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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살기좋은도시'를 가다 ⑧ |스페인 바르셀로나

피카소와 가우디의 도시

  • 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mairso2@donga.com

피카소와 가우디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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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으로 지낸 가우디는 반평생을 이 공사에 바쳤다. 실제로 1914년부터는 다른 일은 일절 하지 않고 작업실도 현장 사무실로 옮기고 숙식도 이곳에서 인부들과 함께 했다. 1926년 가우디는 일터인 이 성당 앞에서 뭔가 골똘히 생각하며 걷다가 전차에 받혀 죽었다.

사그라다 패밀리아 성당은 앞으로도 200년 후에나 완공될 예정이다. 건축 재원은 관광객의 관람료로 충당하고 있다. 1년에 약 100만명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입장료가 850페세타이니 연 8억5000만페세타(59억5000만원)의 관광수입을 올리는 셈이다.

전철 2호선 또는 5호선 사그라다 패밀리아역에 내리면 곧바로 성당 입구다. ‘어떻게 저렇게 기묘하고 웅장한 탑과 문과 창을 돌로 빚을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이 절로 솟구친다. 한쪽에선 흉물스러운 철골이 그물망처럼 퍼져 있고 기중기가 움직이는 등 어수선한데, 이 신비의 성당은 경외스럽기만 하다. 탑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꾸불꾸불한 돌계단이 미로처럼 펼쳐져 있다. 사이사이에 있는 돌창문 밖으로 바르셀로나 시가지가 조각나 있다. 성당 뒤편에는 커다란 호수가 잠자듯 누워 있다. 참으로 가우디의 영혼이 바르셀로나 창공에 떠도는 듯한 느낌이다.

가우디가 바르셀로나에 지어놓은 건축물은 시내와 근교를 포함하면 모두 12개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특히 구엘공원에 가보면 왜 바르셀로나가 ‘가우디의 도시’로 불리는지 실감하게 된다.

전철 3호선 발카라역에서 내려 15분 가량 비탈길을 오르면 공원 뒤쪽 입구가 나타난다. 십자가가 세워진 돌탑에 올라서자 바르셀로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후 3시.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햇빛이 강렬하다. 원래 이곳은 가우디의 열렬한 후원자였던 구엘의 사유지였다. 가우디는 여기에 이상적인 전원도시를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자금 부족 등의 이유로 공사에 차질이 생기는 바람에 계획한 60여 개의 주택 중 두 채만이 건설됐다. 이후 소유주가 바르셀로나시로 바뀌면서 1922년 시립공원이 되었다.



이 공원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모자이크 장식과 동굴 형태의 산책로다. 거기에 수십 개 기둥이 받치고 있는 거대한 돌 쟁반 모양의 휴식공간과 인체 특징을 고려해 만든 돌 벤치, 요술의 집을 연상시키는 주택, 알로에를 비롯한 인공수림이 조화를 이뤄 공원 전체가 하나의 조각품 같은 느낌을 준다.

오후 2시면 문 닫는 관공서

구엘공원에서 카탈루냐광장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갈 때와 달리 버스를 탔다. 한국 버스와 다른 점 몇 가지가 눈에 띄었다. 먼저 맨 앞자리에 아동용 좌석 2개가 따로 마련된 것. 이 좌석은 일반 좌석보다 작고 별도의 보호손잡이가 설치돼 있다. 좌석은 전철과 마찬가지로 모두 1인용 의자다. 또 장애인 보호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타고 내릴 때는 버스가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지면서 깔판이 미끄러져 나와 편의를 제공한다.

그밖에 가우디의 걸작으로는 작은 궁전과도 같은 구엘 저택, 건물을 밀가루 반죽으로 빚어놓은 듯한 카사 밀라, 해골 눈구멍 같은 창문 탓에 밤이 되면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카사 바트요 등이 꼽힌다.

가우디 외에도 바르셀로나에는 당대 최고 예술가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바로 피카소, 미로, 달리 등이다. 안달루시아지방 말라가에서 태어난 파블로 피카소는 14세 때 바르셀로나로 이주해 이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최초의 개인전도 바르셀로나에서 열었다. 현대 미술의 또다른 거장인 호안 미로도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미술학교를 다녔다. 바르셀로나 근교인 피게라스 출생인 살바도르 달리 또한 바르셀로나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일찍이 초현실주의적 경향을 드러냈다.

