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라덴주의(Bin Ladenism)는 세계화의 산물이며 세계화에 대한 하나의 대응이기도 했다. 나는 오사마 빈 라덴이 다른 시대였다면 이번처럼 활동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그는 전세계의 추종자들과 교신하는 데에 위성전화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1990년대 이전에는 구경도 할 수 없었던 물건이다. 인터넷 역시 빈 라덴의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파하거나 알 카에다 조직원을 충원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작년 11월 오사마 빈 라덴의 전기인 ‘성전(聖戰·Holy War, Inc)’을 출간한 언론인 피터 버겐(Peter Bergen)은 미국의 월간 ‘애틀랜틱(The Atlantic Monthly)’과의 인터뷰(2002년 1월호)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기본적으로 세계화와 이데올로기의 종식으로 상징되는 1990년대를 배경으로 탄생할 수 있었던 사람이며, 국제 테러조직에 첨단적인 기업경영 기법을 도입한 최초의 인물이다.” 버겐은 1997년에 이미 오사마 빈 라덴을 인터뷰해 미국 TV방송에 내보냈던 몇 안되는 서방 언론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작년 8월 출판사에 ‘성전’의 초고를 넘겼는데, 원래 이 책은 2002년 여름에나 출간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운명의 9월11일 이후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세계는 빈 라덴이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어떻게 해서 그처럼 엄청난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다각도로 설명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는 적임자 중 하나였다. 작년 9 ·11 테러사태 이후 세계는 확실히 달라졌다. 앞으로 국제정치는 ‘9·11 이전’과 ‘9·11 이후’로 구분해 설명해야 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 변화가 정확하게 어떤 성격인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다양한 설(說)이 분분하다. 지난 1년 동안 다양한 의견과 주장이 나왔지만 ‘9·11 이후의 세계’에 대해 총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논리 틀은 아직 제시되지 않은 듯하다. 여기서는 미국 언론과 학술지에서 9·11 테러가 세계정치 및 미국의 세계전략에 끼친 영향과 한반도 정세에 주는 함의를 다룬 논문을 세 편 발췌해 소개한다. 》
9 ·11 이후의 세계 질서
9·11 테러 이후 세계질서의 변화에 대해서는 지난 1년 사이 수많은 글이 쏟아져 나왔다. 냉전체제가 붕괴된 1990년대 이후 줄곧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으로 국제사회에 군림했다는 점에서, 이같은 논의는 대체로 미국 헤게모니의 향배와 관련해 21세기의 세계체제를 전망하는 내용이었다.
다음에 소개하는 존 아이켄베리(G.John Ikenberry) 교수 논문도 그 중 하나다. 미 조지타운대에 재직중인 아이켄베리 교수는 테러시대에 미국이 취해야 할 세계전략을 논하면서 향후 세계질서를 전망하고 있다(출처: Survival, 2001-2002 겨울호).
세계 무역센터와 펜타곤에 대한 기습 공격은 미국의 취약점을 전세계에 노출시키고 미 외교정책에 근본적인 재조정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제2의 진주만 공습이라고 부를만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작년 9월20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의회 연설은 미국이 공산주의와 싸울 것을 천명한 1947년 3월12일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그리스와 터키 관련 연설에 견줄만한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9 ·11 사태를 탈냉전시대의 종막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미국에게 1990년대는 ‘신 경제’와 예산잉여, 지정학적 안정 등으로 순진한 자유주의적 낙관론이 가득찼던 평화와 번영의 시기였다. 그러나 9·11사태가 탈냉전시대의 종막을 가져왔다는 견해에 따른다면, 1990년대는 투쟁의 시기 중간에 낀 잠깐 동안의 휴지기에 불과하다. 그 10년간의 방황을 끝내고 미국은 마침내 자신의 대전략(Grand Strategy) 목표를 다시 발견하게 된 것이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