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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전략·기획·재무통 列傳

그룹 총수 대리하는 무대 뒤의 핵심실세들

  • 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ns@donga.com

대기업 전략·기획·재무통 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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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은 김대중(金大中) 정부 출범 직후인 1998년 3월 설립한 구조조정본부를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3월 해체했다. 이 때문에 “(전)정부의 요구에 따라 구조본을 만들고, (현)정부의 요구에 따라 구조본을 없앴다”며 정권의 풍향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통합지주회사인 (주)LG가 출범하면서 더 이상 구조본을 운영할 필요가 없게 됐다”는 것이 LG측의 해명.

LG는 2001년에 화학지주회사(LGCI)를, 2002년에 전자지주회사를 세웠고, 올들어 두 회사를 (주)LG로 통합했다. 이로써 지주(持株)회사는 출자를 전담하고, 사업 자회사는 고유사업에만 전념하는 지주회사 체제가 국내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궤도에 올랐다.

그렇지만 LG 구조조정본부가 없어졌다고 해서 지난 5년간 구조본을 이끈 강유식(姜庾植·55) 전 본부장의 위상이 흔들릴 것으로 보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그룹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입지가 더 넓혀졌다는 시각도 있다.

구조본이 해체되면서 그는 그룹 통합지주회사인 (주)LG의 대표이사 부회장에 선임됐다. 이로써 (주)LG는 LGCI와 LGEI의 합병으로 대표이사 회장 및 이사회 의장직을 자동 승계한 구본무(具本茂) 회장과 강 부회장의 2인 복수대표 체제로 운영된다. 강 부회장은 비(非)오너 패밀리로선 유일하게 (주)LG의 등기이사로 올라 있다.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동관 30층의 구본무 회장실 바로 옆에 있는 옛 구조조정본부장 집무실도 그대로 쓰고 있다.

과거 구조본이 해오던 계열사 조정·통제 기능은 소멸됐다고 하지만, 구조본 본연의 기능이 대부분 지주회사로 흡수됐다는 것은 LG측도 부인하지 않는다. (주)LG는 CFO(최고 재무담당 임원) 등 재경부문, 신규사업 개발부문, 출자회사에 대한 경영관리부문, 계열사 경영진을 평가·육성하는 인사부문 등 그룹 중추조직을 거느리고 있다.



또한 (주)LG에 기존의 그룹 경영진단팀과 자회사 파견 인력, 회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정도경영 태스크포스팀’을 신설, 자회사의 책임경영을 보완하기 위한 경영진단 기능을 맡긴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 기구에는 구조본에 없던 감사 기능까지 부여했다.

“시민단체에서 일할 사람”

강 부회장은 지주회사 도입을 위한 밑그림을 그린 인물. 지주회사 체제는 특히 LG에겐 절묘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LG는 이를 통해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선진 기업형 지배구조를 표방할 수 있게 됐다. 오너 패밀리인 구씨·허씨 지배주주들은 주식을 보유해 출자 관리에 주력하고, 자회사 경영은 전문경영인과 이사회에 맡긴다는 것. 이 과정에서 구씨 일가가 전자·화학·금융·통신부문을, 허씨 일가가 건설·유통·정유부문을 맡는 사실상의 계열분리도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구회장의 후계 문제가 매끄럽게 해결된 것도 지주회사 덕분이다. LG그룹에선 장자(長子)가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이 원칙. 아들이 없는 구회장에겐 딸을 지주회사의 지배주주에 앉힘으로써 경영에 개입하지 않고도 그룹을 소유, 장자승계 전통을 지킬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서울대 상대를 수석으로 입학한 수재형인 강 부회장은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처럼 참모조직(staff)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은 아니다. 1972년 럭키(현 LG화학)에 입사한 이래 25년간 LG전자와 LG반도체 현장을 챙겼다. 1987년 임원으로 승진한 후 LG전자에서 전략·기획부문을 담당하면서 전자와 통신부문 사업구조의 틀을 짜는 실무책임을 맡았고, LG반도체 설립의 산파 역할을 했다. 공인회계사라 금융과 재무에도 밝다.

구본무 회장은 1970년대 중반 럭키 과장으로 경영수업을 시작했을 무렵 같은 부서에서 대리로 일하던 강 부회장을 눈여겨봐뒀다고 한다. 이후 그가 핵심 계열사인 전자와 반도체 임원을 거치며 치밀한 업무처리 능력을 보이자 1997년 그룹 회장실 부사장으로 전격 발탁했고,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본부를 만들면서 그를 본부장에 앉혔다. 반도체 빅딜, LG전자·정보통신 합병, IMT-2000 동기식 사업자 선정 등 굵직굵직한 현안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강 부회장은 주변에서 “참여연대나 경실련에서 일해도 될 사람”이란 말을 듣는다. 철저한 원칙주의자로 어떤 경우에도 예외를 두려 하지 않는 성향 때문. 2000년 3월 LG가 계열사인 데이콤 이사진 절반을 사외이사로 채우라는 시민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이자 참여연대의 한 교수는 강 부회장을 일러 “오너에 무조건 충성하지 않고 기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행동에 옮기는 전문경영인으로서 존경심마저 갖게 한다”며 이례적으로 높이 평가했다.

강 부회장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외자유치, 외국 선진기업과의 합작, 기업공개 등 이른바 3대 원칙을 일관되게 고수해 한때 유동성 위기설까지 나돌던 LG의 재무구조를 눈에 띄게 개선했다. LG는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 가운데 최대 규모인 65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했고, 필립스 등 선진기업과의 합작법인을 5개사에서 13개사로 늘렸다. 기업공개 법인도 10개사에서 국내 대기업 중 가장 많은 20개사로 늘렸다.

1998년 부사장으로 구조조정본부장을 맡은 그는 그해 말 사장, 지난해 초 부회장에 올라 ‘본부장 재직 중 2계급 특진’이라는 드문 기록을 세웠다. 1999년 반도체 빅딜 이후 구본무 회장이 전경련 모임에 불참하자 그룹내 다른 회장, 부회장을 제쳐두고 구회장 대신 회장단 회의에 참석했다. 매주 월요일 아침에 열리는 임원회의에서 논의되지 않은 아이디어나 고민이 생기면 직접 담당임원의 방으로 내려가 의견을 묻고, 보고서도 간단한 메모 형태로 올리게 하는 등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실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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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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