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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말단서 CEO까지… KTF 이경준 사장의 도전 인생

“‘찬물 대접’ 20년 그래도 버텼다”

  • 성기영 주간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우체국 말단서 CEO까지… KTF 이경준 사장의 도전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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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떨어지고 나면 눈물만 나옵디다. 초등학교만 마치고 서울로 유학왔지만,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는 아버지와 한 이불 덮고 자본 적이 없어요. 저녁마다 자취방에서 훌쩍거리며 눈물 찍어내는 게 일이었죠, 뭐.”

김제군 봉남국민학교를 졸업한 소년 이경준은 서울로 유학해야 한다는 선생님들의 강권에 못 이겨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국민학교라야 한 학년에 2개 반이 전부이던 전형적인 시골학교에서 ‘군계일학(群鷄一鶴)’의 실력을 보여준 이경준을 인근 상급학교에 진학시키기는 아깝다는 것이 주변 어른들의 판단이었다.

아버지가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었지만 공사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가끔씩 학비나 놓고 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마음의 위안이 되어주던 아버지는 중학교 2학년 때 가족 곁을 영원히 떠났다.

이사장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장남의 군복무 기간 내내 아랫목에 따뜻한 밥 한 공기를 묻어둘 정도로 그를 끔찍이 아꼈다. 어머니의 정성과 극진함은 독일 연수 시절에도 계속됐다. 말하자면 어머니에게 이사장은, 아무때나 불쑥 찾아와도 따뜻한 밥을 대접해야 하는 ‘영원한 손님’이었던 셈이다. 어머니는 십수년 전, 막내아들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운명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보자. 없는 살림에 가장마저 없어진 마당에 고교진학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방과후면 그가 공부를 가르쳐주곤 했던 ‘제자뻘’ 되는 친구들은 모두 고등학생이 됐지만 그는 꼴 베고 피 뽑는 농사꾼으로 살아야 했다.



“정오쯤 되면 김제평야를 가로질러 호남선 열차가 ‘빽’하고 기적을 울리며 달려갑니다. ‘아, 저걸 타고 한번 튀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은 드는데, 방법은 막막하고….”

막연하기만 한 서울행을 포기한 이경준은 무조건 공부를 시작했다. 밤낮 없이 20일을 바짝 매달려 공부한 끝에 김제고등학교에 수석 합격했다. 고교 시절, 공부는 여전히 잘했지만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급기야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는 학교 수업을 통째로 빼먹고 3개월 동안 전국을 떠도는 무전여행에 나섰다. 무전취식에 동가식 서가숙(東家食 西家宿), 떠돌이생활의 연속이었다. 연탄도 나르고 벽돌도 찍었다.

“천호동 연탄공장에 취직해서 먹고 자고 할 때였어요. 왕십리로, 청량리로, 리어카 배달을 하다보면 해는 지고, 배는 고프고…. 열흘 일하고 받은 돈으로 남대문에서 국수 두 그릇 사먹으니 빈털터리가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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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영 주간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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