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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1000만원 고료 논픽션 공모 우수작

아파트 파수꾼의 밤과 낮

  • 강춘달(가명)

아파트 파수꾼의 밤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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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이 나간 뒤 나는 게시판을 훑어보았다. ‘소화기 점검안내’ ‘소독약 살포일시 공고’ ‘등산 안내’ 등 자기가 붙인 쪽지는 다 붙어 있었다. 이상하다, 방금 떼간 것이 무엇일까.

2문의 오씨를 찾았다. 사람이 궁금해서 살 수가 없다. 오씨는 내가 자기한테 와서 기웃거리는 걸 용케 알고는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책상 고무판 밑에서 접어놓았던 쪽지 하나를 꺼냈다.

“여기서 보지 말고 가지고 가서 읽어보라구. 다 읽고는 찢어버려, 알았지.”

거기엔 워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참사랑아파트 주민에게 알려드립니다. 우리 아파트에서는 작년 1월1일부터 세대당 자동차 한 대를 기준으로 해서, 초과 차량에 대해서는 주차공간 확보기금마련 명목으로 대당 월 5000원씩 돈을 거두고 있습니다. 이번 달까지 모인 기금은 900만원쯤 됩니다. 그런데 이 돈은 처음 목적과는 달리 관리소장의 판공비, 경비원들의 특근비, 야식비 등의 이름으로 봉급 외에 이중으로 지급되어(서류상으로만 지급되었을 뿐 실제로 받은 사람은 없음) 지금은 바닥이 난 상태입니다. 우리 관리실에 이런 비리가 있다는 사실을 주민 여러분들은 알고 계시는 지요.”



아파트 관리비의 부당함을 고발한 내용이었다. 고발한 사람도, 그 대상도 구체적으로 밝혀놓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고, 그 내용이 모두 사실일 경우 파장이 따를 만도 했다.

전부터 그 모금에 대해서는 말이 좀 있었다. 아파트 주변의 지가가 평당 천만 원이 넘는데 그 돈으로 어느 천년에 땅을 사들여 주차공간을 만드냐, 아니면 재건축을 해야 하는데 아직 지은 지 10년밖에 안된 건물을 주차공간 좁다고 새로 짓는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그런 돈은 거둘 수가 없다는 게 그 요지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 다음달부터 고지서에 주차관리비가 들어앉았다. 좀 미심쩍은 데가 있긴 했으나, 운영위원회에서 정한 일이거니 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내왔는데 그게 말썽인 모양 같았다. 내용을 보니 충분한 해명이 없는 한, 앞으로 일이 좀 시끄러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시한폭탄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좀 있자 오씨가 왔다.

“쪽지 어떻게 했나?”

“찢어 버리라구 했잖어. 그래서 버렸는데.”

“태워버릴 것이지.”

“안심하라구. 갈기갈기 찢었으니까.”

“어때? 내용이.”

“좀 시끄럽겠던데. 그런데 거기 경비원들 특근비, 야식비로 나갔다는 건 무슨 말이야?”

“묵은 놈이 있길래 그런 말이 나온 거겠지.”

“그럼, 우리 말고 경비원이 또 있단 말야.”

“그걸 누가 아나. 어디 숨겨놨는지.”

“우리 소장 얼굴이 똥 밟은 상판이던데.”

“그 친구, 이번에 혼 좀 나야 한다구. 지가 소장이면 소장이지 왜 그렇게 건방져. 꼭 지 주머니 털어 봉급 주는 거같이 말야.”

이윽고 오씨가 소장을 씹기 시작했다. 오씨의 입에서 그 말이 한번쯤 나올 줄 알았다. 이미 쪽지를 숨겨놨다가 보여줄 때부터 좀 다르다고 생각했다. 오씨와 소장의 관계가 껄끄럽다는 건 모두 다 알고 있는 일이다.

올 음력 설 때다. 경비원이 모두 관리사무실을 찾았다. 꼭 세배를 하러 갔다기보다는 직무상 관리자가 있는 곳이라 찾아가서 들여다보고 왔던 것이다. 그런데 오씨만은 그 자리에 빠졌다. 고의로 빠진 게 아니라 차례를 지내고 오느라고 좀 늦게 출근을 했고, 나중에 혼자 일부러 가기가 뭣해 어영부영하다가 그만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이날 오후 소장이 오씨를 순찰 겸 찾아갔던 모양이다. 말하자면 위계질서의 순서가 바뀐 셈이다.

“우리 오선생님, 설은 잘 쇠셨습니까.”

“아, 예.”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그만 다음 말이 문제가 되었다.

“오씨한테는 제가 먼저 찾아왔습니다.”

말에 씨가 들어있다고 본 것이다. 소장은 한번 웃으려고 그런 말을 했다지만 오씨의 귀에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수가 되게 틀어졌다. 먼저 찾은 것이 뭐 큰 대수라고 그걸 씹냐는 것이 오씨의 주장이었다.

“지가 먼저 왔으면 왔지, 그게 그렇게 원통해. 일찍 뒀음 그만한 자식을 둬두 뒀어. 그런데 그 자식이 소장이면 소장이지 그따위 싸가지 없는 소리를, 그것두 면전에다 대구 하고 앉았어. 아주 쌍놈의 새끼 아냐.”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물론 듣는 자리에서 한 소리는 아니다. 그런데 그 말이 어떻게 들어갔는지 소장의 귀에 들어갔고, 그 소리를 들은 소장은 소장대로 “그 양반 사람 다시 봐야겠구먼” 하는 반응이, 어떻게 들어갔는지 또 오씨 귀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날부터 두 사람 사이엔 외형상 표는 나지 않았지만 험악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다 며칠 뒤 또 이런 일이 포개졌다. 하루는 관리소장이 오씨를 불렀다.

