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호

聖學의 세계 천착한 흥미로운 학술서

  • 글: 최봉영 한국항공대 교수·한국학 bychoi@mail.hangkong.ac.kr

    입력2003-09-29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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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聖學의 세계 천착한 흥미로운 학술서

    김문식·김정호 지음/김영사/340쪽/1만4900원

    흔히 현재가 어려워질수록 과거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 과거는 현재를 있게 한 바탕인 동시에,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단순한 호기심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경우에도 얻어지는 결과가 의외로 풍성하다는 것을 깨닫고 놀라는 일이 많다. 이러한 경험을 여러 번 한 이들은 과거를 돌아보는 일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긴다.

    우리가 과거를 되돌아볼 때 가장 먼저 눈이 닿는 곳 가운데 하나가 조선시대이다. 조선시대는 우리의 과거가 가장 잘 집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꾸려가고 있는 삶의 많은 부분을 꺼내온 문화의 창고다. 이런 까닭에 우리의 삶을 더욱 알차고 풍요롭게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연히 조선시대라는 문화의 창고에 발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와 조선시대는 한 세기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그 사이에는 섣불리 건널 수 없는 큰 틈새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근대와 전근대라는 틈새로, 오늘날 우리가 국민주권에 기초한 국민국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반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신분제도에 기초한 왕조국가에서 살았다는 점이다. 조선시대는 하늘의 명을 받은 국왕이 다수의 양반관료를 신하로 거느리고 백성을 통치하던 왕조국가이니, 오늘날 말하는 국민의 정부나 참여 정부와 같은 말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러니 조선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를 대표하는 절대적 권위체인 국왕을 알아야 한다.

    친근한 제목, 그러나 깐깐한 내용

    최근에 조선시대 국왕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유익한 책을 접하고 매우 기뻤다. 김문식과 김정호가 공동으로 저술한 ‘조선의 왕세자 교육’은 조선시대에 국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세히 드러내어 왕과 왕세자는 물론이고 유교문화의 기본 성격을 잘 이해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조선의 왕세자 교육’은 여러 가지 특징을 갖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동일한 주제에 관심을 가져온 두 사람이 뜻을 모아 공동으로 저술한 점이 돋보인다. 저자는 두 사람으로 되어 있지만, 책을 읽어가다 보면 한 사람의 저술로 느껴진다. 두 사람이 혼연일체가 되어 시작에서 끝까지 논지를 정연하게 끌어가고 있다. 이처럼 본격적인 공동저작은 흔치 않은 일로, 우리의 학문 발전에 좋은 자극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한치의 빈틈도 없는 교육 프로그램

    ‘조선의 왕세자 교육’은 조선시대 유교국가가 추구한 왕세자 교육의 실상을 매우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 교육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서 학교에서 교과서를 공부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일상 생활의 모든 부문을 포괄하는 전인교육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조선시대의 전인교육은 교과서를 배우는 일 못지않게, 규범과 의례를 배우고 실천하는 일을 중시하였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세자시강원을 중심으로 왕세자 교육이 진행되는 과정에 거행되는 각종 의례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책봉례를 비롯하여 관례, 가례, 제례, 입학례, 강학례 등을 통해서 왕세자 교육의 전모를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조선왕조 500년에 이루어졌던 왕세자 교육을 통시적으로 다루다 보니, 먼 시대의 사례들을 단순히 연대순으로 묶어서 논의를 끌어나간 부분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그리고 유교문화의 정수에 속하는 왕세자 교육을 세세한 부분들까지 상세히 다루다 보니, 친근한 제목과는 달리 내용이 매우 깐깐하다. 저자의 생각을 정확히 읽어내기 위해서는 정신을 차리고 주의를 기울이는 수고로움이 필요한데, 이는 유익한 책을 양식으로 삼는 이들에게는 당연한 일로 생각된다.

