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흔히 의사들은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의사만 맹신해서는 안돼요. 왜 그런 치료를 받는지,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고, 이외에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 충분히 알고 있어야지요. 책을 읽고, 인터넷 사이트도 뒤져보고, 같은 병을 앓는 환자들과 대화도 많이 나눠야 해요. 암에 대해 의사만큼 안다는 확신이 서면, 그때 확신을 갖고 치료법을 선택해도 늦지 않습니다.”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은 후 3년째 투병 중인 백중호씨(41)의 조언이다.

암에 대한 지식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환자나 보호자가 제일 궁금해 하는 것은 ‘수술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주치의로부터 “수술 한 번 해보자”는 말을 들으면 그나마 생기가 돈다. 뭔가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수술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게 되면 “가능하다”는 말을 해줄 병원을 찾아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됨은 물론이다.

어떤 이들은 안된다는 의사를 붙들고 늘어지며 “그냥 열었다 닫아도 좋으니 꼭 해 달라”고 호소한다. 특히 보호자의 경우 ‘환자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자기 만족 혹은 주변의 시선(수술 한 번 못 받고 죽게 했다는 비난)을 고려해 수술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수술은 초기암을 제외하고는 그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또 보호자들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배를) 열어보니 너무 퍼져 있다, 그냥 닫아야겠다”는 것이다. 수술 후 찾아올 고통이나 후유증을 생각하면 피해야 할 일이다.

실제로 강남의 모병원은 환자들 사이에서 ‘잘 째기로’ 유명하다. 같은 유방암이라도 그 병원에만 가면 꼭 절제수술을 권하고 그것도 아주 ‘세게’ 잘라버린다는 소문이다. 여기서도 결국 필요한 것은 현 상태에 대한 환자 자신, 그리고 보호자의 정확한 이해와 판단이다.

급행료의 효과

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할 책임은 주치의에게 있다. 몇몇 대형병원이 채택하고 있는 환자권리장전의 내용도 그것이다. 인간으로서 관심과 존경을 받을 권리, 의료진의 성실한 대우를 받을 권리, 전문 분야에 대해 알 권리, 현 상태 및 치료계획·예후에 대한 설명을 들을 권리, 치료·검사·수술 여부를 선택할 권리, 진료상 비밀과 사생활을 보장받을 권리, 신체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 진료비 내역에 대해 알 권리. 그러나 이러한 권리를 실제로 행사하는 환자는 많지 않다.

모병원 암병동에 입원 중인 남경락씨(55). 지난해 2월 말 식도암 말기 진단을 받고 3월 초 수술을 받았다. 어느 정도 회복된 듯해 직장에 복직도 했다. 그런데 올 4월 왼편 다리에 통증이 시작됐다. 병원을 찾으니 재발했다고 했다. 4월23일 재입원해 다시 검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남씨와 보호자인 아내는 놀랍게도 재발 부위가 정확히 어디인지 모르고 있었다. 의사가 그냥 ‘배’라고 했다는 것이다. 왜 더 자세히 묻지 않았느냐고 하자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맞는 거지, 뭐 하러 꼬치꼬치 캐물어 귀찮게 해드리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이들은 의사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의사 얼굴 보기가 왜 이리 힘든지…”

이런 넋두리는 암 투병 중인 환자나 보호자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수술이 끝난 후에도 제대로 된 설명조차 해주지 않는다. 그저 “잘 됐어요”하는 정도. 아버지가 직장암 투병 중인 한 보호자는 “의사랑 딱 5분만 눈 맞추고 이야기해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역시 아버지가 폐암 말기 환자인 임보영씨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싸다는 병원에 입원했지만 2주 동안 주치의 얼굴은 단 두 번밖에 볼 수 없었다”고 했다.

“레지던트가 암이라면서 너무나 쉽게, 6개월에서 1년 사십니다, 그러고 마니 듣는 우리로선 할 말이 없더군요. 나중에 주치의 말이 제 어머니 우시는 게 보기 싫어 젊은 의사를 시켰대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나지만 그때는 그 의사를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심정, 아시는 분은 알 겁니다.”

의사와 ‘눈을 맞추기 위한’ 환자와 보호자의 노력은 때로 눈물겹기까지 하다. 의사의 동선을 미리 파악해 두었다가 따라붙어 동냥하듯 몇 마디를 주워 듣는다. 주치의 회진 때를 대비해 미리 질문 내용을 적어 몇 번씩 예행연습을 하기도 한다. 길고 중요하지 않은 듯한 질문은 할 수 없다. ‘선생님’을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답답함이 극에 달하면 ‘급행료’를 준비하게 된다. 봉투에 적게는 30만~50만원, 많게는 200만원 정도의 돈을 넣어 주치의나 레지던트에게 전달한다. 거절하는 의사도 많지만 일단 받고 나면 대우가 확실히 달라진다. 방으로 불러 차트를 펼쳐놓고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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