“103동 2문 앞에는 무적차량이 왜 그렇게 많지요. 첨부터 스티커를 안 붙인 겁니까, 아니면 외부 차량입니까? 오늘 오전에 보니까 또 한 대가 있던데 신경 좀 써주세요. 내 위에도 동대표가 있고 위원장이 있는데 그분들이 알면 골치 아픕니다. 좀 도와주십쇼.”

다분히 보복성이 들어가 있는 말이었다. 오씨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던 게다. 아파트 주민 소유 차량에는 관리실에서 발급하는 스티커가 다 붙어있는데 그것이 없는 차량을 여기에서는 무적차량이라고 한다. 가끔 부근의 얌체 주민들이 몰래 단지 내에다 세워놓는 일이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스티커 유무를 너무 엄하게 단속하는 데에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친척이라든가 업무상으로 들르는 차가 잦기 때문이다. 그런 걸 그때마다 하나하나 붙들고 사유를 따지자면 말썽의 소지가 있다.

그래서 경중을 따져 눈치껏, 탄력적으로 처리하고 있는 형편인데 그걸 물고 트집을 잡은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오씨가 그만 대들고 말았다. 불만이 터진 것이다.

“말 다 했냐. 정말 당신 싸가지 없다. 보자보자 하니 너무 하는구먼. 지금 가봐라, 우리 앞에만 무적차량이 있는 게 아니다. 한두 대도 아냐. 그런데 왜 나만 들볶냐. 응?”

“오씨요. 그게 아니라니까요. 왜 자꾸 옆길로만 나갑니까.”

주변에서 말리고, 타이르고 해서 그날 일은 더 발전하지 않고 그 선에서 종결됐지만, 그리고 서로 잘 해보자고 사과까지 했지만, 뿌리가 뽑힌 것은 아니다. 불씨는 그냥 묻혀 있는 셈이다.

지금 하는 말만 들어도 알 수가 있다. 그 뿌리에서 싹이 돋은 것이다. 먹은 마음이 없다면야 아직 뭐 하나 확인된 것도 없는데 왜 기다렸다는 듯 소장을 씹는가 말이다. 쪽지까지 감춰놓았다가 보여줄 때는 뒷말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라구.”

오씨는 계속 엉뚱한 쪽으로 몰고 나간다.

“우리 소장 골치깨나 아프겠는데.”

“아플 게 뭐가 있나. 자기한테 그런 일이 없으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계속 말투가 식은 밥 얻어먹은 소리다.

“이제 그만 참으시지.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계속 듣기가 딱해 내가 한마디 해보았다. 내 생각으로는 두 사람이 똑같다. 경비원이 관리소장한테 맞서 가지고 이익 볼 게 뭐가 있는가. 서로가 손해라곤 하지만 피해는 항상 약자한테 더 크게 돌아가게 되어있다. 그게 세상의 법칙이다.

지금 오씨가 저렇게 씹어대는 건 믿는 구석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아들 하나가 지방 신문사에 근무하고 있다는데 그걸 큰 배경으로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일종의 명분 싸움이었다. 이런 일들이 대개 그렇듯 벽보사건도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아직 아침도 이른 시각인데 갑자기 101동 앞이 파장 직전의 시장바닥처럼 왁자지껄했다. 이 시간에 이렇게 소란스러운 건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나는 무슨 일인가 해서, 그러나 별일이 아니겠지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밖으로 나가보았다.

예상 밖으로 큰 싸움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육두문자와 고래 고함이 조용한 아침하늘을 찢어놓았다. 둘러싼 사방 벽의 반사로 인해 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피투성이가 된 한 사람이 말리는 듯한 사람들에게 붙잡혀 헐떡거리고 있었다. 표정이며 행동이 분을 못 삭여 어쩔 줄을 모르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얀 와이셔츠에 피가 묻어있어 더 했다.

맞은편에는 건장한 사내가 자다가 튀어나왔는지 잠옷 윗도리를 걸친 채 여차하면 팍 물어뜯을 듯 성난 사냥개의 자세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분위기가 조금 전에 험악한 일전이 있었음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이 쌍노무 새끼가 싸래기만 처먹었나, 엇다대구 반말 지거리야.”

건장한 사내가 떠벌렸다.

“야, 임마. 너는 온말 했냐? 늬가 반말을 하니까 내가 반말 한 거 아냐.”

와이셔츠 피투성이가 대들었다.

“저 자식 말하는 거 좀 봐. 아주 죽을라구 환장을 했구만.”

“그래 임마. 죽을라구 환장했다. 자신 있거든 죽여봐라.”

“저 자식 저거, 주둥아리 그냥 둬서 안되겠구만. 손 좀 더 봐야하겠는데.”

그 소리와 함께 건장한 사내의 발길이 번개같이 날아가 피투성이를 걷어찬다.

“에이 씨팔눔. 너는 이제 나한테 죽었다. 오늘이 늬 제삿날인 줄 알아라.”

와이셔츠는 말리는 사람들 손에서 벗어나 주변 화단둘레에 박아놓았던 벽돌을 뽑아 들었다.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양쪽 태도로 봐 그냥 두면 누가 죽어도 하나가 죽어야 해결이 날 것만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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