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여형사의 삶을 다룬 TV 드라마 ‘다모(茶母)’가 시청자들을 사로잡으면서 ‘현대판 다모’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 국내에 여경(女警)이 창설된 지 59년이 지났지만, 여경이 ‘경찰의 꽃’인 형사·수사 업무로 진입하기엔 장벽이 여전히 높다.
- 그러나 여형사들은 특유의 꼼꼼한 수사력과 뛰어난 위장술로 범인들의 빈틈을 파고든다.
- 날카로운 눈매로 범죄현장을 누비는 맹렬 여형사들의 24시간.
서울 충정로에 있는 경찰청 로비에는 ‘자랑스런 경찰관들’이란 게시물이 걸려 있다. 10여 명 경찰관의 사진과 업무성과를 붙여놓았으니 당사자들에겐 영예가 아닐 수 없다. 9월 초, 이 게시물의 맨 앞자리는 여경인 강순덕(37) 경위가 차지했다. 강경위는 외국인 범죄를 다루는 외사과와 기획수사를 전담하는 특수수사과에서 남자 수사관보다 뛰어난 첩보 및 기획수사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베테랑 수사관이다. 지난 6월에는 군 수뇌급 인사들이 H건설 상무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사건을 해결하는 공을 세웠다.
“하청업체 이사가 건설회사 상무에게 접대비도 쓰고 군 인사도 소개해줬는데 약속과는 달리 공사를 수주하지 못해 억울해 한다는 얘기를 지인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를 찾아갔더니 ‘여자가 군에서 오는 압력을 견딜 수 있겠느냐, 잘못되면 나만 다친다’며 의심스런 표정을 짓더군요. ‘요즘은 그런 것 없다’고 잘라 말했죠.”
확고한 태도의 강경위를 신뢰한 하청업체 이사는 모든 사정을 털어놓았고, 본인도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수사를 받았다. 그러나 군 수뇌부가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증명하려면 보다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양측이 ‘안 줬다’ ‘받은 적 없다’고 발뺌하면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
영장 기각에 자존심은 무너지고
해당 건설회사 상무를 찾아가 수사협조를 요청하자 “부하직원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리고 따라가겠다”고 했다. 강경위는 그가 직원과 팔짱을 끼는 척하며 양복 저고리에서 무언가를 슬쩍 꺼내 전하는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강경위는 후배 수사관들을 시켜 직원으로부터 그 ‘물건’을 받아왔다. 강경위가 예상했던 대로 군 장성급 인사들에게 뇌물을 건넨 사실을 꼼꼼하게 적어놓은 수첩이었다. 이후 이들의 혐의 시인과 구속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특수수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첩보능력이다. 얼마나 ‘양질’의 첩보를 얻어내느냐에 따라 사건을 맡게 되고, 팀을 이뤄 일하는 동료 수사관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다. “첩보원 대부분이 남자일텐데 여자 경찰관에게 중요한 얘기를 해주느냐”고 물었더니 강경위는 “그것은 전적으로 신뢰의 문제”라고 답했다.
“첩보원들은 자신이 첩보한 내용을 가장 신속하게, 그리고 제대로 해결해주는 경찰을 신뢰하기 마련이며, 한번 신뢰가 쌓인 뒤에는 듬직한 첩보원이 된다”는 것. 굵직한 사건 대부분은 첩보원이 주는 ‘알짜’ 첩보 덕분에 수사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1998년 가을 수해 당시 이재민 구호품 횡령사건을 해결한 것도 첩보 내용을 꼼꼼하게 수사한 끝에 이룬 쾌거였다. 잘 알고 지내는 고향(전남 나주) 사람이 “마을 창고에 이상한 의약품이 가득 쌓여 있다”고 제보하자 강경위는 일주일 동안 시골 아낙네로 위장해 창고 주변에서 잠복근무했다.
