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호

정치구도 재편 노리는 신당의 생존전략

헤쳐모여식 ‘6자연대’, 지역주의 타파론 주창

  • 글: 박 민 문화일보 정치부 기자 minp@munhwa.co.kr

    입력2003-09-25 1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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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구도 재편 노리는 신당의 생존전략

    신당 주비위 모임을 갖고 있는 민주당 신당파 의원들

    민주당 신당파가 10월 하순 창당 예정인 신당은, 역대 정권 하에서 대선이나 총선을 앞두고 추진돼온 신당과는 그 격을 달리한다는 주장이 신당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창당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 사회 권력지도의 근본적 변화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당선이 청와대와 행정부, 검찰을 포함한 사법기관의 권력구도를 바꾸는 출발점이 됐다면, 신당 창당은 정치권의 권력 구도를 바꾸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신당파에서 강경세력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의 측근은 이와 관련 “노대통령은 이미 청와대와 행정부, 검찰을 포함한 사법기관 내에 포진한 전통적 권력기반과 그 내재적 논리를 해체하는 데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노대통령의 이같은 시도는 정치권의 입법화와 여론조성 작업을 통해 완성된다. 신당은 정치권의 주도세력으로 자리잡음으로써 권력구도를 바꾸는 동시에 노대통령의 시도를 뒷받침할 토대를 형성하게 된다. 권력구도 개편을 위한 양날개가 신당 창당을 기점으로 본격 가동될 것이다” 라고 했다.

    신당 창당이 이같은 혁명적 발상을 염두에 둔 행보라면 10월말 창당과 함께 정치권은 기존 정치세력 교체를 추진하는 세력과 그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재편된다. 그리고 이어질 17대 총선은 신당을 주축으로 하는 범개혁세력 통합신당과 한나라당·자민련·민주당의 대결구도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노대통령과 신당파의 권력구도 개편시도가 성공할지 여부는 17대 총선 결과에 달려있다. 현 정치권의 틀에서 신당이 원내 1당으로 부상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마치 노대통령의 당선을 예측하기 어려웠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신당 창당은 예정된 수순

    그러나 신당파 내 강경세력들은 이미 비등점을 넘어선 국민의 변화 욕구는 권력기관을 거쳐 정치권으로 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범개혁세력 통합신당이 출범하면 이같은 욕구가 결집되면서 17대 총선에서 원내 1당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유례를 찾기 힘든 30∼40대 정치신인의 총선 도전 러시 역시 ‘고졸 출신 노무현이 대통령이 됐다’는 감상적 신드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변화욕구의 자연스러운 반영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신당이 17대 총선에서 원내 1당으로 부상하지 못하더라도 변화의 흐름은 유지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실제로 맹렬한 속도를 내고 있는 신당파의 최근 행보는 민주당을 포함한 기존 정치권의 틀을 벗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민주당의 신당 창당은 지난 9개월 동안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그 기간 중 신당 창당이 결국 무산되고 민주당의 리모델링으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신당파 강경세력이 주장하는 창당 취지를 염두에 두고 지난 9개월을 반추해보면 신당 창당은 결국 시간 문제였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신주류로 분류되다 지금은 중도파에 속해있는 한 중진의원은 추석 연휴 직전 사석에서 신당 창당 배경과 관련, “만약 내가 노대통령이라도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노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공공연히 밝혔듯이 민주당을 자신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할 집권 여당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반드시 ‘발전적 해체’를 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다. 문제는 노대통령이 갖는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민주당의 구성,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구주류가 당의 골간을 구성하고 있는 데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따라서 민주당이란 틀이 유지되는 이상 노대통령이 갖는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개선될 수 없다. 결국 노무현 정권 입장에서 볼 때 민주당은 집권기간 동안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는 정당인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노대통령으로서는 민주당을 유지하는 것보다 집권당 분당이라는 위험부담을 감수하고라도 자신을 지지하고 집권 구상을 뒷받침해줄 신당을 창당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신당 창당을 추진해온 신당파의 기본 입장도 노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신당파가 노대통령의 의중만을 염두에 두고 신당을 추진했다고 보긴 어렵다. 신당파 내부에서도 노대통령의 당에 대한 태도와 국정운영 방식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리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더구나 노대통령이 민주당에 대해 갖는 정치적 영향력은 과거 3김이나 군사독재 시대의 대통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 신당파 소속 의원 개개인의 공천이나 총선 당락에도 노대통령이 구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어려운 제도와 인식이 이미 정착돼 있다.

