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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노’라고 말하는 참모가 세상을 바꾼다

지도자와 명참모, 그 오묘한 관계

  • 이철희 정치평론가

‘노’라고 말하는 참모가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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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대목이 유방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왜 그런가? 유방의 군대가 항우를 영수로 하는 군단의 일개 부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월등한 군사력을 보유한 항우가 명분 때문에 순순히 천하를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장량은 이러한 정세를 냉철하게 읽었다. 관중 땅에 먼저 입성하였다는 사실에 취해 전체 국면을 보지 못하면 대세를 그르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그는 약탈을 일절 금하고, 장악하고 있던 관중 땅을 항우에게 내주자고 주장했다. 군세가 항우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관중 땅을 욕심냄으로써 항우를 자극하여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었다. 또 점령군으로서 은혜를 베풀면 인심을 얻게 된다는 정치적 계산도 했다. 뒤이어 입성한 항우군이 약탈을 일삼아 인심을 잃으면서 유방은 비로소 확실하게 황제 재목으로서 평가를 얻기 시작했다.

장량은 전투에서 지더라도 전쟁에서 이기는 큰 그림을 그렸다. 병법에도 공심위상(攻心爲上)이 최고의 전략이라고 했다. 유방은 관중 땅을 포기했지만 민심을 얻었고, 항우는 관중 땅을 얻었지만 민심을 잃었다.

여기서 후삼국시대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왕실을 침범하여 저지른 숱한 만행, 약탈로 민심을 잃은 사건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견훤의 참모 능환이나 최승우는 왜 장량처럼 대국적 안목을 갖지 못했을까. 유방이나 견훤이나 여자를 좋아하고, 도덕보다는 본능을 앞세웠던, 그야말로 비슷한 부류의 인물이었는데도 그 대응은 너무나 판이했다. 더욱이 욱일승천하던 견훤이 신라 왕실 침탈을 고비로 서서히 하락세로 반전하게 된 것을 반추해 보면 더욱 그렇다. 이렇듯 참모의 역량이 대세를 결정짓는 법이다.

이제 시(時)의 고(古)에서 양(洋)의 서(西)로 시야를 돌려보자. 지도자를 도와 성공으로 이끈 참모 중에서 우선 독일의 한스 글로브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글로브케는 총리실장으로서 부처간 업무조정과 정보업무 등 핵심적인 일을 장악한, 수상 아데나워의 그림자였다. 그는 아데나워를 위해 내각의 각 부처와 정보부, 그리고 언론사 편집국, 이익단체에 물샐틈없는 정보망을 만들어 놓고 아데나워가 그들을 통해 세상 흐름을 일별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이 정보망을 통해 남보다 먼저 세부사항까지 파악했으며, 이를 토대로 내각회의에서 반대 그룹에 대한 맞대응 논리를 치밀하게 펴나갔다. 아데나워가 글로브케를 선택한 것은 그가 명석한 법률가이면서 행정가이기도 했지만, 나치 부역 전력 때문에 오직 아데나워에게만 충성을 바칠 수밖에 없었던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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