그 결과 미국의 종교단체가 이재민들을 위해 보내온 의약품을 한 의약재단이 빼돌려 시중에 유통시키고 있는 사실을 알아냈다. 5t 트럭 8대 분량으로 5억원이 넘는 규모였다. 강경위는 “압수한 의약품을 경찰청 앞마당에 쌓아놓는 것도 엄청난 일이었고, 빗방울 소리가 들린다 싶으면 뛰어나가 비닐로 덮어놓느라 애를 먹었다”며 웃었다.
강경위는 경찰로서 가장 자존심 상하는 일이 “검사가 영장을 기각할 때”라고 했다. 구호품 횡령사건 때 강경위는 검사가 “미국의 종교단체가 이 의료재단에 의약품을 위탁한 것인지 기증한 것인지 그 소유의 한계를 명확히 하라”는 지시와 함께 영장을 기각하는 바람에 쓰린 속을 달래며 애써 잡은 피의자들을 일단 풀어줘야 했다. 위탁이라면 ‘횡령’ 혐의가 인정되지만, 기증이라면 혐의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강경위는 “법을 잘 몰라 실수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실수한 내용을 노트에 적어놓고 종종 꺼내 읽는다”며 꼼꼼한 면모를 드러냈다.
우리 경찰에는 지난 7월 말 기준으로 3344명의 여경이 근무하고 있다. 이는 10만명에 달하는 전체 경찰의 3.5%에 불과하다. 프랑스(20%), 스웨덴(17%), 미국 마이애미(22.3%) 등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더욱이 경찰 업무의 ‘꽃’이라는 형사·수사분야에 종사하는 여경은 극히 드물다. 여경이 배치되지 않은 부서는 없지만, 대개 행정업무 등 내근업무를 맡고 있는 실정이다.
외사과 수사경력 12년차인 김시화(44) 경위(서울 노량진경찰서 수사1계장)도 경찰에 입문한 후 처음 10년 동안은 여러 부서를 돌며 주로 행정·교통업무를 맡아왔다. 수사업무를 맡게 된 것은 1990년 서울경찰청 외사과로 발령나면서부터. 김경위는 경찰 입문 후 방송통신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는데, 전국 경찰 영어시험에서 2등을 차지했다. 외국어 실력을 겸비한 수사관이 필요한 외사과가 그를 눈여겨보았던 것. 당시 80여 명의 외사과 직원 중 여경은 6∼7명뿐이었고, 그나마 수사업무를 맡은 여경은 김경위가 유일했다.
외사과에 근무한 12년 동안 김경위는 외환거래, 밀수, 마약, 위조지폐, 외국인 범죄 등 국제성 범죄에 대한 공작업무를 맡아왔다. 지난해 가을에는 사찰을 세워놓고 외국인 근로자인 신도들의 돈을 가로채고 혼인을 빙자해 간음까지 한 스리랑카 승려들을 검거하면서 경위로 특진했다.
지난 2000년 마약 공급책 18명을 검거한 사건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알약 형태의 신종 마약인 ‘야바’를 밀반입해 일반인에게 공급하던 일당이었다. 마약 유통과정에는 항상 여자가 중간 공급책으로 끼여있기 마련. 김경위는 4개월 동안 여성사우나, 미용실, 헬스클럽 등을 돌며 수사했다.
“위장을 하는 데는 여경이 유리해요. 저만 해도 아파트에서는 동네 아줌마나 보험 아줌마로, 호텔이나 여관에서는 종업원으로 가장합니다. 단 한 번도 경찰이라는 신분을 들켜본 적이 없어요.”
국제적인 범죄를 수사하다보니 국세청, 관세청, 세관, 대사관 등 다소 까탈스러운 기관들의 협조가 필요할 때가 많다. 그러나 이런 기관들에 수사협조를 요청하는 경찰이 워낙 많다 보니 경찰들 간에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김경위에겐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
“그동안의 검거 실적, 이번 사건의 핵심 내용, 해당 기관을 통해 알아내야 할 사항 등을 스크랩한 자료를 갖다드려요. 수사에 능숙하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며 설득하는 거죠. 수사 중간에 정보원들에게 진척 상황을 알려주면서 신뢰를 쌓습니다.”
