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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추적

어느 존속살해 여자 무기수의 진실

보험금 노린 살인인가, 부실수사 희생양인가

  • 글: 고상만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rights11@korea.com

어느 존속살해 여자 무기수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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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희를 경찰에 신고한 이는 인척 관계에 있는 김정한(가명)이었다. 김정한이 밝힌 경위는 이랬다. 사건 발생 하루 뒤인 3월8일(화) 오후 11시20분경. 김정한이 서희를 병원 영안실 휴게실로 불렀다고 한다.

“너 나를 믿지?” 김정한의 말에 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전에 경찰이 나를 찾아왔었다. 니가 아버지를 죽였다면 빨리 말하는 것이 좋겠다. 자수하는 것하고 잡히는 것하고는 형을 받을 때 차이가 많이 난다. 니가 그랬니?”

그러자 놀라운 답변이 나왔다.

“제가 했어요”



김정한은 재차 김서희에게 물었다.

“어떻게 죽였냐?”

“수면제를 먹였어요.”

김정한은 이같은 자백을 듣게 된 시각이 대화를 시작한 지 약 20분이 지난 밤 11시40분경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엄청난 일을 혼자 처리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희의 큰아버지에게 말했다고 한다.

“형님, 큰일났습니다. 서희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자백한 것 같아요.”

“뭐라고? 어떻게 했다는 거야.”

“수면제를 먹여서 아버지를 죽였다고 하네요.”

그리고 약 30여 분 후인 3월9일 00시10분경. 경찰은 김정한과 함께 경찰서로 찾아온 서희를 존속살해 혐의로 체포했다. 그리고 이어진 경찰의 피의자 신문조서에서 서희는 자신이 아버지를 수면제로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자칫 교통사고 뺑소니사건으로 끝날 뻔했던 사건의 진실이 드러났고 한적한 시골마을을 들썩이게 했던 흉악한 살인사건은 막을 내리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사건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공범은 없나

경찰의 조사는 순조로워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범행의 물증이었다. 자백말고는 물증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결국 경찰은 현장검증을 실시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서희가 현장검증을 거부한 것이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

서희가 순순히 재연한 장면은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고향 도착 후 공중전화로 친구와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던 장면, 그리고 새벽 5시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부분, 즉 아버지 집에 들어가서 수면제를 먹이고 드라이브를 하며 사체를 유기한 부분은 사실이 아니라면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후 서희는 자신의 혐의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부인만 계속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시인하고 때로는 부인했다. 예를 들어 검찰로 송치된 후 서희는 1, 2회 조서에서는 범행을 부인하다가 3회 조서부터는 시인했고 더 나아가 공범으로 자신의 옛 애인을 지목하기도 했다. 하지만 애인의 알리바이가 확인되면서 이 진술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서희는 왜 아무런 죄도 없는 옛 애인을 공범으로 몰았을까.

수사기관은 유난히 작은 체구의 서희 혼자서 범행을 했다고 보지 않았다. 분명 누군가 공범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실제로 서희의 체격은 키 155cm, 몸무게 35kg에 지나지 않아 웬만한 여중생보다 작다. 그렇기에 수사기관은 공범을 추궁했고 서희는 이에 못 견뎌 순간적으로 허위 진술을 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하튼 이같이 일관되지 않은 진술은 유죄 의혹을 더욱 짙게 했다.

이 사건은 이미 형이 확정된 사건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통해 다시 이 사건을 거론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사법부가 판단한 사실관계에서 몇 가지 결정적인 의혹이 남기 때문이다. 특히 사법부가 김서희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면서 내세운 증거는 오히려 ‘그녀가 진범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한다.

이 사건에서 가장 큰 의혹은 물적 증거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수사기관은 그녀가 범행에 사용했다는 수면제를 어디서 구입했는지 밝혀내지 못했으며 또한 양주병과 술잔 역시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수사기관은 ‘고심 끝에’ 김서희로부터 그 모든 것을 바다에 던져버렸다는 진술을 받아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했다.

그러나 바다에 던져지지 않은 중요한 증거품이 두 개 있었다. 바로 수면제를 갈았다는 사기 밥그릇 뚜껑과 흘린 수면제를 닦은 행주다. 만약 이들 물건에서 사망자의 위에서 나온 수면제가 검출된다면 서희의 범행을 입증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압수한 물건에서는 어이없게도 아무것도 검출되지 않았다. 김서희는 당연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양주병과 술잔, 그리고 사기그릇이나 행주 모두 강압수사에 의한 거짓자백에서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

한편 수사기관은 이들 물건에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자 사망자에게 수면제 가루를 탄 양주를 마시게 한 게 아니라 수면제 30개를 알약으로 먹여 숨지게 했다고 범행방법을 바꾸어 발표했다.

하지만 전문가에 따르면 이 두 가지 설정 모두 설득력이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 근무하는 주무과장의 의견을 종합하면 이렇다.

먼저 가루로 된 수면제를 먹을 경우. 경찰은 (변사자가) 약 250cc의 양주에 알약 30개에 해당하는 수면제 가루를 혼합해 두 잔을 마셨고 이로 인해 사망한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약을 만들 때 들어가는 밀가루 비슷한 성분인 ‘부영제’로 인해 거의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즉 부영제 성분 때문에 술과 30개 분량의 수면제 가루를 혼합할 경우 사실상 ‘밀가루 떡’이 돼 마실 수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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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고상만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rights11@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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