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중호씨에 대한 무죄판결은 단순히 검찰과 법원의 시각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검찰이 명백히 잘못 수사한 데 따른 것이다. 이로써 당시 검찰이 권력실세의 외압의혹을 잠재우기 위해 국씨를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설득력을 얻게 됐다.
2001년 8월10일 인천공항 유휴지 개발 특혜시비와 관련, 인천지검에 출두한 국중호 전 청와대 행정관
이에 따라 당시 검찰이 권력실세의 외압의혹을 잠재우기 위해 국씨를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 아니냐는 항간의 의혹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됐다. 당시 인천공항 개발사업단장 이상호(46)씨의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외압의혹은 선정업체가 아닌 탈락업체의 로비의혹을 문제삼는 비정상적인 여론 속에 검찰수사로 이어졌으며 결국 청와대 3급 행정관인 국씨가 외압의 실체로 지목돼 구속되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검찰이 국씨에게 씌운 혐의는 뇌물수수와 공무상비밀누설 및 업무방해. 뇌물수수는 국씨가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업자로부터 2000달러(당시 환율로 263만원)를 받았다는 것이고, 공무상비밀누설은 국씨가 당시 인천공항 강동석 사장과 이상호 개발사업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업자 선정과정에 로비 의혹 등 잡음이 일고 있다”고 언급한 것과 관련된 혐의다. 또 업무방해 혐의는 이상호 사업단장이 국씨의 전화를 압력으로 받아들였다고 진술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해 국씨는 “대학동창 소개로 만난 사람들로부터 민원 차원의 하소연을 듣고 공항공사측에 ‘공정한 일 처리’를 당부하는 전화를 두 차례 한 것밖에 없다”며 관련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었다.
조작된 뇌물수수 혐의
이번 항소심 재판부의 무죄 선고는 사실 지난해 8월 1심 재판부가 세 가지 혐의 중 뇌물수수와 공무상비밀누설 부분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릴 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에 관련된 핵심 증인들의 주장과 국씨의 무죄를 입증할 만한 여러 가지 물증을 들어 검찰 수사의 신뢰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1심 재판 초기 ‘신동아’(2002년 3월호)는 언론 중 유일하게 수사 내용을 완전히 뒤집는 추적기사를 실은 바 있다. 사건전개 과정에 강한 의구심을 품었던 기자는 국씨가 보석으로 풀려난 이후 검찰 수사기록을 철저히 분석, 관련자들에 대한 확인취재를 거쳐 검찰의 ‘짜맞추기 수사’ 의혹과 국씨의 무죄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국씨의 변호인단은 이 기사를 주요 참고자료로 재판부에 제출했다.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국씨를 파렴치범으로 몰고 간 뇌물수수 혐의였다. 국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된 업자 양아무개씨를 비롯한 핵심 증인들은 재판과정에서 “검찰의 강압수사에 의한 허위자백이었다”며 국씨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피의자나 증인들의 검찰 진술 내용이 법정에서 바뀌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런 통상적인 경우와 다르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양씨를 비롯한 증인들은 검찰 조사 때도 자백강요에 의해 한 차례 ‘입 맞추기용’ 진술을 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일관되게 국씨에게 돈을 건넨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2000달러를 받은 사람은 국씨가 아니라 국씨의 대학동창으로 양씨와 가까운 관계였던 한아무개씨였다는 증언이 나왔고, 한씨 본인도 뒤늦게 이같은 사실을 인정했음에도 검찰은 이를 무시하고 국씨에게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했다.
뇌물수수 혐의는 검찰이 수사 막바지에 추가한 것으로 당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 탓에 국씨는 돈을 받고 사업자 선정과정에 개입한 파렴치범으로 몰렸다. 그러나 이 혐의가 조작됐다는 것은 사건 당일 국씨의 알리바이와 휴대전화 통화내역, 환전영수증 날짜 등 몇 가지 기초적인 사실만 확인하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국씨의 변호인단에 따르면 검찰이 이토록 무리하게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한 까닭은 나머지 두 가지 혐의, 즉 공무상비밀누설과 업무방해 혐의만으로 기소할 경우 재판에서 유죄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낮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여론을 의식한 수사였던 만큼 ‘뭔가 그럴 듯한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작용한 결과로도 보인다.