그는 평소 생활 주변에서도 ‘범죄거리’를 찾는다고 한다.
“월마트에 장을 보러 갔더니 천주교 신부님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의료보험 상담을 해주고 있더군요. 장보는 걸 잠깐 멈추고 ‘이러저러한 일은 범죄에 해당되니 얘기를 들으면 연락해달라’며 명함을 드렸어요.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 폭력, 강간, 금품갈취 같은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거든요. 그러다 다쳐서 병원비가 필요하면 그 신부님들을 찾아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그런 연락을 받아 외국인 폭력배들을 검거한 적도 있습니다.”
특진으로만 3계급 진급
서울 양천경찰서 마약반장으로 근무하는 박미옥(35) 경위는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경찰에 입문한 박경위는 1989년 6월 항쟁 당시 서울 성북경찰서 보안과에서 ‘홍일점’으로 외근 업무를 맡았다. 당시 성북서는 관내에 고려대, 성신여대 등 학생운동이 격렬한 대학이 많아 남자 경찰들도 혀를 내두르던 곳이었다.
그는 1991년 서울경찰청에 설치된 여자형사기동대(이하 여기대) 창단 멤버로 4년간 근무했다. 여기대는 대(對)여성범죄 수사를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주로 여형사들로 이뤄진 조직. 박경위는 2000년 서울 양천서가 처음 설치한 ‘여경 강력반’의 반장을 맡았고, 이듬해에는 여기대 반장을 맡기도 했다. 여경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형사·수사업무에서 일해온 ‘정통 여형사’인 셈. 그러나 박경위는 “여자와 형사 사이에서 종종 딜레마에 빠진다”고 심경을 털어놓았다.
“처음 여기대에 들어갈 땐 운전도 배우는 등 의욕이 넘쳤어요. 하지만 1년 남짓 강도, 절도, 강간, 윤락 같은 거친 사건과 도박꾼, 조직폭력배, 사채업자 들을 겪고 나니 비(非)수사업무로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이런 ‘터프’한 수사를 하기 위해 제 언행과 성격을 어디까지 변화시켜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형사 노릇 제대로 하려면 자신을 잊고 뛰어들어야 해요. 여성성을 버려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여형사’라는 말에서 ‘여’자는 떼어내야 합니다.”
박경위는 순경에서 경위까지 세 차례의 진급을 모두 특진으로 해냈다.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던 1992년, 실적우수자 1등으로 순경에서 경장으로 특진했고, 1996년에는 ‘데이트 남녀 납치사건’을 해결한 공로로 28세의 나이에 두 번째 특진을 했다.
후자는 청송교도소에서 함께 복역했던 범인들이 서울 강남에서 데이트하던 남녀를 납치해 강릉까지 끌고가서 인질극을 벌이다 도망친 사건인데, 쉽게 잡히지 않아 경찰이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박경위가 평소 ‘정보원’으로 관리해오던 한 전과자가 “도피 자금을 요구하는 자들이 있다”고 알려온 것. 청송교도소 동기들에게 도피자금을 마련하려던 이 일당은 결국 박경위에게 덜미를 잡혔다.
1999년에는 신창원의 동거녀 8명을 만나 신창원의 여자 꾀어내는 수법과 생활습성을 조사, 신창원을 검거하는 데 공로를 세운 점이 인정돼 경위로 특진했다. 당시 밝혀진 신창원의 수법은 ‘인기가 별로 없는 티켓다방 종업원에 접근한다→하루 매상치 티켓을 모두 사주며 환심을 산다→동거에 들어가 성관계를 가진 후 본인이 신창원임을 밝힌다→다른 여성에게 접근한다’였다.
박경위의 활약상은 2000년 양천서 강력2반장 시절에도 발휘됐다. 날로 늘어가는 여성 피해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그해 양천서는 여형사 4명과 남형사 2명이 한 팀을 이룬 강력반을 조직했다. 박경위는 대낮 버스정류장에서 여대생을 상대로 벌인 강도강간 사건, 아파트 복도에서 쇠파이프를 휘두르면서 강도 행각을 벌인 피자 배달원 사건 등을 해결했다. 소유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일명 ‘대포폰’을 이용해 ‘즉석 윤락’을 한 업주, 윤락녀, 남성 고객 60여 명을 한꺼번에 검거하기도 했다. 당시 박경위의 사건 해결 실적은 양천서 내에서 단연 1위였다.