전철 4호선 하우메역에 내려 5분 정도 걸으니 주택가 골목 안쪽에 피카소미술관이 보였다. 습작 형태의 초기작품이 많았다. 특히 인물 초상이 많았는데 하나같이 어둡고 침울한 느낌이다. 미술관 1층과 주변상가에는 ‘피카소 상품’을 둘러보는 관광객의 발길이 넘친다.

이제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생활상과 사회제도를 살펴보는 것으로 얘기를 끝맺자. 먼저 식사문화. 현지에서 언어연수중인 교민 박현아씨는 “스페인의 식사문화란 한마디로 많이 먹고 많이 떠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학교나 직장에서는 하루 세끼의 식사시간 외에 두 차례의 간식시간이 따로 있다. 물론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시간이다. 보통 오전 8시쯤 빵이나 우유 등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오전 10시∼11시는 간식시간이다. 바에서 샌드위치와 커피 등을 먹는다. 10시반이 되면 동네 바마다 사람들로 꽉 들어찬다.

오후 1시에 시작되는 점심시간은 오후 4시까지 이어진다. 점심 후 낮잠을 자는 시에스타라는 풍습에서 유래된 것인데, 대부분 먹고 떠드는 시간으로 이용된다. 이 시간에는 직장은 물론이고 관광지 가게나 큰 쇼핑몰, 식당을 빼놓고는 일반 가게도 다 문을 닫는다. 오후 대여섯시엔 다시 간식시간을 갖는다. 오후 8시반. 하루의 마지막 식사인 저녁식사가 시작된다. 저녁식사는 보통 10시 안에 끝나지만, 늦으면 11시, 12시까지도 이어진다.

식사량도 대단하다. 점심이나 저녁 등 정식은 보통 네 단계에 걸쳐 먹는다. 처음엔 야채나 스프 또는 스파게티를 먹는다. 이어 고기나 생선 등의 본 요리를 든다. 그것이 끝난 다음에는 케이크나 과일을 먹고, 마지막으로 커피나 차 등 음료를 마신다.

바르셀로나에서 업무시간은 식사시간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오전 9시∼오후 1시반 또는 2시, 오후 4시∼오후 8시가 업무시간이다. 하지만 관공서와 은행, 우체국은 오후 2시면 문을 닫는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일은 언제 하냐는 것. 이와 관련해 교민 김현욱(37·새누리교회 목사)씨는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하루에 되는 일이 없다. 대신 주어진 시간 내에 정확하고 꼼꼼하게 일한다. 전화를 신청해 설치하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 그렇지만 매끄러운 일솜씨를 보고 감탄했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식사시간만큼은 철저하게 지킨다. 손님이 뭘 사려해도 문을 닫아걸고 팔지 않는다. 처음엔 답답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여기 사람들이 정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에선 뭐든지 서두르고 쫓기고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니 삶에 여유가 없다.”

식사문화 못지않게 부러운(?) 것은 휴일과 휴가 사용 풍토다. 토·일요일을 뺀 연간 공휴일 수는 16일이다. 성모승천일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등 기독교 관련 휴일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사순절을 앞두고는 모든 학교가 10일간 방학에 들어간다. 공휴일 외에 각종 축제 때도 쉰다. 그런데 공휴일이 화요일이나 목요일에 걸리면 월요일이나 금요일도 휴일로 간주한다. 따라서 그 경우엔 토·일요일을 포함해 4일 연휴가 된다.

출산하는 데 5000원

여름휴가는 상당수 유럽국가에서 그렇듯 한 달간 보낸다. 또 주말 휴가는 철저하게 지키는데, 대부분 교외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다. 별장이 없는 사람들은 캠핑장을 활용한다. 다시 김목사의 얘기.