    그럼에도 천신만고 끝에 권력을 창출한 신당파로서는 현재의 민주당과 정치 권력구도 하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할 수 없고, 주도세력으로 부상할 수 없다는 구조적 한계를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점에서는 노대통령과 공감대를 갖고 있을 수 있다.

    신당파의 행보가 아직은 독자적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머무르고 있지만 벌써 정치권의 기존 질서에 균열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당장 여당의 존재가 불투명해지면서 정치권은 혼란을 겪고 있다. 노대통령이 민주당을 탈당하기 전까지 민주당은 명목상 여당의 지위에 머무르겠지만 내용상 신당파 주축의 원내교섭단체가 사실상 여당이라는 데는 정치권 안팎에 이견이 없다. 정부를 대신하는 여당과 집권에 실패한 야당이 맞서는 정치권 구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신당파 기획통인 이해찬 의원측은 이와 관련, “민주당과 정책공조 형식으로 당정협의를 할 수 있다”고 말해 신당이 주체이고 민주당은 부차적 존재라고 주장했다. 정동영 의원은 “당정협의는 대통령의 당적과 연결된 사안으로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해 노대통령이 조만간 민주당을 탈당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10월 하순 신당 창당이 몰고 올 정치권 재편의 파고에 비하면 이같은 변화는 잔물결에 불과하다고 신당파내 강경세력들은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신당 창당은 우선 그간 정치권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인적구성과 조직 체계를 갖춘 정치세력의 출범을 의미한다.

    신당은 ▲민주당 신당파 ▲한나라당 탈당파인 ‘통합연대’ ▲ 친노 영남권 원외지구당 위원장과 지난 대선과정에서 지역 선대위 인사들, 개혁당의 지역 조직책 등이 구성한 ‘신당연대’ ▲김원웅, 유시민 의원의 개혁당 ▲최근 독자정치세력화를 모색중인 시민사회단체의 ‘1000인 선언’ 모임 ▲신당 창당 취지에 공감하는 영입인사 등 6자의 광범위한 연대로 구성된다. 특히 이들 6대 신당 추진세력은 신당 내에서 동등한 자격을 누린다. 신당파는 수십 명의 의원을 포함하고 있지만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정치권 안팎의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신당파 스스로 정치인으로서 모든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며 신당 창당 방식은 ‘헤쳐모여식’이어야 한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나아가 신당은 기존 정당과는 조직과 운영면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지구당위원장은 차기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 관리형 위원장이 선출되고 중앙당 역시 대폭 축소돼 원내전략과 주요 정책의 결정권은 의원총회로 넘기게 된다.

    결국 이번 신당 창당은 기존 제도권 정치세력에 영입인사들이 편입되는 방식이 아니라 제도권 정치세력과 시민사회세력이 새로운 정당 조직체계 하에서 동등하게 결합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범으로 연결된다.

    거세지는 변화 압력

    이렇게 되면 기존 정치권 구도는 근본부터 뒤흔들릴 수밖에 없다. 새로운 인적구성과 조직체계를 갖춘 신당의 탄생은 기존 정당에게 엄청난 변화의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미 ‘60대 정치인 용퇴론’ 등 세대교체의 파고가 높은 한나라당 내 신구세력 대립은 격화될 수밖에 없다.

    신당파가 빠져나간 민주당도 DJ와 호남민심에만 의존할 수 없다.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 중심의 단결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중인 자민련 역시 변화의 대세를 피해가긴 어렵다. 신당이 국민적 지지를 받으면 변화의 압력은 더욱 커지고 한나라당과 민주당, 심지어 자민련의 추가 이탈도 예상된다. 기존 정당들은 신당과 새로운 정치문화 창출을 위한 경쟁에 나서든지, 안정과 보수라는 명분으로 기존 질서의 수호자로 나서든지 정치적 선택의 갈림길로 내몰릴 수 있다.