172cm의 훤칠한 키에 늘씬하면서도 단단한 체구를 지닌 박경위는 체력단련을 위해 여러 가지 운동을 꾸준히 배워오는 등 자기 관리에도 소홀하지 않다. 다이빙, 스쿼시, 마라톤, 스쿠버다이빙, 스키 등은 이미 마스터한 종목이고 요즘에는 두 달째 권투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검찰에 범인 넘기는 짜릿한 기분
외사과나 보안과, 마약반과 같은 결찰 내 부서에 여경을 수사인력으로 배치하는 것은 10여 년 전부터 전략적으로 시행됐다. 이들 수사 분야의 특성상 여자 수사관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령 박미옥 경위는 보안과에서 여자대학 대공업무를, 강순덕 경위는 마약반에서 여자 마약운반책 검거 등을 맡아왔다.
그러나 폭행, 강도, 살인, 강간 등 강력 범죄를 다루는 형사당직반과 강력반은 여경들에게 여전히 진입장벽이 높다. 현재 495명의 여경이 형사당직반과 강력반이 속한 형사계에 배치되어 있지만, 실제로 외근 및 수사업무를 하는 여형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사건이 워낙 거칠기도 하지만, 사나흘에 한 번씩 당직이 돌아오고, 살인사건 등 대형 사건이 터지면 밑도 끝도 없이 비상이 걸리기 때문에 여경, 특히 기혼 여경이 근무하기에 어려움이 크다.
하지만 강력계 여형사가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을 해결한 공로로 특진하는 등 형사당직반이나 강력반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여형사들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서울 동대문경찰서 이인영(29) 경장(현 형사관리계)이 그런 경우. 이경장은 2001년 해골과 치아만 남은 변사사건이 발생하자 수백 명의 실종자 가족들과 접촉하며 치아 기록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변사자의 신원을 확보, 마침내 범인을 검거했다.
이경장은 “강력반 형사라고 해서 범인들과 항상 몸싸움만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흉악범을 검거할 때는 여러 형사들이 만반의 준비를 하며 역할을 분담하기 때문에 여형사가 기여하는 부분도 크다는 것.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경장도 태권도 3단, 유도 1단의 무술실력을 갖추고 있다.
“남자 형사들과 함께 일하는 게 힘든 점도 있어요. 함께 잠복을 하는데 화장실 갈 일이 급하면 참 난감하죠. 반면 남자 형사와 여형사가 함께 다니면 데이트하는 줄 알고 의심도 덜해요. 시체가 무섭지 않냐고요? 저는 귀신이 더 무섭던데요, 하하.”
초등학생 두 아들을 둔 주부, 소방공무원의 아내, 맏며느리…. 이러한 ‘악조건’을 지니고도 형사1반에서 ‘넘버3’ 역할을 수행하는 여형사가 있다. 부산 동부경찰서 조은희(34) 경장이 그 주인공. 조경장은 “부부가 물불 가리지 않고 살고 있다”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조경장은 경찰이 된 지 6년 만에 형사당직반 ‘티켓’을 얻어냈다. 상사들이 “어디에서 근무하고 싶으냐”고 물을 때마다 “형사반에 가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는 행정직이나 민원실 등에서 근무했지만, 고소·고발된 사기사건이나 횡령사건 등을 취급하는 조사계에서 수사업무를 맡으면서 사건 처리의 ‘희열’을 느끼게 됐던 것. 조경장은 “피의자 신병과 서류가 검찰로 송치될 때 기분이 가장 좋다”고 했다. 형사계 홍일점인 조경장은 조직폭력배 검거 현장에서 ‘동네 아줌마’ 역할을 맡아 범인들의 혼을 빼놓는 등 성과를 거두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여중생 폭력배 사건’. 학교 친구들로부터 상습적으로 돈을 빼앗고 구타한 여중생 4명을 검거했는데, 대부분 부모에게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그중 한 아이는 재혼한 아버지를 대신해 초등학교 1학년짜리 남동생을 기르고 있었다. 검거되던 날, 이 아이는 임신중절 수술을 받고 약국에서 약을 사서 나오는 중이었다.