    우리는 ‘조선의 왕세자 교육’을 읽어나감으로써 왕세자 교육에 관한 내용은 물론이고 국왕과 왕실, 유교와 양반관료국가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조선시대는 지배집단의 구성과 문화적 통일성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독특한 시대였다. 성리학을 공부한 선비집단이 왕도정치의 기치를 내걸고 유교를 국시로 하는 조선왕조의 개국을 주도한 이래, 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500년 동안 운명을 함께했다. 선비집단은 학자, 관료, 사제의 역할을 통합하여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강력한 주도세력으로 활약했고, 그 결과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사제의 역할을 수행하던 승려나 무당은 천인의 신분으로 밀려났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왕도정치의 구현을 위해서 추구했던 이상적 인간은 안으로 덕성(德性)을 갖추고 밖으로 덕행(德行)을 실천하는 유덕자(有德者)였다. 완전한 인간을 뜻하는 성인(聖人)은 곧 덕이 지극한 사람을 뜻했다. 이런 까닭에 왕도정치의 중심체인 군주는 공부를 통해서 안으로 덕성을 기르고, 통치를 통해서 밖으로 덕행을 펴는 최고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군주가 최고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군주의 학문을 성인의 학문과 동일시하여 성학(聖學)으로 불렀다. 군주가 성학에 기초하여 왕도를 실천하면, 백성들은 군주의 덕화에 힘입어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까닭에 유덕한 군주를 만드는 기틀인 왕세자 교육이 무엇보다도 중시되었다.

    조선시대 왕세자는 유덕한 군주가 되는 데 필요한 가장 이상적인 교육을 받았다. 출생 이전의 태교에서부터 출생 이후의 문자교육, 경전교육, 의례교육 등에 이르기까지 왕세자는 면밀히 짜여진 교육과정을 좇아서 유덕한 군주의 길을 공부하였다. 왕세자의 일상은 한치의 빈틈도 없이 모든 것을 교육으로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실시된 왕세자 교육의 결과는 마냥 성공적이지는 못하였다. 교육이 좋은 결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잘 가르치려는 노력 못지 않게, 배우는 사람의 공부에 대한 열의와 교육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그런데 온갖 풍요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왕세자가 자발적으로 공부에 대한 열의를 갖기 어려웠고, 왕세자와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벌어지는 조정의 권력싸움 또한 교육을 방해하는 큰 요소였다.

    우리는 흔히 조선시대에 왕세자 교육을 받고 훌륭한 군주로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이끈 인물로 세종과 정조를 꼽는다. 그런데 세종과 정조가 훌륭하게 된 것은 왕세자 교육을 잘 받은 것도 큰 힘이 되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성군이 되어야 한다는 긴장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종과 정조는 모두 할아버지와 아버지 대에 일어난 인륜의 비극을 되새기면서 성군이 되겠다는 결의를 다졌던 이들이다. 세종은 아버지인 태종이 임금이 되기 위해 형제들을 죽이고, 왕권 강화를 위해 자신의 처가와 세자의 처가를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맏이로서 세자였던 양녕대군을 폐하고 셋째인 충녕대군을 세자로 만들어 왕위를 물려준 일을 생각할 때마다, 성군이 되어 선대에 저질러진 인륜의 비극을 치유하는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정조 또한 세종 못지않은 비극을 겪은 인물이었다. 할아버지인 영조가 대리청정을 하고 있는 28세의 세자(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굶겨 죽일 때, 정조는 열 살 소년으로 할아버지의 옷소매를 붙들고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게다가 조정이 당파로 분열된 가운데 할아버지인 영조가 큰할아버지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혐의까지 완전히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정조는 성군이 되어 선대에 저질러진 인륜의 비극을 치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잠시도 벗어날 수 없었다.

    지나친 관심과 정성의 역효과

    오늘날 우리도 조선시대처럼 교육을 무척이나 중시한다. 특히 많은 학부모들은 자녀교육에 온갖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교육이 한참이나 잘못되었다는 지적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지나친 관심이 도리어 자녀 교육을 망칠 수도 있음이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지면서 교육에 대한 관심이 무조건 옳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점은 바로 조선시대 왕세자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 문제였다. 지나친 관심과 노력이 도리어 역효과를 가져오는 일도 많았던 것이다.

    자녀를 왕자나 공주처럼 떠받든다는 점에서 오늘날 부모들의 자녀교육은 조선시대 왕세자 교육과 닮은 점이 많다. 왕자나 공주를 버릇없이 가르치면 왕자병이나 공주병에 걸려서 망나니처럼 자신밖에 모르는 초라한 인간이 되고 만다. 영조와 같은 영특한 임금 밑에서 사도세자의 비극이 생겨난 것도 왕세자 교육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는 달리 세자가 자신밖에 모르는 버릇없는 인간으로 키워졌기 때문이었다.

    고금을 막론하고 자녀가 올바르게 자라기를 바란다면 먼저 부모와 이웃의 노고를 이해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배움에 대한 작은 뜻을 세울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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