    이는 정치권이 기존 제도정치권의 구도를 뒤엎으려는 신당추진세력과 기존질서를 유지하려는 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간의 대결구도로 재편됨을 의미한다.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거야다여’(巨野多與) 구도는 이같은 재편 흐름의 표피적 현상일 뿐이다.

    그러나 신당파 내 온건세력은 강경세력의 이같은 정계개편 전망에 대해 조금 다른 견해를 내놓고 있다. 김원기 고문은 6대 신당추진세력 가운데서도 민주당 신당파가 신당을 주도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공언해왔다. 막상 신당 창당이 진행되면 현역의원의 위상은 더욱 강화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몇 명의 현역의원이 신당에 참여하느냐에 따라 신당이 원내 2당이냐 3당이냐가 결정되고 이는 국민에게 신당이 대세인지 여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된다. 나아가 내년 총선까지 신당의 존재를 지속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는 것도 역시 현역의원들이다. 신당파가 굳이 국정감사를 앞두고 탈당,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 것도 국정감사를 통해 신당의 창당 취지와 필요성을 국민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신당과 연대할 정치권 안팎의 신당추진 세력들이 목소리는 높지만 총선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총선은 대선과 달리 흐름이나 대세 못지않게 인물이 중요한데 신당연대나 개혁당 내에서 경쟁력을 갖춘 인사를 발견하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온건파의 한 의원은 “신당연대와 개혁당, 통합연대가 독자신당 창당을 선언하고도 몇 차례 창당준비위 발족을 연기한 것은 민주당 신당파의 합류를 기다렸기 때문”이라며 “이는 스스로 총선 경쟁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연대의 한 관계자도 “사실 3자 연석회의를 구성한 통합연대, 신당연대, 개혁당 내에서 현시점을 기준으로 총선 경쟁력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는 인사는 통합연대와 개혁당의 현역의원 7명과 신당연대 지도급 인사 3~4명에 불과하다”며 “오히려 최열 환경운동연합 상임고문, 정대화 교수 등이 포함돼있는 ‘1000인 선언’ 모임이나 영입 인사 중에 총선 경쟁력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구도 재편 노리는 신당의 생존전략

    민주당 당무회의 중 국장급 당직자 두 사람이 전당대회 수집 안건 표결처리를 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창당 자금 등 현실적인 문제도 무시하지 못할 대목이다. 최근 신당연대는 창준위 발족과 당사 마련을 위해 3자 연석회의 참여인사들에게 정치자금 모금을 제안했다. 그러나 통합연대의 현역의원조차 이를 거부했다. 이에 따라 신당연대는 당사 임대 계약금조로 지급된 100만원을 포기해야 할 형편이다. 반면 신당파의 경우 이미 4억원대의 창당자금을 모금했으며 30여 명이 탈당할 경우 15억원대의 국고보조금을 지급받게 된다. 더구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게 되면 국회 내에 상당한 공간을 배정받을 수 있다.

    신당이 원내정당을 지향한다면 중앙당과 지구당의 위상과 역할이 대폭 축소돼 당사를 위한 공간을 최소한만 확보하면 된다. 결국 신당은 신당파 등 현역의원이 주축을 이루고 여기에 정치권 안팎의 신당추진세력이 합류하는 기존 방식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방식의 신당 창당은 정치권 안팎의 신당 추진세력의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 통합연대는 물론 신당연대나 개혁당은 이미 신당 창당에서 기득권의 완전한 포기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따라서 이들은 통합논의 과정에서 민주당 신당파가 배타적 주도권을 행사하거나 현역의 기득권을 조금이라도 유지하려는 시도를 할 경우 독자적 신당 창당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들은 스스로 인정하듯이 정치적 지명도가 낮고 정치권내 기반도 취약하다. 법적 제도적 여건도 정치 신인이거나 원외인 이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이런 상황에서 현역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신당에 동참하는 것은 17대 총선 출마를 사실상 포기하는 정치적 자살행위다. 민주당 신당논의 과정에서 현역인 구주류조차 신주류의 인위적 인적청산을 우려했던 점을 감안하면 신당추진세력들의 통합논의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신당파 내부에서는 정치권 안팎의 신당추진세력들이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결국 2∼3개 정당으로 분열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경우 신당파 내 강경세력이 주장하고 있는 신당 창당을 통한 기존 정치세력 교체론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개혁세력은 분열로 망한다는 역사적 교훈이 되풀이되는 셈이다.