“한국사람들이 처음 이곳에 오면 문화충격을 받는다. 여기 사람들은 한국인들이 여름휴가로 일주일만 쉬고 평소에는 휴가를 거의 쓰지 않는 데 대해 크게 놀라워한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일하고 사느냐는 것이다. 특히 휴가중에도 일처리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아는 교민 중에 태권도 사범 출신으로 침방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처음 이곳에 와서 ‘내가 이 사람들처럼 살다가는 굶어죽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지금은 익숙해졌다. 다들 똑같이 문 닫고 쉬니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복지제도 중 가장 내세울 만한 것은 의료제도다. 먼저 의료보험비가 유럽 국가들의 평균치보다 싸다. 정부가 의료보험을 관장하는 한국과 달리 이곳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병원에 개별적으로 의료보험을 든다. 또 국립병원을 이용하면 모든 것이 무료이고 약값만 내면 된다. 외국인의 경우 여권만 갖고 있으면 각 동네에 있는 1차 진료기관을 거쳐 어느 병원에서나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김현욱 목사 부부의 경우 이곳에서 둘째를 낳았는데, 입원-출산-퇴원에 이르기까지 각종 진찰과 검사를 무료로 받았다. 돈이 들어간 것은 주말 진찰료와 처방전에 따른 약값뿐이었다. 다해서 우리 돈으로 약 5000원이 들었다고 한다.

교육제도도 눈여겨볼 만하다.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인데, 국립은 학비가 들지 않는 반면 사립은 수업료를 내야 한다. 사립대학 수업료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국·공립대학의 경우 아주 싼 편이다. 바르셀로나대학만 해도 1년 수업료가 10만페세타가 채 안된다. 대학에 들어가는 문은 넓으나 졸업은 쉽지 않다. 외국인도 예외는 아니다. 또 명문대·비명문대 구분에 따른 사회적 차별이 거의 없다고 한다.

바르셀로나를 얘기하면서 축구를 빼놓는다면 이곳 사람들에게 노여움을 살 것이다. 오늘날 스페인에서는 축구스타의 인기가 일류 투우사를 능가하고 있다. 바르셀로나에는 널리 알려졌듯, F·C 바르셀로나라는 세계적인 강팀이 있다. 각국의 스타플레이어로 구성된 이 팀은 수도 마드리드의 간판 축구팀인 레알 마드리드와 더불어 스페인리그의 정상을 다투고 있다.

두 팀간의 경기 열기는 한·일전 이상이다. 두 도시간의 전통적인 라이벌 의식에 카탈루냐주 특유의 민족감정이 표출되기 때문이다. 경기장 곳곳에는 스페인 국기가 아닌 카탈루냐 주깃발(노란 바탕에 빨간 줄 4개)이 휘날린다. 경기가 열리는 날은 가히 전쟁이다. 방패와 몽둥이를 든 무장경찰이 경기장 안팎에 배치되고 경기장 밖에는 경찰버스와 응급차 10여 대가 대기한다. 시합에서 지기라도 하면 폭동 수준의 소동이 일어난다. 돌과 의자가 날아가는 등 패싸움이 벌어지고 그 어느 시위보다 과격한 시위가 펼쳐진다.

‘발샤 와와와, 마드리드 우우우’

시합이 열리는 동안 거리엔 차가 다니지 않고 시내는 한산하다. 축구장에서 경기를 보려면 일주일 전에 관람권을 예매해야 한다.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집에서 TV를 보는 것이 아니라 동네 바로 몰려가 응원용 숄을 두른 채 집단응원을 펼친다. 자리가 없으면 맨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을 정도로 열성이다. 바르셀로나팀이 골을 넣으면 일제히 터지는 함성으로 온 시내가 떠나갈 듯하다.

수도 마드리드에 대한 경쟁의식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응원 요령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아이들은 바르셀로나팀을 응원할 때는 ‘발샤(바르셀로나팀의 애칭) 와와와’ 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도록 배운다. 반면 레알 마드리드팀에 대해서는 ‘마드리드 우우우’ 하고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꺾는다.

이처럼 열정적인 바르셀로나 사람들이지만 돈 씀씀이에 있어서는 유태인 소리를 들을 만큼 냉정한 편이다. 한국에서 의류를 수입해 파는 권태환(62)씨에 따르면 바르셀로나 부자들은 티를 내지 않는다. 옷차림이 수수하고 저축을 많이 하며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차도 소형차가 많으며 10년, 20년 이상 된 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외곽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편리하지만 사용료 내는 것이 아까워 우회도로를 이용할 정도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그들은 무엇을 하는가. 권씨에 따르면 이 도시에는 기부문화가 잘 발달돼 있다. 고아원이나 양로원, 아프리카 구호사업, 선교사업 등에 듬뿍듬뿍 기부한다. 다른 한편으로 가족과 더불어 여가를 즐기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철저하게 쉬고 즐기고 절약하고 기부하는 풍토. 이만하면 살기 좋은 도시로 볼 만하지 않은가.

신동아 200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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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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