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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에서 아프간 함락까지,미국의 언론전쟁

  • 이흥환·미 KISON 연구원

9·11테러에서 아프간 함락까지,미국의 언론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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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민간기구는 분석 끝에 이렇게 결론을 짓고 있다. “미 수도인 워싱턴과 뉴스의 산실인 뉴욕에서 발행되고 있는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는 다른 어떤 신문보다도 영향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독자들에게 테러리즘에 대한 광범위한 시각과 원인 및 해결책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매체들이다. 논단 지면의 목적이 비판적인 의견과 다양한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라면, 두 신문은 중요한 시기에 독자들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고 말았다.”

루퍼트 머독이 소유주인 폭스(Fox) 뉴스 채널이야말로 보수 논조의 거장답게 9월11일 테러사건 이후 보수 언론의 색채를 한껏 발휘한 매체다. 미디어가 치르는 대 테러전 방송 부문에서는 최선봉에 서 있는 셈이다.

미 전국에 900만 명의 시청자를 가지고 있는 CNN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다섯 살배기 케이블뉴스 전문채널 폭스는 일반 시청률에서 CNN을 훨씬 앞지르기도 한다. 폭스만이 가지고 있는 스타일과 저력은 선두주자인 CNN이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CNN의 월터 아이작슨 회장이 자사 특파원들에게 “아프가니스탄의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해 보도할 때는, 미국이 공습을 하는 이유 및 9월11일 사태 때 수천 명의 미국인이 무고하게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반드시 밝히라”는 특명을 내린 것도 경쟁사인 폭스를 염두에 둔 것이다. 폭스의 보수 논조가 시청자들에게 먹혀들고 있는 상황에서 다소 진보적인 색채로 비쳐지는 CNN으로서는 시청자들을 적으로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월터 아이작슨 회장도 “시청자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토로했다.

로이터통신사 등 일부 언론들이 ‘테러리스트’라는 표현마저 삼가면서 신중한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으나, 이미 대세는 폭스의 시청률을 높이는 쪽이었다. 폭스의 좌우명은 ‘공정한 보도, 균형 잡힌 보도’다. 이 말 속에는 경쟁사인 진보언론이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나름대로의 논리가 깔려 있다. 보수 매체의 좌우명이 그렇듯이 보수와 진보 양쪽에 같은 무게를 두었다가는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 폭스의 주장이다.



“지금 우리가 보도하고 있는 것은 테러리스트와 테러, 악에 대한 것이고, 미국은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폭스회장 로저 에일리스.

“폭스는 정확하고 공정해야 하며 미국다워야 한다.”─선임 부회장 존 무디.

폭스가 정부 입장을 그대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에일리스 회장은 폭스도 필요할 때는 정부를 비판한다면서, 존 애쉬크로프트 법무장관의 지나친 비밀주의와 대국민 홍보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토미 프랭크 미 사령관의 태도를 공격하고 있다고 반격했다. “우리는 반미가 아니다. 미국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을 사실이라는 이름으로 보도할 수는 없다”는 것이 에일리스 회장의 말이다.

폭스는 아프가니스탄 공습에 따른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보도도 우선 순위에서 밀어놓았다. 폭스 ‘스페셜 리포트’ 앵커인 브릿 흄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이건 미국과, 살인을 일삼는 야만인들과의 전쟁이다. 전쟁은 지옥이다. 사람이 죽는 게 전쟁이다. 우리는 지금 전쟁을 하고 있다. 사람은 죽게 마련이다. 민간인도 죽는다. 민간인이 죽은 것이 무슨 뉴스가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전쟁에서는 공습을 하게 마련이고, 공습 역시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말인데, 폭스는 왜 공습에 대해서는 열심히 보도를 하는가라는 반문에는 브릿 흄도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우리는 보도만 할 뿐이다. 판단은 시청자가 한다’는 것이 폭스의 입장이다.

CBS앵커 댄 래더의 눈물

자신 앞으로 배달된 탄저균 우편물의 주인공이 된 CBS 방송의 앵커 댄 래더가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해 보인 ‘눈물’은 미 언론인들이 테러참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뉴욕 참사 직후이며 탄저균 사건이 터지기 전, 한 코미디 토크쇼에 출연한 댄 래더는 뉴욕 세계무역센터 참상 보도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술회하는 중에 눈물을 보였다. 앵커로서뿐만 아니라 필명을 날리고 있는 진보적인 인사이고, 객관적인 보도 태도로 평판이 높은 TV 앵커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 보인 눈물은 언론계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그의 눈물은 시청자들에게는 위력적이었다. 테러사건 이후 슬로건이 되다시피한 ‘함께 뭉쳐 일어서자(United We Stand)’라는 구호에 힘을 보태준 셈이다.

댄 래더가 미디어 전쟁의 분위기를 잘 파악한 언론인이었다면, 풍자적인 정치 토크쇼 사회자인 빌 마어는 이 분위기를 거슬렀다가 따끔한 맛을 본 경우다. 테러 직후 “비행기를 조종해 돌진해오는 사람보다는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미사일 공격을 해대는 사람들이 더 비겁하다”는 과감성(?)을 발휘했다가, 즉시 시청자들에게 사과를 하고서야 사태를 진정시키고 사회자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공습의 민간인 피해 보도가 축소 또는 은폐되는 등 보수주의와 애국주의의 기치를 내건 거대 언론 매체들의 일방적인 독주가 계속되자 진보적인 지식인 논객들과 미디어 감시 단체들이 주요 언론에 대해 포문을 열었다. 미국이 치르는 미디어 전쟁의 또 다른 측면이다.

