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종 자료들로 가득찬 심갑보 부회장의 집무실. 세미나와 강연에 참석해 직접 녹음한 테이프만도 3000여 개에 이른다.
그래서 그해 가을 학기부터 회사 창업자(현 회장)의 배려로 고려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해 경영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당시 이 대학원에는 조익순·이준범·김희집·김동기 교수 등 저명한 학자들이 많아 단기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대학원을 수료한 후에도 실무능력을 기르려고 한국생산성본부와 여타 연구기관에서 시행하는 단기 과정에 수시로 참여해 영업, 회계, 재무, 생산관리, 무역실무, 기획업무 같은 공부를 계속했다. 경제단체와 연구기관, 경영대학원 동창회 등에서 주최하는 조찬회나 춘계·하계·추계 경영자 연찬회(세미나) 강의도 거의 빼놓지 않고 수강했다. 서울대 경영대 최고경영자과정(1977)과 공과대 최고산업전략과정(1992), 전국경제인연합회 정보전략최고경영자과정(1999) 등도 이수했다.
초기에는 경영 실무에 도움이 되는 과목을 중심으로 강의를 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초기 산업사회에서 후기 산업사회로, 다시 정보화사회로 급변하고, 세계경제 질서도 WTO시대와 무한경쟁시대로 변모함으로써 경영환경 변화의 흐름을 제때 파악하고 남보다 한 발 앞서가려면 공부의 범위를 계속 넓혀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도 매주 2∼3회 각종 조찬회에 참석하며, 중요한 세미나는 시간이 허용하는 한 수강하려고 노력한다.
목표·채권관리로 시스템 혁신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강의를 들으며 한시도 허비하지 않고 공부한 것이 실제로 기업을 경영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할 것이다.
필자가 입사할 당시 우리 회사는 창업 때부터 시작한 ‘줄(File·공구의 일종)’과 1972년 업종에 추가한 ‘삼익쌀통’ 두 가지 품목을 생산·판매하고 있었는데, 일선 영업사원들의 역량과 판단에 의해 매출이 이뤄질 뿐 체계적인 영업관리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행히 경영대학원과 각종 세미나 수강을 통해 ‘시스템’에 의한 영업관리체제를 구축하지 않으면 회사의 정상적인 성장과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았다.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니 그 무렵 외국의 대형 회사들과 관계를 맺고 있던 동아제약, 유한양행, 대웅제약 등의 제약회사들이 영업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이들을 벤치마킹해 우리 회사 실정에 적합한 제도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목표관리제도와 채권관리제도(포인트 시스템 병행)가 바로 그것이다.
목표관리제도란 매출 목표, 수금(명목 수금과 실질 수금) 목표, 매출이익목표, 회전일수 목표, 대손금 하한선 목표, 거래처 가동률 목표 등 제반 목표를 설정해 영업장과 영업사원들에게 적용시킨 것이다. 매출채권 회수분석표(판매실적, 수금실적, 회전일수 실적 등 표시), 외상잔액 분포명세서(장부의 잔액이 언제 것인지 파악), 시장 정보수집 명세서 등의 양식에 의거, 영업현황을 계수화해 이를 성과급 지급의 기초자료로 활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급여 시스템도 ‘기본급+성과급 체계’로 변모했다.
회사는 당시 전국에 산재한 1500여 개의 거래처에 외상 판매를 하고 있었는데, 영업관리를 잘못하면 대손이 발생, 이익을 잠식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채권관리제도를 도입하는 일이 절실하던 터였다. 그래서 거래처별 신용조사를 실시해 전국의 거래처를 A·B·C·D등급으로 구분하고 신용 정도에 따라 여신 한도액을 책정, 신용한도액 내에서 외상거래를 하도록 했다. 또한 매월 ‘받을 어음 점검부’를 확인해 불량 어음과 수표를 사전에 검색하고, ‘불량 거래처 체크리스트’를 작성케 해서 대손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했다.
처음에는 거래처와 영업사원들의 반발이 여간 크지 않았으나 설득을 거듭하면서 이 제도를 정착시켜나갔다. 이와 같은 영업관리 시스템 덕택에 당사 제품은 줄과 쌀통 모두 동종업계 1위 자리를 고수하면서 질적 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다.
당시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서 이런 경영시스템을 도입해 성공시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제도가 성공하려면 외형누락이나 분식회계가 없는 투명경영이 필수적인데, 우리 회사는 창업 때부터 정도경영을 해왔기 때문에 이를 시행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