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없는 눈동자는 허공을 맴돌고 반쯤 열린 입에서는 침이 흘러나온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잘 돌아가지 않는 입을 열어 의사를 반기던 그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올해 예순다섯 살의 최성규(가명)씨. 적은 나이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생을 이렇게 보내야 할 시기도 아니다. 그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운 없게도’ 1987년 악명 높은 원진레이온에서 일했다는 사실뿐이다. 불과 1년 남짓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유독가스에 다친 그의 육신은 철저히 망가졌다.
발작이 일어나는 등 이상한 조짐을 처음 느낀 것은 원진레이온을 떠난 지 5년이나 지난 1992년이었다. 계속 심해지는 증세에 병원을 찾아다니던 그는 2년 후에야 ‘이황화탄소 중독’이라는 직업병 판정을 받았다. 증세는 하루가 다르게 심각해졌다. 당초 신부전증으로 시작됐던 이황화탄소 중독 증세는 온몸으로 번져나갔다. 2년 만에 그는 자리에 눕는 신세가 되었다.
지금 최씨는 원진레이온 피해자들을 돌보기 위해 경기도 구리시 옛 공장자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원진녹색병원에 머물고 있다. 1년 넘도록 병원생활을 하고 있지만 나아질 기미는 없다. 그의 병을 수발하는 아내와 딸 등 가족의 삶 역시 함께 일그러져 버렸다.
“이황화탄소 중독은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1987년 처음 발견된 6명의 원진레이온 피해환자들은 모두 사망했어요. 이후 추가로 발견된 많은 분들 역시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돌아가셨습니다. 병원에 있다고 해서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꾸준히 악화되죠. 병원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진행을 늦추는 것 뿐입니다.”
오랜만에 휠체어에 내려앉은 환자의 손을 부여잡고 얘기를 나누던 이 병원 산업의학과 임상혁(39) 과장의 말이다. 기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환자의 웅얼거림을 경청하던 그가 말을 덧붙인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산재요양원이 없습니다. 병원은 요양소가 아닙니다. 치료가 어려운 환자들이 여유 있게 남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없다보니 결국 캄캄한 병실에 누워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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