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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大選의식 경기부양, ‘펀더멘털’ 무너뜨린다”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정운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정리·이형삼 hans@donga.com

“월드컵·大選의식 경기부양, ‘펀더멘털’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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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 구조조정이 안된 근본적인 원인의 하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몰랐다는 것이에요. 다시 말해 1997년의 한국경제 위기가 겉으로 봐선 외환유동성 위기였지만, 외환유동성 위기를 가져온 것은 경제 체질의 허약성이라는 걸 몰랐어요. 그러니 외환보유고가 늘어나니까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착각한 겁니다. 가정이 파산했을 때도 융자를 받는다든지 하면 문제가 금방 해결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파산에 이른 근본적인 이유를 따져봐야 합니다. 미시적인 펀더멘털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망각했거나 처음부터 몰랐기 때문에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김종인 : 요즘 상황을 한번 봅시다. 9·11테러 이후 가장 걱정하던 게 뭐였습니까. 국제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을 것이다, 유가가 폭등할 것이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반대였어요. 국제금융시장은 비교적 안정된 상태이고, 주가도 사태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고, 금리는 사상 최저로 떨어졌고, 유가도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환율도 마찬가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겐 지금도 1980년대 말처럼 3저란 말이에요. 그때처럼 3저가 왔는데 왜 지금은 우리 경제에 기력이 없을까요? 경제의 본질이 허약하니까 여기에서 더 뻗어나가질 못하는 겁니다.

정운찬 : 체질이 허약해서 외환유동성 위기를 맞은 것이지, 외환유동성 위기 때문에 한국경제가 어려워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걸 잘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주위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꾸 잊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소위 개혁을 담당해야 할 사람들이 변화를 너무 두려워해서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고 우회했다는 사실입니다. 아까 ‘코리언 이코노믹 퍼즐’이란 얘기를 했는데, 비슷한 사례를 구소련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소련은 1917년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약 40년 동안 이른바 ‘외연적 성장(extensive growth)’을 잘해왔습니다. 서유럽 국가들에게 모범이 되기도 했죠. 1930년대 초 미국과 유럽이 공황으로 고생할 때 케인스가 소련의 경제성과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가 공산주의자로 몰리기도 했지요. 소련의 40년이 우리가 겪은 40년과 비슷해요. 소련 경제를 미시적으로 살펴보면 체질이 허약했습니다. 인적, 물적 자원을 합리적 계산없이 마구 갖다 쓰다보니 성장은 잘됐지만, 속은 빈약했던거죠. 그러다 결국 한계에 도달해 정권교체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김종인 : 제가 1980년대에 한·소 경제협력 업무를 담당했고, 소련경제를 공부한 적도 있어 그 내용을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소련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 후 1920년대 초반부터 5개년 성장계획을 세워 시행했어요. 그 체제가 1950년대 중반까지는 성장률에서 최고의 효율을 보였어요. 그러다 1950년대 중반에 와서 갈림길에 선 겁니다. 여기서 망하든지, 아니면 변화를 해서 새롭게 더 발전하든지.



스탈린 사후 권력을 잡은 당시 후르시초프가 그 사실을 잘 알았어요. 후르시초프는 변화를 가져오려 했죠. 1957년 제20차 소련공산당대회에서 후르시초프가 이런 연설을 했어요. ‘우리가 이 시점에서 경제 체질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자본주의 경제의 효율을 도입하지 않으면 전망이 없다’고. 그렇게 소련경제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수렴이론’ 같은 게 나왔죠. 그런데 소련 공산당 엘리트, 노멘클라투라들이 기득권이 흔들리자 저항을 한 겁니다. 이들이 주축이 되어 1964년에 후르시초프를 축출했죠. 그후 집권한 브레즈네프가 과거 스탈린식의 경제 운영방식을 20년간 계속 답습하다가 결국 1980년대 초에 와서 소련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소련이라는 나라를 와해시킨 가장 큰 요인이 됐습니다.

외환보유고가 너무 많다고?