    신당의 창당 방식과 이에 따른 정계개편 전망과 관련, 반드시 짚어 보아야 할 변수는 노대통령의 향후 행보다. 노대통령은 그간 신당문제에 대해 불개입 원칙을 고수해왔다. 최근 신당파의 탈당이 기정 사실화하면서 추미애(秋美愛), 조순형(趙舜衡) 의원 등 중도파들이 노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공개적으로 요구했지만 노대통령은 기존 원칙을 지켰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결국 신당 창당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리라는 데는 정치권내에서도 이견이 없다. 그리고 노대통령이 신당파의 창당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것도 그간 발언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됐다.

    17대 총선은 정치개편의 완성

    신당 창당 과정에서 노심(蘆心)의 개입은 ‘신당=노무현당’이라는 등식을 성립시켜 민주당 구주류와 한나라당의 비판, 호남민심의 이반 등과 같은 부정적 효과를 초래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신당파들이 구주류와 한나라당의 노무현당 창당 비판에 대해 “노심은 절대 중립이고 개입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고 수 차례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지역주의 타파를 내건 신당이 창당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노대통령의 신당 지지는 신당에게 내용상 여당의 지위를 보장해줄 뿐 아니라 노대통령 지지세력의 신당 지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노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초 90%대를 육박하다 최근 30%대로 급전직하했으나 추가 하락 없이 30∼40%대의 박스권을 형성하고 있다. 노대통령의 고정 지지율이 최하 30%대에 이른다는 분석이 가능한 셈이다. 더구나 노대통령의 지지율은 민주당 후보로 당선됐음에도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김영삼 전 대통령과 같이 호남이나 영남에 편중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양김과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정치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 최대의 정치적 변수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신당 창당이 정치권 구도 개편의 출발이라면 17대 총선은 개편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 17대 총선이 범개혁세력 통합신당 대 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의 경쟁구도로 짜여질 경우 총선의 쟁점은 신당파 내 강경세력 주장대로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정치세력 교체로 집약될 수 있다. 이는 통합신당 후보에게는 분열된 다수 후보와 경쟁하는 것으로 당연히 유리한 구도다. 이와 관련, 노대통령이 8월23일 총선출마를 위해 사직한 청와대 참모 7인에게 “선거는 큰 구도가 중요하다”고 말한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현시점에서 출마의사를 밝힌 7인 중 경쟁력을 갖춘 사람은 1∼2명에 불과하지만 총선구도가 어떤 방식으로 짜여지느냐에 따라서는 의외의 결과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신당파 내 강경세력이나 신당연대의 조성래(趙誠來) 대표 등이 범개혁세력 통합신당이 출범하면 17대 총선에서 원내 1당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과 달리 총선에서 유권자가 하나의 쟁점이나 구도에 따라 투표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신당이 어떤 형태로 출범하든 이번 총선의 최대 변수는 역시 지역정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신당파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범개혁세력 통합신당 출범에도 지역감정이 17대 총선에서 위력을 발휘한다면 신당은 제3당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신당이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수도권의 경우, 호남출신을 포함한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세력들이 민주당과 신당으로 갈릴 가능성이 높다.