“남자 형사들 없는 곳으로 데려가 혹시 성폭행을 당한게 아닌지 확인하고 몸조리하는 법을 일러줬어요. 워낙 배가 고프다 보니 친구들로부터 돈을 빼앗아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같은 걸 사먹었더라고요. 그래서 컵라면, 빵 등을 무료로 나눠주는 성당을 알려줬어요. 정 갈 데 없으면 거기 가서 놀라고…. 이렇게 마음이 고픈 아이들에겐 처벌이 최선책이 아니란 걸 깨달았죠.”
박하연(28) 순경도 서울 노원경찰서 형사당직반의 막내이자 유일한 여형사다. 지난해 3월 경찰에 입문해 파출소에 근무하다가 ‘조르고 졸라’ 형사반으로 발령을 받았다.
“사람 얼굴에 글씨 쓰여 있는 건 처음 봤어요. 형사반에 갔더니 남자 선배들 얼굴에 글씨가 쓰여 있더라니까요. ‘너·여·기·왜·왔·니’라고. 에라, 나도 모르겠다 하면서 당직반에서 버틴 지 6개월 째예요. 아직 나가라는 말 들은 적 없으니까 제가 잘 하고 있는 거 맞죠?”
박순경은 형사반에 발령받자 ‘인생에 날개를 단 기분’이었다고 한다. 대학시절, 넉넉지 않은 형편 탓에 주유소 종업원, 식당 설거지, 중국집 배달, 학습지 교사, 백화점 점원 등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그때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배운 것들이 경찰 업무를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런저런 시비 끝에 경찰서까지 오게 된 사람들을 다독거릴 때가 그렇다. 취객에게 정강이를 걷어차인 적도 있고, 박순경 앞에서 다짜고짜 바지를 확 내려버린 술꾼도 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박순경의 ‘밤손님’ 다루는 노하우는 노회하기 그지없다.
“가령 막무가내로 욕설을 퍼붓는 아저씨들에겐 일단 더 심한 욕설로 맞받아칩니다. 막내 누이 같은 여경한테서 그런 욕설을 들으면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순간적으로 당황하게 되죠. 그때부터 살살 달래는 거예요. 사람 본성이란 게 그리 나쁘지 않거든요. 그렇게 하면 이내 고분고분해집니다.”
서울 중랑경찰서 강력2반 김성순(33) 경장은 대학교 2학년 때 교정에 굴러다니는 신문을 펴들었다가 여경들로 구성된 수사대 발대식 사진을 보고 ‘바로 이거다’ 싶어서 그날부터 여경모집 공고만 눈 빠지게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정기적으로 여경을 모집하진 않았기에 졸업하고 1년이 지나서야 모집공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렵사리 꿈에 그리던 경찰이 됐지만, 여기대에 빈 자리가 나지 않아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야 했다. 교통계와 경비대 등에 근무하면서도 틈만 나면 “여기대 들어가고 싶어 경찰이 됐다”는 말을 퍼뜨렸다. 기회는 경찰 입문 2년이 지난 1997년 여름에 찾아왔다.
김경장은 서울경찰청 여기대 소속 형사가 되어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간, 아동 성폭행, 가정폭력, 갈취, 공갈 등 대여성범죄를 수사했다. 여형사 4명이 영화관 앞에서 강간범을 검거하던 순간은 지금 떠올려도 아찔하다. 키가 180cm가 넘는 ‘덩치’인 범인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여자들이 형사임을 눈치채자 격렬하게 반항했다. 4명이 사방에서 달려들어 팔 다리를 붙잡고 곤봉을 휘두르며 20여 분 동안 격투를 벌인 끝에 겨우 제압할 수 있었다.
