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프랑스 영화를 볼 때마다 잔다. 그러면 나는 열심히 깨운다. 영화를 보는 게 목적인지 아내를 깨우는 게 목적인지 모를 정도다. 아내는 몰려드는 잠을 쫓으려 무척 노력하나 여의치 않다. 영화를 보는 도중 몇 번이나 일어나 커피도 마시고 세수까지 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아내를 앉혀놓고 몇번씩 당부도 한다. 영화평론가들 말처럼 대단한 예술영화다, 감독의 사상이 어떻고 시대적 배경이 어떻고 연기는 어떻고 등등. 아내 역시 그 전날에는 영화에 대한 공부도 하고 잠도 푹 잔다. 그럼에도 영화가 시작되면 영락없이 존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나면 아내에게 화가 난다. 영화평론가들이 말하듯 당신은 싸구려 할리우드 영화에 눈이 멀었다며 쏘아붙인다.
어디 영화뿐인가. 프랑스 문학도, 미술도, 음악도, 사상도, 철학도 마찬가지다. 좋은 책, 좋은 작품이라고 권하면 5분이 채 안돼 잠이 든다. 연애 시절 같이 읽은 실존주의 책부터 지금의 포스트모더니즘까지, 내 아내에게는 그저 수면제에 불과하다.
그런 내 아내를 독자들이 경멸해도 할 수 없다. 어쨌건 나는 최근에 와서야 아내에게 그런 짓 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아니 나 자신, 아내에게 수면제 역할만 하는 프랑스 현대문화가 지겨워졌다. 역시 저질인 탓인지, 아니면 나이가 든 탓인지. 확실한 것은 몇년 전 시골에서 살고부터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하여튼 그만두었다.
그렇다고 할리우드나 홍콩 영화에 빠진 것은 아니다. 단지 프랑스니 하는 식으로 어떤 나라 영화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또한 예술영화니 작가영화니 하는 구별도 두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다 아내가 잠을 자면 그냥 내버려둔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혼자 씩 웃는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시골에 와서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이 싫어졌다. 십몇년 전, 우리나라에 포스트모더니즘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때부터 번역도 하고 글도 썼으나 이젠 시들하다. 출판사에서 푸코에 대한 책을 써달라는 청탁이 와도 내키지 않는다.
대신 그동안 책꽂이 구석에 처박아둔 고전들을 찾게 됐다. 그 중에서도 (역시 프랑스인이지만) 몽테뉴(1533~92)가 그렇게 좋을 수 없다. 프랑스의 그 누구보다 좋다. 아, 이런 프랑스인도 있구나 하며 새삼 감탄한다. 이제 비로소 아내와 함께, 졸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재료를 발견했다. 역시 나이 탓, 쉰이 넘은 탓인가, 신경림의 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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