    수도권이 지역구인 한 신당파 의원의 보좌관은 “그간 상당수 민주당 수도권 의원들이 범호남표 25∼30%에 약간의 개인적 지지표를 합치고도 한나라당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벌여왔다”며 “신당이 한나라당과 부동표 일부를 끌어오거나 개혁성향의 표를 결집시킬 수 있다지만 민주당과 범호남표를 놓고 경쟁하는 양상이 전개되면 결과적으로 한나라당 후보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수도권의 개혁성향 의원 다수가 신당 합류를 주저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전략지역은 PK, 광주·전남

    수도권에 이어 신당이 전략지역으로 꼽고 있는 PK(부산 경남)지역의 경우도 현재의 구도나 예상 후보로는 한나라당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신당 예상 후보로는 이해성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박재호 전 민정2비서관, 신당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정윤재 위원장 등 민주당의 원외지구당 위원장과 조성래 상임대표 등이 꼽힌다. 이들 스스로 신당이 PK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여당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지 않고서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며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부산 출마를 준비중인 노대통령의 한 핵심측근은 이와 관련, “노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청와대 등에 포진해 있는 문재인 민정수석, 이호철 민정2비서관, 허성관 해수부장관, 김두관 행자부장관, 김정길 전의원, 이철 전의원 등이 일제히 신당후보로 PK지역에 출마하면 이 지역 총선 구도는 한나라당 대 노무현당 구도로 짜여지고 팽팽한 승부가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호남지역 중 전북지역의 경우 10명의 현역의원 중 장영달, 정동영, 강봉균, 김원기, 이강래, 정세균 등 과반수 의원이 신당 참여의사를 밝혀 민주당과의 팽팽한 승부가 예상된다. 충청 및 강원 지역 민주당 의원 다수도 신당에 참여할 예정이어서 한나라당과 접전을 벌일 전망이다. 그러나 광주와 전남 지역에서 신당 참여 의사를 분명히 한 의원은 현재 정동채, 김태홍, 천용택 의원 3명에 불과하고, 이들조차 17대 총선 당선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같은 분석은 신당이 국민적 신망이 두터운 정치권 외부 인사를 대대적으로 영입해 총선에 투입하는 상황을 배제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수차례에 걸친 정치권의 영입작업으로 유권자의 이목을 집중시킬 참신한 인사발굴에 한계를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신당 창당에도 지역주의가 17대 총선에서 위력을 발휘할 경우 신당은 민주당 의석을 기준으로 수도권과 호남지역에서 다수 의석을 상실해, 부산 경남 지역에서 선전하더라도 원내 1당으로 올라서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신당 숙명은 정치세력 교체

    지난 8월25일 노대통령은 총선 후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운영 약속을 철회하고 전형적인 미국식 대통령제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약속 철회 이유를 지역주의 타파란 전제에 정치권이 화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대통령은 이틀 뒤인 27일에는 “지역구도에 변화가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4년을 더 해봤자 별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당파 인사들이 “민주당은 이미 지난 4월 재보선을 통해 사망선고를 받았다. 민주당을 리모델링해서는 한나라당을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노대통령 발언과 같은 맥락에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노대통령과 신당파는 현 민주당을 함께 가야할 정치적 틀로 간주하지 않을 뿐 아니라 현재의 틀이 유지되면 민주당은 17대 총선에서 필패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대통령과 신당파는 그대로 앉아 최후를 맞는 것보다 가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밖에 없다. 여기에 17대 총선에서 신당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노대통령과 신당파가 신당 추진에 나서는 배경이 숨어있다. 노대통령이 지역구도가 타파되지 않으면 대통령 4년을 더 해도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말한 것이나 미국식 대통령제 운영 방침을 밝힌 것은 이같은 절박함을 담고 있다.

    어찌됐든 민주당 신당파의 신당추진은 좁게는 여권내부의 권력교체를, 넓게는 기존 정치세력의 교체를 겨냥하고 있다. 그것은 권력의 흐름상 신당의 숙명이다. 17대 총선은 신당의 좌절로 끝날 수 있다. 신당 내부에서조차 신당 창당 취지에 완전한 공감대가 형성돼있지 않은 데다 유권자의 의식은 여전히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당이 추구하는 변화는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 대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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