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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색깔있는 문화이야기

모차르트 오페라와 계몽주의는 어떻게 만났는가

  • 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모차르트 오페라와 계몽주의는 어떻게 만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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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서간집을 읽어보면 오페라광인 그의 모습을 여러 구절에서 발견할 수 있다. 모차르트 오페라는 그 극적 구성이 치밀하고 정확해 복잡한 이야기를 전혀 복잡하지 않게 전달한다. 그 완벽성은, 셰익스피어가 멋대로 등장인물들을 등장시키고 퇴장시켜 너무나도 빈번한 우연에 황당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과 대조된다.

이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유럽 각지를 순례하며 왕후귀족으로부터 일반서민에 이르는 다양한 계층, 수많은 유형의 인간을 만나 그 희로애락을 알고 다양한 삶의 앞뒤를 눈으로 본 덕분일 것이다. 이런 특별한 체험이 모차르트를 탁월한 인간 관찰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의 편지에는 이러한 솔직하고 냉철하며 생생한 인간 관찰의 결과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인간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당시의 시대정신을 예리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의 시대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과도기였다. 오페라의 경우 바로크적 성격이 강한 오페라 세리아에서 리얼한 근대적 성격의 오페라 부파로 변화하는 시대였다. 그래서 빈에서는 이탈리아 오페라 일변도의 경향에 대한 반발로 독일 가극이 진출하는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었다.

가수를 중심으로 하고 엄청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축제적 향연으로서의 오페라는 여전히 건재했다. 그러나, 대본을 중시하는 드라마로서의 오페라도 차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또 궁정을 중심으로 한 귀족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시민계층도 이를 오락 삼아 즐기는 경향이 나타났다. 모차르트 오페라는 이러한 과도기가 낳은 가장 풍요한 예술적 성과다.

당시 그를 후원한 황제 요제프 2세가 전형적 계몽군주였다는 점도 ‘후궁 탈출’ ‘피가로의 결혼’ ‘여자는 다 그래’ 등 모차르트 오페라의 계몽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돈 조반니’나 ‘마술피리’도 구질서에 대한 반역, 자아의 확대, 계몽사상, 민중적 속세주의 등의 시대정신을 포함한 작품들이다.



계몽 군주에 대한 염원

모차르트의 초기 작품 ‘이도메네오’는 그리스 신화에 근거한 오페라다. 조금은 심각한 내용이나 계몽군주에 대한 모차르트의 기대를 엿볼 수 있다. 노예인 여주인공 이리아와 이도메네오왕 부자의 사랑을 줄거리로 한 이 오페라는, 결국 이들이 온갖 고난을 거친 후 이상적인 왕과 왕비가 되는 극적 스토리를 통해 당시 봉건사회에 대한 비판과 계몽군주에 대한 희망을 표현한다. 여주인공을 노예로 설정하는 것은 뒤에 베르디의 ‘아이다’로도 이어지나, 모차르트의 ‘이도메네오’가 해피 엔딩임에 반해 ‘아이다’는 비극으로 끝난다.

1782년에 작곡된 ‘후궁 탈출’의 무대는 터키다. 여주인공 콘스탄체가 영주인 셀림 파샤에게 포로로 잡혀 있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서양에서 터키는 적국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모차르트가 터키를 배경으로 삼은 것은 당시 빈에서 터키 스타일이 유행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결코 호의적 관심이 아닌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이었음을 유의해야 한다.

오리엔탈리즘이란 당시 적국이던 터키를 비롯, 이슬람 사회에 대한 정치적 지배를 획책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생활과 문화를 관능적으로 신비화하는 등의 유럽 제국주의 사고방식을 뜻한다. 그 신비화란 것은 대체로 야릇한 이국취미로 나타났는데 그 자체는 터키를 비롯한 비유럽 사회의 실상과는 무관한 상상 속의 것이었다.

‘후궁 탈출’의 주제 역시 ‘이도메네오’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계몽군주를 향한 염원이다. 모차르트는 당시 자신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계몽적이고 인간적이며 이성적인 지도자상을 터키 영주에서 구했다. 바로 포로를 용서하고 석방하는 관대하고 자비로운 지도자를 말한다. 이는 모차르트가 당시의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을 어느 정도 극복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터키의 삶 자체를 그대로 반영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지도자상은 마지막 오페라인 ‘티토 황제의 자비’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극중 황제는 자신을 암살하려 한 친구에 대한 복수를 거부함으로써 정신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모차르트가 ‘마술피리’ 초연을 지휘하다 쓰러지고 집에서 ‘레퀴엠’을 작곡하다 죽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마지막 오페라인 ‘티토 황제의 자비’를 작곡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어쩌면 모차르트 사상의 최후를 장식하는 정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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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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