“경찰이라고 여러 번 외쳤는데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전혀 도와주지 않더라고요. 아, 우리의 시민의식이 이 정도구나 싶어서 실망도 컸습니다.”
김경장은 강력4반 박상준 반장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일선 경찰서 강력반에서 수사 능력을 키우고 싶다는 자신의 바람을, 평소 ‘여경도 강력반에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해온 박반장이 흔쾌히 들어준 것. 지난해 7월 강력반으로 옮긴 김경장은 지난 3월 국민대 법학과(야간)에 입학했다. “형사도 법을 알아야 한다”는 박반장의 배려 덕분이다.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수업을 듣고 다시 경찰서로 돌아와 새벽 업무를 보는 팍팍한 생활이지만, 김경장은 “오랜만에 하는 공부가 너무 재미있다”며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시체 위에 누워볼까요?”
여경이 형사·수사과에 발령받기가 쉬운 일이 아닌 만큼 ‘나는 여자가 아니라 경찰이다’ ‘남자들과 똑같이 일할 수 있다’는 인식을 확고하게 심어줘야 기회가 온다. 때문에 평소 자신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남다른 의지를 드러내야 한다.
충북 충주경찰서 중부지구대에 근무하는 박은경 순경도 어떻게든 형사과에 발령받기 위해 ‘눈도장 찍기 작업’을 적극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경찰이 된 박순경은 ‘작업’의 일환으로 교통지도계 내근직에서 파출소 외근직으로 자진해서 부서를 옮겼다. 파출소에서 순찰을 돌면서 외근 경험을 쌓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초동수사에 끼여들어 형사과 선배들에게 눈도장 찍을 기회가 많을 것이란 계산에서다.
“충북 제천경찰서에 근무할 때는 형사계로 발령을 내달라며 석달 동안 형사계장을 쫓아다녔어요. 그러니까 ‘너 시체 손가락을 절단할 수 있겠니?’ ‘형사라면 시체 옆에서도 밥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겁을 주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시체 위에 누워볼까요?’라고.”
한번은 형사계장이 변사사건 현장으로 박순경을 불렀다. 한 여성이 기차에 깔려 사지가 절단된 철도사고였다.
“저를 테스트하는 걸로 믿고 부지런히 사고현장을 둘러보며 뼛조각, 안구, 내장 등을 찾아다드렸어요. 이번에는 뽑아주겠지 하고 기대했는데, 그래도 ‘형사계에 여경은 필요없다’고 하시더군요.”
박순경은 근무처를 옮기자마자 형사과장과 인사를 나누면서 “꼭 형사가 되고 싶다”고 자기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말만 앞세워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요즘은 수사업무에 필요한 지식을 쌓고 있는 중이다. 검문받는 사람의 지문을 눈으로만 보고 전산망에 뜬 지문과 재빨리 대조·확인하는 훈련도 하고 있고, 범인 검거 사례나 수사기법에 관한 책도 열심히 읽는다. 그는 “음주운전이 적발된 순간 도망치는 운전자를 쫓아가 잡는 일이며, 자신의 몸을 더듬는 취객 상대하는 일도 쉽지는 않지만, 내근 업무보다는 훨씬 재미있고 보람도 크다”고 할 만큼 타고난 ‘바깥 체질’이다.
범죄가 날로 지능화하고, 여성이 연루된 사건이 증가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여경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경찰의 수사력 강화에 요긴해 보인다. 여기대와 강력반 등에서 두루 경력을 쌓은 박미옥 경위는 “남자와 여자 경찰이 함께 일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여형사가 남자 형사와 함께 일하면 보다 효율적인 수사가 가능합니다. 수사기법도, 사건을 분석하는 시각도 다양해지니까요. 여자 피의자를 다루거나 검거하기 쉽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죠. 또한 피해자에게 좀더 친절히 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도 줄게 됩니다. 보통 한 개 강력반에 6명의 형사가 있는데, 3대 3 정도의 비율이 가장 적절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