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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비화

LG그룹의 ‘한쪽 날개’ 허씨家 스토리

55년간 내조의 道 지킨 ‘숫자귀신’들

  •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ns@donga.com

LG그룹의 ‘한쪽 날개’ 허씨家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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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의 허씨(김해 허씨) 가문과 구씨(능성 구씨) 가문은 기업활동으로 인연을 맺기 전에 이미 지연과 학연, 혈연으로 연결돼 있었다. 두 집안은 경남 진양군 지수면 승산마을(현재는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허씨 문중은 구씨보다 약 200년 앞서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허씨네는 엄청난 재산을 모아 승산마을을 영남 일대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으로 만들었다. 인근의 고성, 의령, 사천, 함안, 산청 등지에도 많은 농토를 소유했는데, 그래서 승산마을 허씨 중엔 천석꾼이 10여 집, 만석꾼도 두 집이나 있었다고 한다. 허만정씨는 그 중에서도 첫손꼽히는 만석꾼이었다.

허씨 집안이 이렇듯 큰 부자가 된 이치는 간단했다. “지독히도 부지런하게 일해서 벌고, 번 것은 쓰지 않았으며, 쓰지 않으니 자연히 쌓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허씨네 사람들의 근면과 절약에 관해서는 전설 같은 얘기들이 전해온다. “담뱃대에 담배를 재고 빨기는 하지만, 불을 붙이지 않고 입김만 내뿜었다” “여름에 부채를 펴고는 있지만, 부채가 상할까봐 부채 대신 얼굴을 흔들었다” “머슴들이 일하는 곳에 와서 담뱃대에 담배를 재놓고 가곤 했는데, ‘내가 언제 이 담배를 피우러 올지 모르니 쉬지 말고 일하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정승처럼’ 쓸 줄 아는 미덕도 겸비한 구두쇠였다. 허씨가는 이른 아침이면 쌀 한 말로 밥을 지어놓고 날마다 몰려드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끼니를 대줄 만큼 인심이 후했다고 한다. 1920년 4월13일자 ‘동아일보’는 허만정씨의 부친인 허준(許駿)씨가 “생활비만 제하고 나머지 재산을 전부 공익사업에 쓰고자 해 재산가의 모범이 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허만정씨도 1925년 진주에 일신여고(지금의 진주여고)를 세우고, ‘백산상회’라는 위장회사를 만들어 독립자금을 조달했다.

구씨네도 원래 천석꾼 소리를 듣던 집안이었으나, 연암의 조부가 30년 동안 청렴한 관직생활을 하면서 치부는커녕 오히려 가산을 축내는 바람에 연암이 태어날 무렵엔 300, 400석 규모로 줄었다고 한다. 1984년 출간된 연암의 일대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구씨 집안은) 큰 부자는 아니었고, 큰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허씨네가 재(財)를 가지고 얼굴을 들고 있다면, 구씨네는 기(氣)를 가지고 산다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집성촌에 사는 이성(異姓) 집안인 데다 어느 한 쪽이 크게 기울지도 않는 터라 양가는 대대로 겹사돈을 맺으며 인연을 쌓았다. 연암도 만 13세이던 1920년,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허만식(許萬寔)씨의 장녀 을수(乙壽)양에게 장가를 들었다. 그보다 앞서 허만식씨의 차남인 인구(仁九)씨가 연암의 고모와 혼례를 치렀는데, 신랑이 요절하는 바람에 “기왕 맺은 인연이 아까우니 다시 한번 맺어보자”고 얘기가 됐던 것이다. 연암의 장인 허만식씨는 허준구 전 명예회장의 육촌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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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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