재판부는 국씨가 인천공항 강동석 사장과 이상호 개발사업단장에게 전화한 내용은 항간의 소문을 전한 것일 뿐인 데다 청와대 비서실에 이같은 사실을 보고한 적도 없고 수사기관이나 사정기관에서 이를 내사한 적도 없기 때문에 공무상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신광옥 민정수석의 강력한 항의
업무방해 혐의도 애초 성립되기 힘든 것이었다. 당시 인천공항 강동석 사장과 이상호 개발사업단장은 검찰에서 국씨의 전화가 업체선정과정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두 사람의 진술이 아니더라도 일개 청와대 행정관이 대형 공기업체의 민간사업자 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추론이었다.
검찰이 국씨에게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한 유일한 근거는 “국씨의 전화를 압력으로 받아들였다”는 이상호씨의 검찰 진술이다. 그런데 그는 국씨와의 대질신문 때와 기자들 앞에서는 이를 부인하는 등 오락가락해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받았다. 더욱이 국씨가 전화를 건 때는 이미 사업자 선정이 끝난 후였다. 이에 재판부는 이상호씨가 말한 ‘압력’의 실체 여부와 상관없이 국씨의 전화가 업무방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것이다.
국씨에 대한 무죄판결은 단순히 검찰과 법원의 시각 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검찰이 명백히 잘못 수사한 데 따른 것이다. 그렇지만 검찰은 늘 그래왔듯 잘못된 수사로 인해 정신적·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당한 피해자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다. 수사를 잘못한 검사가 문책을 받았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2년 전 그토록 요란하게 인천공항사건을 보도하며 국씨의 혐의를 대서특필했던 언론은 국씨에게 무죄가 선고된 사실을 보도조차 하지 않는 ‘비양심적인’ 태도를 보였다. 중앙일간지 중에서는 중앙일보만이, 지방에선 전북일보를 비롯한 3개 신문만이, 그리고 방송사 중엔 기독교방송과 KBS만이 단신으로 이 소식을 전했을 뿐이다.
이에 대해 국씨는 “사실 이 사건은 언론이 만든 사건이 아닌가”라며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날 민주당에서 기자회견을 하라고 해서 당사를 찾았다. 모 일간지 기자가 ‘미안하게 됐다. 그땐 어쩔 수 없이 막 썼다’고 하기에 어이가 없어 화도 안 나더라.”
이제 남은 것은 당시 검찰 수사배경에 대한 의문이다. 검찰은 왜 그토록 무리하게 수사를 했을까. 돈을 받은 사람이 따로 있는데도 왜 끝까지 국씨가 돈을 받았다고 밀어붙였을까. 또 업무방해와 공무상비밀누설 혐의가 성립되기 힘들다는 것을 정녕 몰랐단 말인가.
사건 초기 청와대 신광옥 민정수석은 자체 조사 결과 국씨에게 특별한 잘못이 없다고 결론 짓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참고인으로 검찰에 자진출두한 국씨가 긴급체포되자 신승남 검찰총장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하지만 신총장은 “인천지검에 맡기자”는 ‘원칙론’을, 이범관 인천지검장(현 광주고검장)은 ‘여론’을 내세워 국씨 구속의 불가피함을 강조했다. 이를 두고 뒷날 언론은 ‘신-신 갈등’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국씨는 검찰 수사에 정치적 입김이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권력실세의 비선라인이 수사에 개입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당시 대통령 친인척인 모 권력실세가 검찰 고위관계자에게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국중호를 좀 잡아둬야 할 것 같다’고 전화한 것으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