보수·진보 논객 사이의 ‘붓전쟁’

이들은 주류 언론의 보도 형태가 대 테러 전쟁이라는 커다란 틀 속에 어떻게 규격화되어 가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진단하고 있다. 우선 비행기 참사 당시 상황의 지속적인 반복과 영웅주의의 강조가 바탕에 깔려 있다. 노리에가, 사담 후세인, 밀로셰비치 등 과거 미국의 주적(主敵)들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던 것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이번에는 오사마 빈 라덴과 탈레반을 과녁으로 삼았다. 집권 6년 동안 탈레반이 저지른 인권유린의 행태 같은 것은 주요 언론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호재였다.

외국인 테러리스트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관련법인 국제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대안 제시를 주류 언론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미국과 탈레반의 과거 긴밀했던 관계를 소개하는 글이나 방송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물러간 뒤 극도로 혼란했던 아프가니스탄 국내 정세를 그나마 질서 잡히는 쪽으로 기여했던 탈레반과 알 카에다 조직의 실험적인 집권과 미국의 배후 지지 역할, 탈레반 집권 직전 극도로 무질서했던 아프간 정세에 북부동맹 측도 톡톡히 한 몫을 했던 사실, 서구의 석유회사들이 아프가니스탄을 통과하는 송유관 보호를 위해 탈레반 집권을 지지했던 배경, 이 송유관에 사활이 걸린 우즈베키스탄 타지크스탄 등 주변국들이 대 탈레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을 지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 등 미국과 탈레반의 이면 관계보다는 탈레반 척결이라는 부시 행정부의 당면 목표가 우선시되었을 뿐이다.

미국은 테러사건 한달 전까지만 해도 마약 퇴치 전쟁의 일환으로 탈레반에게 4300만달러를 지원했다. 1997년 전세계 무기 거래량의 63.4%를 차지한 미국의 대외 무기 판매 가운데에는 직간접으로 탈레반을 손님으로 한 거래도 있었다.

더구나 오사마 빈 라덴이야말로 노리에가나 사담 후세인처럼 미 외교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국무부 ‘실험실’에서 미 국익을 위해 만들어진 산물이었다. 이 실험의 목적이 달성된 뒤 미국은 또 다른 국익을 추구하기 위해 또 다른 ‘목표물’을 생산해낸다. ‘이 시대’라는 진보언론의 선임 편집자 살림 무와킬은 지난 12월3일 ‘시카고 트리뷴’에 기고한 ‘이게 우리가 말하는 승리란 말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의 대 테러 전쟁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할 또 다른 혼합형 괴물을 만들어내는 데 골몰하고 있다. 어처구니없게도 이 작전의 결과는 얼마든지 예견할 수가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죽어가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대 테러 전쟁의 이면에 눈을 감고 있는 주류 언론에 칼을 들이댄 비주류 논객들의 필봉은 테러사태와 대 테러전쟁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왜 이런 참혹한 사태가 일어났는가. 테러 공격에 대처할 정책 대안은 무엇인가. 9월11일 사태란 결국 미국이 만들어낸 ‘역풍’이 아닌가.

과연 누가 적인가. 목표물을 얼마나 더 확대시킬 것인가. 미 국내 여론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대미 여론도 귀담아들어야 하지 않은가. 9월11일 사태란 진정 이슬람에 의한 테러인가. (진보지 ‘The Nation’의 편집자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미국에 대한 테러를 ‘이슬람의 얼굴을 한 파시즘’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민간인 피해자 관련 보도도 미디어 보도 감시단체들의 주된 공격거리다. CNN과 폭스 같은 거대 매체들이 아프가니스탄의 민간인 피해에 대한 보도를 회피하는 마당에 지방 언론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다음은 공정보도 감시단체 FAIR가 플로리다주 파나마시 ‘뉴스 헤럴드’의 보도지침을 인용한 글이다.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피해를 보여주는 사진은 1면에 게재하지 말 것. 자매지 ‘포트 월튼 비치’가 그 사진을 게재했다가 수백 통의 위협 이메일을 받았음. 민간인 피해를 주제로 한 통신사 기사도 사용하지 말 것. 부득이 사용할 경우에는 기사 중간에 배치하거나, 민간인 피해 상황을 축소 보도할 경우에만 기사 앞에 배치할 것. 미국이 고아원이나 학교, 이와 유사한 기관을 폭격했을 경우나 수백 명의 어린이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에만 예외임.”

주류 언론의 외눈 감기 보도 행태의 가장 전형적인 사례는 노엄 촘스키 등 대표적인 진보 논객들의 글이 주류 언론에서는 하나도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촘스키 거부 관행은 이번 대 테러전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번 미디어 전쟁에서도 촘스키는 일부 진보적인 언론과의 인터뷰와 기고를 통해 미 상업언론의 오래된 병폐와 행정부의 일방주의를 무차별 공격해댔다(촘스키는 테러사건 이후 자신이 발표한 글들을 모아 ‘9-11’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으나, 이 역시 일반 서점에서는 쉽게 발견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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