정운찬 : 일본경제를 소련경제와 비교하는 시각도 있지요?

김종인 :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연구하다 은퇴한 찰머스 존슨 교수가 ‘일본경제는 말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이지, 경제 운영방식은 소비에트 스타일과 똑같다’고 했어요. 일본경제도 일정 기간은 엄청난 효율을 기록했어요. 1960년대에 올림픽을 치른 뒤 약간 슬럼프에 빠졌다가 다시 뻗어나가기 시작한 이래 경기변동과 무관하게 성장을 거듭했어요. 관료의 효율에 의해 계속 성장했던 겁니다. 그러나 변화를 정책적으로 수용하지 못해 결국 뒤처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일본은 국제환경의 변화를 잘 읽지 못했습니다. 1989년에 일본은 최대의 호황을 누렸는데, 그것을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10년(The Lost Decade)’에 빠져든 겁니다.

우리도 그런 일본경제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았습니까. 개발연대에는 별 아이디어가 필요없어요. 5개년 계획 세우고 자원 공급하면 되는 거예요. 더욱이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출발했으니 물건을 생산하면 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죠. 그러나 경제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면 사람도 변하는 것 아닙니까. 사람들의 욕구가 다 달라져요. 우리도 1990년대 초에 변화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기업들은 계속 규모만 확대하는 정책을 고수했고, 정부와 금융기관은 아무런 제동장치도 없이 따라간 거예요. 결국 일본과 한국 둘다 오버 커패시티(over capacity) 문제, 그리고 이와 연관된 금융의 부실을 낳지 않았습니까. 소련이 거대한 콤비나트만 잔뜩 만들어놓고 금융권에서 계속 돈 대주니까 효율이 뭔지도, 코스트가 뭔지도 모르고 운영한 것처럼요. 아니, 돈 벌어서 이자도 못내는 사람들이 계속 성장한다는 게 기업가로서 상상할 수 있는 일인가요?

지금 우리 외환보유고가 1000억달러가 넘어 신인도가 올라간다는데, 그건 좋은 얘깁니다. 정부도 이걸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죠. 하지만 외환보유고의 구성요소를 제대로 파악해야 됩니다. 최근 일각에서는 ‘적정 외환보유고가 400억∼500억달러면 되는데 왜 쓸데없이 1000억달러씩 갖고 있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변화를 직시해야 돼요. 과거처럼 자본시장 개방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외환보유고 적정수준을 따진다면 IMF에서 얘기하는 대로 3개월 정도 수입할 수 있는 액수에다가 알파(α)만 보태면 되죠. 우리의 현재 수입규모로 볼 때 400억∼500억달러면 충분하다고 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자본 유출입이 자유화됐기 때문에 외국자본이 우리나라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 증권시장 시가총액의 35%가 외국인 소유예요. 시가총액을 250조원으로 잡으면 외국인 소유 주식이 90조원, 근 700억달러나 돼요. 게다가 채권시장에도 150억달러쯤 들어와 있을 것 아닙니까. 그것만 해도 800억달러가 훨씬 넘어요. 이 돈은 우리 경제상황이 어떻게 변하냐에 따라 그때그때 들락거릴 수 있습니다. 그런 사정도 모르면서 외환을 너무 많이 갖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니 답답할 수밖에요. 그러면서 우리처럼 IMF사태를 겪은 태국과 인도네시아를 한국과 비교해선 안돼요. 그런 나라들과 비교하는 건 창피한 일입니다.

정운찬 : 아세안 국가들의 GDP를 다 합친 게 한국의 GDP 규모와 비슷합니다. 그쪽 나라들보다 잘했다는 건 의미가 없어요.

‘진정제 효과’엔 한계

김종인 : 인도네시아나 태국 같은 나라는 외국으로부터 단기자금을 차입해서 부동산에다 쏟아부었어요. 우리는 일부 종금사들이 해외에서 러시아나 동남아 국가에 투자했다가 날리기도 했지만, 단기차입금의 상당 부분을 그나마 시설에 투자했기 때문에 팔아먹을 거라도 좀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런 나라들과 비교해서 잘했다 어쨌다 하는 건 스스로를 비하하는 거예요.

