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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의 세계 |낚시

마음을 비우고인생을 낚는다

  • 예춘호전 국회의원

마음을 비우고인생을 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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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일찍부터 낚시의 맛을 알았다. 내게는 낚시가 그 어떤 놀이보다 재미있고 즐거운 것이었다.

수십년 동안 낚시를 한 지금이라 해서 낚시에 도통한 것도 아니고 이론이나 지식을 잘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낚시 그 자체가 좋고 쉽게 자연에 접할 수 있으며, 무념의 경지에 빠져 세속적인 잡념에서 초월할 수 있어 낚시에 매달리는 것이다.

교통이 불편하던 1960년대에는 서울의 경우 근교의 붕어낚시가 고작이었다. 시내 몇 곳 안되던 낚시가게가 주도하던 낚시모임을 따라 주말에 당일치기로 출조했다. 전세버스에 40여 명의 회원들이 오밀조밀 자리하여 통행금지가 풀리기 무섭게 한강을 건너 두 시간 정도면 당도하는 낚시터를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그중에는 정계에서 막 은퇴한 이재학(전 국회부의장)선생이 계셨는데 이선생은 당시 낚시꾼이 생각도 못할 정도의 동서양 낚시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다. 이선생은 틈만 나면 시내 다방에 앉아 조우(釣友)들에게 담수낚시, 바다낚시, 플라이낚시, 루어낚시 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곤 했다. 그러다가 서로 눈빛이 마주치면 기차 편이나 버스 편을 이용하여 붕어를 낚으러 떠나곤 했다.

어느 날 낚시터에서 담소하던 중 당시 환상의 낚시 대상어인 돌돔 이야기가 나와 제주도로 돌돔낚시를 가기로 했다. 각종 갯바위 장비에다 복장 등 준비에 며칠이 소비되었다. 나는 당시 성능 좋은 장구통릴을 입수했다. 그런데 사용법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장구통릴을 투박한 3칸 반짜리 갯바위대에 부착한 뒤 멀리 던지는 연습을 하기 위해 뚝섬까지 가곤 했다.

그런데 막상 출조일이 다가오자 동행하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어 이재학 선생을 비롯해 나와 정선생 세 명만이 가게 되었다. 우리들이 제주도로 출발한 것은 돌돔낚시 철을 벗어난 11월 초였다. 우선 본 섬에 가서 선편과 미끼 등을 준비한 뒤 다음날 통통배를 대절하여 관탈도에 닿았다. 다소 바람이 강했던 모양으로 멀미가 심해 섬에 내렸을 때 나는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한 가마나 되는 밑밥용 소라고동은 당시 60대 후반의 이재학 선생이 혼자서 꿰고 찧고 해서 준비해 놓았다. 해지기 전에 낚시 채비를 넣어야 했고 야영준비와 식사도 해야 했기에 그저 바쁘기만 했다. 허겁지겁 준비를 끝냈을 때 수평선 저 멀리로 붉은 태양이 빠져들고 있었다.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밤 10시가 채 안되었는데 지친 탓인지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애써 정신을 차리려고 했지만 끝내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공군 장군복을 입고 있었기에 추위는 몰랐지만 발끝이 시려서 잠을 깨고 말았다. 벌써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그때까지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월남담요를 발에 감고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새벽 4시경 잠을 깬 나는 미끼를 갈아 끼우고 낚싯대를 응시했다. 밤을 꼬박 새운 두 사람은 갯바위에 기댄 채 코를 골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낚싯대가 수면으로 내려꽂히기에 혼신의 힘을 다해 낚싯대를 세워봤지만 오히려 내 몸이 빨려들 것만 같았다. 당황한 나는 토막잠을 자고 있는 두 분을 깨웠다. 정선생이 뛰어와 낚싯대를 받쳐주었고 이선생은 뜰채를 펴고 있었다. 몇 번인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조금씩 끌어당겼지만 만만치가 않았다. 10여 분 실랑이한 끝에 간신히 고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두세 번 공기를 먹여서 벼랑 끝으로 당겨왔다. 이선생이 뜰채를 두세 번 갖다댔지만 돌돔은 그때마다 교묘하게 빠져나가더니 마침내 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온몸에 힘이 빠진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선생이 자기 실수라며 몹시 미안해 하다가 “예의원, 우리들이 다 함께 얼굴을 봤으니 낚은 걸로 합시다”라고 해 우리는 파안대소했다. 그러나 이선생은 나를 위로하면서도 나보다 더 애석한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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