정운찬 : 후르시초프에겐 개혁의지가 있었지만 엘리트들이 변화를 거부해 소련경제가 실패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경우에도 이 정부 초기에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어요. ‘모두 다 살려고 하면 모두 망한다’고. 그런 걸 보면 개혁과 구조조정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는 상당했던 것 같은데, 그게 퇴색한 것은 경제운영을 담당하는 고위관료들이 그걸 따라오지 못했거나 변화를 너무 두려워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김종인 :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은 경제라는 환자의 병을 고치는 의사입니다. 병을 고치려면 환자의 병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진단해서 올바른 처방을 해야 합니다. 외과적 치료가 필요하냐, 내과 치료만 해도 되냐를 판단해야죠. 가령 속이 곪아들고 있으면 수술로 떼어내야 치료가 됩니다. 그런데도 자꾸 내과 처방만 하면 환자는 결국 죽게 돼요. 경제도 마찬가집니다. 외과 처방이 필요하면 외과 처방을 해야 되는데, 바쁘다고 진정제만 자꾸 먹여서야 되겠어요? 공적자금이 바로 진정제예요. 경기부양책과 공적자금은 진정제 노릇밖에 한 게 없어요. 어느 시점까지는 진정제 효과로 안 아플지 몰라도 결국은 다시 도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자꾸 금융경색 현상이 생기지 않습니까.

IMF사태 후 은행에 감자(減資)해서 공적자금을 집어넣었는데, 2년쯤 지나니 금융경색이 와서 또 감자해서 공적자금을 추가 투입했어요. 구조조정을 하라니까 실업을 걱정합니다만, 예컨대 다리를 절단해야 목숨을 건질 수 있는데, 그게 두려워 미적거리다간 병이 더 악화되죠. 무릎 아래만 잘라도 될 것을 다리를 다 잘라야 하는 수가 있어요.

실업이 두렵겠지만, 실업은 별개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공적자금이라는 진정제를 투입해서 어느 정도 통증을 가라앉히고 체력을 회복했으면 구조조정이라는 외과수술을 단행했어야죠. 그랬으면 투입할 공적자금도 절약했을 것이고, 그 돈으로 제대로 된 실업대책도 마련하고 새로운 산업도 일으킬 수 있었다고 봐요.

적자생존과 투명성

정운찬 : IMF사태 직후에는 실업자가 100만 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70만 명쯤 된다고 합니다. 4인 가족 한 달 최저생계비가 98만원이라니까 100만원으로 잡고, 실업자 1인당 매달 100만원씩 준다면 실업자를 100만 명으로 쳐도 한 달에 1조원, 1년에 12조원이면 됩니다. 물론 12조원은 큰 돈이죠. 하지만 공적자금 150조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선은 실업이나 다른 부작용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대신 사람이 고통받는 것을 방치할 순 없으니까 실업수당을 준다든지 하는 방법을 고려해야겠죠.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그밖에 직업훈련, 정보제공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뒤따라야겠죠.

구조조정을 다른 말로 하면 적자생존의 원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실물과 금융부문에 다 적용돼야 하는데, 그간 실물부문에서는 대우나 동아건설 등의 경우에서 보듯 타이밍상 늦기는 했지만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이 있었던 듯하지만, 금융부문에서는 작은 금융기관 말고는 금융의 특수성, 즉 금융기관이 문을 닫으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인지 그 원칙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좋건 싫건 20년이 될지 30년이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앞으로 당분간은 미국식 자본주의가 세계의 룰이 될 터인데, 그것을 무시하면 세계경제 속에서 살아남기 힘들어요. 현재 세계 자본주의의 두 가지 기본룰은 적자생존의 원칙과 투명성의 제고입니다.

지금까지는 현재 경제상황에 대한 분석, 구조조정의 필요성,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제 2001년을 보내는 마당에서 새해 경제 전망과 경제정책 등으로 화제를 돌려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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